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메이저리그 구단 모자나 유럽 축구 클럽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패션은 특별하지 않다. 누구나 가볍게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K리그 구단에서 판매하는 옷을 입고 다니는 이들은 마니아 층을 제외하고는 자주 찾아볼 수 없다. 결국 K리그가 일상이 되려면 구단에서 발매하는 상품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오늘은 K리그 각 구단의 쇼핑몰을 살펴봤다. 경기장에서 응원할 때 입을 유니폼 말고 따로 디자인 돼 판매하는 구단 티셔츠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내려 보려 한다. 구단마다 판매하는 상품이 다른데 지금은 여름이니 반팔 티셔츠를 기준으로 하겠다. 선정 기준은 입고 다녀도 동네에서 창피하지 않을 정도나, 여자친구를 만날 때도 입을 수 있는지 여부다. K리그 구단에서 판매하는 의류를 입고도 ‘간지남’이 되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 칼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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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수원, 인천(좌측부터)의 쇼핑몰에서는 멋진 구단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해당 구단 홈페이지)

“이 정도면 GD도 울고 갈 패셔니스타”

FC서울
디자인이 세련됐다. 아디다스 특유의 줄무늬에 배색 역시 조화롭다. 서울 유니폼 컬러를 기본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여러 컬러를 혼합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또한 블랙과 레드 두 종류의 티셔츠를 출시해 골라 입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굳이 서울 팬이 아니더라도 패션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티셔츠다. 아디다스 매장에서 여러 유럽 구단 유니폼과 함께 진열해 놓아도 뒤처지지 않을 아이템이고 구단 쇼핑몰에 들어가면 모델이 직접 입은 착용샷도 감상할 수 있다. 노력이 돋보이는 상품이다. 블랙과 레드를 서로 맞춰 입고 경기장에 가는 커플의 모습을 보면 부러울 것 같다. 이 정도 디자인이라면 충분히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다.

수원블루윙즈
서울과 더불어 가장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이다. 어깨 선의 단조롭지 않은 디자인이 자칫 평범할 수도 있는 티셔츠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촌스럽지 않은 구단 엠블럼과 잘 어우러져 깔끔한 느낌을 풍기면서도 하얀색으로 제작돼 시원한 느낌까지 준다. 여름 바캉스 기간에 반바지와 함께 매치하면 훌륭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아이템이다. 매 시즌 긴팔과 반팔이 새롭게 출시되고 있다는 점도 훌륭하다. 이 정도 아이템이라면 ‘축덕’ 이미지를 탈피하고 거리를 활보할 때도 당당해 질 수 있다. 구단 쇼핑몰에 가면 양상민과 곽희주가 직접 모델로 나선 사진도 감상할 수 있다.

인천유나이티드
깔끔하다. 블루와 화이트 컬러 두 종류 티셔츠 모두 시원한 느낌을 주면서도 스마트하다. 푸마 정도라면 최고급 브랜드는 아니어도 어디서나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는 브랜드다. 장원석과 유병수가 모델로 나서 구단이 이 쇼핑몰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폴로 스타일 티셔츠 제품뿐 아니라 넥타이와 팀 트레이닝복 등 다양한 상품이 구비돼 있다. 이런 티셔츠라면 당당히 여자친구를 만날 때도 입을 수 있다. 강남 논현동에서 ‘잠깐 동네 마실 나온’ 콘셉트로 연출하기에 훌륭한 아이템이다. 그런 데서 차려 입고 있으면 강남 사람 아닌 거 다 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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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과 울산, 포항(좌측부터)의 구단 티셔츠 디자인은 꽤 무난한 편이다. (사진=해당 구단 홈페이지)

“이 정도면 무난해요”

