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막을 내린 2011 국제축구연맹(FIFA) U-20 청소년 월드컵은 김경중(고려대)을 위한 무대였다. 그는 말리와의 첫 경기에서 짜릿한 한국의 첫 골을 기록하기도 했고 스페인과의 16강전에서는 승부차기에 실축해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이번 청소년 월드컵 동안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 본 김경중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경중은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던 이광종호의 분위기와 스페인전 승부차기에 대한 비화를 솔직히 털어놨다. 지금부터 그와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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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 김경중을 직접 만났다. 그는 이제 승부차기 실축의 아픔을 훌훌 털어버린 밝은 모습이었다.>

-우리를 웃기고 울린 당신을 직접 만나니 참 반갑다. 콜롬비아에서 돌아와 어떻게 지냈나.

콜롬비아에서 대회를 마치고 돌아와 고려대 서동원 감독님께 곧장 전화를 했더니 일주일 동안 쉬고 올라오라고 해주셨다. 그래서 광주 집에 내려가 쉬다가 함께 대회에 나갔던 (최)성근이, (노)동건이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함께 축구를 하다 그만둔 친구들이 다들 군대에 갔는데 면회도 다녀왔다. 오랜 만에 일주일 간의 꿀맛 같은 자유를 만끽하고 그저께(22일)부터 학교 훈련에 합류했다. 다음 달 열리는 고연전을 준비해야 한다.

-멀리서 걸어오는 당신을 보고 나는 혼다가 걸어 오는 줄 알았다. 정말 닮았다.

요새 들어서 혼다 닮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사실 파주NFC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비가 많이 와서 머리가 눌렸었는데 그 사진이 혼다를 닮게 나온 것 같다. 혼다를 닮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가 ‘사진빨’이 잘 안 받는다. 실물은 좀 낫다. 당신이 지금 가까이 봐서 알지 않나.

-가까이서 보니 호나우딩요도 많이 닮았다.

그 소리는 정말 많이 들었다. 지난해 U-19 아시아청소년대회 일본전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좋은 댓글이 있을 줄 알고 인터넷 뉴스에 접속했는데 ‘베플’이 뭐였는줄 아나. ‘나는 오늘 한국의 호나우딩요를 봤다’였다. 옆에서 친구들이 웃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부터는 인정하기로 했다. 닮긴 닮은 것 같다.

-축구선수로서 호나우딩요를 닮았다는 건 기분 좋은 이야기 아닌가.

호나우딩요가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 않은가. 실력이 닮았다면 좋겠는데 이건 누가 봐도 외모를 닮았다는 소리 아닌가.

-힘내라. 당신에게 혼다와 호나우딩요 중 닮은꼴 한 명을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마음껏 골라보라.

정말 어렵다. 음…. 그냥 혼다로 하자. 축구 실력은 호나우딩요를 닮고 싶은데 차마 외모까지는 그렇게 못하겠다. 혼다가 잘 생겼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대가 호나우딩요니까 이렇게 선택한 것이다.

-이제 헛소리 그만하고 본격적으로 축구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과 할 이야기가 참 많다. 스페인전 승부차기 하나로도 밤을 새울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중요한 문제는 잠시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제 고연전에서는 대표팀 동료였던 백성동(연세대)과 적으로 만나야 한다.

지난해 고연전에서 우리가 3-0으로 이겼다. 내가 후반에 교체로 들어갔는데 마지막 슈팅이 골로 연결됐다. 너무 좋아서 세레모니까지 다 했는데 경기 끝나고 기사를 보니 내 득점이 아니었다. 내 슈팅 이후 선배가 태클한 게 득점으로 인정됐다. 올해에는 제대로 된 골을 넣고 싶다. 연세대 친구들하고도 굉장히 친한데 콜롬비아에 있을 때도 “너희는 올해도 우리한테 안 된다”면서 서로 티격태격했다. (백)성동이하고도 멋진 승부를 하고 싶다.

