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미지가 참 중요하다. 나는 올 겨울도 혼자 보내게 생겼는데 사람들에게 “소개팅 좀 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에이, 노는 거 엄청 좋아하게 생겨서 주위에 여자 많을 거 같은데 왜 그러세요.” 주위에 정말 여자가 많고 이런 이야기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다. 내가 그렇게 놀기 좋아하고 여자에 환장하게 생겼나. 나 이렇게 보여도 2년째 솔로인 사람이다. 나야 뭐 올 겨울도 그냥 이렇게 위닝 일레븐이나 하면서 늙어간다고 쳐도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이들은 이미지 때문에 자다가도 떡이 생기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프로스포츠, 이미지 구축이 필요하다

프로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성적이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팬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구단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다 똑같이 공 차는 K리그 구단인데 환경이 다르다고 얼마나 다를까. 결국 얼마나 호감 있는 이미지를 어필하느냐가 팬들의 사랑과 성적을 내고 더 나아가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는 지름길이다. 솔직히 우리 남자들, 여자 처음 만나면 3초 안에 딱 답 나오지 않나. 이때 속으로 ‘예쁘다’고 판단하면 그 다음부터는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시간 아닌가. 매력적인 이미지에 끌려 좋아하는 축구팀이 생겼다면 한 동안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팬들은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첫 이미지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전북이 최근 보여준 이미지는 무척 훌륭했다. 올 시즌 K리그 우승을 떠나 이미지로만 놓고 봐도 전북이 가장 돋보였다. 나 역시 칼럼니스트로서 최대한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최근 전북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이 팀에 호감이 가는 게 사실이다. 아마 지금 K리그에 입문하는 팬들이라면 대부분이 전북을 응원하는 팀으로 선택하지 않을까. 전북은 이제 수도권 빅클럽을 넘어서는 인기를 얻는 구단이 됐다. 전북이 그냥 축구만 잘하는 구단이었다면 이토록 축구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전북이 이토록 전국구 구단이 된 건 다른 구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닥공’과 ‘이장님’으로 특별함을 더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최대 상품 ‘닥공’

이제 축구팬이라면 ‘닥공’이라는 말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닥치고 공부’는 축구팬들과 먼 이야기지만 ‘닥치고 공격’은 참 가까운 이야기다.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인 전북은 올 시즌 최고의 상품 ‘닥공’으로 상종가를 쳤다. 최강희 감독은 마치 여성과의 데이트에서 이제 막 처음으로 손을 잡고 만족해도 될 순간에 입술을 들이미는 것처럼 챔피언결정전에서 미드필더 정훈을 빼고 공격수 정성훈을 투입했다. 공격 욕심이 끝도 없다. 우승컵을 놓고 벌이는 마지막 일전에서 0-1로 져도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지만 전북은 달랐다.

세레소 오사카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원정경기에서는 3-3으로 무승부를 거둬도 나쁘지 않은 순간에도 공격적으로 임하다 3-4로 패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입술을 들이밀다 따귀를 맞았지만 결국 2차전 홈 경기에서는 6-1 대승이라는 거사(?)에 성공하기도 했다. 비록 전북은 원정 1차전에서 패했지만 그들의 공격 의지는 결국 2차전에서 대승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건 ‘닥치고 공격’하는 팀만이 이뤄낼 수 있는 멋진 경기였다. 이게 바로 올 시즌 축구팬들을 열광시킨 전북의 ‘닥공’ 정신이다.

전북의 축구가 무척 공격적이어서 매력적인 건 사실이지만 공격 축구만이 꼭 매력이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전북이 축구 경기를 하면서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이걸 팬들에게 어필했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6강 챔피언십을 통해 한 방으로 상대를 넉다운 시킨 울산의 ‘철퇴 축구’ 역시 무척 좋은 사례다. 개인적으로 K리그 16개 구단 감독이 모두 “공격 축구를 하겠다”고 앵무새처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팀은 철퇴로 한 방 내려쳐서 이기기도 하고 어떤 팀은 닥치고 공격만 하는 등 다양한 색깔의 팀이 리그에 있어야 한다.

