현대오일뱅크 2011 K리그가 끝났다. 얼마 전 K리그 대상 시상식까지 성대하게 치러졌으니 이제 올 시즌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 셈이다. 하지만 아직 올 시즌은 다 끝난 게 아니다. K리그 대상 시상식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는 김현회의 2011 K리그 ‘묻지마 어워드’가 아직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권위 있는 시상식을 놓치는 건 일요일 밤에 <개그콘서트>를 시청하지 않고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것과 같다. 한 시즌 동안 K리그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올해의 울상 - 수원

수원의 꿈은 컸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와 FA컵, K리그 등 세 개 대회 석권을 노렸고 이는 점점 현실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지금 수원은 이 세 개의 우승 트로피는커녕 손에 종이컵도 없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알 사드 비매너 골의 피해자가 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FA컵 결승전에서는 주심의 결정적 오심으로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주심이 오심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이미 경기는 끝나고 성남의 우승 세레모니까지 마무리 된 후였다. K리그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울산과 승부차기 끝에 패해 결국 무관으로 올 시즌을 마감했다. 경기력도 실망스러웠지만 참 운이 없는 한 해였다. 수원 팬들은 올 시즌 막판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년에는 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지길 기원하면서 ‘올해의 울상’으로 수원을 선정했다.

이삿짐 센터상 - 서산현대

울산현대는 지난 5월 15일 홈 경기를 충남 서산에서 치렀다. 스폰서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다. 하지만 이는 연고지를 기반으로 한 프로 스포츠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울산의 홈 경기를 모기업 직원들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에서 치르는 건 삼성이 첼시 후원한다고 수원에서 홈 경기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일이다. K리그가 무슨 회사 야유회나 체육대회 쯤으로 여겨지는 건 문제가 있다. 짐을 싸서 300km나 떨어진 곳에서 홈 경기를 치른 울산현대, 아니 서산현대는 ‘이삿짐 센터상’을 받기에 충분한 일을 했다. 부끄러움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상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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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성은 남들이 다 축구선수 인생이 끝났다고 했지만 결국 죽을 힘을 다해 재활을 마치고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사진=제주유나이티드)

아름다운 부활상 - 심영성

제주 심영성은 2009년 12월 가로수를 들이받는 대형 교통사고로 오른쪽 무릎뼈가 100조각이 났다. 모두가 그의 선수 생활이 끝났다고 했다. 세 차례 대수술을 받고 지옥의 재활을 하는 동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일까지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모두의 우려를 비웃듯 지난 6월 돌아왔다. 무릎뼈가 으스러진지 19개월 만의 복귀전이었다. 수원과의 리그컵 8강전에 선발 출전한 그는 81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부활을 알렸다. 운동선수라면 부상과 재활의 연속이지만 이런 큰 부상을 딛고 멋지게 부활한 심영성은 우리의 코끝을 찡하게 한다. 그에게 ‘아름다운 부활상’과 함께 내년 시즌에도 멋진 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올해의 문학상 - “ㅋㅋㅋㅋㅋㅋㅋ”

6강 챔피언십에서 서울이 득점하자마자 곧바로 실점을 당했을 때, 준플레이오프에서 수원이 연이어 승부차기에서 실패했을 때, 플레이오프에서 포항이 두 번이나 페널티킥을 놓쳤을 때 울산 팬들은 이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헤밍웨이나 톨스토이 같은 대문호도 이 같은 상황을 글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울산 팬들은 짧지만 강렬한 글귀로 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했다. 노벨 문학상에 버금가는 김현회의 ‘묻지마 어워드 올해의 문학상’ 수상자가 된 울산 팬들의 걸개는 이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에는 조롱과 멸시, 환호, 희열 등이 모두 내포돼 있다. 이보다 더한 함축적 의미의 표현이 또 있을까.

봉이 김선달상 - 인천 하늘

봉이 김선달은 대동강 물도 팔아먹었다. 주인이 없는 대동강 물을 자신의 것인양 행세했다. 이런 사건이 인천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9월 18일 인천과 포항의 경기 도중 난 데 없이 하늘에서 폭죽이 터졌다. 바로 옆 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의 굉음이 무려 5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바로 옆 문학야구장에서 프로야구팀 SK와이번스가 경기 종료 후 불꽃놀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하는 바로 옆 구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어 일어난 일이었다. 공문을 보내고 안 보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건 서로가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더군다나 이날 경기는 인천유나이티드의 경기가 미리 예정된 상황에서 SK와이번스가 우천으로 순연된 경기를 치르는 날이었다. 인천 하늘은 특정 구단의 것이 아니다. 주인을 놓고 싸우는 인천 하늘에 ‘봉이 김선달상’을 수여한다.

올해의 밉상 - 알 사드

K리그 팬들을 분노케 했던 알 사드가 ‘올해의 밉상’에 선정됐다. <위닝일레븐>을 하다가 친구가 전화를 받는 사이 치사하고 야비한 골을 넣는 것도 이보다는 개념 있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수원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비매너 골로 최악의 플레이를 펼쳤던 알 사드는 난입한 관중을 폭행하면서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2차전 내내 침대축구로 시간을 보낸 알 사드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시간 지연 행위로 전북 팬들의 염장을 질렀다. 미운 짓은 다 골라서 한 알 사드는 결국 아시아 정상에 올랐지만 압도적인 지지율로 ‘올해의 밉상’ 후보 부문에 단독으로 올라 결국 이 영광스러운 상을 수상했다. 평소에 건강에 이상이 있는 분들은 알 사드 경기 관람을 자제하길 바란다. 심장마비나 암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는 학계 보고도 있…지는 않지만 피가 거꾸로 솟는 건 확실하다.