-백성동과는 금호고 동창이다. 추억이 많을 것 같다.

사춘기 시절이라 숙소 생활을 하다가 밤이 되면 가끔 숙소를 탈출하기도 했다. 성동이가 주장이었는데 항상 우리를 말리다가 결국에는 같이 숙소를 탈출했다. 탈출하면 어디 새로운 데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숙소 뒤 PC방에 가서 놀았다. 나는 별로 게임을 못해 자기들 스타크래프트하고 서든어택 할 때 잘 끼워주지도 않았지만 그냥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재미있었다. 한 번은 트레이너 선생님 주무시면 나가자고 모의를 했는데 선생님이 눈치 채고 자는 척 하다가 우리를 미행한 적이 있었다. 컴퓨터 하다가 목덜미를 잡혔다. 혹시나 오해를 할까봐 하는 말인데 한 달이면 두 번 정도 탈출했고 나머지 28일은 열심히 운동했다. 새벽에 운동하고 오전 수업 듣고 오후, 저녁 이렇게 세 번씩 열심히 운동했다.

-당신은 ‘게임의 신’ 경남 김주영에 비하면 양반이다. 그런데 금호고 시절부터 촉망받던 당신이 프로 무대가 아니라 대학을 선택한 건 의외다.

나도 사실 프로로 직행하고 싶었다. 감독님께서도 프로팀 입단을 권유하셨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대학교에 가 경험도 쌓고 새로운 생활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남들은 쉽게 못 가는 고려대학교 아닌가. 그래서 부모님 의견을 따랐다.

-나도 폼나게 고려대 다니고 싶다. 프로로 직행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는 않나.

장단점이 있다. 프로팀에서는 자기관리가 중요하지만 대학교는 단체 생활도 무척 중요하다. 구타는 당연히 없지만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땐 기합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면 프로에 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또 우리는 아마추어라 돈을 못 번다. 얼마 전 대표팀 소집으로 파주에 갔는데 울산 현대에서 뛰는 (임)창우 월급날인 걸 알았다. 그래서 회식하고 창우한테 “아이스크림 한 번 쏘라”고 했더니 아주 쿨하게 쏘는 거다.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실감했다. 나는 그렇게 아이스크림 못 쏜다. 반대로 캠퍼스의 낭만도 느껴보고 공부도 하고 그런 면은 대학교의 장점이다. 보다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어서 대학교에 온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대학생도 아닌데 아이스크림 쏠 돈이 없다. 그런데 당신이 앞서 말한 지난해 일본전은 정말 명승부였다. 두 골을 먼저 내주고 15분 만에 세 골을 넣어서 역전에 성공했다. 그때 추격의 신호탄이 바로 당신의 골이었다.

아시아선수권 8강전이었다. 여기에서 이겨야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청소년 월드컵에 나갈 수 있었다. 두 골이나 먼저 실점했다. 특히 두 번째 골은 페널티킥이었는데 동건이가 한 번 막았지만 주심이 다시 차라고 해 실점하고 말았다. 하지만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를 계속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는데 두 번째 골을 먹고 불과 1분 만에 내가 추격골을 넣었다. 아직도 잊어지지 않는 경기다.

-일본과의 대결이어서 더 각오가 남달랐던 것 아닐까.

경기 전날 선수들끼리 모여 미팅을 한다. 등번호 1번부터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상대팀 분석을 하기도 하고 전의를 불태우며 파이팅을 외치기도 한다. 그런데 그때 우리들끼리 이런 말을 했다. “정신력으로 이기지 말고 실력으로 이기자.” 그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또 그 경기를 이겨야 월드컵 무대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어서 “우리 또 만날 수 있게 꼭 이기자”는 말도 했는데 그런 의지가 경기에서 발휘된 것 같다.

-당시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지동원으로 향했다. 서운한 마음은 없었나.

