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시아드 대회는 세계 대학생들의 축제다. 우리가 월드컵과 올림픽 등 굵직한 세계 스포츠 축전에만 관심을 갖는 동안에도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지속됐다. 195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처음 열린 이 대회는 현재 170개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회원국에서 모두 1만 여명이 참가하는 전 세계 아마추어 대학선수들의 스포츠 축제로 발전했다. 대학생 또는 대회가 열리는 해 이전 2년 이내 대학졸업자들이 참가하는 이 대회는 대회가 열리는 해 1월 1일에 만 17세 이상, 28세 미만인 선수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굉장히 엄격한 규정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도 국가 연주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조직위원회는 해당 국가 대신 ‘Gaudeamus Igitur’ 이라는 제목의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공식 찬가를 들려준다. 한국은 1959년 제1회 대회 때 육상 1개 종목에 선수 5명 임원 1명이 참가한 뒤 제2, 3, 4, 8회를 제외하고는 계속 참가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눈과 귀가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명단 발표에 쏠린 어제(22일), 2011 선전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한 남자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열렸다.

U대회 강호였던 한국 축구
한국 남자 대학 선발팀은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강호였다. 1987년 자그레브 유니버시아드에 나선 한국은 김주성(조선대)을 앞세워 파죽지세를 이어갔다. 소련과 브라질, 유고슬라비아와 함께 예선 E조에 속한 한국은 2승 1패라는 성적으로 8강에 올라 일본을 3-0으로 제압하고 준결승에서 중국을 3-1로 꺾었다. 비록 이미 예선에서 3-2로 이긴 소련과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 0-5로 패했지만 은메달도 충분히 값진 성과였다. 한국이 이 대회에서 따낸 메달은 축구의 은메달 하나와 테니스의 동메달 하나가 전부였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메달 두 개로 종합성적 28위를 기록했다.

1991년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에서는 조별예선에서 알제리와 호주, 네덜란드를 상대로 2슨 1무를 기록하며 8강에 올랐다. 세 경기에서 7골을 뽑아낸 공격력이 특히 막강했다. 8강전에서 나이지리아에 4-1 대승을 거둔 한국은 준결승에서도 우루과이를 4-1로 대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에서 다시 네덜란드를 만난 한국은 김종건(한양대)과 최태호(주택은행)가 부상으로 결장했지만 홍명보(상무)가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아 공격을 이끌고 정재권(한양대)과 박지호(인천대)가 측면을 지배하면서 경기를 주도했다. 최강 공력력을 자랑하는 한국을 상대로 네덜란드는 수비에만 치중해 0-0 무승부를 이끌어 낸 뒤 승부차기에 임했다. 하지만 한국은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대회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3 버팔로 유니버시아드에서 이운재(경희대)와 유상철(건국대), 이임생(고려대), 김태영(국민은행), 정재권(기업은행), 윤정환(동아대), 김도훈(상무) 등을 내세운 한국은 결승전에서 아쉽게 체코에 패해 은메달을 차지했고 1995 후쿠오카 대회와 1997 시칠리아 대회 결승에서도 각각 홈팀 일본과 이탈리아에 패해 은메달을 따냈다. 남대식 감독이 이끈 1995 후쿠오카 대회에는 박건하(이랜드)를 비롯해 명진영(아주대), 유상수(고려대) 등이 나섰었고 1997 시칠리아 대회에는 김호곤 감독을 비롯해 서동원(연세대), 이상헌(동국대), 안정환(아주대), 김대의(한일은행) 등이 참가했다. 선수단과 함께 했던 장대일(연세대)과 최성용(상무)이 1998 프랑스월드컵 대표팀에 차출돼 이 대회에 나서지 못할 정도로 당시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은 성인 대표팀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영광과 ‘최강’ 일본
하지만 이런 영광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어떤 대회를 나가도 1등이 아니면 직성이 풀리지 않던 우리의 성격도 이제는 많이 변했다. 성인 대표팀과 청소년 대표팀을 제외하고는 관심에서 무척 많이 멀어졌다.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부터 한국은 중위권을 면치 못했다. 지원도 크게 줄었고 선수 선발에서도 주축 선수가 제외되는 등의 일이 잦아졌다. 한국은 2003년 대회에서 곽태휘(중앙대)와 여효진(고려대), 김형범(건국대), 전광진(명지대), 황지수(호남대), 김진용(한양대) 등을 소집해 20여일 남짓 훈련하고 대회에 나섰다가 9위에 머물렀다.