인천은 유독 무승부가 많다. 그래서 선수들도, 코치진도 참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것도 좋은 이미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지지 않는 ‘끈끈이 축구’ 어떤가. 다 생각하고 포장하기 나름이다. 잘 이기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지지도 않는 축구 역시 무척 매력적이지 않은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선수층의 강원 같은 팀이 ‘닥치고 공격’만 하는 것도 이상하다. 팀들은 팀마다 자기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 그냥 유니폼 색깔만 다른 16개 구단이 한 리그에서 경기를 펼친다는 건 김경호와 슈퍼주니어, 윤복희, 다이나믹 듀오가 똑같은 노래로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봉동이장’이 전한 즐거움

최강희 감독의 별명은 ‘봉동이장’이다. 사실 봉동은 읍이어서 이장이라는 직함이 없다. 그렇지만 최강희 감독은 실제로 봉동읍에서 명예 이장으로 임명할 만큼 모두에게 ‘봉동이장’으로 통한다. 구수하고 소탈한 말투와 인간미 넘치는 성품, 블루클럽에서도 “트렌드가 아니다”라며 깎아주기를 거부할 2대 8 헤어스타일까지…. 최강희 감독은 유능한 스타일리스트가 ‘이장님 코스프레’를 해준 것처럼 우리의 푸근한 이장님과 닮아 있다. 물론 최강희 감독도 당연히 많은 공부를 하고 때론 엄격하게 선수들을 관리하지만 만약 그가 언론에 학구파 감독이나 호랑이 감독으로 비춰져 있다면 얼마나 어색할까.

연출된 이미지는 아니겠지만 팬들은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의 이미지에 무척 큰 호감을 느끼고 있다. 최강희 감독은 우승을 확정지은 뒤 봉동주민들이 준비한 밀짚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은 채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마 100년이 지난 뒤 우리는 2011년 전북의 우승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할지라도 ‘봉동이장’의 우승 세레모니는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최강희 감독은 우리에게 택배를 대신 받아준 옆집 아저씨와 같은, 우리 집 모내기 할 때 이앙기 끌고 슈퍼맨처럼 등장한 이장님 같은 친근한 존재가 됐다.

최강희 감독 외에도 성남 신태용 감독은 형 같은 이미지로 유쾌하게 언론과 팬을 대하고 제주 박경훈 감독은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패셔니스타’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들 외에는 특별한 이미지 연출을 하는 감독은 딱히 없어 보인다. 프로 스포츠가 팬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좋은 성적과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모두 보여줘야 하는데 우리는 성적에만 집중하는 이들이 무척 많아 보인다. 꼭 능력 있는 모습을 연출할 필요도 없다. 구수하게 생겼으면 생긴 대로, 무뚝뚝한 성격이면 시크한 매력 그대로를 팬들이 알아갈 수 있게 어필하는 것도 포백과 스리백 전략처럼 K리그에 필요한 전략이다. 다 근엄한 감독만 있다면 참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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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은 축구 실력도 실력이지만 올 시즌 팬들에게 어필한 매력도 우승팀다웠다. 그들의 우승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사진=전북현대)

꼴찌 팀도 주목받을 수 있다

내년 시즌 준비를 앞두고는 구단에서 팀 색깔과 감독, 주요 선수의 이미지 구축에 대해서도 한 번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팬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자동차 경품을 내거는 것도, 아이돌 가수를 초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건 다 일회성일 뿐이다. 2007년 대구는 ‘공격 축구’로 주목받았고 지난해 포항은 ‘스틸러스웨이’를 내세워 많은 관심을 끌었다. 성적을 떠나 한 가지 이미지를 내세워 팀을 알리는 게 언론 노출과 대중의 관심을 끄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성적에만 집중한다면 K리그 16위 팀은 당연히 언론과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무언가 호감을 전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프로축구팀이 무려 16개나 있는데 팬들에게 인기를 얻으려면 나머지 15개 팀과 달라도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닥공’과 ‘봉동이장’에 대한 언론 보도와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흥행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내세워야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나도 오늘부터는 여자 좋아하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닥치고 칼럼’ 이미지를 구축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