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의 아스널 이적 논란은 뜨거운 감자다. 프랑스 리그1의 릴과 3년 계약에 월봉 19만유로(약 3억 원)라는 세부조항에 합의한 뒤 1차 메디컬테스트까지 받았던 박주영이 아스널로 급선회하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이적이 기정사실화 되는 단계에서 돌연 아스널과 접촉한 박주영에 대해 릴 구단 측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고 했고 프랑스 현지 언론은 “릴을 걷어찬 박주영이 아스널로 도망쳤다”고 분개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릴을 떠나 아스널과 계약을 결정한 박주영을 옹호하는 분위기다. 박주영과 릴은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상황이라 아무런 효력도 없을뿐더러 구두 합의는 깨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주장이다. 더 좋은 조건의 팀과 계약하는 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의견이다. 이미 박주영이 릴 측에 아스널 이적을 결정한 뒤 사실을 통보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릴 측이 언론 플레이를 통해 박주영을 사실 관계 이상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소식도 나왔다.

머리가 복잡하다. 양 쪽 다 맞는 의견인 것 같기도 하고 틀린 의견인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이 논란은 한 동안 가장 관심 받는 뉴스가 될 것이다. 한 동안 강호동이 <1박 2일>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을 술자리에서 안주 삼았던 이들은 이제 박주영의 행보에 관한 논란으로 안주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박주영의 이번 결정은 애매하면서도 정답이 없는 사건이다. 무상급식 투표처럼 투표율이나 다수결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사흘 남은 이적시장, 당황스러운 릴

일단 릴 측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만약 내가 호프집 사장이라고 생각해 보자. 여러 아르바이트생과 면접까지 마친 뒤 가장 성실해 보이는 한 명을 결정했다.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한 명밖에 뽑을 수 없었다”며 양해를 구하는 전화까지 돌렸다. 취업에 성공한 아르바이트생은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이 첫 출근 전날 전화를 해 “시급을 더 많이 쳐주는 옆 가게에서 일하게 됐다”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만약 박주영 혼자라면 프랑스 언론과 릴의 비난을 혼자 감수해도 된다. 하지만 많은 국내 선수들이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는데 깔끔하지 못하게 이적을 감행한 박주영의 행동은 훗날 후배들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한국 선수들을 바라볼 때 색안경을 낄 수밖에 없다. 또한 릴로서는 이적 시장이 문을 닫기 사흘 전에 이런 통보를 받았으니 당황스러울 것이다. 당장 내일부터 우리 호프집에서 일할 아르바이트생을 다시 어떻게 구하나.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걸 한국 축구 사정과 비교해 봐도 그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만약 K리그에서 메디컬테스트까지 다 마친 외국인 선수가 돌연 J리그와 계약을 맺는다면 우리로서는 무척 불쾌할 것이다. 계약서에 최종 사인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도의적인 책임’ 운운하는 비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누가 보더라도 프랑스 리그보다는 잉글랜드 리그를 더 발전했다고 바라보고 있는데 프랑스 입장에서는 박주영의 선택에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시간 부족한 박주영, 현명한 선택

하지만 박주영 입장에서 본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구단과 함께 할 수 있게 돼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내가 축구선수라도 릴보다는 아스널에서 축구를 하고 싶을 것이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빅리그의 빅클럽 입성에 다가섰으니 박주영으로서는 하루 하루가 흥분의 연속일 것으로 생각된다. 릴과 최종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으니 법적으로도 박주영은 깨끗하다. 빅클럽에서 뛰는 또 한 명의 한국 선수를 보게 돼 팬들로서도 기쁘기 그지 없다.

박주영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또래 다른 아시아 선수들에 비해 유럽에서의 선수 생활이 짧을 수밖에 없다. 그가 해외에서 뛸 수 있는 기간은 경찰청 입대까지 포기하고 현역으로 군대에 간다고 가정해도 길어야 4년 정도다. 릴을 거쳐 빅리그 입성을 준비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박주영이 릴과 계약을 서둘렀다면 나중에 아스널의 제안을 받더라도 릴에게 읍소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랬다면 릴이 흔쾌히 박주영을 아스널로 보내줬을까. 주판알을 튕기면서 여유를 부렸을 것이다.