터키 이즈미르에서 열린 2005년 대회에서는 14위로 추락하기도 했다. 염기훈(호남대)과 서동현, 심우연(이상 건국대), 권순태(전주대), 유현(중앙대) 등이 나선 이 대회에서 한국은 개막전에서 브라질에 1-2로 패한 뒤 조별예선 나머지 경기에서 모로코와 터키에도 각각 0-2, 1-3으로 져 하위권으로 밀렸다. 이후 순위 결정전에서 아일랜드와 영국에 패했고 중국에 승리를 거둬 간신히 14위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염기훈이 세 경기 연속골을 기록했지만 16개 참가팀 중 14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 했다. 2007년 방콕 대회에는 아예 본선에 나서지 못했고 지난 2009년 베오그라드 유니버시아드에서는 6위에 머물렀다.

유니버시아드의 최강팀은 일본이다. 일본은 각급 대표팀 전임감독처럼 대학선발 전임감독을 따로 두고 있다. 말이 대학 선수지 사실은 프로팀 소속으로 대학에 적만 두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선수들을 일찌감치 선발해 유럽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며 이 대회를 준비한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합숙으로 보낼 정도다. 유니버시아드에서만큼은 일본의 적수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이번 대회 이전까지 13번의 대회에서 금메달만 네 번, 은메달과 동메달도 한 번씩 따냈다. 특히 8번의 최근 대회 중 일본이 우승한 대회만 네 번이다. 역대 일본 다음으로 금메달을 많이 딴 나라가 우크라이나로, 단 2회에 그칠 정도니 말 다했다.

일본은 올해에도 3월부터 모였다. 다섯 번째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합숙 훈련을 시작했고 유럽 전지훈련에 나섰다. 일본대학축구연맹과 일본체육회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전임감독제가 아니라 홍익대를 이끌고 있는 김종필 감독을 이번 대학선발 사령탑으로 선정했다. 신성한 아마추어 축제에서 성적을 내기 위해 집중 투자하는 일본과 그렇지 않은 한국 사이에서 “이게 옳다”는 정답은 없지만 한국과 일본의 상황은 이렇게 달랐다. 한국도 나름대로 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1991년 금메달의 영광을 재연하기 위해 준비 과정에 착수했다.

“메달 가능성 없으니 나가지 말라”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한체육회에서 대한축구협회와 대한축구연맹에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남자 축구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해온 것이다. 메달 획득 가능성이 적은 종목은 예산상의 이유로 대회에 나설 수 없다는 의미였다. 참가하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는 아마추어 스포츠 축제에 메달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불참을 통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2005년 이즈미르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똑같은 이유로 여자 축구 선수단 불참을 결정했던 대한체육회가 이번에는 2009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여자 축구만 대회에 파견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2005년 당시 여자축구협회는 대회 준비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협회 직원들은 밤을 새며 참가 서류를 준비했고 감독 선임까지 마친 상태였다. 실업무대에 직행한 ‘에이스’ 박은선(서울시청)도 대학에 진학시켜 대회에 출전시키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의 입장은 단호했다. “메달 가능성이 없으니 참가하지 말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전해왔다. 결국 한 차례 대회 참가가 무산됐던 축구계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과 변석화 대학축구연맹 회장이 직접 나서 대한체육회 이사들을 만났다. 어렵게 출전 승낙은 받았지만 대한체육회 측에서는 “참가 비용은 지원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결국 남자 축구 선수단은 대한축구협회 자비로 대회에 가까스로 참가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또 있었다. ‘에이스’ 역할을 기대했던 배천석이 J리그에 진출하면서 대회에 나서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시간이 촉박한 탓에 김종필 감독은 대체 선수를 부랴부랴 구해 장도에 올랐다. 씁쓸한 사실은 대학선발이 파주NFC에서 최종 훈련을 할 때 최전방 공격수가 박주영(AS모나코)이었다는 점이다. 이적 문제로 소속팀과 훈련을 하지 못한 박주영은 한일전을 앞두고 파주NFC에 먼저 와 대학선발과 함께 훈련을 했다. 박주영은 대학선발과 동국대의 연습경기에서 후반 45분 동안 대학선발 소속으로 나섰다. 성인 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대학선발은 배려 아닌 배려를 해야 했다. FC서울 소속 골키퍼 유상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18명의 선수가 모두 대학생이었다. 김병오(성균관대)와 김영근(숭실대), 이명주(영남대), 박형진(고려대), 김신철(연세대) 등이 주축을 이뤘다.

