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제(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수원과 맞붙은 알 사드(카타르)는 예의는 물론 동네 꼬마 애들도 공 차면서 절대 하지 않는 더러운 플레이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줬다. 이런 팀이 8강전에서 상대팀의 부정 선수 실격으로 4강에 올라와 아직까지 경기를 하고 있다는 건 대회 위상을 한참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나마 보는 눈이 많고 나름대로 수준이 있다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런 행동을 했기에 망정이지 동네에서 아저씨들 공 차는데 이런 짓 했다가는 죽기 직전까지 맞는다.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골

사건의 빌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일단 수원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건 사실이다. 최성환과 알 사드 수비수가 경합하는 과정에서 충돌했는데도 홍순학은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공을 걷어내는 게 페어플레이의 기본이다. 하지만 금방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던 두 선수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염기훈은 그라운드 밖으로 공을 걷어냈다. 이 과정에서 알 사드 선수들은 굉장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흥분했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최성환은 출혈이 생기는 등 적지 않은 부상을 입었지만 당시 그라운드에서 대단한 부상을 당한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던 알 사드 수비수는 결국 ‘침대 축구’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오히려 최성환을 밟아 놓고도 더 아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공이 아웃되자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다. 중동의 지긋지긋한 침대 축구가 시작되는데 공을 바깥으로 걷어 내줘야 할 이유는 없다. 홍순학은 스스로 그렇게 판단했고 염기훈은 두 선수가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터치라인에서 공격 자세를 취하지 않은 채 결국 공을 아웃시켰다.

이후 과정은 텔레비전 중계 화면으로 잘 나타나지 않았다. 느린 화면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수원 선수들이 부상 선수에 신경을 쓰는 동안 알 사드가 득점한 걸로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데 내가 직접 본 상황은 다르다. 수원 선수들은 전열을 정비한 상태였고 알 사드 측에서 스로인 한 공을 다시 넘겨받는 줄 알고 기다렸다. 하지만 알 사드가 찬 공은 수원 진영으로 넘어 오면서 예리한 스루 패스로 바뀌었고 결국 페어플레이를 예상하고 있던 수원으로서는 치명적인 두 번째 실점을 했다. 축구를 하다보면 몰래 반칙을 하기도 하고 거친 파울을 하기도 한다.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득점은 그 어떤 비매너 플레이와도 비견될 수 없는 일이다.

골 세레머니 도발과 관중 폭행

이건 축구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장 기본인 페어플레이에 어긋나는 일이다. 수원이 선수 부상 상황에서 잠시 플레이를 멈추지 않았다는 건 이전 상황에서 서로 언쟁을 벌이며 마무리됐어야 하는 일이다. 더 기가 막힌 건 알 사드 선수들이 마치 대단한 골이라도 넣은 것처럼 골 세레머니를 펼쳤다는 점이다. 도발도 이런 도발은 없다. 더 더 기가 막힌 건 마치 자기가 짠 전술로 골이라도 넣은 것처럼 알 사드 감독이 수원 벤치를 향해 골 세레머니를 펼쳤다는 점이다. 이건 ‘축구 그만하고 우리와 한판 붙자’는 의미 이상이다. 결국 수원 선수들은 알 사드 선수들에게 달려가 격렬한 몸싸움을 펼쳤다.

이후 소강 상태에 접어드는 순간 관중이 난입했다. 알 사드 골키퍼에게 접근해 관중이 항의하자 알 사드 선수 서너 명이 달려와 그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를 염기훈이 저지했지만 결국에는 대형 사고로 번지고 말았다. 이때부터는 그라운드가 아수라장이 됐다. 몸을 풀고 있던 선수들은 물론 코치진까지 다 뛰어 나와 주먹을 주고 받았다. 문제가 되는 건 선수가 관중을 폭행했다는 것이다. 옳지는 않지만 선수들끼리야 경기 도중 언쟁을 펼치고 주먹다짐까지 가는 일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선수가 관중을 폭행하는 건 훨씬 큰 문제다.

결국 수원은 두 선수 부상 당시 공을 걷어내지 않고 잠시 동안 플레이를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인 것과 난입 관중을 막지 못한 1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알 사드가 보여준 더러운 득점과 관중 폭행은 수원의 잘못을 눈꼽 만큼 작아지게 만들었다. 수원의 잘못도 분명하지만 알 사드가 한 행동은 절대 축구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스테보는 알 사드 선수에게 훅을 날렸고 백업 골키퍼 양동원은 1대5 상황에서 이단옆차기를 날렸다. 정말 당시의 감정을 그대로 전하자면 알 사드는 맞아도 싼 행동을 했다.