(지)동원이가 골도 넣고 잘 한 건 사실이다. 나는 별로 서운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또 당시 중국에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아 동원이가 그렇게 언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극적으로 일본을 이겨 그냥 마냥 좋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청소년 월드컵 이야기를 해보자. 대회 개막을 앞두고 언론에서는 “이번 대표팀에는 스타가 없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우리끼리 “그런 말에는 신경쓰지 말자”고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해외파 친구들이 오면 분명히 도움 되는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파를 소집하기가 쉽지 않아 우리끼리 해왔던 시간이 참 많았다. 갑작스럽게 그 친구들이 들어오면 발이 안 맞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는 나라에서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려 했고 우리 모두가 스타라고 생각하려 했다. 오히려 그게 더 동기유발의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번 대회는 2625m의 엄청난 고지대에서 열렸다. 준비 과정에서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미국 덴버로 전지훈련을 갔었는데 거기가 해발 1600m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런데 한 번 공격을 나갔다가 수비에 가담하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게 느껴지더라. 여기가 이 정도인데 콜롬비아는 어떨지 막막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훈련하기도 했다. 막상 콜롬비아에 가서 훈련을 해보니 확실히 몸이 보통 때와는 달랐고 공이 오는 속도도 달랐다. 공이 이쯤에 떨어지겠다 싶어서 트래핑을 하려고 하면 그냥 공이 나를 지나간다. 공이 감겨야 하는데 그냥 쭉 날아가기도 한다. 적응하는데 힘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끼리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지금까지 훈련한 시간은 수천 시간인데 90분 뛰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이걸 머리 속에 넣고 뛰었다.

-걔네들은 무슨 그런 백두산 높이에서 공을 차나.

그러게 말이다. 콜롬비아 애들이 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당신은 말리전에서 대표팀의 대회 첫 골을 기록했다. 경기에 임하는 각오가 어땠나.

저녁 경기를 앞두고 낮잠을 잠깐 잤다. 그런데 꿈을 꿨다. 훈련을 하는데 축구화 끈이 풀렸고 훈련이 끝날 때까지 끈을 묶지 못하는 꿈이었다. 굉장히 찝찝했는데 점심 먹을 때 친구들한테 꿈 이야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이)기제가 핸드폰으로 검색해 해몽을 해줬다. 애가 화색이 돌더니 노력한 결과를 얻는 꿈이라고 하더라. 애들이 코치님한테까지 가서 내 꿈 이야기를 했다. 뭐라도 믿고 싶은 심정 아니었겠나.

-그 꿈이 딱 맞아 떨어진 경기였다.

그런데 경기장에 가니 폭우가 쏟아졌다. 처음에는 대회 관계자가 와 경기가 취소됐다는 통보를 하더니 다시 기다려보라고 해 라커룸에서 30분 동안 몸을 풀고 있었다. 그때 다시 경기가 취소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자 코치님이 “오늘 경기를 꼭 해야 한다. 경중이가 좋은 꿈 꿨다. 오늘 얘가 한 골 넣는 날이다”라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 대회 관계자가 다시 와 한 시간만 그라운드에 물을 빼내면 경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징조가 좋았다. 하지만 첫 골을 넣고 준비한 세레모니를 못 한 건 아쉬웠다.

-어떤 세레모니를 준비했었나.

티아라의 <롤리 폴리> 안무를 미리 외워 놨었다. 혹시라도 골 넣으면 그 춤을 추려고 다 준비를 해 놨다. 또 경기 시작하기 전에 선발 명단에서 빠진 (김)선민이가 나한테 그러는 거다. “경중아 골 넣으면 나한테 달려와. 나도 텔레비전에 한 번 나오고 싶어.” 막상 골을 넣으니 티아라보다는 선민이 생각이 먼저 났다. 그래도 친구가 먼저 아닌가. 다음에는 골 넣으면 골 <롤리 폴리> 안무를 보여줄 생각이다.

