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수, ‘주민센터의 지킴이’에서 ‘포항의 투사’로


포항 황지수

포항스틸러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날리던 황지수는 어느 순간 K리그에서 사라졌었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는 조용히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늦은 나이에 동두천에서 공익근무와 챌린저스리그 선수 생활을 병행하며 다시 K리그로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던 황지수가 이제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온다. 오늘은 잊혀졌던 그 이름, 황지수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그를 직접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황지수는 이제 복사 용지를 내려 놓고 축구화 끈을 고쳐 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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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근무를 마치고 이제 K리그 복귀를 준비하는 황지수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반갑다. 얼굴 표정이 좋아 보인다.
다시 포항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개인 훈련과 양주시민구단 팀 훈련을 병행하면서 K리그 복귀를 준비하는 중이다. 공익근무 연가를 일부러 마지막에 몰아 써서 운동에 집중하려고 그동안 아껴왔다. 오는 10월 30일이 소집해제인데 지금은 아껴 놓았던 연가를 내고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양주시민구단이 챌린저스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는데 경기가 29일이다. 포항에서 운동을 하다가 잠시 올라와 마지막 경기를 뛰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아 고민 중이다. 포항에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결정할 생각이다. 이왕이면 양주시민구단이 플레이오프에서 이겨 챔피언결정전 직행을 이끌고 싶다.

▶개인 훈련이 참 고달플 것 같다. 뭐든 혼자 하면 외로운 법 아닌가.
혼자 하려다보니 짜증도 난다. 러닝도 여러 명이서 같이 하면 괜찮은데 혼자 하려면 힘든 게 사실이다. 요새는 혼자 웨이트트레이닝 하고 집 뒤에 있는 칠봉산을 매일 같이 오른다. 힘들어도 지금 운동을 해 놓아야 포항에 가서 힘도 덜 들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아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정말 나 자신과의 힘든 싸움이다.

▶양주시민구단에는 영광스러운(?) K리그 10,000호골의 주인공 김태영과 울산에서 뛰던 조진수까지 있다. 그들은 언제쯤 다시 K리그로 돌아오나.
(김)태영이는 내년 5월 소집해제고 (조)진수는 올해 막 팀에 합류했다. 까마득한 애들이다.

▶당신은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튼튼해 보인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한 이유에 대해 솔직히 말해달라. 안 그러면 우리 네티즌들이 화낸다.
상무나 경찰청에 가기에는 당시 내 상황이 너무 좋았다. 대표팀에도 갔고 K리그에서도 곧잘 했다. 자기가 한창 잘 나가고 있을 때 군대에 가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욕심도 좀 생겼다. 그래서 1년, 1년 미루다보니 상무 입대 시기를 놓쳤고 경찰청에도 내 생일이 빠른 편이라 가지 못했다. 또한 어깨가 자주 빠졌다. 운동하다가 다쳐서 두 번이나 어깨 수술을 해야 했다. 대한민국 현행법상 합법적인 공익이다.

▶당신은 1981년생으로 올해 31살이다. 나보다 형인데 이제서야 병역 문제를 마쳤다. 그동안 병역 문제로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 같다. 나는 예비군 훈련도 끝났다.
말로 다 할 수 없다. 지금 K리그에서 뛰고 있는 28~29세의 선수들이라면 말은 괜찮다고 할지라도 속은 타 들어갈 것이다. 악몽을 꾼 적도 많았다. 축구선수는 생명이 긴 것도 아니라 불안했다. 2009년 챔피언스리그에는 군미필이라 여권이 나오질 않아서 출전하지도 못했다. 그냥 국내에 남아서 K리그 경기에만 나서야 했다. 무척 아쉬웠다. 훈련소에 갔는데 소대장님을 통해 포항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소식을 들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같이 운동했던 동료들은 일본에서 아시아 무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 나는 그때 훈련소에서 제식 훈련을 하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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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수는 양주시민구단에서 2년간 활약하면서 팀이 챌린저스리그 최정상의 경기력을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사진=양주시민구단)

