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여러분 모두 모였나요. 빨리 크는 유치원 사마귀 유치원 시간이에요. 자 이번 시간은 여러분의 장래희망을 들어보는 시간이에요. 장래희망이 뭔가요? “저는 커서 커서 K리그 포항스틸러스의 김기동처럼 K리그에서 500경기에 나서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아, K리그에서 500경기에 출장하는 필드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의 진학 상담 선생님 김현회에요. 어린이 여러분 K리그에서 500경기 뛰는 거 어렵지 않아요. 현재 통계와 기준으로 말씀드릴게요. 일단 여러분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달리기를 가장 잘하면 돼요. 그러면 축구부 코치 선생님이 접근해서 “축구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요. 이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하면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 전까지 2년 동안 열심히 공도 줍고 벤치에서 형들 뛰는 거 보면서 운동만 열심히 하면 돼요.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 나이에 집에서 엄마가 해주던 역할만 하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주전으로 대회에 나설 수 있어요.

2010년 초중고리그에 참가한 초등학교 팀 306개 중에 100등 정도만 하면 중학교 축구부로 진학할 수 있어요. 폭이 엄청 넓죠? 100등은 정말 어렵지 않아요. 3월부터 10월까지 35개 권역별로 리그전이 펼쳐지는 데 평일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축구하면서 주말 경기만 준비하면 돼요. 그래서 권역별 리그에서 우승하고 11월에 열리는 초등리그 왕중왕전에 나가서 해트트릭도 하면 중학교 축구부 코치님들이 “우리 중학교로 오라”고 스카우트 제의를 해요. 초등학교는 306개 팀이 있는데 중학교는 187개 팀이 있어요. 여기에서 절반 밖에 축구를 그만두지 않아요.

보통 중학교는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스카우트된 지역으로 진학하곤 하는데 부모님과 떨어져 합숙 생활을 하면서 이때부터 자립심을 키우면 돼요. 엄마 보고 싶다고 울거나 그러지 말고 1,2학년 동안에는 열심히 3학년 형들 빨래도 하고 심부름도 하면서 편히 쉬면 돼요. 축구부 학생들은 나쁜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유혹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걸 뿌리치고 운동에만 전념하면 돼요. 이제는 불법이라 학교 내에 합숙소를 둘 수 없기 때문에 학교 밖에서 3년 동안만 객지 생활을 하면서 가끔 외박을 허락받을 때만 부모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효자도 될 수 있어요. 굉장히 유익하죠?

초등학교 시절 다들 학교에서 가장 달리기도 잘하고 축구 실력도 인정받은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 축구부원 40명 중 11명 안에만 들면 주전으로 대회에 나갈 수 있어요. 어렵지 않죠? 마찬가지로 3월부터 11월까지 펼쳐지는 중등리그에 나가 권역별 우승을 차지하면 어렵지 않게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어요. 왕중왕전에서 수비수를 세 명 제치고 골을 넣거나 한 경기에서 도움 한 개씩을 꼬박 꼬박 기록하면 쉽게 고등학교에 갈 수 있어요. 187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는 137개로 그 관문이 더 좁혀지는데 토너먼트로 치러지는 전국대회에서 입상해도 고등학교 축구부 코치 선생님들이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고 진학 제의를 할 수도 있어요.

고등학교에 가도 마찬가지에요. 중학교 때와 비슷하게 1,2학년 동안은 선배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혹시 모를 출전에 대비해 몸을 만들어 놓으면 돼요. 고등학생 시절 큰 부상을 당해 축구를 그만두는 친구들이 무척 많은데 실력을 닦으면서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몸 관리만 제대로 하고 3학년이 돼 또 다시 전국대회에 나가서 입상하면 이때는 대학교 스카우터 눈에 들 수 있어요. 이때부터는 진학에 대한 경쟁이 무척 심해지는데 상대팀이 거친 태클을 해 발목이 부러지거나 십자인대가 나가는 가벼운 부상만 아니라면 충분히 여러분은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나갈 수 있을 거예요. 어렵지 않죠?