-김승용은 리마리오 춤으로 시상식장만 가면 그 춤을 춰야 했고 이근호는 마찬가지로 저질댄스를 지겹도록 춰야했다. 당신이 티아라 춤을 추면 아마 그 춤을 춰 달라는 부탁을 3년은 받을 것이다. 그런데 말리전이 끝난 뒤 황도연이 코뼈 부상을 당해 조기 귀국하는 일이 생겼다. 팀으로서는 큰 타격 아닌가.

(황)도연이가 수술이 필요해 곧장 한국으로 가야했다. 숙소에 다 모여 있는데 도연이가 애써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응급처치로 코를 다 막고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상태에서 우리한테 인사를 하는데 되게 짠했다. 도연이가 떠난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음 경기부터 벤치에 도연이 유니폼을 걸어 놨다. 그리고 대회가 끝나고 인천공항에 가자 도연이가 웃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다. 우리 팀은 이렇게 끈끈한 동료애로 뭉쳤다.

-이후 조별예선 두 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프랑스전 1-3 패배는 그렇다 쳐도 콜롬비아전 0-1 패배는 최악이었다.

프랑스전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경기 내용은 나름대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1-1 상황까지는 좋았는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면서 두 골이나 더 내줬다. 하지만 콜롬비아전은 내가 생각해도 최악이었다. 경기에 나서면서도 “쪽팔리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감독님의 의도는 안정적인 상황에서 ‘선수비 후역습’을 하는 것이었지만 우리가 그걸 전혀 못했다. 내 인생에서 90분 동안 이렇게 수비만 한 적은 처음이었다. ‘선수비 후역습’이 아니라 그냥 ‘수비만’이었다.

-콜롬비아전 패배 이후 국내 여론은 최악이었다. 알고 있었나.

당연히 알고 있었다. 콜롬비아가 생각보다 인터넷이 잘 된다. 워낙 그런 걸 신경 안 쓰고 잊어버리는 성격이라 나는 악플도 재미있게 봤다. 우리한테 댓글을 달아준다는 게 신기했다. 스타가 없다던 우리는 언제나 무관심에 더 익숙했었다. 그런데 다 여론을 알면서도 우리끼리는 서로 이런 비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실 다 알고 있으면서 내색은 안 하는 상황이었다. 워낙 민감한 시기라 좋지 않은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다. 칭찬을 하는 게 더 잘못된 경기 아니었나. 우리도 비난을 받아들여야 하는 최악의 경기였다. 스페인전을 잘 치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악플도 즐기다니…. 변태 아니면 대인배다.

악플도 재밌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훈훈한 댓글을 더 많이 받고 싶다.

-나도 당신들을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응원해야 한다는 칼럼을 썼다가 당신들만큼 까였다.

그 칼럼도 콜롬비아 현지에서 봤다. 친구들이 인터넷 하다가 “힘 나고 좋은 글 하나 올라왔다. 지금 네이트 스포츠 뉴스 순위 1위”라면서 당신 칼럼을 보여줬다. 무척 인상적이었고 힘이 났다. 다들 비난하는데 힘이 되는 글 써줘서 고맙다.

-고마우면 프로 선수 되는 날 아이스크림 사줘라. 당시에는 스페인을 상대로 대패만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분위기였다. 당시 팀 분위기는 어땠나.

경기 전날 선수들끼리 모여 미팅을 했다. 등번호 1번부터 한 마디씩 하는데 “질 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지자”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발언권을 얻은 다음 선수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민)상기 차례가 되자 상기가 격앙된 이야기를 했다. 상기가 그랬다. “너희들 생각하는 거 지금 다 틀려 먹었다”고. “축구 선수가 어떻게 ‘질 때 지더라도’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느냐”면서 “우리는 내일 전쟁터에 나가는 건데 사람을 죽이러가지 죽으러 가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더라. “내일 죽이러 가자.”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애들이 박수를 치면서 공감했다. 그때부터 등번호 21번까지는 다들 파이팅이 넘쳤다.

