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 병장 시절 군대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너무 보고 싶었다. 새벽 네 시에 불침번에게 망을 보라고 하고 이 경기를 지켜봐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무실에서 가장 고참이어서 내 마음대로 해도 될 일이었다. 해가 뜨면 바로 말년 휴가를 나갈 예정이라 다음 날 일과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보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았다. 나는 말년 휴가를 나가지만 나머지 후임들은 이날이 일주일짜리 훈련을 나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부분 훈련이 오전 6시 기상과 동시에 전투준비태세라는 것으로 시작한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새벽 네 시부터 누군가 텔레비전을 켜 놓고 있다면 후임들은 가뜩이나 예민한 상태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일주일 동안 밖에서 자야하는 후임들을 생각하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시청을 포기하는 게 옳은 일이라 생각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내년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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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인천과 포항의 경기는 난 데 없이 터진 야구장의 폭죽으로 인해 맥이 빠지고 말았다. (사진=인천유나이티드 남궁경상)

“야구장 하늘은 우리 것이다”

지난 토요일(17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리는 인천과 포항의 2011 현대오일뱅크 K리그 경기를 지켜보고 왔다. 인천이 크게 밀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경기는 시종일관 팽팽했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은 후반 10분 들어서 깨지고 말았다. 바로 옆 문학야구장에서 SK와이번스가 터뜨린 폭죽 때문이었다. 엄청난 양의 폭죽은 축구장에서 바로 옆 사람에게 하는 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방해가 됐다. 나도 인천유나이티드 홍보대사인 미녀 가수 한소아와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폭죽의 굉음이 참 야속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주심의 휘슬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폭죽쇼는 5분 정도 지속됐다. 관중들은 폭죽이 터지는 동안 “그만하라”면서 분통을 터뜨렸고 한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 나에게 “경기 도중 깜짝 놀랐다. 눈과 귀가 자꾸 폭죽으로 향해 경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경기가 끝난 뒤 황선홍 감독도 “폭죽이 터져 경기가 산만해졌다. 경기장이 놀이동산도 아닌데…”라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경기가 한창 뜨겁게 달궈지고 있던 후반 중반 터진 폭죽으로 인해 경기장은 무척이나 어수선해졌다. 인천과 수원의 지난 해 8월 경기에서도 SK야구단 측에서 폭죽을 터뜨려 똑같은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인천 구단 관계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에도 경기가 겹쳐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했는데 SK구단으로부터 ‘야구장 하늘은 우리 것’이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몇 년째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허정무 감독 취임 시점에서 SK가 폭죽 사용에 관해 인천유나이티드에 배려하기로 약속했지만 올해 5월 양 구단 관계자가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또 다시 아무런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더 불쾌한 건 이날 인천유나이티드 경기는 원래 예정돼 있던 경기였고 SK는 우천 취소로 인해 뒤늦게 잡힌 경기였다는 점이다. 같은 날 동시에 경기를 치르지 않기로 하는 게 양 구단의 원칙이었는데 의도치 않은 우천으로 이 원칙이 깨졌으면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야구 경기 도중 폭죽이 터졌다면?

SK는 스포테인먼트를 표방한다고 한다. 매주 토요일 홈 경기가 끝나면 승패에 상관없이 폭죽쇼를 한다고 들었다. 물론 팬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은 좋지만 자기네 팬들만 팬은 아니다. “원래 했던 것이니 이번에도 하겠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부족하다. “야구장 하늘은 우리 것”이라는 말은 안하무인이다. 똑같이 인천을 위해 경기에 나서는 두 팀인데 한 경기 정도는 옆 경기장에서 경기하고 있는 또 다른 인천 팀에게 배려를 했어야 했다. 그것도 야구 경기가 끝나고 30분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에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이건 축구와 야구의 대립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이날 인천-포항전 경기를 보기 위해 6,728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적은 수치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중수가 3만 명이면 폭죽을 터뜨리면 안 되고 6천 명이면 폭죽을 터뜨려도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설령 인천유나이티드가 무관중 경기를 하고 있었더라도 경기력에 지장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야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8회에 축구장에서 폭죽을 펑펑 쏘아 올렸다면 아마 SK도 경기력에 심각한 방해를 받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나는 같은 연고지 팀에 전혀 배려를 않은 인천유나이티드에 대해 비판하는 칼럼을 쓸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스포츠맨십은 경기 도중에만 발휘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상대팀에만 발휘하는 것도 아니다. 구단 프런트 역시 스포츠맨십을 지켜야 한다. 매년 협조 요청하고 공문을 보내고 해도 매년 똑같이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동업자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 현상이다. 요새 야구 인기가 많은데 이게 이번 문제를 합리화하지는 못한다. 만약 야구장에 관중 2만 명 들어찼는데 바로 옆 축구 경기장에 한류 콘서트한다고 5만 명 들어차 성대하게 폭죽쇼하면 축구장에 5만 명 왔으니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일까. 이건 아니다.

한 지붕 두 가족, 배려가 필요하다

축구와 야구가 대립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가뜩이나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시장이 크지 않은데 여기에서 팬들 나눠먹기 하다가는 다 망한다. 이 시장은 경쟁이 아니라 상생이 필요하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대전을 연고로 하고 있는 K리그 대전시티즌과 프로야구 한화이글스는 아름다운 동거를 하고 있다. 두 구단은 광고탑을 공동 제작해 경기 일정을 함께 소개하기도 했고 경기장 전광판을 통해서도 상대 구단의 경기 진행 상황을 안내해주기도 했다. 축구 선수와 야구 선수가 함께 팬 사인회를 열기도 했고 가맹점 할인 혜택도 구 구단 팬 모두가 공통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07년에는 김태균과 이범호 등 한화이글스 선수들이 대전시티즌 시민구단 전환 지지 시민주 공모 행사에 참석해 도움을 준 적도 있다. 어려운 사정의 대전시티즌은 한화이글스의 이런 따뜻한 마음에 크게 감동했고 힘을 받았다. 또한 대전시티즌 선수들과 프런트들은 대전을 연고로 하는 배구팀 삼성화재 블루팡스 경기장을 찾아 응원전을 펼친 적도 있다. 부산아이파크는 롯데자이언츠를 찾아 당시 사령탑이던 황선홍 감독이 시구를 했고 로이스터 감독도 답례로 축구장을 찾기도 했었다. 폭죽쇼로 문제를 일으킨 이들은 지역 팬 사로잡기를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는 다른 지역의 사례를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왜 아름다운지 아는가. 그건 바로 우리들만의 보이지 않는 약속을 지키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밑에 집 시끄러우라고 거실에서 막 뛰어 다녀도, 지하철에서 DMB 크게 틀어놔 옆 사람에게 방해해도 쇠고랑 안 찬다. 경찰 출동 안 한다. 하지만 지키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다.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는 가족이라면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