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대에 있을 때 우유가 너무 먹고 싶어서 아침 식사 후 몰래 우유 두 개를 먹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1인당 한 개씩이었는데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고참이 “우유 두 개 먹은 놈 솔직히 말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모른 척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다. 잘못한 걸 인지할 수는 있어도 이걸 솔직히 말하고 사과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결국 나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 고참이 제대할 때 이런 편지를 썼다. “그 때 우유 두 개 먹은 거 접니다. 죄송합니다. 제대하는 마당에 용서해 주세요.”

명백한 오심, 무너진 수원

지난 15일에 벌어진 2011 하나은행 FA컵 결승전 성남과 수원의 맞대결은 이틀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도 멋진 경기를 펼친 선수들의 투혼도 빛났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의 열기도 훌륭했다. ‘난 놈’ 신태용 감독은 지난 해보다 더 열악한 선수 구성으로도 FA컵을 들어 올리면서 내년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을 따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또 언제나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그렇듯 이번 경기 역시 심판 판정 논란이 불거졌다.

전반전 수원 박현범 골의 오프사이드 논란과 후반 사샤의 핸드볼 파울이 그 도마 위에 올랐다. 시즌 3관왕을 노리고 있던 수원으로서는 석연치 않은 판정에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정규리그 결과와는 관계없이 내년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을 따낼 수 있던 순간에서 결정적인 심판의 실수로 이를 놓치게 된 건 뼈아프다. 한해 농사를 심판이 망친 셈이다. 사샤의 핸드볼 파울은 오심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박현범의 골은 누가 봐도 온사이드였다. 오심이다.

수원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격렬히 항의했다. 대한축구협회에 “오심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엄청난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열정적인 응원을 보낸 팬들과 FA컵 우승을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온 선수들도 무척 큰 피해를 입었다. 성대하게 펼쳐진 마지막 잔치에서 심판의 판정 미숙은 오점으로 남게 됐다. 오심만 아니었다면 참 멋진 승부 중 하나였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오프사이드 파울 선언도 부심의 깃발이 올라갔지만 최종 결정은 주심이 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책임도 주심이 져야 한다.

주심의 이례적인 사과

이날 경기에서 주심으로 나선 김종혁 심판은 어제(16일) 자신의 트위터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는 “판정을 내렸을 때는 오프사이드인줄 알았지만 전반 종료 후 심판실에 들어가서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번복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핸드볼 파울 논란은 내 결정이 맞다. 또 다시 같은 상황이 되더라도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오프사이드에 대한 오심은 많이 반성하고 있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오심 후 침묵으로 일관하던 심판과는 다른 행동이다.

심판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그 어떤 심판도 경기가 끝난 뒤 이렇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한국뿐 아니라 그 범위를 전세계로 하더라도 자신의 오심을 인정하는 심판은 본 적이 없다. 오심으로 수원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그로 인해 한 해 농사를 망친 건 되돌릴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일을 떠나 심판의 용기 있는 발언은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깨끗한 판정을 내리고 이런 논란 자체를 없애는 게 심판으로서는 가장 옳은 일이지만 실수를 했다면 용기 있게 이를 인정하는 게 차선책이다.

지나간 경기의 오심 여부를 떠나 김종혁 심판의 용기 있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해 보자. 보통의 심판처럼 김종혁 심판이 경기 후 침묵으로 일관했다면 이도 그냥 넘어갈 일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용기 있는 사과로 좋지 않은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경기를 본 주심이 오심을 인정한 이상 수원 구단으로부터 사과를 요구받은 협회도 궁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결국 협회는 본인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김종혁 심판에게 어떠한 방식으로건 징계를 내려야 한다. 차라리 침묵을 선택했다면 김종혁 심판도 유야무야 이 일을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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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결승전에서 주심으로 나선 김종혁 심판은 이례적으로 오심에 대해 사과를 했다. (사진=김종혁 심판 트위터)>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건 정말 큰 용기다. 권위가 생명인 심판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기 종료 후 심판도 기자회견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헛소리’ 취급 받고 없던 일이 됐다. 나도 심판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경기가 끝난 뒤 심판은 판정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게 낫다”고 교육했었다. 김종혁 심판은 지금까지의 심판 교육에서 배운 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소신에 맞게 사과를 했다. 음주운전을 한 연예인이 사과하는 것과 오심을 저지른 심판이 사과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떠한 심판으로부터 사과는커녕 궁색한 변명도 들어본 적이 없다.

김종혁 심판은 1983년생으로 올해 29세의 젊은 심판이다. 대부분 심판이 프로에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 심판 세계에 뛰어 들지만 그는 19세 때부터 큰 뜻을 품고 심판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어린 나이에 내셔널리그와 U리그 등에서 꾸준히 심판 활동을 해오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올해부터는 K리그 전임심판으로 선임되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온 게 바로 김종혁 심판이다. 지도자들보다 한창 어린 나이와 앳된 외모 때문에 무시와 욕설을 받아본 적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3급 심판으로 입문한 후 5년 동안 100경기 이상 꾸준한 성과를 내야하고 영어에도 능통해야 하는 우리나라에 딱 7명 뿐인 국제 심판 자격증도 보유했다.

김종혁 심판은 내셔널리그와 과거 FA컵에서 최우수 심판상을 수상하는 등 상을 받은 경력이 꽤 되지만 매년 ‘돌려먹기’하는 심판상 따위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는 수상 여부를 떠나 권위적인 심판계에서도 파격적으로 20대의 나이에 K리그 무대에 설 만큼 능력을 인정받는 이다. 올해 50세가 된 K리그 최고령 이광용 심판의 조카뻘쯤 되는 어린 나이지만 절대 능력이 부족하지는 않다. 이날 경기에서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제외하면 그 어떤 심판보다도 현명한 판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웃으며 선수를 납득시킨 뒤 경고를 주는 그의 모습은 이제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타 심판’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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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 심판(왼쪽에서 세 번째)이 성남-수원전에 앞서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모습.

김종혁 심판은 도망가지 않았다

프로축구연맹에서는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이나 SNS를 통해 심판 판정에 불만을 나타내는 선수와 코치진에게 징계를 내릴 예정이다. 그만큼 판정 문제에 뒷말이 나오는 걸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선수와 코치진의 입도 막았는데 심판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무척 난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종혁 심판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입을 열었다. 오심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그의 용기까지 폄하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심판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변명도 늘어놓지 않았다.

김종혁 심판의 오심에 대해서까지 감싸 안을 생각은 없다. 수원은 그의 오심으로 FA컵 결승에서 무너졌다. 또한 심판은 판정으로 보여줘야지 자꾸 경기가 끝난 뒤 말로 이를 납득시키려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귀를 막은 다른 심판들과는 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허리를 숙일 줄 아는 젊은 심판의 용기에는 큰 박수를 보낸다. 결국 그의 이런 자세가 앞으로 배정될 큰 경기에서 오심을 줄이는 데 더 좋은 작용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군대 시절 우유 하나 몰래 더 먹고도 이를 감추려고 했던 나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김종혁 심판은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보탰다. “19살 때 심판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누군가에 의해 심판을 본적도, 보려한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것만은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프사이드에 대한 오심은 저희 또한 많이 반성하고 있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경기를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심판이 될 것이며 공정한 심판을 위해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고 이 글을 쓰기위해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그가 도망가지 않는다면 나는 내년 시즌에도 그를 믿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