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충격도 이제는 어느 정도 수그러든 모습이다.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가 적발된 선수들은 축구계에서 제명을 당했고 이 중 자진신고를 한 선수들은 최근 사회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2~5년에 걸쳐 꾸준히 사회 봉사를 이어가야 나중에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올지 여부가 프로축구연맹에서 결정된다. K리그는 상처를 입었지만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승부조작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의를 지켜낸 선수들이 펼치는 깨끗한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승부조작에 가담해 축구계에서 추방당한 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축구계를 기웃거리고 있다. 혹시라도 제명이라는 징계에서 풀릴 수 있을까 잔머리를 잔뜩 굴리는 모양인데 일말의 기대도 갖지 마시라. 이들은 절대 K리그 무대로 돌아오면 안 된다. K리그뿐 아니라 축구에 관련된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실수를 해도 용서가 될 게 있고 용서가 되지 않을 게 있다. 승부조작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축구계에서 가장 지저분한 행위다.

최근 K리그 선수들은 승부조작으로 제명 당한 선수들의 요구로 탄원서를 쓰는 일이 무척 많아졌다. 훈련을 마치고 클럽 하우스로 돌아오면 책상 위에는 탄원서 종이가 놓여 있다. 승부조작을 한 이들과 알고 지내는 선·후배들의 부탁이다. 팀 동료인 선배의 부탁인데 거절할 수가 없어 20차례 이상 탄원서를 쓴 선수도 있다. 이들이 작성한 탄원서는 승부조작으로 다시는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게 된 이들에게 넘어가고 K리그 복귀의 명분으로 쓰일 예정이다.

탄원서 내용은 항상 똑같다. ‘이 사람이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닌데 한 번의 실수로 제명됐으니 딱 한 번만 봐 달라’는 장문의 내용이다. 요새 K리그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 탄원서 작성 열풍이다. 아마 탄원서 한 번씩 안 써본 선수 없을 거다. 훈련이 끝나면 책상에 앉아 낑낑 대며 글쓰기에 매진해야 한다. 하지만 탄원서를 쓰면서도 “왜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선수들이 대다수다. 그냥 선배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쓰는 경우가 무척 많다.

어떻게 보면 승부조작을 한 선수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건 남겨진 이들이다. 지금도 K리그 선수들은 승부조작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한 번 실수하면 일단 승부조작으로 의심부터 하고 보는 이들이 많다. 승부조작 선수들은 유혹을 뿌리치고 정정당당하게 축구를 하기로 선택한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아주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양심으로 이들에게 탄원서를 요구할까. K리그 선수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자기 좀 살려달라고 종이 한 장 들이 미는 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이 범죄자들은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은 선수들이 죽어라 슈팅을 막아낼 때 헛발질을 해줬고 슈팅을 하늘로 날리면서 정당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 경기에서 지고 정당한 선수들이 승리수당을 날릴 때 승부조작으로 거액을 챙겼다. 그런데 이제 와서 탄원서를 써 달란다. 승부조작으로 큰 돈을 만진 선수들은 그 돈으로 좋은 차를 사고 비싼 술을 마시고 할 거 다 했다. 호사는 자기들이 다 누렸다. 한 선수는 탄원서를 쓰면서 이런 말을 했다. “승부조작으로 돈 받을 때 나한테 맛있는 거라도 한 번 사고 탄원서 써달라고 했으면 말을 안 한다.”

승부조작이 얼마나 잘못되고 위험한 일인지 진작부터 알았을 것이다. 이들은 이런 위험 부담을 알고도 범죄를 저질렀다. 이건 한 번의 실수이니 선처를 부탁할 일이 아니다.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범죄였다. 그런데 낯짝도 두껍게 옛 동료들에게 탄원서를 구걸하고 있다. 왜 헛발질 몇 번에 수천 만 원을 벌 수 있는 ‘고효율 범죄’를 거부하고 정정당당한 플레이를 선택한 이들이 범죄자들의 미래까지 열어줘야 하나. 생각 같아서는 그런 탄원서 다 찢어버리고 싶다.

아마 이런 탄원서 열풍이라면 조만간 이 탄원서가 모여 여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 탄원서 뭉치를 들고 “옛 동료들이 이렇게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고 여론몰이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타의로 탄원서를 쓸 수밖에 없던 선수들은 또 난감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승부조작한 놈들을 감싸는 녀석”으로 비춰질 것이다. 승부조작 한 걸로도 충분히 분통이 터지는데 순수한 선수들까지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하지 말자.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탄원서를 쓰고 있는 선수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팀 동료가 한 장 써달라고 부탁하는데 이걸 거절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당부하건데 지금 타의로 탄원서를 쓰고 있는 선수들에게 “승부조작 선수들을 옹호한다”고 손가락질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난처한 건 유혹을 뿌리치고 축구의 명예를 지키고도 배신한 범죄자들을 위해 탄원서를 써야 하는 이들이다. 구단 차원에서 아예 클럽하우스 내부로 탄원서가 들어오는 걸 막는다던지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왜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수들이 범죄자들 앞길을 걱정해야 하나.

승부조작을 저지른 범죄자들은 평생 공 차는 거 밖에 모르다가 졸지에 백수가 됐으니 막막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술 배워서 새로운 인생 시작하는 게 여러 사람한테 피해 안 끼치는 일이다. 탄원서 구걸하지 말고 그냥 축구는 잊어라. 정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그라운드로 복귀하고 싶거든 묵묵히 사회 봉사 활동하면서 연맹의 결정을 기다려라. 애꿎은 K리그 선수들 난감하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깟 종이 몇 장으로 당신들의 범죄가 용서받지 못할 거라는 건 헛발질을 하기 전부터 잘 알고 있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