▶K리그 최고의 투사에서 동사무소의 전사로 변신한 당신의 일상이 궁금하다.
동두천시 불현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 보조 업무를 맡았다. 주민센터에서 이것저것 다한다. 눈 오면 눈 치우고 수해나면 수해복구하고 독거노인 분들께는 도시락도 전달해 드린다. 매주 금요일마다 독거노인 분들 댁을 찾아 도시락을 전달할 때는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또한 주민센터로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쌀을 받으러 걸어서 오시는데 배달 차량이 없을 때도 많다. 쌀은 무거워서 들고 가기도 그렇지 않나. 그럴 때면 내 차로 댁까지 모셔다 드리곤 했다. 축구선수로 K리그에 활약할 때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그라운드를 휘젓던 당신이 복사기 앞에 서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긴다.
평소에는 그런 걸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몰랐다. 아마 공익근무요원이 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배울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새는 잘한다.

▶복사의 달인이 되는 비법이라도 있나.
그런 거 없다. 그냥 무조건 반복이다.

▶당신에게는 축구가 편한가. 공익이 편한가.
그래도 공익이 당연히 훨씬 더 편하다. 체력적으로 축구만큼 힘든 게 없다.

▶공익근무를 하면서 양주시민구단 소속으로 챌린저스리그에 나서고 있다. 원래 양주시민구단과의 인연이 있었나.
내 고향이 이쪽이다. 그래서 포항에 있을 때도 12월이면 양주시민구단에 와 몸을 만들었다. 여기 코치가 또 내 친구다. 포항 동계훈련 전에 양주시민구단에서 같이 공 차면서 컨디션을 끌어 올렸는데 그 때 이곳의 실력도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축구선수가 상무나 경찰청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닌데 나에게는 하나의 선택 조건이 더 늘어난 것이라고 좋게 생각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K리그에 비해 다소 산만한 분위기였다. 훈련할 때 선수 숫자도 부족하고 운동도 다들 생업이 있어 밤에만 해야 한다. 선수들의 기량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내가 고참 축에 속해 후배들에게 잘 다가가지 못했는데 후배들과 그라운드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금방 친해졌다. 준비를 제대로 안 하고 나오는 후배들에게는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나와서 시간만 대충 때우고 가려는 모습을 보면 너무 화가 났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프다고 핑계대고 쉬는 편이 낫다”고 했다. 차라리 다른 선수가 더 준비해서 경기에 나서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신에게는 K리그 시절 경기 감각을 익히는 2년이었을 수도 있다. 당신의 몸 상태에만 집중해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싫은 소리를 해야 했나.
같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래도 내가 2년이나 몸 담은 팀인데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할 일 아닌가. 특히 챌린저스리그는 언제든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오늘 당장이라고 축구를 그만둘 수 있다. 다들 축구가 좋아서 남아 있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열심히 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웃으면서 말하지만 무서운 선배 같다. 챌린저스리그를 선택한 당신의 결정에 대해 주위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처음에는 사실 걱정이 좀 됐다. 주위에서도 챌린저스리그로 간다니까 “2년 동안 거기에서 뛰다가 K리그로 잘 복귀할 수 있겠느냐”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나는 양주시민구단에 들어올 때부터 반드시 다시 포항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훈련 때나 챌린저스리그 경기 때도 K리그에서처럼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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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양주 고덕운동장은 양주시민구단의 경기 때가 되면 들썩인다. 황지수는 양주의 이 같은 분위기에 매료됐다. (사진=양주시민구단)

▶다들 업무가 끝나고 밤 8시가 돼야 훈련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밤 8시에 훈련을 하는데 이때까지 굶으면 배가 고팠고 밥을 먹기에도 부담스러웠다. 또한 10시에 훈련이 끝나고 직접 운전해 집에 가서 씻고 집안 일 하면 12시가 훌쩍 넘는다. 다음 날 9시에 출근을 하면 너무 무기력하더라. K리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또 이 생활에 적응이 됐다.

▶챌린저스리그에서는 당신이 K리그에서 맡았던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 외에도 여러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내가 감독이라도 당신을 가만 놔두지는 않을 것 같다.
포항에서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면서 수비적인 역할만 주문 받았었다. 공격적인 부분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공격도 해야 하고 수비도 해야 한다. 볼 배급도 내 몫이다. 이것저것 많이 해 본 것 같다. 활동 반경도 K리그와 비교하면 무척 넓어졌다.

