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의 계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벌써부터 옆구리가 시린 이들이 많을 것이다. 봄부터 지금까지 축구나 보고 있으니 여자친구가 생길 리가 있는가. 하지만 축구 팬이라면 여자친구와 함께 똑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축구장에 가는 꿈을 여전히 포기하지 못한다. 축구도 보고 여자친구도 만들 수 있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노하우를 오늘 공개하려 한다. 이름 하여 축구로 여자친구 만드는 방법이다.

1. 종합운동장은 안 된다
마치 후반 46분 이승현이 결정적인 헤딩 찬스를 맞았을 때처럼 연락을 주고받는 여성과 천금 같은 데이트 기회가 생겼다. 이 기회를 날리면 바로 ‘게임 끝’이다. ‘축덕’ 느낌 물씬 나는 당신은 이 소중한 기회를 축구장 데이트로 활용할 예정이다. 수도권 성남 홈 경기를 함께 보기 위해 탄천종합운동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이 여성이 라돈치치와 사샤를 보면서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질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일단 경기장 분위기부터가 적합하지 않다. 당신이 탄천 의자에 쌓인 먼지를 5분 동안 열심히 닦아준다고 해 그녀가 감동할까. 속으로 ‘저런 더러운 의자에 어떻게 앉아’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남 홈 경기 분위기를 좋아한다. 비록 많은 관중이 찾지는 않지만 성남에는 열정적인 팬들이 참 많다. 다소 촌스럽지만 이게 성남만의 매력이다. 걸쭉한 욕으로 무장한 아저씨들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축구장에 처음 간 여성이 경험하기에 탄천은 그리 추천할 만한 장소가 아니다. 처음 축구를 접할 때면 90분 동안 집중하는 게 쉽지 않다. 전반 10분이 지나면 그녀는 자꾸 한눈을 팔다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친구와 ‘카톡’을 하기 시작하면서 라돈치치가 아닌 송중기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첫 축구장 나들이는 월드컵경기장이나 전용구장이 적합하다. 당신이 이런 곳들을 포기하고 탄천에 간다는 건 첫 데이트에서 파스타를 먹으러 갈 줄 알고 기대하는 이에게 순댓국 집으로 안내하는 꼴이다. “순댓국이 얼마나 맛있는데!”라고 멍청한 소리 하지 말자. 시간이 지나고 그녀와 잘 되면 순댓국은 나중에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월드컵경기장이나 전용구장 등 한 눈에 보기에도 깔끔한 곳에서 처음 축구를 경험하게 해준다면 시간이 지난 뒤 탄천종합운동장이나 강릉종합운동장에도 데려갈 수 있다. 내 경험상 93%의 여성이 월드컵경기장과 전용구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였다.

2. 내기를 하라①
축구는 응원하는 팀이 있어야 보는 재미가 있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경기를 지켜보는 건 <울랄라세션>을 응원하는 내가 탈락을 피하기 위해 경쟁하는 <투개월>과 <버스커 버스커>의 대결을 바라보는 것만큼 흥미가 떨어진다. 처음 K리그를 경험하는 여성과 함께 관중석에 앉아 있다면 가볍게 이런 말을 던져라. “우리 어느 팀이 이기는지 내기할까?” 경기장에 처음 온 게 신기한 여성은 아마 여기에 굉장히 호의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면 약간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렇게 말하라. “음, 무슨 내기하지? 밥 사기 어때?”

하지만 그녀에게 밥 한 번 얻어먹겠다고 승부욕을 발동하지는 말자. 그녀는 어차피 오늘 데이트에서 실망하면 당신을 두 번 다시 만날 일도 없다. 당연히 밥 살 일도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그녀가 승리 팀을 맞출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녀의 즐거움은 곧 나의 즐거움 아닌가. 여기에서부터는 심리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경험상 85%의 여성은 이 상황에서 나에게 먼저 이런 말을 했다. “오빠가 먼저 어떤 팀이 이길지 골라봐.” 자, 이제 작전 들어간다.

‘축덕’인 당신은 유리한 팀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 B팀보다 A팀이 훨씬 잘 한다. 그런데 그녀를 배려한다고 순진하게 “나는 B팀에 걸게. 너는 A팀에 걸어”라고 하면 안 된다. 그녀는 당신이 축구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그럼 내가 B팀 할래.” 축구를 모르는 그녀는 졸지에 배당률 8.70의 팀에 베팅을 하고 말았다. 머리를 써야한다. 그냥 당신이 처음부터 A팀을 선택하라. 그러면 그녀는 자기가 A팀을 고르겠다고 할 것이다. 그때 선심 쓰듯 당신은 B팀을 고르자. 자, 그녀는 이제 내기에서 이길 준비가 됐다.

3. 내기를 하라②
내기를 할 때 한 가지 참고해야 할 것이 있다. 이왕이면 홈 팀이 훨씬 승리 확률이 높은 경기를 관람하는 게 좋다. 그리고 심리전을 이용해 그녀가 홈 팀의 승리에 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수 소개 때부터 응원전 등 모든 분위기가 홈 팀 쪽으로 흐르는 건 당연하다. 홈 팀이 골을 넣으면 장내 아나운서가 이를 흥분하면서 소개하고 폭죽도 터진다. 서포터스는 어깨동무를 하고 방방 뛴다. 반대로 원정팀 득점 상황에서는 경기장이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 양 팀 골 상황에서 분위기 차이가 극명하다.