릴의 제안보다 아스널의 제안이 더 좋은 것도 사실이다. 시급 6,500원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준비하다가 옆 가게에서 시급 8,000원을 준다고 하면 나 같아도 당연히 돈 더 많이 주는 곳으로 일하러 갈 것이다. 돈보다 의리를 더 중시하는 멋진 선수들도 있지만 릴과 박주영은 의리를 따지기에는 무척 생소한 사이다. 차라리 박주영이 “모나코를 다시 1부리그로 올려놓겠습니다”라고 하는 게 의리지 “릴과 먼저 계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니 아스널 제안을 뿌리치고 릴로 가겠습니다”라고 하는 건 의리가 아니다.

박주영의 실력이 결국에는 정답

“너희 둘 다 잘못했어. 형이라는 게 동생 하나 이해 못해? 동생이라는 게 형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어머니는 동생과 싸울 때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쉽지만 이해 가지 않는 말이 바로 “둘 다 잘못했다”다. 아마 오늘 내 칼럼을 보면서 “뭐야? 김현회는 이 논란에서 피해가고 싶어서 둘 다 이해한다며 빠져나가려고 하네”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앞서 장황하게 양 쪽 입장을 다 언급한 이유는 바로 지금부터 내 주장을 펴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윗 글은 사실 안 읽어도 됐다. 물론 다 읽고 여기까지 내려 왔겠지만 말이다.

박주영 이적 논란에 정답은 없다. 아니 정답은 몇 년 후에 가려질 것이다. 정답은 바로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얼마나 활약을 하는지에 달려있다. 그게 바로 이번 논란의 정답이다. 만약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벤치만 지키다가 방출된다면 ‘돈 따라 요리조리 움직이다가 실패한 꼴 좋은 배신자’가 될 것이고 아스널에서 맹활약한다면 ‘역시 현명한 선택을 한 자랑스러운 거너스’가 될 것이다. 정답을 쉽게 내릴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결과가 정답을 동반하기도 한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가 국가의 부름을 받고 공군에 입대한 뒤 병역을 마치고 다시 독일로 날아가 큰 성공을 거뒀다. 그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건 수십 년이 지나도 역시 분데스리가다. 아마 2순위로 연상되는 단어는 차두리, 3순위는 수원, 4순위는 1998 프랑스 월드컵 순서가 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따져서 군대는 10순위쯤 될 것이다. 만약 차범근이 독일에서 실패했다면 그는 ‘병역 문제에 발목 잡힌 비운의 선수’가 됐을 것이고 차범근의 인기 키워드는 군대가 됐을 것이다. 결국에는 활약 여부에 따라 훗날 그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지게 된다.

논란의 종지부, 당장 찍을 수 없다

정확한 비유가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쿠데타’라는 말이 있다. 박주영의 아스널행 결정이 혁명이나 쿠데타는 아니지만 결국 그가 아스널에서 얼마나 성공하는지에 따라 역사는 박주영의 이번 결정을 평가할 것이다.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성공을 거두면 프랑스 언론의 비난도 잦아들 것이고 결국에는 “배 아파 부리는 투정”으로 희석될 것이다. 반대의 상황이라면 결국에는 프랑스 언론의 박주영 비난이 대세가 되고 정답이 된다. 이제 박주영은 이번 논란으로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 모두 주목하는 인기인(?)이 됐다. 그를 지켜보는 눈이 많다.

박주영이 자신의 선택이 타당했다는 걸 보여주려면 100마디 말이 아닌 실력이 필요하다. <슈퍼스타 K>에서 순위 발표할 때 기다리는 60초도 짜증나 죽겠는데 정답을 위해 몇 년을 기다리는 건 더 답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야 한다. 이번 논란은 어느 쪽 논리가 더 타당한지에 의해 정답이 결정되는 사안이 아니다. 박주영이 얼마만큼 아스널에서 활약하는지에 따라 정답이 오답이 될 수도, 오답이 정답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사실상’ 성공이나 ‘사실상’ 실패 같은 건 없다. 자, 이제 우리는 정답을 찾기 위해 매일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