대전시티즌
요새 유행하는 폴로 스타일의 티셔츠다. 젊은 층이 가장 선호하는 디자인이다. 또한 대전의 자랑인 엠블럼을 왼쪽 가슴에 달아 세련미를 더했다. ‘DAEJEON’이라고 써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 만약 대전의 상징인 자주색으로 티셔츠를 제작했다면 다소 촌스러웠겠지만 고정관념을 탈피해 색다른 색으로 디자인, 엠블럼과 균형을 맞춘 게 마음에 든다. 하지만 오른쪽 가슴에 박힌 브랜드는 젊은 층에서 그리 선호하는 상표가 아니다. 나 같은 소시민들은 명품이나 살 때 로고가 크게 박힌 걸 좋아한다. 친구들과 동네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일 때 입기에는 무난한 옷이지만 강남까지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밝은색 바지와 매치한다면 꽤 댄디해 보일 수도 있다. 상의와 비슷한 컬러의 청바지를 입는다면 마치 원피스를 입은 촌스러운 효과가 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현재 85와 90사이즈 밖에 없다는 점이다. 살 찐 것도 서러운 데 이래서야 쓰나.

울산현대
다소 촌스러운 엠블럼으로 이 정도 디자인을 연출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깔끔한 아이템으로 블루 컬러에 시원하게 새겨진 흰색 줄무늬가 인상적이다. 화이트를 기본으로 검정 줄무늬가 들어간 제품도 있다. 하지만 이 제품은 2009년에 나온 것으로 이후 단 한 번도 신제품이 출시되지 않았다. 아마 왼쪽 가슴 엠블럼에 자리 잡은 두 개의 별이 세 개로 늘 때까지는 계속 이 아이템을 고수할 모양이다. 심지어 서울로 떠난 현영민이 아직까지 모델이다. 디자인은 훌륭하지만 이제는 신제품을 보고 싶다. ‘전통의 명가’답게 티셔츠도 전통 있게 3년째 고수하고 있다.

포항스틸러스
블랙을 잘 소화해야 멋쟁이다. 그런 면에서 포항의 이 폴로 스타일 티셔츠는 충분히 우리가 도전해 볼 만한 아이템이다. 여름에 다소 더워 보일 수 있지만 디자인 자체는 훌륭하다. 축구 클럽 느낌이 팍팍 나지 않으면서도 구단 엠블럼을 배치해 촌스러운 느낌에서 벗어났다. 다른 구단이 사이즈별로 수량이 한정된 데 비해 포항은 수량도 넉넉히 준비돼 있다. 또한 이 티셔츠를 제외하고도 여성용 니트 후드와 신기에는 다소 민망하지만 ‘검빨 줄무늬’의 스니커즈까지 갖춰 상품도 다양하다. 이 정도 아이템이라면 포항에서는 물론 전국 어디를 가도 이상한 옷 입었다고 손가락질 받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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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와 전북(좌측부터)의 구단 티셔츠는 다소 아쉽다. 평소 입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진=해당 구단 홈페이지)

“옷이 꼭 몸을 감추기 위한 도구는 아니잖아요”

대구FC
새 하얀 티셔츠가 화사한 느낌을 준다. 디자인 역시 무난하다. 하지만 왼쪽 가슴에 무척 강렬하게 박혀 있는 ‘DAEGU’라는 글자는 대구 팬이 아니라면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축구를 잘 모르는 이들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것이다. 아무리 고향을 사랑하는 대구시민이라고 하더라도 왼쪽 가슴에 이렇게 크게 동네 이름이 붙어 있는 티셔츠를 입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대구FC 엠블럼이 붙어 있는 게 나을 뻔했다. “저 대구 사는 사람입니다”라고 티셔츠에까지 인증을 할 필요는 없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나쁘지 않지만 집에서 반경 3km 이내에는 입고 나가기가 꺼려지는 티셔츠다. 동네에서 친구와 PC방을 갈 때 입으면 안성맞춤이다. 아쉬운 건 95사이즈를 제외한 나머지 사이즈는 품절이라는 점이다.