-당신은 11번이다. 민상기보다 앞 번호였다. ‘질 때 지더라도’ 발언 쪽 아니었나.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고 그냥 열심히 해보자고 했다. 사실 상기가 원래 말을 정말 잘해서 미팅할 때마다 항상 박수를 받는 친구다.

-공교롭게도 스페인전이 열리기 전 성인대표팀이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0-3 패배라는 참사를 당했다. 당신들로서는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이었을 것 같다.

콜롬비아 시간으로 한일전은 새벽에 열렸다. 경기를 보지는 못했고 아침에 일어나 결과만 확인했다. 처음에 친구들한테 0-3으로 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점 장면을 찾아보니 사실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스페인전을 앞두고 우리끼리 밥을 먹으면서 “우리가 꼭 희망을 줘야 한다. 콜롬비아전처럼 했다가는 난리난다. 한국 못 돌아간다”고 했다. 선배님들의 한일전 패배가 우리로서는 더욱 정신을 차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스페인 선수들은 빅클럽에서 자란 선수들이 상당수다. 주눅 들지는 않았나.

같은 호텔을 써서 대회 내내 계속 마주쳤었다. 밥 먹을 때에도 칸막이를 하나 사이에 두고 밥을 먹었다. 친구들이 호텔에서 스페인 애들 만나면 “애, 쟤 레알 마드리드잖아”하면서 귓속말을 해주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 못 본 선수들이라 주눅 드는 건 없었는데 잘 생긴 애들이 좀 있더라. 사실 막상 붙어보니 실력 차이는 크게 못 느꼈는데 스페인 선수들 소속팀이 주는 압박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얘는 레알 마드리드고, 쟤는 바르셀로나고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또 하나 더 우리와 달랐던 건 스페인 선수들은 굉장히 여유가 넘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기 살기로 한 번 잡아보려고 하는데 걔네들은 빅클럽에서 뛰어선 그런지 여유가 있었다. 기량 면에서는 충분히 해볼 만했다.

-결국 대표팀은 120분 간의 혈투를 0-0으로 마치고 스페인과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나.

느낌은 좋았다. 원래 상대적으로 약한 팀이 승부차기까지 가서 이기는 모습을 자주 보지 않았나. 솔직히 우리가 스페인보다는 약한 팀 아닌가. 또 동건이가 평소 페널티킥을 잘 막아내는 골키퍼다. 동건이를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방향도 제대로 못 맞추더라.

-승부차기 키커는 원래 정해져 있었나.

1번부터 5번까지 키커는 정해져 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정황상 1번부터 5번 다음에 서 있는 키커가 6번, 그 다음 키커가 7번 순이다. 5번 이후로는 찰 기회가 별로 없어 뒤쪽 순번은 무의미해 보였다. 나는 6번째 (민)상기와 7번째 (백)성동이 다음으로 섰다. 5번 이후 키커는 거의 랜덤이었다고 보면 된다.

-8번째로 서 있던 당신까지 기회가 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스페인 세 번째 키커가 놓쳤을 때 느낌이 좋았다. 다음 우리팀 키커가 (이)기제였는데 기제가 정말 페널티킥은 놓치지 않는 선수다. ‘기제 슈팅은 절대 못 막겠다’ 싶었다. 그런데 빗맞았는지 결국 막히고 말았다. 그때부터 슬슬 압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나까지 오는 거 아닌가. 설마 나까지 정말 올까. 4,5번 키커까지 끝나고 6번 키커 순서가 될 때부터는 정말 긴장됐다.

-6번째로 서 있던 건 민상기였다. 미팅 때 그 전쟁에 나선다는 호기로움으로 당당히 승부차기에 나섰을 것 같다.

6번이 나갈 차례였는데 갑자기 상기가 나한테 그러는 거다. “자리 좀 바꾸자. 정말 한 번만 바꿔줘. 나 오늘 경기 좀 말았잖아. 나 못 넣을 거 같아.” 상기가 이날 경기에서 경기력이 별로 좋지 않아 자신감이 별로 없어 보였다.

