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잘 생길 수는 있다. 축구를 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잘 생기면서 축구를 잘하는 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잘 생기기도 어렵고 축구를 잘하기도 어려운데 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게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안정환은 보통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축구도 보통 잘하는 것도 아니다. 월등하다. 거기에 기구한 스토리까지 가졌으니 이보다 더 상품성이 뛰어난 선수가 있을까. 나는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상품성을 지닌 선수로 박지성도, 이영표도 아닌 안정환을 꼽고 싶다.

안정환은 중국에서 고별 경기를 갖고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은퇴와 국내 무대 복귀를 놓고 고민 중인 걸로 안다. 개인적인 바람은 안정환이 K리그에 돌아와 1~2년 만이라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박수를 받으며 떠났으면 한다. 우리는 K리그에서 그에게 제대로 된 응원을 보내준 기억이 별로 없다. 전성기 시절 기량이 아니겠지만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선수다. 안정환이 돌아오면 요새 얼굴 값 좀 한다는 임상협도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안정환의 열혈 팬이다.

안정환의 국내 복귀가 쉽지 않은 이유

그런데 현실적으로 안정환의 K리그 복귀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많은 이들은 안정환의 몸값을 감당할 수 있는 구단이 있는지, 그가 K리그에 돌아와도 여전히 좋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안정환이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몸값도 낮출 수 있고 어느 팀에 가건 이런 초대형 스타의 등장은 후배들의 경기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정환이 꼭 90분을 뛰지 않더라도 그의 존재가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내가 안정환의 K리그 복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건 이 때문이 아니다. 안정환이 돌아갈 팀이 없기 때문이다.

안정환은 1998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해 1999년에는 14골을 기록하면서 팀을 K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준우승 팀에서 K리그 MVP가 나온 것도 안정환이 최초다. 당시 K리그 르네상스의 중심에는 안정환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때 안정환의 모습이 가장 그립다. 그는 K리그에서 엄청난 팬을 몰고 다니면서 전남 수비 네 명을 제치고 골을 기록하던 영웅이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남성들은 안정환이 되고 싶어 머리띠를 했다가 이에 경악하는 여성들의 얼굴을 마주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안정환은 팀이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간 2000년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로 떠난 뒤 이후 일본과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오랜 해외 생활 뒤 그는 2008년 부산으로 돌아왔지만 사실 1990년대 말 안정환이 뛰던 부산과 2008년의 부산은 전혀 다른 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름만 같은 부산일 뿐 로얄즈 시절의 흔적은 아이파크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 같이 뛰던 동료는커녕 팀 색채를 보더라도 로얄즈와 아이파크는 교집합을 찾기가 어렵다. 오히려 당시 안종복 사장과 프런트가 대거 이동해 자리 잡았던 인천유나이티드가 어떻게 보면 더 로얄즈다운 모습이었다. 물론 지금의 인천도 로얄즈의 색채는 없어졌다. 안정환이 부산에서 즐겨찾던 맛집은 그대로였을지 몰라도 부산 팀은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저니맨’ 안정환의 비애

안정환의 부산행을 강요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로얄즈가 계속 유지됐거나, 안정환이 아이파크(아이콘스) 시절에도 이 팀에서 꾸준히 활약했던 추억이 있었더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 안정환에게 부산으로 가라는 건 굉장히 이기적인 주장이다. 안정환은 2008년 한 해 동안 아이파크 선수였지만 그에게 이 팀에 대한 애착이 로얄즈 시절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안정환도 ‘로얄즈의 안정환’이지 ‘아이파크의 안정환’은 아니다. 아이파크가 팀을 인수하면서 로얄즈의 역사까지 이어 받았지만 과연 아이파크가 로얄즈의 후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예를 들 수 있다. 내가 살던 고향은 집 앞에 시냇물이 흐르고 뒷동산에서 산새가 지저귀는 곳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시냇물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던 추억이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돌아간 고향에 시냇물과 뒷동산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만 남아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래도 내 고향일까. 행정적인 구역상으로는 고향일 수 있지만 정서적인 고향은 사라진 것과 다름없다. 로얄즈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아이파크는 마찬가지의 느낌일 것이다. 안정환에게 고향 팀으로 돌아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2000년대의 안정환은 오히려 부산보다는 수원에 더 가까운 선수다. 그는 부산으로 가기 1년 전인 2007년 수원에서 한 해 동안 뛰었었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2007년 수원과 2008년 부산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수원 소속으로 당시 2군 경기에서 상대팀 팬과 충돌했고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이때 수원 팬들은 신문에 광고를 내고 경기장에서 카드 섹션을 펼쳐 보이면서 안정환을 응원했었다. 2000년대 들어 그에게는 아이파크보다는 오히려 수원의 느낌이 더 강렬하다.