K리그에 가려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4년제 대학교 축구부에만 입학하면 돼요. 이 방법도 어렵지 않아요. 고등학교 2학년 정도에 이름을 좀 날려서 청소년 대표팀에 뽑히면 돼요. 청소년 대표 선수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한 팀에 서른 명씩만 있다고 가정해 137개 고등학교 축구부에 4,110명의 선수가 있다고 계산한다면 이들 중에 23명 안에만 들면 돼요. 너무 쉬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렵지 않게 4년제 대학교 축구부에 입학할 수 있어요. 물론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나온 친구들을 조심해야 돼요. 대한축구협회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해 해외로 유학 보낸 친구들이 이때 나타나는데 얘네들보다 공만 조금 더 잘 차면 돼요.

대학교에 가서 주위의 유혹만 조금 이겨내면 충분히 K리그에 갈 수 있어요. 주위 친구들이 축구부라면서 예쁜 여자도 소개해주고 같이 놀러 다니자고 유혹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땐 몇 번 놀다가 걸려서 ‘빠따’ 몇 대 맞고 다시 정신 차리면 돼요. 그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 듬고 축구에 집중해 U리그에서 팀을 입상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면 K리그에서 여러분을 주목할 거예요. 물론 U-23이하 대표팀에 뽑혀 꾸준히 파주트레이닝센터에 들락거리는 걸 잊으면 안 돼요. 그리고 드래프트 신청 기간에 피 뽑고 소변검사하고 서류 제출해서 기다리면 돼요.

K리그 드래프트에서 여러분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는다고 초조해 할 필요는 없어요. 번외지명까지 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피라미드식 경쟁을 이겨내서 진학하고 팀 동료들과 11명의 엔트리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객지 생활을 하면 여러분은 연봉 1,200만 원에 K리그 번외지명 선수가 될 수 있어요. 그래도 부모님은 “우리 아들이 드디어 프로 선수가 되는구나”라고 감격스러워 하실 거예요. 동네에서는 잔치를 벌일지도 몰라요. 여러분은 이제 번듯한 K리그 선수가 됐어요.

K리그 구단 숙소에 가면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유명한 선수들이 많아요. 여기에서부터는 나이에 상관없이 잘하는 선수가 경기에 나설 수 있어요. 물론 감독님께 잘못 보이면 실력이 좋아도 벤치에만 있는 경우도 있으니 대인 관계도 잘 맺어 놓아야 돼요. 관중이 30명 모인 R리그에서 뛰면서 주전 선수가 언제 부상을 당할지 모르니 언제든 출전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보여주면 김기동처럼 2년 안에 정규리그 경기에 나설 수 있어요. 연봉이 수억 원을 넘는 브라질 선수와의 몸 싸움에서 나가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여러분도 K리그 경기에 나설 수 있어요. 연봉도 입단 때보다는 조금 더 받을 수 있어요.

갑자기 구단이 이적을 결정하면 여러분은 아무 말 없이 짐을 싸들고 다른 팀으로 옮기면 돼요. 이때 축구를 그만두거나 싱가포르, 태국 등으로 이적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연봉도 좀 낮추고 자존심도 굽혀서 다른 K리그 팀으로 이적만 하면 다시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팀을 옮겨 악착 같이 주전 경쟁에서 다시 살아남으면 군대 갈 나이가 되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여러분은 상무라는 좋은 팀에 가면 돼요. 한 해에 20명 남짓 뽑는 상무에 지원해서 약 4대1의 경쟁률을 뚫으면 K리그에서 계속 뛸 수 있어요. 굉장히 쉽죠? 물론 군인이다보니 2년 동안은 수입이 없지만 그래도 병역을 해결할 수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뛰면 돼요.

