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은 어릴 적부터 사고만 치고 다녔고 언제나 삐딱했다. 반대로 쌍둥이인 둘째와 셋째는 무척 착실했고 무슨 일이든 척척 알아서 잘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세 명의 아들 모두에게 똑같은 사랑을 줬다. 남들은 큰 아들을 손가락할지 몰라도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다. 세상 그 어떤 부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식이 사고뭉치라고 해서 호적에서 파 버리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우리 집의 큰 아들인 나는 탈선을 할 때도 보듬어주신 부모님 덕분에 이제는 네이트에서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분들에게도 “현회형” 소리를 들으며 잘 살고 있다.

상무가 K리그의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일부에서는 상무의 K리그 퇴출을 주장하기도 한다. 승부조작의 온상이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나는 이럴 때일수록 K리그와 팬들이 상무를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혼돈의 상황에서 상무가 K리그를 떠나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혼란만 더 가중시킬 것이다. 남의 집안 이야기라면 “호적에서 파 버리라”고 할 수 있어도 우리 가족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그럴 수 없다. 상무는 K리그에 남아야 한다. 하다 못해 나도 “현회형” 소릴 듣는데 상무라고 다시 일어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상무 퇴출, 즉흥적 결정 안 된다
상무가 승부조작에 가장 심각하게 연루된 건 사실이다. 상무는 승부조작 파문으로 올해 소속선수 9명, 지난해 소속 선수 15명이 검찰에 기소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이수철 감독까지 승부조작을 미끼로 선수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됐다. 오는 10월에 선수들이 무더기로 제대하면 선수가 부족해 제대로 된 경기를 치를 여건도 되지 않는다. 선수는 물론 감독까지 구속된 상황에서 상무의 K리그 퇴출을 주장하는 이들은 “더 이상 이런 비리의 온상을 K리그에 둬선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 이번 사건만 보고 즉흥적인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상무가 한국 축구에 기여한 바는 홀랑 잊은 모양이다. 상무는 병역 문제로 고민하는 선수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고 이는 선수 개개인은 물론 한국 축구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무척 든든한 존재였다. 만약 상무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동국은 물론 조원희, 조재진, 김정우도 없었을 것이다. 병역 문제 앞에서 유망한 선수들이 축구를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월드컵? 젊은 선수들이 축구 그만두고 다 군대 가는 데 월드컵 아시아 예선 인도네시아전은 누가 나가나.

지금 유럽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기성용이나 손흥민도 병역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군대에 가야한다. 군대에서 2년 동안 축구를 놓고 지내다 제대하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성공을 거둔다? 이거 해외토픽 아니면 인간극장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상무는 단순히 K리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축구 전체의 문제다. 상무를 K리그에서 내쫓는 게 능사가 아니란 말이다. 당장 상무가 K리그에서 퇴출된다면 보기에는 그럴싸할지 몰라도 결국에는 그 후유증이 엄청날 것이다. 선배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처벌은 당사자들이 당해야 하지 애꿎은 후배들의 몫이 아니다.

병역 비리에서 자유로웠던 K리그
2004년이었다. 미리 언급하자면 다른 종목 팬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다만 상무가 K리그에 남아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소개하기 위함이다. 당시 프로야구에서는 최대의 병역 비리 사건이 터졌다. 32명의 선수가 구속되거나 구속영장이 신청됐고 24명이 불구속입건 됐다. 한국야구위원회에서는 56명 전원에 대해서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K리그는 당시 병역 비리 사건을 피해갔다. 야구계에서는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고민하면서 “K리그의 상무와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상당수 종목이 상무를 통해 선수를 선발하는데 이 팀을 어떻게 유지하는지는 결국 해당 경기 단체의 선택이다. K리그는 상무를 품었고 병역 비리에서 벗어났다.

운동선수라면 당연히 한창 때 군대에 가는 걸 기피할 수밖에 없다. 당시 프로야구는 이러한 시스템에서 보완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던 반면 축구는 상무를 K리그에 포함시켜 선수들의 병역 문제와 경기력 향상을 도왔다. 결국 프로야구 선수 절반가량은 이후 죄값을 받고 돌아왔지만 나머지는 운동을 그만뒀다. 범법자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말이다. 당시 축구계에서는 “상무가 K리그에 있어 다행이다”, “우리도 큰 일 날 뻔했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컸다. 상무가 프로리그에 있다는 걸 비아냥대면서 지적하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네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후 2008년 초, 축구계에서도 병역 비리 사건이 터졌다. 92명이 적발됐는데 이 중 K리그 선수는 단 다섯 명에 불과했다. 실업 축구 선수가 35명, K3리그 출신은 15명, 나머지는 대학 소속이거나 유소년 축구 클럽 코치, 축구를 그만둔 이들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는 전·현직 K리거를 묶어 보도하는 바람에 현역 K리그 선수들이 많이 연루된 것처럼 비춰졌지만 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은퇴한 이들이었다. 이건 축구를 계속하기 위한 비리가 아니라 단순히 군대에 가기 싫어 저지른 범죄였다. K리그 선수 다섯 명 중 한 명은 이후 재판 과정에서 무혐의 처리됐다.

