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축구 대표팀은 누가 봐도 위기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예선이 한 경기 남은 시점에서 대표팀 감독은 공석이 됐고 선수들도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두 달 후 치를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자칫 잘못하면 한국 축구 역사에 가장 큰 오점을 찍을 수도 있다. 현 상황은 무척이나 심각하다. 다 같이 힘을 모아도 될까 말까한 시점에서 아직도 감독 선임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니 이거 참 걱정이다. 대표팀이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면 한국 축구로서도 큰 타격이고 내 돈벌이도 큰 타격이다. 대표팀은 반드시 월드컵에 나가야 한다.

외국인 감독,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거스 히딩크도 좋고 호세 페케르만도 좋고 둥가도 좋다. 말은 참 쉽다. 우리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왜 주제 무리뉴도 후보로 올리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후보에 올리지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이 한국 대표팀을 당장 맡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말로는 누가 못하나. 내가 이런 명장이어도 단 한 경기만 삐끗하면 감독 경력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상황에서 아시아행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돈은 벌만큼 벌어 명예를 더 중시하는 이들이 천문학적인 액수에 흔들리지도 않을 테고 대한축구협회 역시 중동처럼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금액을 제시할 수도 없다.

협회는 이번 달 안으로 감독 선임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 이제 보름 남았다. 세계적인 명장이 한국행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설득 작업에만 투개월, 아니 수개월이 걸린다. 더군다나 이런 거물급 감독과 직접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해서도 수십 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게 무슨 나이트클럽에서 즉석만남 온 여성 연락처 따는 것처럼 쉬운 게 아니다. 대리인과 접촉하고 의견을 조율해 감독과 직접 마주하는 동안 우리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것이다. 만약 이들을 데려올 마음이 강했다면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기 전에 미리 접촉했어야 한다. 하지만 협회는 지금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세계적인 명장을 거론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건 1,000만 원을 들고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중에 뭘 사지?”라면서 고민하는 것과 똑같다. 소개팅을 하기 위해 미리 커피숍에 도착해 “오늘 소개팅 여성이 김태희와 이민정 중에 누굴 더 닮았을까?”라고 상상하는 것과 똑같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자. 마음 같아서야 람보르기니 타고 김태희와 데이트하고 싶지만 현실은 버스타고 김밥천국에서 같이 밥 먹어줄 마음씨도 착하고 얼굴도 착한 여자만 있어도 황송해야 할 상황이다. 사지도 못할 인터넷 명품 쇼핑몰을 둘러본 뒤 “이 가방은 디자인이 별로여서 사지 않겠어”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대표팀에는 박종환 감독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결국은 국내 지도자다. 그리고 K리그에서 감독 빼가기도 이제는 안 된다. 조광래 감독을 경남에서 빼내 이런 식으로 내친 협회가 또 다시 K리그 감독을 유혹하는 건 국내 리그를 무시하는 처사다. 조광래 감독이 경남과 대표팀 감독 겸업을 부탁한 상황에서 이를 단 번에 거절했던 협회가 이번에는 급한 마음에 최강희 감독에게 전북과 대표팀 감독 겸업을 부탁한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주관과 철학이 없는 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최강희 감독을 제외하면 국내 감독 중에 딱히 능력을 입증해 이견 없이 대표팀에 오를 만한 이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박종환 감독을 추천하고 싶다. 다소 의외일 수도 있다. 현대의 기술 축구에 역행하는 박종환 감독을 21세기에 또 다시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던 만화축구가 갑자기 학원 폭력물 만화 축구가 될 것이라고 걱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이라면 반드시 박종환 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종환 감독에게는 이 위기를 한 번에 사로잡을 능력과 카리스마가 있다. 박종환 감독이 다시 대표팀을 맡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들 아는 것처럼 박종환 감독은 스파르타 훈련 방식으로 유명하다. 1983년 멕시코 청소년선수권대회를 앞두고는 선수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훈련하게 해 고지대에 적응하기도 했다. 당시 멀쩡한 사람도 조금만 무리하면 코피를 쏟으면서 정신을 잃는다던 멕시코 고원 지대에서 승리하는 길을 오로지 체력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훗날 그는 “거의 애들을 죽이다시피 다뤘다. 기계로 만들었는데 녀석들이 그 지독한 훈련을 다 이겨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됐을 때는 강도 높은 훈련으로 5명의 고참 선수들이 선수단을 이탈한 적도 있다. 둘 중에 하나다. 포기하거나 마지막에 웃거나.

K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에게도 ‘빠따’를 때리는 등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지도 방식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박종환 감독은 늘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1983년 멕시코 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는 4강에 올랐고 이후 일화 천마를 이끌고는 K리그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의 지도 방식은 늘 논란이 됐지만 결국에는 결과로 모든 비난을 덮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종환 감독에게 혼쭐이 난 외국인 선수들이 불만을 품고 팀을 이탈하지 않고 90도로 박종환 감독에게 인사할 정도로 예의를 갖추고 팀에 헌신했다는 점이다. 그는 무조건적인 ‘매질’이 아니라 선수들의 심리를 제대로 가지고 노는(?) 지도자였다.