▶낮에는 도시락과 쌀을 배달하고 밤에는 공을 배달하는 당신은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다. 그렇다면 챌린저스리그 양주시민구단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유럽에는 소도시에 동네 팀들이 많지 않나. 여기가 딱 그런 느낌이다. 특히 양주 같은 경우는 팬들도 무척 많다. 아담한 경기장에 꽉 찬 관중들의 모습이 너무 좋다. 가족 단위로 경기를 보러 와 경품을 타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K리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다. 동네 잔치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결국 이런 팀들이 많아지는 게 유럽 축구처럼 한국 축구가 성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기억에 남는 팬들이 있나.
작년에는 없었는데 올해에는 여고생 팬들이 4~5명 정도 생겼다. 서포팅을 하겠다고 직접 응원 문구를 만들어 오고 그런 모습을 보니 무척 기분이 좋았다. 원래는 없던 팬들이 생겨나는 과정을 직접 봤다. K리그에 있을 때는 선수와 팬의 거리감이 꽤 있는데 여기에는 그런 거 없다. 선수단 밥 먹는데 같이 와서 밥 먹고 원정 경기 갔다가 오는 길에는 팬들도 같이 구단 버스타고 집에 가는 것도 여기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친구들이 내가 유부남이라고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총각 애들만 좋아한다.

▶나는 총각인데도 그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이 없다. 날 보면서 힘을 내라. 당신이 챌린저스리그에서 느낀 건 무엇인가. 단순히 2년을 버틴 게 아니라 뭔가 얻어간 게 있을 것 같다.
K리그에서는 원정 경기에 가면 좋은 호텔에서 잔다. 그런데 챌린저스리그는 모텔에서 잔다. 그것도 K리그는 한 방에 두 명씩 자는데 여기는 좁은 방에 네 명씩 들어가야 한다. 먼 원정 거리인데 전날 가지 못하고 경기하는 날 아침에 출발할 때도 있다. 원정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K리그에서의 선수 생활이 얼마나 편했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어릴 적 축구를 하면서 느꼈던 소소한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챌린저스리그는 매년 발전하는 게 보인다. 나뿐 아니라 양주시민구단에는 K리그 출신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들이 챌린저스리그가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나름대로 자부한다. 내가 포항에 가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텔레비전에 나오고 하면 앞으로 챌린저스리그가 더 좋은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사명감이 더 크다.

▶철 들었다. 많은 이들은 당신과 마찬가지로 성남에서 서울유나이티드로 잠시 팀을 옮겨 공익근무를 병행하는 장학영을 기억한다. 특히 당신과의 맞대결은 무척 흥미로웠을 것 같다.
올해 여름에 서울 원정을 가 딱 한 번 맞대결을 했다. 당시에 우리가 3-1로 이긴 걸로 기억한다. 후반기 우리 홈에서 한 경기에서는 그 친구가 나오지 않았었다. 나이는 같은데 고등학교 때부터 경기에서 마주칠 일이 없어서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 챌린저스리그에서 만나 눈인사 정도 주고 받은 게 다다.

▶나는 또 두 챌린저스리그의 거물이 만나 무슨 대단한 이야기라도 나눌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K리그 선수라고 다 친할 수는 없다.

▶당신은 대표팀까지 갔던 K리그의 정상급 선수인데 챌린저스리그에서는 ‘메시 놀이’를 했을 것 같다.
에이, 그 정도까지는 안 된다. 여기 선수들도 굉장히 수준이 높다. 그리고 내가 K리그에서도 그렇게까지 훌륭한 선수가 아니었는데 무슨 소린가.

▶이곳에서 겸손함까지 배운 것 같다. 축구선수들은 상무나 경찰청에 가지 못하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챌린저스리그행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K리그 선수들의 챌린저스리그행이 병역 문제의 또 다른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챌린저스리그는 지금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충분히 매력이 있는 곳이다. 병역 문제를 해결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다. 많은 선수들이 상무와 경찰청 입대를 고민하고 있는데 내가 가끔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운동하면서 스스로 자기 관리에만 신경 쓰면 챌린저스리그행도 큰 문제가 없다. 더군다나 초등학교 이후로는 객지에서 생활해야 하는 운동선수의 특성상 2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나 역시 부모님과 오랜 만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아내와 아기가 곁에 있는 것도 큰 힘이 된다.