전북현대
구단 레플리카가 아닌 일반 티셔츠지만 이건 누가 봐도 전북현대 선수단 연습용 유니폼 같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모여 공을 찰 때 입으면 안성맞춤이다. 패션으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전북현대를 정말 사랑하는 팬들만 입을 수 있다. 잘 생긴 사람이 이 옷 입으면 이동국,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입으면 김상식이 되는 묘한 아이템이다. 우리가 모험을 걸면서까지 이동국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전북이 축구는 잘하지만 아직 이런 면에서는 갈 길이 멀다. 그나마 28,000원이라는 착한 가격이 마음에 들지만 꼬질꼬질 지저분한 내 모습 그녀에게 들키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벗어야 할 티셔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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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티셔츠들은 축구장에서만 입을 수 있다. 이걸 입고 길거리로 나선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사진=해당 구단 홈페이지)

“정형돈에게 패션 지도 받아야 할 구단”

강원FC
강원의 열혈 팬이 아니라면 도저히 입고 다닐 수 없는 옷이다. 뒷면에는 ‘GWFC 12’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지극히 서포터를 위한 티셔츠다. 디자인이라는 건 이 티셔츠에서 찾아볼 수 없다. 구단 로고와 ‘12’라는 숫자만이 박혀있을 뿐이다. 과연 이 옷을 입고 어디에 갈 수 있을까. 동네 슈퍼마켓에 담배를 사러 갈 때 입으면 딱 좋은 옷이다. 강원FC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티셔츠지만 만약 이 티셔츠를 일반인(?) 친구에게 생일에 선물한다면 우정에 금이 갈 수도 있다. 아마 강원 구단에서는 유니폼 살 돈이 없는 팬들을 위해 저렴하게 구입해 경기장에서 함께 입고 응원할 목적으로 이 티셔츠를 만든 것 같다. 경기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땐 꼭 화장실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가끔 널 거리에서 볼까봐 초라한 날 거울에 비춰 단장할 때 가장 먼저 벗어야 할 티셔츠다.

전남드래곤즈
전남은 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모양이다. 이 티셔츠를 보면 그들의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디자인이라고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시원하게 구단 엠블럼을 가슴에 팍 박아 넣은 이 티셔츠는 초등학교 6학년생을 초등학교 3학년생으로 어려 보이게 하는 효과까지 있다. 어떤 하의와 매치해도 쉽지 않은 티셔츠다. 이 티셔츠를 입고 소개팅에 나가는 걸로 담력 테스트를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나마 이런 아동용을 제외하고 성인용 티셔츠는 아예 구입할 수도 없다. 잠옷으로 추천한다. 이 옷 입고 하와이는커녕 부곡 하와이도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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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구단 홈페이지의 쇼핑몰 의류 코너에는 유니폼 말고 ‘아무 것도’ 없다. (사진=해당 구단 홈페이지)

“아예 벌거벗은 구단들”

성남 구단 쇼핑몰에 들어갈 때 긴장했다. 어떤 아이템이건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성남 구단 이미지상 그들의 판매 상품이 어떨지 무척 걱정됐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성남은 유니폼을 제외하고는 판매하고 있는 의류가 없었다. 또한 상주 역시 유니폼 말고는 판매하는 상품이 없다. 그냥 자체적으로 군대에서 입던 녹색 티셔츠나 깔깔이를 착용하라는 의미인가보다. 경남에는 겨울용 후드 티셔츠만 있었고 부산과 제주는 아예 티셔츠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명품 구단’이 되려면 단순히 축구만 잘해서는 안 된다. 세련된 이미지를 갖춰야 하는 것도 그들의 임무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수없이 접하는 메이저리그 구단 모자와 유럽 축구 클럽 티셔츠를 볼 때면 여러 생각이 든다. K리그 구단의 상품이 경쟁력을 갖는다면 알게 모르게 K리그를 접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K리그도 언젠가는 경기장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도 우리의 일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