모든 걸 걸어야 할 단 한 번의 승부

국내 지도자 중 지금까지의 성적으로만 봐도 박종환 감독을 따라갈 이가 별로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성적 자체보다는 그의 지도 스타일이 지금과 같은 단기전에 적합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를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축구의 체질을 바꿀 지도자가 필요한 게 아니다. 당장 다가올 쿠웨이트전에서 어떤 식으로건 승리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박종환 감독 만한 적임자를 찾기에는 어렵다. 새로운 감독이 와 기술 축구와 패싱 축구의 질을 높여 쿠웨이트전에 임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기술 축구와 패싱 축구는 우리가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

나는 조광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선수들의 정신력과 집중력 문제를 지적했었다. 기술 축구와 패싱 축구도 좋지만 여기에 기본적으로 과거 한국 축구의 상징과도 같았던 정신력과 집중력이 더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내 의견은 변하지 않았다. 일단 박종환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면 단기적으로는 선수들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꼭 과거처럼 ‘빠따’를 들지 않아도 박종환 감독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이라면 선수들의 집중력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가뜩이나 현 대표팀은 일방적인 조광래 감독 경질 이후 선수단의 심리적 동요도 큰 상황이다.

얼마 전 인터뷰했던 신태용 감독은 박종환 감독에 대해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다. “감독님이 경기 도중 벤치에서 불호령을 내리면 없던 힘까지 생겼다. 눈빛만 봐도 선수들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구식 축구로의 회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지금 선진 축구가 문제가 아니라 단 한 경기에 운명이 걸린 풍전등화의 상황이다. 어떤 식으로건 당장 다음 경기에서 성적을 내야 한다. 선수들 역시 월드컵 3차예선에서 떨어지면 큰 일 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박종환 감독의 지도 방식에 대해 불만을 가질 여유도 없으니 과거와 같은 선수단 이탈 현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박종환 축구

박종환 감독은 늘 어려운 상황의 팀이나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은 팀을 정상까지 올려 놓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 왔다. 많은 이들은 그가 멕시코 4강 신화와 일화의 K리그 3연패만이 성적의 전부인 줄 알지만 개인적으로 그가 이룬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건 서울시청 팀을 실업 정상으로 이끌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1975년 창단된 서울시청은 그리 강팀이 아니었다. 갈 곳이 없던 선수들이 모여 있는 그저 그런 팀이었다. 그런데 이 팀의 창단 감독이 바로 박종환이었다. 그는 선수들을 군부대로 데려가 유격훈련까지 시키는 등 혹독한 조련을 통해 팀을 1년 만에 실업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렇다 할 선수 경력도, 그렇다고 축구 명문대를 나오지도 않은 그가 청소년 대표팀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서울시청에서의 우승 경력 때문이었다.

박종환 감독 때문에 K리그 명문 일화가 창단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일화에서는 축구단 창단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박종환 감독이 참여해야 팀 창단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박종환 감독은 구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일화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K리그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으로 만들었다. 여자 축구 최초의 실업팀 숭민원더스 감독과 단장, 여자축구연맹을 창설한 것도 박종환 감독이었다. K리그 대구FC 창단 감독으로 2005년에는 국가대표 한 명 없던 팀을 후기리그에 잠시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박종환 감독은 지금까지 단국공고, 성남고, 유신고, 전남기공 등을 비롯해 무려 16개의 신생팀을 만든 한국 축구의 대부다. 그는 항상 어려운 여건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뽑아내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현재 대표팀의 참담한 상황을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지도자를 멀리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박종환 감독이라면 충분히 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까지 맡기는 게 무리가 있다면 지금 이 상황만이라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떨까. ‘한국 축구의 아버지’는 이렇게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영웅이 되어야 한다. 박종환 감독은 올해 75세지만 여전히 1년 내내 술을 마시고 일주일에 두 번씩 풀타임으로 공을 차는 왕성한 체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전히 그는 건강하고 축구를 사랑하는 피가 뜨겁다. 나는 박종환 감독이 이 상황에서 한국 축구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종환 감독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

박종환 감독은 대표팀에서 오점을 남긴 적이 있었다. 1996년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6으로 참패할 당시의 사령탑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즌이 끝난 뒤 훈련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대회에 나섰고 협회에서도 “1998년 프랑스월드컵이 있으니 부담 없이 아시안컵에 다녀오라”고 아시안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때였다. 그렇지만 박종환 감독은 이란전 참패 이후 곧바로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됐다. 물론 대패의 1차적인 원인은 감독에게 있지만 그에게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진 대표팀을 맡기는 게 세계적인 명장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는 더 현명하고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박종환 감독을 ‘빠다질’이나 하는 지도자로 생각할지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지금 ‘우승 제조기’라는 별명의 감독이 아니라 교도소에 있어야 한다. 그가 선수들을 반쯤 잡는 훈련을 하면서도 오랜 시간 선수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건 카리스마를 내뿜으면서도 아버지와 같은 자상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종환 감독은 일화와 대구를 맡을 때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는 직접 큰 양동이에다가 김치찌개 40인분을 끓이던 자상한 사람이었다. 그를 폭력 감독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박종환 감독은 충분히 능력 있고 선수들의 심리를 잘 다룰 줄 아는 지도자다. 그런 면에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대표팀 감독의 적임자는 바로 박종환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시험을 잘 보는 법은 평소에 차근차근 시험에 대비해 공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기간이 다가와도 불안하지 않다. 하지만 평소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 없는 이가 시험기간이 다가왔다고 교과서 첫 장부터 차근차근 개념 정리를 하다가는 아무 것도 안 된다. 차라리 기출문제 위주로 벼락치기를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장기적으로 시험에 대비하지 못한 한국 축구라면 벼락치기를 위해 박종환 감독을 선임하는 게 어떨까. 일단 이번 시험은 벼락치기로 잘 보고 다음 시험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어떨까.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한 건 세계적인 명장보다도 박종환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