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만큼 이별도 중요한 법이다. 군대 시절 항상 후임들에게 잘해줬던 고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니 그 녀석은 제대 전날 치킨을 안 사주고 떠났고 평생 내 기억 속에는 인간성 더러운 고참으로 남게 됐다. 반대로 지겹도록 나를 괴롭혔던 고참은 제대 전날 치킨을 사주면서 “그동안 너무 못되게 굴어서 미안했다”고 했다. 그가 제대하는 날 욕을 한바가지 해주리라 다짐했던 나는 그가, 아니 그 분이 건네는 닭다리 하나에 모든 걸 용서했다. 이렇듯 멋지게 이별하는 법은 누구를 만나는 것만큼 중요하다.

화려한 등장과 아쉬운 이별

K리그에는 아직 멋진 이별이 그리 많지 않다. 등장할 때는 화려하지만 떠날 때는 그렇지 못하다. K리그에서 오랜 시간 멋진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많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대부분이 쓸쓸했다. 레전드에 대한 예우는 항상 부족했다. 그 범위를 외국인 선수로 한정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K리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외국인 선수들의 마지막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K리그가 더 많은 이야기를 제공하려면 K리그에서 성대하게 은퇴하는 외국인 선수가 많이 생겨나야 한다.

피아퐁과 라데, 샤샤는 K리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외국인 선수다. 이들은 최고의 기량으로 K리그 팬들을 행복하게 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K리그에서 성대하게 은퇴하지는 못했다. 피아퐁은 25세에 럭키금성에 입단해 27세 태국으로 돌아갔고 이후 고국에서 10년을 더 뛴 뒤 은퇴했다. 라데 역시 22세에 포항으로 이적해 5시즌을 뛴 후 J리그를 거쳐 유럽 무대를 누비다가 2004년 은퇴했다. 부산과 수원을 거쳐 2003년까지 성남에서 뛰었던 샤샤는 고국으로 돌아가 2010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물론 K리그에서 뛸 당시 이들의 연령이 현역 은퇴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이 K리그에서 멋지게 은퇴하는 모습은 지켜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이 선수들이 오랜 시간 K리그에서 더 활약하다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한국에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K리그가 더욱 훌륭한 무대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전설적인 세 명의 선수를 제외하더라도 각 구단에는 팀에 헌신한 외국인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나이가 들고 은퇴할 시기가 되면 방출이라는 아주 냉정한 이름으로 팀을 떠나야 했다.

쓸쓸이 K리그를 떠난 에드밀손

2002년 전북에 입단한 에드밀손은 그해 14골을 기록하면서 K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FA컵에서 팀의 첫 우승을 이끌며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MVP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전북의 간판 스타로 등극했다. 2003시즌 도움왕도 그의 몫이었다. 전북에서만 71경기에 나서 31골을 기록한 그는 이후 알파이 외잘란(당시 인천)의 깊은 태클에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북은 그가 은퇴할 때 은퇴식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전북의 보물’은 그렇게 쓸쓸이 한국을 떠났다.

인천에서 살림꾼 역할을 하던 드라간을 기억하는 팬들도 많을 것이다. 그는 그리 빛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중원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하는 헌신적인 선수였다. 2006년 인천 유니폼을 입은 뒤 2009년까지 네 시즌 동안 72경기에 나서 맹활약했다. 그는 2009 시즌을 끝으로 33살의 노장이 돼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인천 역시 그를 위해 작별식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마지막 시즌에는 체력 저하로 부진하기도 했지만 팬들은 그가 이전까지 보여준 헌신적인 플레이를 잊지 못한다. 그 누구보다 인천을 사랑했던 드라간은 팬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드라간은 인천에서 방출된 뒤 은퇴했다. 그의 선수 생활 마지막 경력은 인천유나이티드다.

마차도도 아쉽다. 2005년 울산으로 이적해 팀의 리그 우승 주역이 된 그는 K리그 베스트11에도 이름을 올렸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무려 세 골을 뽑아내는 등 맹활약하며 그 시즌 동안에만 17경기에서 13골을 기록,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 부상 등으로 부진했지만 2년을 더 뛰며 울산 공격을 이끌던 그는 팀에서 방출된 뒤 브라질로 돌아가 반 시즌 동안 9경기에 나선 뒤 은퇴했다. 울산이 조금만 그를 배려했다면 마차도는 많은 K리그 팬들 앞에서 득점왕 출신다운 예우를 받으며 은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귀화한 이싸빅도 K리그에서 무려 10년을 뛰었지만 2008년 전남에서 방출된 뒤 이듬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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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에서 은퇴 경기를 치르는 베르캄프의 모습.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명문 구단이 되는 쉬운(?) 방법

지금까지 K리그는 외국인 선수들을 잠시 돈 주고 빌려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 가족이라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K리그가 보다 깊은 감동과 많은 이야기를 제공하려면 이제는 K리그에서 멋지게 은퇴하는 외국인 선수도 생겨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가치도 그만큼 상승할 것이다. K리그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라면 국적을 떠나 아름다운 작별 의식을 거행해 줄 의무가 있다. 외국인 선수가 K리그에서 은퇴한다면 우리의 무대는 보다 더 글로벌해 질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네덜란드 축구 영웅 데니스 베르캄프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서 11시즌을 뛰고 성대한 은퇴 경기를 치렀다. 전 소속팀이었던 아약스를 초청해 6만여 명의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베르캄프의 은퇴식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다음 날에는 덴마크 선수 에베 산이 독일 분데스리가 샬케04에서 7년을 뛰고 멋진 은퇴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두 선수 모두 자신의 나라가 아닌 타국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소속 구단은 이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성대한 은퇴식을 거행해줬다.

