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전남의 경기장에 가장 빨랐던 사나이는 누굴까. 최태욱? 몰리나? 아니다. 바로 최용수 감독대행이었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종료 직전 몰리나의 극적인 결승골이 터지자 벤치에서 코너 플랙까지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기쁨을 함께 했다. 나는 세상에 이런 감독을 본 적이 없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바지가 찢어졌지만 그래도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현역 시절보다 더 빨랐다.

서울이 어느덧 리그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시즌 초반 부진을 거듭하던 서울은 황보관 감독이 사퇴하는 등 최악의 시기를 보냈고 그때만 하더라도 서울은 동네북 취급을 받았다. 위기의 서울이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선수들은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렇다고 시즌 중에 유망한 감독을 새로 데려오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경기 내내 빨리 90분이 지나길 바라는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고개를 숙이고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최용수 코치가 감독 역할을 대신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최용수 감독대행의 ‘친형 리더십’

최용수 감독대행이 이렇게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감독으로서 이제 막 첫 발을 내딛는 초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대행은 바닥으로 떨어진 서울의 경기력과 사기를 한껏 끌어 올렸고 중간에 잠시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전남전 1-0 승리를 챙기며 5연승 및 9경기 연속 무패(6승 3무)를 기록하게 됐다. 하위권을 맴돌던 서울은 이로써 3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선수들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최용수 감독대행 역시 특유의 ‘친형 리더십’으로 이 난국을 돌파했다.

제파로프는 떠났지만 오히려 공격은 더 강해졌다. 그동안 제파로프와 역할이 겹쳐 부진했던 몰리나가 최근 살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몰리나에게 보다 자유로운 역할을 부여하며 측면에서 부담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결과 몰리나는 이제 시즌 초반의 부진을 털고 지난 시즌의 멋진 경기력을 다시 선보이게 됐다. 데얀과의 호흡 역시 훌륭하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단순히 좋은 선수를 많이 보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잘 이해하고 있다.

전술을 떠나 최용수 감독대행은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젊은 지도자의 장점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내면서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스스럼 없이 먼저 장난도 친다. 그러면서 선수들은 최용수 감독대행을 믿고 따르게 됐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때로는 편한 형처럼, 때로는 엄한 선배처럼 선수들을 독려하며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귀네슈와 빙가다 등 훌륭한 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아무나 할 수 없는 비싼 공부를 한 인물이다. 서울에서 정책적으로 키운 지도자를 감독으로 앉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가 가진 매력과 가치

서울은 최용수 감독대행을 감독대행에 머무르게 하지 말고 정식 감독으로 임명해 그에게 이제는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경기력과 지도력은 감독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제는 서울이 그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는 것이 어떨까. 최용수 감독대행 정도의 능력이라면 이제는 충분히 정식 감독이 될 만하다. 위기에 빠졌던 서울을 구해낸 인물이라면 서울의 미래를 책임져도 괜찮을 것이다. 선수가 골을 넣으면 가장 큰 액션으로 기뻐하고 바지가 찢어질 정도로 전력질주해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감독은 언론에 있어서도 참 다루기 좋은 흥행카드다.

일단 최용수 감독대행은 이 팀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이다. 그만큼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팀으로서도 최용수 감독대행은 큰 매력을 지녔다. 한 팀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감독을 한다는 건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서울이 최용수를 감독으로 임명할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는 서울의 최고 외국인 감독 밑에서 공부한 지도자다. 시간이 문제였을 뿐 그가 감독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의도하지 않게 일찍 감독대행을 맡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를 믿어도 괜찮을 것이다.

최용수 감독대행만큼 큰 스타도 없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모두 성공한 지도자가 되리라는 확신은 없지만 최용수라는 빅스타는 충분히 한국 축구에서 앞으로도 중추적인 일을 해야 한다. 그가 가진 인지도는 굉장하다. 서울로서는 이런 빅스타 감독을 앞세워 멋진 마케팅을 할 수도 있고 흥행도 이끌 수 있다. 최용수 감독대행이 황선홍 감독이나 유상철 감독, 신태용 감독 등과 맞붙는 경기는 지금도 큰 관심거리가 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서울이 중년 외국인 감독을 데려다 쓰는 것보다는 젊고 스타성은 물론 스토리텔링의 요소까지 가진 최용수 감독과 함께 하는 게 더 멋져 보인다.

서울과 최용수, 함께 해야 빛난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올 시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만약 그가 다시 새로운 감독이 서울에 부임해 코치로 내려간다면 혼란이 클 것이다. 그가 감독대행으로 그저 그런 역할을 했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최용수 감독대행은 이미 선수단을 멋지게 장악했고 선수들도 그를 감독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새 감독이 오고 최용수 감독대행이 다시 코치 역할을 맡는 건 선수단 내부의 심각한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새 감독이 부임하면 최용수 감독대행과 이별하거나 연수를 보내는 게 현실적인 방법인데 서울이 최용수 감독대행을 떠날 보낼 만큼 그런 모험을 감행할 이유는 없다.

언론을 대하는 데 있어서 투박했던 그는 이제 언론 공포증에서도 벗어났다. 조리 있게 말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공식석상에서 할 이야기는 하고 유머까지도 선보이고 있다. 전남전이 끝난 뒤 세레모니에 대해서는 “너무 기뻐서 그랬다. 아직 젊은가보다”라고 이야기해 기자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처음 기자회견장에 앉아 당황하던 모습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최용수 감독대행은 지도력은 물론 모든 면에서 이제는 감독이 되기에 적합한 요소를 갖췄다.

그는 언젠가는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인물이었다. 그 시간이 예상보다 조금 더 일찍 찾아왔을 뿐이다. 이제는 서울이 그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해 한껏 물이 오른 팀의 사기에 큰 힘을 보태주는 게 어떨까. 평소에 정장을 잘 입지 않던 최용수 코치는 감독대행이 되자마자 부랴부랴 정장부터 한 벌 맞췄다. 그런데 결국 이 귀한 정장 바지는 팀을 위해 기뻐하다가 찢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서울이 ‘세상에서 제일 빠른’ 최용수 감독대행에게 정장 몇 벌 더 맞출 수 있도록 정식으로 감독직 계약서를 내미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