그녀가 내기에 건 팀이 골을 넣으면 그녀 역시 환호할 것이다. 그녀는 아직 3만 명의 적진에서 30명의 인원으로 대응하는 원정팀 서포터스의 간담 서늘한 참 맛을 모른다. 그녀는 폭죽이 터지고 장내 아나운서와 서포터스가 열광할 때 함께 열광하는 무리가 되어야 한다. 왜 그녀가 홈 팀 승리에 걸어야 하는지 이제 이해가 됐는가. 경기가 시작되면 그녀의 집중력이 상당할 것이다. 내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경기에 일희일비하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성공이다.

‘준전문가’인 당신의 예상대로 경기는 그녀가 선택한 홈 팀인 A팀의 승리로 돌아갔다. 속으로는 웃고 있어도 겉으로는 아쉬워해야 한다. “아, 마지막에 조금만 잘했어도 B팀이 이기는 건데. 정말 아쉽다.” 이 상황에서 내가 경험한 83%의 여성은 이런 말을 했다. “난 또 축구 칼럼 쓴다고 해서 오빠가 진짜 잘 맞출 줄 알았는데 허당이었네. 호호.” 분한 표정 한 번 지어주자. 그리고 절대 이날 경기 끝나고 바로 밥을 사면 안 된다. 이미 경기 도중 주전부리로 배를 채운 상황에서 그냥 차 한 잔 하거나 맥주 정도로 마무리하자. 왜? 내기에서 져서 사야 하는 밥을 구실로 두 번째 데이트 신청을 해야 하니까.

4. “오프사이드잖아”를 외쳐라
사실 축구 마니아가 아니라면 정확한 오프사이드 규정을 아는 여성은 많지 않다. 대충 어디서 한 번 들어만 본 용어다. 경기 도중 자주 외쳐야 한다. “저건 오프사이드잖아.” 그냥 남자들끼리 축구 볼 때는 별 거 아닌 용어지만 그녀는 마치 에멀젼, 세럼, 컨센트레이트 등 여자들끼리는 다 통하는 화장품 이름을 당신만 모르는 것처럼 오프사이드에 대해 잘 모른다. 당신의 해박한 지식에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오프사이드가 뭐야?”라고 물을 때 “그런 것도 몰라?”라고 하면 절대 안 된다.

오프사이드를 굉장히 친절히 설명해줘라. 사실 이걸 어렵게 설명하는 이들이 많은데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손으로 골 넣으면 노골이지? 머리로 넣으면 골이지? 골 넣을 수 있는 신체부위가 수비보다 앞으로 삐져나와 있으면 오프사이드야. 그럼 엉덩이는 오프사이드가 될까? 안 될까?” 자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오프사이드 기준과 함께 자연스레 엉덩이 골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면서 2002 한일월드컵 터키전 송종국의 슈팅에 이은 차두리 엉덩이 골 이야기로 넘어가면 된다. 내가 경험한 여성 중 약 78%는 차두리 이야기만 나오면 즐거워했다.

경기 중간 중간 선수에 대해 소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골 결정력이 좋고 제공권이 좋고 이런 거 필요 없다. 잘 생긴 선수 소개하면 된다. 그리고 김현회 칼럼 열심히 본 티도 좀 내라. 염기훈이 왜 왼발밖에 쓸 수 없게 됐는지, 오락이나 하던 김주영이 어떻게 ‘성공한 네티즌’이 될 수 있었는지 중간 중간에 소개한다면 그녀는 더 이 경기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할 건 ‘스토리’를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배신의 역사’는 그녀가 귀를 쫑긋 세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5. 확실한 골 세레모니를 하라
A매치처럼 함께 응원을 펼칠 수 있는 경기를 직접 지켜보는 순간이라면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그녀와 당신 사이에 가방이나 짐 등 장애물이 될 요소는 미리 치워두자. 또한 경기장에서 먹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 순간의 식욕을 위해 귀중한 기회를 놓치는 일도 생겨서는 안 된다. 언제 골이 들어갈지 모른다. 양 손은 가볍게, 주위는 깔끔하게 정리해놓고 경기를 보자. 한국이 득점에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그녀와 스킨십을 할 수가 있다. 과도한 스킨십이 아니라 가벼운 포옹 정도라면 그녀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한국이 득점에 성공했는데 당신의 손에 치킨 기름이 잔뜩 묻어 있다면 기회는 날아간다. 콜라를 마시고 있다가 포옹한답시고 달려들어 그녀의 옷에 콜라라도 쏟는다면 분위기는 마치 신작 동영상이 나와 기쁜 마음으로 클릭하는 순간 어머니가 방으로 들이닥쳤는데 화면 닫기 버튼을 누른다는 게 전체화면 버튼을 누를 때만큼이나 민망해질 것이다. 리포터 김태진은 마음에 두고 있던 여성과 2006 독일월드컵 토고전을 함께 지켜보며 이 골 세레모니 작전에 완벽히 성공해 결혼까지 골인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이천수와 안정환을 결혼의 일등공신으로 꼽고 있다.

자, 이제 올 시즌 K리그는 중요한 6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승부가 그라운드에서 펼쳐질 것이다. 데이트로 영화 관람도 좋고 드라이브도 좋다. 하지만 함께 스포츠를 지켜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데이트도 추천하고 싶다. ‘축덕’의 꿈인 사랑하는 이와 축구장 데이트에 성공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기원한다. 위에 설명한 노하우를 잘 활용해 보자. 아, 그런데 하나 빼먹은 게 있다. 그냥 간단한 거다. 위 방법을 쓰기 위해 조금 잘 생기고 조금 키 큰 게 일단 전재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냥 혼자 축구장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