지네딘 지단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국적의 지단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2005년 은퇴 경기에서 ‘지단 2001-2006’이라는 글귀가 써 있는 특별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 종료 후 8만 여 팬들은 지단의 등번호 5번이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전원 기립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떠나는 축구 스타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었다. 명문 구단이라 이런 성대한 행사를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멋진 은퇴식을 치러줄 정도로 제대로 개념이 박혀 있기 때문에 그들이 명문 구단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에닝요와 아디, 자격이 충분한 선수들

우리도 이제는 충분히 이런 멋진 은퇴식을 치러줄 여건을 갖춰 가고 있다. 멀쩡히 지금도 잘 뛰는 선수들을 내 마음대로 은퇴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전북의 에닝요나 서울의 아디 정도라면 충분히 K리그에서 멋지게 은퇴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이 둘은 실력은 물론, 나이와 구단에 대한 충성심까지 상황이 딱 들어맞는다. 에닝요와 아디처럼 K리그를 한 차원 더 끌어 올린 선수들이라면 시간이 흐르고 선수 생활을 K리그에서 마감할 때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에닝요는 2003년 수원에서 21경기를 뛴 뒤 브라질로 돌아갔다가 2007년 대구 유니폼을 입고 다시 K리그 무대에 복귀했다, 두 시즌 동안 55경기 출장 21골의 기록을 남긴 뒤 2009년부터는 전북에서 뛰면서 지금까지 68경기에 나서 29골을 뽑아냈다. 2009년 전북의 우승을 이끌기도 한 그는 그해 K리그 베스트11에도 선정되는 등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그는 최근 전북과 계약을 연장했다. 2014년까지 전북 유니폼을 입을 계획이다.

에닝요는 재계약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전북만큼 나의 축구 인생을 화려하게 이어갈 수 있는 구단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연장계약을 한 만큼 꼭 이번 시즌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겠다. 프로선수 생활을 전북현대에서 마감하고 싶다.” 그는 자신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녹색 티셔츠 500장을 성남전을 통해 이벤트를 열어 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전북과 재계약의 의미는 함께 뛰는 동료, 응원해주시는 서포터분들, 그리고 전주라는 매력적인 도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다른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디도 성대하게 선수 생활을 K리그에서 마감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2006년 FC서울에 입단해 벌써 5시즌 째 서울에서 뛰고 있는 아디는 붙박이 주전으로 팀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 역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울에서 은퇴하고 싶다. 서울을 사랑하고 서울 팬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국내 선수보다 더 팀에 대한 애착이 강한 그는 동료들은 물론 팬들에게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서울 팬 중에 아디 욕하는 사람 한 명도 못봤다. 포항의 모따와 서울의 데얀도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K리그에서 더 오랜 시간 뛰고 박수를 받으며 축구화를 벗을 수 있을 것이다.

만남만큼 이별도 중요하다

이제는 ‘용병’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용병은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돕거나 공격하면서,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직업군인을 뜻한다. 국적은 다르지만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들을 한 가족으로 대하는 분위기에서 이제는 용병이라는 말 대신 외국인 선수라는 말이 쓰이는 추세다. 한 가족이라면 다치고 늙고 실력이 떨어져 과거의 찬란했던 시절이 지나갔다고 하더라도 방출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그들을 떠나보낼 수는 없다. 성대한 은퇴식이 아니라도 적어도 팬들과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작은 이벤트라도 열어주는 게 도리일 것이다.

K리그가 보다 다양해지려면 오랜 시간 공헌한 외국인 선수가 성대하게 은퇴식을 갖고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구단과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외국인 선수라고 해도 팀의 ‘레전드’라면 훗날 지도자 생활도 그 팀에서 이어가는 모습이 아직까지 K리그에는 없다. 참고로 지단은 현재도 레알 마드리드 기술 고문은 물론 객원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에닝요와 아디가 시간이 흐르고 각각 전북과 서울 감독이 돼 그라운드에서 맞붙는 모습을 바라는 건 욕심일까.

프로 무대에서는 실력이 떨어지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돈을 보고 팀을 옮기는 선수도 욕할 수 없다. 외국인 선수들은 국내 선수들보다 당연히 K리그 구단에 대한 충성심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시간 K리그 구단에 헌신하고 충성심을 보이는 선수들에 대한 예우는 필요하다. 에닝요와 아디, 모따, 데얀처럼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선수들이 어느 순간 K리그에서 보이지 않아 수소문해봤더니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싶지는 않다. 구단에서 그들이 원하는 연봉을 맞춰줄 수 없어 그들이 떠날 수도 있지만 연봉을 자진 삭감하고라도 선수 생활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도 필요하다.

‘군대리아’ 먹는데 고참이 내 햄버거 패티 한 장 가져가 화장실에 가 몰래 울며 복수의 칼을 갈았던 나도 그가 제대 전 날 사준 치킨 하나로 지금까지 좋은 기억만 남아 있다. 이런 나와 그 고참 사이 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K리그라면 외국인 선수와 팬들이 찝찝한 이별로 좋은 기억을 잊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만남만큼 이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