▶그래서 결혼은 작년 5월에 했는데 아기는 작년 10월에 태어나는 기적이 일어난 건가.
요새 다들 아기는 결혼한지 5개월 만에 태어나지 않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별 일이 다 일어난다.
시기적으로 좋았다. K리그에 있었다면 힘들었을 텐데 개인적인 시간이 참 많았다. 그렇게 이해해 달라.

▶좋은 뜻으로 이해하겠다. 이왕이면 여기에서 둘 째도 만들고 가지 그랬나.
둘 째는 포항에서 만들 생각이다.

▶포항으로 떠날 준비는 다 마쳤나.
사실 뭐 준비할 것도 없다. 그냥 축구화 한두 개만 더 챙기고 몸만 가면 된다. 여기에서는 혼자 운전해서 헬스장 갔다가 수영장 가고 혼자 차 타고 산에 가고 애로사항이 많았다. 밥도 알아서 이동해 먹어야 한다. 그런데 포항에 내려가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일단 올해 12월까지 포항과 계약인데 혼자 내려갔다가 재계약 하는 걸 봐서 가족들이 포항으로 이사를 할 생각이다. 그전까지는 클럽하우스에서 지낼 것 같다.

▶지난 2년 동안 포항 클럽하우스에 간 적은 없었나. 집처럼 그곳이 그리웠을 것 같다.
올 초 양주시민구단이 포항으로 전지훈련을 갔었다. 그런데 오후 늦게 출발해 새벽에 포항에 도착했고 이른 아침에 곧바로 포항 2군과 연습경기를 했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경기도 클럽하우스가 아니라 포철공고에서 했다. 오랜 만에 클럽하우스에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2년 전 클럽하우스에서 나온 뒤로 아직 한 번도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 이번에 포항에 가 사무실에 들러 먼저 인사를 하고 오후에 곧바로 클럽하우스에 가 팀 훈련에 합류할 예정이다.

▶가면 뭐부터 하고 싶나.
그냥 다 좋을 것 같다. 아직도 내가 포항에 있을 때 있던 선수들이 많이 남아 있다. 클럽하우스에 노래방 기계도 있는데 가서 노래도 부르고 싶고 뭐 예전에 했던 숙소 생활을 오랜 만에 즐겨볼 생각이다.

▶집에서 먹는 밥과 클럽하우스에서 먹던 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무얼 선택하겠는가. “둘 다 좋다” 이런 건 안 통한다.
집에서 먹는 게 맛있다고 하는 게 낫…겠지만 솔직히 포항 클럽하우스 밥이 더 맛있다. 여기에서는 일단 아내가 아기와 있으니까 퇴근하면 전화를 해 “마트가서 이것 좀 사오라”고 시킨다. 설거지도 나의 몫이다. 그런데 포항가면 영양사 분이 밥 시간 때마다 진수성찬을 차려주신다. 설거지도 안 해도 된다.

▶아내보다는 영양사를 택한 걸로 이해하겠다. 이 인터뷰를 아내가 꼭 봤으면 좋겠다. 포항을 떠나 있으면서도 쭉 포항 경기를 챙겨봤나.
항상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이라이트도 꼼꼼히 챙겨봤다. 작년에 부진할 때는 무척 아쉬웠다. 그래도 팀이 항상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잘했다가 갑자기 추락할 수도 있는 게 축구 아닌가.