대회가 열리는 중국 선전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선전은 낮 기온이 40℃에 이를 정도로 살인적인 더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강한 햇볕으로 바닥온도는 60℃에 육박했다. 야외 종목에서 열리는 경기 심판은 물론 자원봉사자도 열사병에 걸려 쓰러지기 일쑤였다. 훈련시간을 새벽이나 야간으로 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일주일 훈련한 뒤 1,2학년 대회 때문에 소속팀에 복귀한 이후 2주 정도 더 손발을 맞춘 게 전부였던 대학선발은 현지에서도 더위 때문에 제대로 된 훈련을 다 소화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대회 직전 치른 전국대회 탓에 선수들의 체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열악한 역경 속에서도 대회를 준비했다.

단 한 차례의 패배, 그리고 사라진 꿈
첫 상대는 콜롬비아였다. 한국은 전반에만 김병오가 두 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친 덕에 2-0으로 일찌감치 달아났다. 후반 들어 한 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이후 이명주와 박형진이 나란히 한 골씩을 더 얻어내 4-1 대승을 따냈다. 산뜻한 출발이었다. 황석호가 후반 8분 경고누적 퇴장 당했지만 수적 열세 속에서도 거둔 의미있는 승리였다. 이후 나미비아와의 2차전에서도 조영훈(동국대)과 심동운(홍익대)이 연속으로 헤딩 골을 꽂아 넣으면서 2-1 승리를 챙겼다. 그동안 지긋지긋한 경우의 수와 싸워야 했던 한국이 조별예선에서 2연승을 내달리고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지은 건 실로 오랜 만이었다. 169cm의 최단신 공격수 심동운의 헤딩골은 무척 인상 깊었다.

이미 8강행을 확정지은 한국은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개최국 중국을 맞았다. 주전을 대거 제외하는 등 체력 안배를 하고도 0-0 무승부를 거두며 2승 1무 B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3만 명의 중국 관중 앞에서 무관심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은 선전을 이어갔다. 중국을 상대로 슈팅수 14-4의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다. A조에서 1위에 오른 일본을 피해 2위 영국을 만나게 된 것도 호재였다. 영국만 잡으면 메달권에 근접하는 상황이었다. 아마추어 축구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영국을 상대로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영국을 상대로 한국은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번번이 슈팅은 영국 골문을 빗나갔다. 초조해진 한국은 영국의 역습에 몇 차례 위기를 허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후반 18분 영국은 모세스 피터가 앤더슨 토마스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그대로 밀어 넣어 결승골을 뽑아냈다. 한국은 후반 막판 총공세를 퍼부었지만 결국 동점에 실패해 0-1로 패하고 8강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메달 가능성이 없어 출전 자격을 줄 수 없다던 대한체육회를 머쓱하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그라운드를 빠져 나왔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
이후 한국은 순위결정전 이탈리아와의 대결에서 1-0으로 승리한 뒤 어제(22일) 우루과이와 5/6위 결정전에 나섰다. 선수단 내부에서는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비록 메달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파이팅을 외쳤다. 한국은 우루과이전에서 살인적인 더위 속에 0-0으로 경기를 마친 뒤 승부차기에 나서 유상훈이 연거푸 우루과이 선수들이 킥을 막아내며 3-0으로 승리를 따내고 5위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비록 우승 꿈은 물거품이 됐지만 열악한 여건과 무관심, 핍박 속에서 얻어낸 성과였다. 선수들은 서로를 다독였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도 결승에서 영국을 꺾고 다섯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4승 1무 1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단 한 차례 패한 게 8강 영국전이어서 무척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대회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이들의 노력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대학 축구가 활성화 되지 않은 나라가 많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대학 축구가 활기차게 운영되고 있는 한국이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단순히 성적만 놓고 이들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평가전도 지상파 텔레비전에서 생중계하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자칫하면 성적지상주의에 가려 나서지도 못했을 대회에 참가해 이렇게 멋진 경기를 펼쳐준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잘했다. 너희들도 태극전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