이정수의 난처한 상황

기자회견장에서 알 사드 포사티 감독은 질문 세 개만 받고 서둘러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통상적으로 기자회견은 기자들이 충분한 질문을 할 때까지 이어진다. 진행자가 마지막 질문을 받은 뒤 마무리에 공감대가 형성되면 기자회견을 끝낸다. 하지만 알 사드 감독은 자기 멋대로 기자회견을 끝내고 일어섰다. 치사한 득점 상황에서 수원 벤치를 향해 도발했던 그는 무척 근엄한 표정으로 “내가 시킨 일이 아니다. 선수들이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몸싸움 과정에서 상대 선수인 게인리히에게 멱살을 잡힐 정도로 감독 취급도 못 받을 행동을 해놓고 자기는 아니란다.

여기에서 걱정이 되는 건 이정수다. 수원에서 3년 동안 뛰면서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정수는 알 사드 소속으로 이날 경기에 나섰다. 그는 알 사드의 정당했던 첫 번째 골 상황에서도 모든 선수들이 골 세레머니를 하는 동안 묵묵히 자신의 진영에 혼자 서 있었다. 친정팀에 대한 예의였다. 물론 경기 도중에는 얄밉게도 수원의 공격을 척척 막아내면서 할 일을 다 했다. 하지만 그도 알 사드가 개념 없는 플레이를 펼치자 동료들과 언쟁을 벌였고 결국 교체되고 말았다. 이정수는 “이건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한 골을 먹어주자”고 했지만 동료들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이정수는 무척 난감할 것이다. 오랜 만에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경기장에 와 사상초유의 집단 난투극이 벌어지는 걸 지켜봐야 했던 그의 심정은 어떨까.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옛 소속팀을 옹호해 알 사드 동료들로부터도 신뢰를 잃었다. 물론 이정수의 개념 넘치는 행동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앞으로 그의 행보가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그는 “돌아가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고 했다. 동료들과 적대적인 감정을 갖게 돼 경기에서 배제되는 등 차별을 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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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사드가 첫 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이정수는 골 세레머니를 함께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진영을 혼자 지켰다. 이제 이정수는 카타르로 날아가 동료들의 불신과 따가운 눈총과 싸워야 한다. 응원을 보내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치달아서는 결국 이정수만 더 난감해진다.

그 누구도 팀을 떠나라고 강요할 수 없다

모든 이들에게 당부하건대 이정수와 팀 동료들의 불화를 조장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언론과 팬들이 이정수와 알 사드를 묶어서 언급하거나 이 둘의 결별로 여론을 몰아가면 결국 피곤해지는 건 이정수다. 생각 같아서는 이정수가 축구 같지도 않은 짓이나 하고 있는 알 사드를 떠나면 좋겠지만 그러면 피해는 고스란히 이정수의 몫이 된다. 이정수가 팀과의 불화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 이적을 결심하더라도 이미 이적시장은 다 닫혀 있다. 다른 클럽도 당장은 못 간다. 4~5개월은 벤치 신세를 져야 한다. 이건 31세 수비수로서는 치명적인 시간이다. 실력이 출중한데 다른 이유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가 생긴다는 건 잔인한 일이다. 선수에게 팀을 떠나라고 하는 강요할 수 있는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또한 이제 한창 물이 오른 선수로 1년에 세금도 떼지 않고 수십억 원이나 버는 이정수는 알 사드를 떠나게 되면 금전적인 손해가 커진다. 단순히 이정수가 알 사드에서 감정적인 대립으로 떠나길 바라는 이들이 이정수의 1년 연봉을 감당해 줄 수는 없다. 선수 생활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은 이정수는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야 한다. K리그나 J리그는 알 사드 만큼 못 준다. 그 나이에 유럽 진출을 타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무리다. 선수의 미래를 위해서는 감정적인 시선을 잠시 거두고 참아야 한다. 우리는 알 사드에 이정수가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는 게 좋다. 비판하려거든 그냥 알 사드만 비판하자. 여기에 이정수가 엮이는 건 본인이 곤란해지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넣었다고 팀에서 안정환을 내쫓은 페루자의 더럽고 치사한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다. 결국 안정환은 이 이후 오래 방황했다. 현재 이정수의 상황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소속팀과의 불화로 인해 팀을 떠나는 건 구단보다는 결국 선수의 손해가 더 크다. 알 사드는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사랑하는 한 선수가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알 사드의 더러운 플레이를 잊지 않고 실력으로 이를 되갚아 주는 건 우리가 해야할 일이지만 이정수를 위해서는 잠시 그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정수의 개념 찬 행동은 수원 팬들에게는 무척 감동적인 일이다. 하지만 알 사드 입장에서는 이정수가 자신들과 함께 패싸움에 가담하지 않은 치사한 동료로 생각될 것이다. 모두가 감정이 격해졌지만 적어도 이정수에 대해서 만큼은 이성적이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감정이 격해질수록 이정수도 팀에서 무척 피곤해 질 수밖에 없다. 이정수는 현재 알 사드 동료들과 함께 카타르로 날아갔다. 그에게 조용한 응원을 보내는 게 지금으로서는 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