▶2년간 K리그에서 멀어져 있어 복귀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돌아가면 제대로 보여줄 자신이 있나.
그런 자신이 없다면 다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 있다. 내가 얼마만큼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계약이 올해 12월까진데 선수 등록을 할 수 없어 경기에는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2년 동안 몸을 잘 만들었으니 짧은 훈련기간 동안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2009년 우승을 훈련소에서 보낸 선수로서 챔피언스리그 출전에 대한 애착이 강할 것 같다.
며칠 전에도 (황)진성이와 통화했다.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이 정규리그 2위까지 주어지는데 진성이한테 “몇 게임 더 집중해. 나도 가서 우승 한 번 해보자”고 했다. 요새 진성이가 잘 나가지 않나. 진성이에게 신신당부했다. 2009년에는 비록 함께하지 못했지만 나도 내년에는 포항에서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서고 싶고 더 나아가 우승까지 하고 싶다. 제발 집중해서 남은 경기 잘 했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포항에 ‘황트리오’가 있었다. 황지수와 황진성, 황재원 중 외모로 순위를 꼽자면 당신은 몇 등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제일 나은 것 같다. (황)재원이가 2등, 진성이가 3등이다. 솔직히 진성이보다는 재원이가 좀 더 낫다.

▶황진성은 오늘 당신과 인터뷰한다고 하니 특별한 질문을 부탁했다. 포항 시절 함께 원정을 가면 같은 방을 썼는데 특히 함께 보던 ‘VJ특공대’가 아직도 기억 난단다. 황진성은 지금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 당신이 생각난다던데 당신도 그런가.
아니, 진성이 생각 전혀 안 났다. 그때나 한가해서 챙겨봤지 지금은 사실 바빠서 별로 볼 시간이 없었다. 그 시간이면 집에서 설거지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원정 가면 같이 자기와 방을 쓰고 싶느냐고 물었다.
진성이를 계속 부려먹고 시키기에는 진성이도 이제 나이를 너무 먹었다. 가정도 있는 애한테 그러면 안 되지 않을까. 이제는 좀 더 어린 선수를 한 명 찾아야 될 것 같다.

▶김형일도 한 가지 질문을 보내왔다. 요새 김형일 아내가 임신 7개월이라는데 먼저 아이를 얻은 당신은 아이를 볼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드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이제 갓 돌이 지났는데 예쁜 짓을 너무 많이 한다. 경기장에서도 책임감이 더 많이 생긴다. 아내를 처음 만나 연애할 때는 내가 포항에 있어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공익근무를 하면서 수입이 없으니 포항에 있을 때처럼 잘해주지 못했다. 가정이 생긴다는 건 무척 큰 책임감이 필요한 것 같다. 워낙 요새 빈곤하게 돈 없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포항에 가 재계약을 잘해서 첫 월급을 현금으로 찾아서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다. ‘나 원래 이만큼 벌었어.’

▶이제 포항에 가면 새로운 얼굴인 황선홍 감독과 함께 해야 한다. 아부성 멘트라도 좋다. 새로운 감독님께 한마디 해 달라.
포항과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K리그에서 단 한 번도 이적하지 않고 포항에만 있었다.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무척 애착이 깊은 팀이다.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2008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중간에 떨어졌고 2009년 대회는 내가 여건이 되질 않아 팀에 보탬을 주지 못했다. 그게 두고 두고 아쉽다. 내년에는 함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같은 황씨인데 예쁘게 봐주셨으면 한다.

▶당신을 받아들이는 포항으로서는 행복하지만 떠나보내야 하는 양주로서는 무척 아쉬울 것 같다. 그래도 2년 동안 당신을 아끼고 사랑해준 양주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정규리그에서 1위를 했는데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가 미안하다. 지난해보다 선수 구성이 더 좋아져서 우승도 꿈이 아니다. 챔피언결정전까지 다 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내 길도 포기할 수 없어 먼저 떠나게 돼 미안하다. 또한 팬들에게는 무척 고맙다. 활성화되지 않은 리그인데다가 홍보도 부족한데 경기장에 찾아와 응원해주는 모습을 볼 때면 무척 기분이 좋았다. 특히 지난해보다 올해에,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점점 관중이 느는 모습을 볼 때면 참 뿌듯했다.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다.

▶이제 제2의 고향이 포항으로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당신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잊지 않고 날 기억해줘서 고맙다. 기대에 부응하는 선수가 되겠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도 운동하고 가장 좋아하는 것도 운동이다. 포항에서 선수 생활을 더 오래 하고 싶다. 31살인데 요새는 30대 초반이라고 노장이라 부르는 사람이 없다. 충분히 더 선수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황지수라는 선수가 포항에서 참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포항에서 없어선 안 될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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