-미팅 때 동료들을 휘어잡던 민상기의 그 카리스마는 다 어디로 간 건가.

그런데 솔직히 그 상황에서 누가 차고 싶겠나. 속으로는 나도 떨려 죽겠는데 상기한테 여유 있게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자신감 있게 차면 다 들어가.” 정작 내 속은 타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민상기는 멋지게 승부차기에서 골을 성공시켰다.

그 다음 키커는 성동이었다. 원래 성동이가 페널티킥을 굉장히 싫어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페널티킥을 피했다. 그래서 내심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나가더니 보란 듯이 성공시키고 오는 거다. 이제 다음이 내 차례였다. 내 뒤로는 9번째로 (이)용재가 있었고 10번째로는 근육 경련이 일어난 (김)영욱이가 있었다.

-생각만 해도 벌써 떨린다. 나는 군대에서 2소대와 승부차기 할 때도 떨려 죽을 뻔했는데 월드컵 무대에서 승부차기라니….

내가 용재한테 아주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이야기했다. “용재야 네가 한 번만 나가주면 안 되겠니?” 그러자 용재가 말했다. “안 돼. 안 돼. 절대 안 돼.” 아주 냉정한 표정이었다. 벤치를 쳐다보니 감독님께서 나한테 나가라고 사인을 보내는 것이었다.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 페널티킥 전담 키커여서 항상 자신감에 넘쳤는데 그런 경기하고는 부담감에서 차원이 달랐다. 나가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넣을 거야. 넣을 거야. 무조건 넣는다. 나는 무조건 넣는다.” 원래 승부차기에 나설 때면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고 걸어가서 깔끔하게 넣고 나왔었다.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실축한 적 빼고는 다 성공했었다.

-의도한 방향으로 정확히 찬 건가.

나만의 페널티킥 차는 방법이 있다. 공을 놓고 뒤돌아서 천천히 걸어온 뒤 심판이 휘슬을 부는 동시에 빠르게 뛰어가서 골키퍼 타이밍을 빼앗는 방식이다. 골키퍼한테 생각할 틈을 안 주는 거다. 연습할 대도 항상 이렇게 찼고 성공률도 무척 높았다. 그런데 이날 딱 공을 내려 놓고 뒤돌아서 천천히 걸은 뒤 킥을 하기 위해 딱 섰는데 주심 휘슬 소리를 못 들었다. 휘슬과 동시에 뛰어나가 공을 찼어야 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돌아이였지. 제자리에서 도움닫기 동작만 하고 있었다.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맞을 때 느낌은 좋았는데 골문을 벗어났다.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실축했을 때하고 같은 코스와 같은 높이였다.

-그때의 심정이 어땠나.

다리에 힘이 풀렸다. 관중들이 엄청난 함성을 내질렀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친구들이 막 달려와 뭐라고 위로의 말을 했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코치님까지 달려와 나를 안아줬는데 그때 기억이 하나도 없다. 정말 필름이 끊긴 것 같았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니 친구들이 “네가 무슨 카를로스도 아니고 그런 도움닫기는 왜 했느냐”고 하더라.

-당신이 제자리에서 도움닫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불길한 느낌이 살짝 들었다.

차는 나도 불길했다.

-당신은 실축 이후 미니홈피에 사과글까지 올렸다. 아쉬운 슈팅이었지만 잘못한 일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사과까지 해야 했나.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함께 고생한 우리 친구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슬퍼하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하루 종일 미안하다는 말만 달고 살았다. 친구들이 그만 미안해하라고 하더라. 승부차기가 끝난 뒤 샤워를 하고 나와서 감독님을 만났는데 도저히 감독님 얼굴 볼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등을 토닥이면서 괜찮다고, 잘했다고,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엄청 흐르더라. 숙소로 돌아가서 미팅을 하는 데도 계속 눈물이 났다. 울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감정을 다잡았는데 또 한 번 울컥했다. 상기 방에 찾아갔는데 상기가 탈수 증세로 링거를 맞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또 울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당신은 본의는 아니었지만 스페인전 이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한국으로 어떻게 돌아갈지 막막했다. 가면 돌 맞는 거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들으니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다고 하더라. 친구들이 “넌 어떻게 승부차기 실축으로 뜨느냐”면서 놀린다. 고려대 서동원 감독님도 “이제는 그런 일 말고 좋은 일고 스타가 되길 바란다”고 웃으며 말씀해 주신다. 주위에 좋은 분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격려해주고 위로해 주신 팬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당신은 내년 올림픽 출전에도 도전하고 있다. 올림픽 무대에서 똑같이 승부차기 상황이 올 경우 자신 있나.

