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6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1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시상식은 볼거리가 참 많았다.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한 이동국을 비롯해 다른 수상자들도 빛났지만 개인적으로 이날의 주인공은 제주 신영록과 김장열 트레이너였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등장한 장면은 꼭 이번 시상식이 아니라 올 시즌 스포츠를 통틀어서도 가장 감동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리그가 다시 뛸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는 물론, 휴먼 스토리까지 담겨있는 명장면이었다.

신영록의 등장, 감동 넘친 시상식

“안녕하세요. 신영록입니다.” 신영록이 이날 시상식에서 특별공로상 시상자로 무대에 서 어눌하지만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자 시상식장을 가득 메운 이들은 “신영록”을 연호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44일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난 ‘희망의 상징’에 대한 화답이었다. 비록 아직 몸은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않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놀라운 의지로 다시 의식을 찾은 신영록은 승부조작 여파로 큰 타격을 입은 K리그에 희망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가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신영록은 힘겨워하면서도 큰 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걱정해 주신 덕분에 이렇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축제 분위기 속에 다소 소란스러웠던 시상식장은 신영록이 말문을 열자 일순간 조용해지더니 이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가 특별공로상 수상자의 이름을 호명했다. 자신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낸 말 그대로 생명의 은인에게 바치는 상이었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그 속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김장열 재활트레이너.” 다시 한 번 장내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오른 김장열 트레이너는 신영록의 손을 꽉 잡았다. 올 시즌을 마감하는 시상식에서 성적과는 무관한 공로상이었지만 그 어떤 상보다도 값진 의미가 있었다. 김장열 트레이너는 긴장한 듯 떨고 있는 신영록의 손을 잡고 무대에서 이야기를 나눴고 팬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수상 소감도 전하지 못했지만 백 마디 말보다 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김장열 트레이너는 시상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가야 하는 신영록이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자 그를 부축해 무대에서 내려왔다. K리그 역사에 남을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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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열 트레이너는 신영록이 의식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진=제주유나이티드)>

9분 만에 이룬 2.5%의 기적

김장열 트레이너는 용인대학교에서 재활체육을 전공했다. 군대에서도 육군사관학교 물리치료병으로 복무했고 1990년 포르투갈 청소년 대회에는 남북단일팀 트레이너로 일하기도 했다. 1992년 유공에 입사해 현재 제주유나이티드 트레이너로 무려 20년 동안 활동 중이다. 유공에서 뛰었던 황보관과 부천 시절 이을용, 김기동, 조진호, 제주의 구자철과 홍정호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선수가 없다. 김장열 트레이너는 발레리 니폼니시 축구를 경험한 몇 안 되는 측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만큼 베테랑이다.

지난 5월 8일 제주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주와 대구의 경기 막판 교체 투입된 신영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라운드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순간 큰 문제가 있음을 직감한 김장열 트레이너는 주심의 지시가 있기도 전에 그라운드로 쏜살 같이 달려 나갔다. 상대팀 선수였던 대구 안재훈이 기도를 확보했고 김은중은 축구화를 벗겨 안정을 도왔다. 김장열 트레이너는 1분간 100회 가량 심장을 압박해 멈춰 있는 신영록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쓰러진 뒤 30초 만에 멈춘 심장은 심폐소생술 후 다시 뛰다가 또 다시 멈췄다. 다시 2~3분 동안 김장열 트레이너는 심장을 압박했다.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에 걸린 시간은 불과 5분이었고 구급차에서 병원으로 이동한 시간은 4분이 걸렸다. 신영록은 쓰러진지 9분 만에 응급처치를 마치고 병원에 도착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선수들과 구급차 운전사 등도 훌륭했지만 김장열 트레이너가 신영록의 응급처치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구급차에 올라 타서도 또 다시 신영록의 심장이 멈출까봐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심장마비로 쓰러진 환자가 다시 의식을 찾을 확률은 2.5%에 불과하지만 김장열 트레이너는 이 기적을 이뤄냈다.

두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

사실 경험 많은 김장열 트레이너도 20년 동안 일 하면서 직접 심폐소생술을 해본 건 처음이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혹시라도 모를 사태에 대비해 반복 학습한 덕분에 성공적으로 초기 대처를 할 수 있었다.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에서 주관하는 교육과 세미나 등을 통해 연구하고 공부한 덕분이었다. 그는 신영록이 쓰러져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20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발휘했다. 만약 초기 대처가 늦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 벌어질 상황이었다. 김장열 트레이너는 뿐만 아니라 신영록의 치료 과정도 함께 하며 회복을 도왔다.

지난 7월에는 그의 초기 대처 사례를 바탕으로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에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그만큼 모범적인 사례였다는 의미다. 세미나는 신영록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회복 과정을 정리하고 트레이너가 응급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김장열 트레이너의 사례를 토대로 진행됐다. 또한 그는 제주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제주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진료행사를 진행하는 등 선행에도 앞장서고 있다. 신영록은 의식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신영록과 김장열 트레이너는 이번 시상식에서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44일 만에 의식을 회복한 선수와 목숨을 구해준 트레이너가 펼친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이 아름다운 장면은 앞으로도 우리의 마음 속에 가슴 깊이 자리 잡을 것이다. 신영록이 의식을 회복하고 꽤 시간이 흘렀지만 이런 감동의 시상식을 준비한 이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어제 K리그의 희망을 봤고 휴먼 스토리를 들었다.

당신들의 있어 K리그가 더 빛난다

한 가지 더 보태고 싶은 건 김장열 트레이너가 주목 받고 있지만 다른 트레이너들 역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트레이너들은 3년마다 시험에서 300점 이상 얻어야 자격이 갱신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한다. 구단에서의 일 뿐만 아니라 세미나와 국제학술대회 등의 일정도 수 없이 많다. 구단에서는 단순히 선수들의 부상을 치료하는 역할만 하지 않고 선수와 지도자 사이의 벽을 허무는 역할도 하고 있다. 경기 도중 선수가 그라운드에 쓰러지면 반사적으로 가장 먼저 달려나가는 게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엄마의 마음으로 일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아름다운 시상식에 박수를 보내고 김장열 트레이너를 비롯해 오늘도 묵묵히 선수들을 위해 음지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김장열 트레이너의 진심 어린 한 마디를 소개하려 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아마 제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제가 할 일이 없어도 좋으니 앞으로는 모든 선수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김장열 트레이너처럼 진심을 담아 뒷받침하는 이들이 있기에 올 시즌 K리그도 더 빛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