제대하고 다시 소속팀에 복귀하면 갑자기 새파란 후배가 드래프트를 통해 내 포지션에 입단해 있어요. 이때는 그 선수보다 몸 관리를 잘해서 실력으로 보여주기만 하면 주전 자리를 다시 찾아올 수가 있어요. 그러다 서서히 K리그 주전 선수가 되면 주위에서 미모의 아가씨를 소개해줘요. 좋은 외제차를 탄 선배들도 부러워 보여요. 여기저기에서 유혹이 많아요. 연봉은 아직도 적은데 한 경기만 눈 딱 감고 져주면 연봉보다 많은 돈을 주겠다는 제안도 이뤄져요. 하지만 가볍게 이를 무시하기만 하면 돼요. 오로지 축구만 바라보고 술, 담배를 멀리하면서 자기관리만 하면 돼요.

그러면 어느덧 K리그 100경기 출장이 눈 앞에 있을 거예요. 이때쯤 되면 K리그 팬들이 당신을 국가대표에 뽑자고 주장할 거예요. 결국 성인대표팀에 처음으로 승선한 여러분은 대표팀 경기에서 잠깐 뛰고 혼자 욕을 다 먹으면 돼요. 오래 살고 좋아요. 평소 K리그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이 막 인터넷 게시판에 “쟤 좀 빼라. 국내용이다”라고 막 욕을 해도 그냥 잊으면 돼요. 어차피 다시 대표팀에 가 한 번 실수하면 또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죽으나 사나 여러분을 응원해주는 소속팀에서만 열심히 하면 돼요.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돼요. 모든 유혹을 이겨내야 쟁쟁한 후배들을 이길 수 있어요. 이때쯤 되면 십자인대 파열 같은 가벼운 부상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전신마취하고 어렵지 않은 수술을 받은 뒤에 한 7개월 정도 가볍게 쉬면서 다시 부활하면 돼요. ‘진작에 부상 당했으면 군대 안 가도 됐을 텐데’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하지만 그럴 여유를 부릴 새도 없이 목발을 놓자마자 혼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재활에만 매달리면 돼요. 여러분의 재활 속도를 높여줄 수 있도록 이미 팀에서는 자기 포지션의 경쟁 선수가 펄펄 날면서 팀도 우승권에 근접해 있을 거예요.

이렇게 K리그에 입단해 21년을 한결 같이 뛰면 500경기를 채울 수 있어요. 타고난 실력은 물론 후천적 노력과 철저한 자기관리, 천운만 따른다면 지금 축구를 시작하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도 2039년이면 K리그에서 500경기 출장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 어때요? 어렵지 않죠. 여러분들도 피나는 노력으로 K리그에서 500경기 출장의 어렵지 않은 기록을 한 번 이뤄 봐요.

김기동은 21년차 K리거다. 1991년 K리그에 입성해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이 자리를 지켰다. 1년 동안에도 엄청난 경쟁이 일어나는 프로 세계에서 21년의 세월을 버텨왔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잘 실감이 안 나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그가 K리그에 처음 입성하던 1991년에 걸프전이 터졌고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 일어났다. 대통령은 노태우였고 가수 심신은 권총을 쏘며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불렀다. 아이스크림 브라보콘은 150원이었다. 석현준과 지소연, 남태희는 이때 태어났다. 김기동은 이때부터 지금까지 K리그에서 뛰고 있다.

그는 오는 22일 포항스틸야드에서 벌어지는 포항과 전남의 경기를 통해 통산 500경기 출장의 대기록을 달성할 예정이다. 골키퍼 김병지가 기록한 566경기 출장 기록도 훌륭하지만 필드플레이어로서 지금까지 K리그 499경기에 나서 39득점 40도움을 기록한 김기동의 기록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철인’ 김기동의 대기록에 경의를 표한다. 그가 그라운드를 딛을 때마다 써내려 가는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