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서 K리그를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케이블 스포츠 채널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K리그를 지상파에서 본다는 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그런데 현역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골키퍼 김병지가 지상파에서 멋진 선방을 펼칠 예정이라니 벌써부터 가슴에 설렌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쉽지만 K리그와 축구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 KBS가 새롭게 기획한 <승부차기쇼-심장이 뛴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프로그램은 스포츠 스타와 축구선수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진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해 승부차기를 벌이는 형식이다. 1라운드에서는 ‘달인’ 김병만, 2라운드에서는 ‘신의 손’ 사리체프, 3라운드에서는 ‘최고의 골키퍼’ 김병지가 골문을 지켜 라운드별로 대결을 펼쳐 상금을 쌓아가고 획득한 상금은 최종 우승자에게 돌아간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반응이 좋을 경우 정규 편성될 예정이다. 오늘은 이 프로그램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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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차기쇼-심장이 뛴다>는 오는 15일 오전 11시 KBS2을 통해 방송된다. 이 프로그램에서 축구의 묘미를 한껏 보여줬으면 좋겠다. (사진=KBS)

원하는 방향?

지난해 U-17 여자 청소년 월드컵 우승 주역 이소담이 등장한다. 그녀는 여자 월드컵 당시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최근 현대정보과학고등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앞으로 치러질 여자축구대회에 대해 소개하고 이 내용은 지상파에서 자막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스포츠 뉴스에 한 줄 자막으로 소개되는 것보다 엄청난 효과가 있는 홍보다. 여려 보이는 이소담의 강력한 슈팅을 가까스로 막아낸 김병지가 씩 웃어 보인다. MC 김용만은 이렇게 말한다. “얕봤는데 장난이 아니네요.”

첫 방송에서 망신을 당한 제국의 아이들 멤버 황광희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프리킥 스페셜리스트 김형범(전북)을 찾아간다. 이 모습은 VCR 형태로 전파를 탄다. 황광희는 전북 유니폼을 입고 전북을 응원한 뒤 경기가 끝나고 그라운드를 빠져 나오는 김형범을 붙잡는다. “페널티킥 좀 알려주세요.” 김형범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지만 모두가 떠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황광희에게 슈팅 비법을 전수한다. “세계 10대 프리키커 김형범”이라는 자막이 흐르고 김형범의 놀라운 프리킥 영상이 자료 화면으로 제공된다. 황광희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모여든 여고생들은 김형범이라는 선수에 대해 알게 된다.

슈퍼주니어 은혁과 동해는 창원으로 향한다. 윤빛가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들은 윤빛가람을 만나 팀 동료인 골키퍼 김병지의 약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윤빛가람 뒤에서 김주영은 FM을 열심히 하고 있다. 윤빛가람은 귓속말로 속삭인다. “병지 삼촌은 오른쪽이 약점입니다.” 은혁과 동해는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스튜디오에 윤빛가람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다. 슈퍼주니어 멤버가 입은 경남 유니폼은 여고생 팬들에게 새로운 볼거리가 된다. 하지만 은혁과 동해는 2라운드에서 탈락해 김병지와 마주할 기회를 놓치고 땅을 친다. “3라운드 갔으면 김병지 선수는 충분히 뚫을 수 있었어요.”

아이돌 팬들과 축구팬들의 지지를 동시에 얻은 이 프로그램은 정규 편성돼 전파를 탄다. 제작진도 답답한 스튜디오를 벗어나 전국의 축구장을 찾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울산 특집’에는 울산이 낳은 스타 김태희와 테이가 울산종합운동장에 특별출연해 분위기를 돋운다. 울산현대 김현석 코치도 등장해 김병지와 추억의 승부차기 대결을 펼친다. MC 이수근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김병지 선수가 헤딩골을 넣었던 곳이 바로 여기 아닌가요?” 김병지가 포항을 상대로 극적인 골을 기록한 자료 화면이 나간다. K리그는 이렇게 더 시청자들과 가까워진다.

원치 않는 방향

이소담이 등장한다. 그러자 MC가 이야기한다. “지소연 선수는 잘 지내나요? 다음 월드컵은 언제 하죠?” 이소담이 머쓱한 표정을 짓자 MC는 재미있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슈퍼주니어와 제국의 아이들 멤버를 외나무다리에 세워놓고 이소담에게 말한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빼놓고는 모두 물에 빠뜨려주세요.” 동원된 방청객이 너무 심했다는 의미로 “어우”하고 합창한다. 이소담은 이 상황에 무척이나 당황한다. 결국 한 명씩 다 물에 빠뜨린 뒤 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남자 MC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소담 선수에게 한 번 포옹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아이돌 멤버는 큰 은혜라도 베푸는 듯 이소담을 껴안는다.

“이 멋진 분들을 모셔놓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겠죠. 승부차기를 하기 전에 몸을 푸는 의미로 댄스 배틀 한 번 갑니다.” MC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이어 아이돌 그룹의 댄스 대결이 펼쳐진다. 온 몸을 꺾고 비비고 흔들면서 땀을 흠뻑 흘린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농구스타 이동준에게 MC가 말을 건다. “자, 다음은 이동준 선수의 댄스입니다. 이런 모습 어디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어색해하는 이동준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흔든다. 이렇게 방송 시간의 절반 가량이 지났다.

조용히 앉아있던 한 탤런트 참가자에게 MC가 말을 건다. “오랜 만의 예능 출연이시네요. 요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러자 이 탤런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말을 이어간다. “요새 드라마 촬영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방송되는 드라마인데요. 많은 시청 부탁드려요.” 이 참가자는 1라운드에서 공 한 번 차고 드라마 홍보라는 목적을 달성한 채 짐을 싼다. 3라운드에까지 진출한 두 명의 아이돌 멤버가 MC의 지시에 따라 눈빛 교환을 한다. 그리고는 자막이 나간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스포츠의 묘미 보여주길

축구가 예능의 소재로 쓰인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선하고 흥미롭다. 하지만 스포츠가 연예인들의 예능에 도구로 전락하는 건 원치 않다. 모든 스포츠에는 그 자체로의 매력이 있다. 축구선수는 물론, 다른 종목 선수들까지 섭외해 펼치는 이 방대한 프로그램이 아이돌 그룹의 장기자랑 프로그램으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축구가 아니더라도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씨름 선수 출신 이만기, 배구 선수 출신 김세진, 농구 선수 이동준 등 여러 스포츠 스타가 진정한 스포츠의 묘미와 땀의 진실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