올해의 유행어상 - “관 때문이야”

지난 시즌 챔피언 서울은 올 시즌 초반 유독 부진했다. 새로 부임한 황보관 감독은 전술 부재와 선수단 장악 실패로 최하위권에서 허덕여야만 했고 결국 4개월 만에 사퇴하고 말았다. 역대 최단 시간 감독의 불명예였다. 팬들은 지난 시즌 챔피언 서울이 급격한 부진에 빠진 이유에 대해 하나 같이 입을 모았다. “관 때문이야. 관 때문이야. 부진은 관 때문이야.” 올 시즌 이보다 더 팬들의 뇌리에 확 박힌 유행어가 있을까. 이견의 여지없이 ‘올해의 유행어상’에 “관 때문이야”를 선정했다.

희망의 아이콘상 - 신영록

지난 5월 8일 제주-대구전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신영록은 무려 50일 만에 의식을 되찾고 132일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다. 생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본인의 강인한 의지와 팬들의 간절한 염원으로 결국 병상에서 일어났다. 승부조작으로 K리그가 큰 시름에 빠졌을 당시 신영록의 기적적인 회생은 K리그의 한줄기 희망으로 여겨졌다. 모두가 다 힘들 것이라고 했을 때 기적적으로 일어난 신영록은 승부조작으로 큰 위기에 쳐했다가 다시 일어나고 있는 K리그와 참 닮았다. 사실 ‘희망의 아이콘상’이라는 누추한 상으로 신영록의 기적적인 회생을 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만큼 신영록은 대단한 일을 했다. K리그뿐 아니라 이 시대희망의 아이콘이 된 신영록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완용상 - 승부조작 가담자들

올해 K리그는 최고의 위기를 맞았었다. 승부조작이라는 스포츠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 때문이었다. 무려 63명의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K리그를 사랑했던 많은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고작 돈 몇 백, 몇 천만 원에 자존심까지 버리고 축구를 팔아먹은 이들 때문에 아직도 남은 K리그 선수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축구를 하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신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눈앞에서 의도된 헛발질로 뒷돈을 챙긴 이들은 더 이상 축구선수로 뛸 자격이 없다. 축구를 팔아먹은 승부조작 가담자들에게 ‘이완용상’을 보낸다. 교도소에서 이 상 받고 사람 되길 바란다. 콩밥과 교도소 3년 자유이용권이 부상으로 수여된다.

국민 방송국상 - tbs 교통방송

방송국이 다 tbs만 같으면 우리나라는 축구 강국이 될 수 있다.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에서도 외면하는 K리그를 교통방송에서 중계하고 있다는 사실은 K리그 팬들에게는 축복이다. 놀라지 마시라. tbs는 올 시즌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 3사의 K리그 중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K리그 중계를 했다. K리그 중계를 외면하는 다른 방송국을 지적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앞서 해야 할 일은 K리그에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방송국을 칭찬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tbs에 ‘국민 방송국상’을 수여한다. 내가 지난 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세 시에 비시즌 최초 K리그 토크쇼인 tbs <베스트11 황금축구화>에 출연한다고 해서 주는 상은 절대 아니다. PD가 시켜서 이런 글 쓰는 것도 절대 아니다. 같이 출연하는 개그맨 황봉이 이런 글 안 쓰면 욕을 한 바가지 한다고 해서 쓰는 것도 절대 아니다.

매미상 - 박호진

매미는 17년 동안 땅속에서 유충으로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라다가 지상으로 올라와 성충이 된다. 탈피과정을 거쳐 시원한 울음소리를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올 시즌 들어 K리그 통산 100경기에 출장한 광주FC 박호진에게 ‘매미상’을 수여한다. K리그에서 무려 10년간이나 뛰었지만 이운재와 김대환의 그늘에 가려 늘 백업 선수로 벤치를 지켰던 박호진의 100경기 출장은 그 어떤 선수의 100경기 출장 기록보다도 의미가 있다. 주전급 선수라면 2~3년 만에 이룰 이 기록을 위해 무려 10년의 세월 동안 기다려야 했던 박호진의 100경기는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1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대기록을 달성한 박호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올해의 골세레모니상 - 김신욱

‘올해의 골세레모니상’을 놓고 많은 선수들이 각축을 벌였다. 특히 김진용의 을욜타 세레모니와 선수보다 더 환호하는 최용수 감독의 세레모니 등이 쟁쟁한 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쟁쟁한 후보를 다 물리치고 김신욱에게 ‘올해의 골세레모니상’이 돌아갔다. 지난 수원과의 준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울산의 세 번째 승부차기 키커로 나선 김신욱은 골문 한 가운데에 슈팅을 날린 뒤 수원 팬들을 향해 도발에 가까운 세레모니를 했다. 손을 귀에 대고 “더 야유해 보라”는 의미를 전달한 것이다. 신선한 도발로 K리그에 화끈한 이슈를 제공한 김신욱 같은 선수들이 많아질수록 K리그는 더 재미있어진다. 축구도 잘하고 쇼맨십도 좋고 키도 크고 성실한 김신욱은 웬만한 건 다 갖췄다. 사람이 뭐 얼굴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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