레전드 대우할 팀이 없다

2008년 부산 팬들도 안정환을 열정적으로 응원했고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정환은 당시 2군 경기에서의 사건을 계기(?)로 수원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아직도 이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나는 2000년대 들어서 안정환이 뛰었던 부산과 수원 중에 오히려 수원이 더 안정환의 팀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지금 수원은 안정환을 품어야 할 명분은 별로 없다. 한 해 동안 뛰면서 경기력으로는 그저 그랬던 선수를 수원이 레전드 대우할 의무는 없다.

안정환의 K리그 경력은 부산과 수원이 전부다. 그런데 두 팀 모두 안정환이 돌아가기에는 명분이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고 설기현을 품었던 포항이나 이동국을 부활시킨 전북, 고종수를 영입했던 대전처럼 안정환이 새로운 팀에 가 부활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설기현이나 이동국, 고종수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던 시기에 팀을 선택했지만 안정환은 이제 당장 은퇴를 선언해도 이상할 게 없는 시기가 됐다. 안정환은 지금 ‘재활공장장’을 만나는 게 아니라 어머니처럼 푸근한 품으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행복하게 마무리 할 곳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그에게 이런 곳은 없어 보인다.

슬픈 건 안정환이 선수 생활 내내 아시아와 유럽 각지를 돌며 우여곡절을 겪어 ‘내 팀’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쫓겨나듯 떠났고 이후에는 계약 문제가 꼬일 대로 꼬여 직접 광고를 찍어 마련한 돈으로 이를 해결하는 등 제대로 한 곳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없었다. 일본내 에이전트와 유럽 에이전트가 달라 이적을 추진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 다시 유럽으로 날아가서도 월드컵을 준비하며 소속팀에 오래 남아 있지 못했다. 결국 안정환의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 생활은 은퇴를 앞둔 이 시기까지도 발목을 잡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2년 이상 한 팀에서 뛴 적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오래 뛴 팀은 3학년까지 몸담았던 아주대학교다.

우리의 영웅이 겪은 우여곡절

안정환이 K리그건 해외 어느 팀이건 한 팀에서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했다면 지금쯤 그는 고민할 것도 없이 그 팀으로 돌아가 은퇴 준비를 할 것이다. 만약 안정환이 오랜 시간 헌신했던 팀이 있다면 안정환에 대해 경기력과 몸값 등을 따지지 않고 불러 들여 성대한 마지막을 준비해주는 팀이 있었을 것이다. 이건 경기력과 몸값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안정환은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슬픈 일이다. 월드컵 때마다 우리를 열광케 했던 우리의 영웅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연어는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을 준비한다. 하지만 안정환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딱히 없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건 존중할 생각이다. 생각 같아서는 어느 팀이건 선택해 다시 K리그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를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향 클럽은 딱히 없어도 그는 대표팀에서만큼은 언제나 우리를 행복하게 했었다. 어떤 선택을 하건 훗날 그가 축구화를 벗을 때 국가대표 팀에서의 은퇴 경기는 반드시 치러줘야 한다. 그는 축구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세계 곳곳을 전전했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가슴 속에는 태극 마크를 간직해 온 선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