자신은 있다. 그런데 막상 또 그 상황이 되면 어떨지는 모르겠다. 한 번 실수한 경험이 있으니 더 잘 찰 수 있지 않을까. 승부차기에 나서는 선수한테는 정말 말로 표현 못할 긴장감이 있다. 그런데 그게 내가 축구선수로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이라고 생각하면 그 긴장감도 나쁘지 만은 않다.

-자, 가정해보자. 2012 런던올림픽 16강이다. 당신은 또 다시 8번 키커로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6번 키커였던 민상기가 아주 간절한 표정으로 당신에게 순번을 바꿔달라고 한다. 바꿔줄 것인가.

그건 아니다. 8번까지 기다릴 거다. 대신에 8번 키커로 꼭 득점에 성공하겠다.

-이번 대회에 8강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16강 진출에 만족하는가.

만족은 못한다. 사실 우리끼리는 꼭 우승하자고 약속하고 콜롬비아로 떠났었다. 이 전 대회에서 선배들이 8강에 갔는데 우리도 못해도 8강까지는 가자고 했는데 결국 그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친구들도 많이 아쉽겠지만 나는 특히 더 아쉽다.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8개 팀에 들어야 만족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16개 팀에 든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이번 대회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나.

한국에 와서 어머니 친구분께 들었는데 어머니께서 내가 실축한 뒤 펑펑 우셨다고 그러시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께서도 많이 아쉬워하셨는데 그러면서도 이제는 그만 잊고 이걸 계기로 한 단계 더 성장하자고 하셨다. 절대 여기에서 머물지 말고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한다고 응원해 주셨다. 지금까지 승부차기에서 이런 부담감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월드컵은 정말 다르더라. 이번에 자신감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또한 친구들하고 힘든 과정을 버텨내고 경쟁하면서 우정도 쌓았다. 훈련장에서는 거칠게 부딪히면서도 일상생활에서는 정말 편한 친구처럼 지내면서 ‘아, 이런 게 축구구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게 축구고 그러면서도 동료애가 필요한 게 축구구나’라는 걸 느꼈다. 나에게 있어 정말 잊지 못할 대회였다.

-앞으로 당신의 미래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일단 가까운 목표는 더 큰 무대로 진출하는 것이다. 감독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제는 아마추어 무대에서 벗어나 프로 무대에 진출하고 싶다. 더 큰 무대에 나가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먼 미래의 목표는 부상 없이 15년 정도 축구를 더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들으면 단 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멋진 선수로 오래 남고 싶다. 또 앞으로는 승부차기에서도 실수하지 않는 선수가 되겠다. 어제 학교에서 페널티킥을 차봤는데 정말 쏙쏙 잘만 들어가더라. 젠장.

-돈 주고도 못사는 교훈을 얻었으니 된 거 아닌가. 이번 대회를 계기로 당신이 앞으로 우리한테 즐거움을 줄 일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회에서 당신과 한국을 응원한 팬들에게 한마디 전해 달라.

진심으로 감사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응원해 주셨을 텐데 좋은 경기를 많이 보여주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다. 요새 꼬마 팬들한테 미니홈피 일촌 신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그걸 보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 내가 이번 대회에 나섰는지 알게 됐다. 앞으로 이 응원과 격려에 보답하는 선수가 되겠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