상무 입대를 위해서는 K리그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자격이 없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거 비리를 저지른 반면 K리그 선수들은 비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만약 다시 상무가 퇴출된다고 한다면 장담하건대 또 다시 K리그도 병역 비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병역 문제 해결과 경기력 향상을 돕는 상무가 있어 그나마 K리그가 병역 비리에서 깨끗했다는 걸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상무를 퇴출시켜놓고 나중에 가서 병역 비리 사건이 터지면 다시 상무를 K리그에 포함시킬 건가. 대책은 있나. 승부조작과 병역 비리 모두 척결해야 할 대상인데 우리는 지금 승부조작과 병역 비리를 맞바꾸려 하고 있다.

면피용 징계, 어떤 효과도 없다
2013년이 되면 승강제를 실시해야 하고 자연스레 상무는 2부리그로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승격 자격을 갖춘다고 해도 승격을 할 수 없는 제도도 마련할 것이다. 이제 1년 반 남았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벌어질 현상을 지금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다. 상무의 즉흥적인 퇴출로 K리그 승부조작이 뿌리 뽑힌다면 나도 물론 이에 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상무가 K리그에서 당장 퇴출된다고 해 승부조작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이건 단순히 면피용이고 K리그에 만연한 승부조작을 상무에 모두 덮어씌우는 꼴이다. 상무를 일벌백계 하려거든 관리를 소홀히 한 관계자를 징계하는 게 더 옳다.

우리는 지금 승부조작의 근본적인 문제를 논해야 하는데 쓸 데 없는 상무 퇴출에 대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인위적이고 즉흥적인 상무의 퇴출이 사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절대로 감정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해병대에서 요즘 계속 사고가 터지고 부조리가 발생한다고 해 해병대를 해체하거나 국방부에서 퇴출하나. 아니다. 문제점을 찾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자신의 자가용이 고장 났다고 버리는 사람 못 봤다. 정비소에 가서 수리를 한다. 여론이라면서 상무 퇴출을 기 쓰고 주장하는 언론들은 자가용 고장 나면 길에다 갖다 버려라. 내가 좀 주워서 타고 다니게.

상무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소속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치열히 경쟁해야 하는 프로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건 사실이다. 제대가 다가오면 몸을 사리는 모습도 자주 봐 왔다. 먼 미래를 내다보면 결국 상무가 2부리그에 남아 있는 것도 경쟁 속에 흥미를 끌어야 하는 프로리그의 오점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상무를 2부리그에서 퇴출시키는 것도 옳은 방법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럴 경우 선수들의 경기력 저하는 물론 병역 비리 사건까지 터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고민해 봐야 한다. 운동선수의 병역 의무를 은퇴 이후로 배려해주는 편법 말고 축구계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군대스리가’ 창설이 해답이다
얼마 전 한국 축구계에서 군대가 한 역할에 대해 칼럼을 쓰려고 자료를 모으다 포기한 적이 있다. 자료가 별로 없는 것도 이유였지만 워낙 그 역사가 방대하기 때문이었다. 특무대, 병참단, 헌병감실 등 내가 보기에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군대 축구팀이 무척 많았다. 운영 주체가 바뀌고 팀 이름이 변경되는 등의 일이 많아 자료를 정리하다가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이들은 이 땅에 프로축구가 뿌리 내리기 전, 은행팀이 우후죽순처럼 창단되기 전, 한국 축구를 발전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50년대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이들이 우승의 단골손님이었다.

결국 축구선수들의 병역을 해결하면서 경기력도 향상시키고 프로리그의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K리그와는 별도로 군대 축구판이 커져야 한다. 현재 K리그의 상무와 R리그(2군리그) 경찰청에서 받아들이는 선수들로는 한계가 있다. 두 팀만으로 리그를 치르는 것도 무리다. 협회와 연맹에서는 군대 팀으로 리그를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시장을 키우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실제로 추진되다가 무산된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팀이 창설된다면 기존의 상무와 경찰청까지 포함해 6개 팀으로 리그를 꾸릴 수 있다. 진정한 ‘군대스리가’다.

그렇다면 현재 K리그 주축 선수들만 입대할 수 있는 상무와 K리그 2군 선수 위주가 입대한 경찰청에 속하지 못한 나머지 선수들도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아마 내셔널리그 선수들은 물론 실력 좋은 챌린저스리그(과거 K3리그) 선수까지 품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로 리그에 상무라는 돌연변이 팀이 남아 있는 아이러니도 해결할 수 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러한 리그 구성을 위해 축구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군대에 있는 사람들 참 축구 좋아한다. 그리고 축구 선수는 무척 많다. ‘군대스리가’는 축구여서 가능한 일이고 축구만이 가능한 일이다. 궁극적으로 먼 미래에는 군대 팀끼리 단일 리그를 치러야 한다.

불사조 정신, 상주에서 이어가길
그 전까지는 K리그, 혹은 2년 뒤의 2부리그가 상무를 품어야 한다. 승부조작 사건 하나 만으로 지금까지 상무가 한국 축구에 기여한 바를 잊어선 안 된다. 상무 역시 이 위기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 지금은 비록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승부조작이 터지기 전까지 상무는 많은 선수들의 재기를 이끌며 군대가 새로운 기회의 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뛰어난 역할을 했다. 상무의 상징인 불사조답게 죽지 말고 일어서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모든 걸 놓고 포기한다면 상무는 개선 의지도 없는 비겁자로 낙인찍힌 채 도망가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적어도 군인이라면, 불사조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 군인정신을 발휘할 시기다.

나는 상주가 어디에 붙어 있는 도시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잘 안다. 상주는 서울에서 대구로 가는 방향에 있고 고속버스를 타면 서울에서 두 시간 반 정도 걸린다. 버스 요금은 11,600원이다. 만약 K리그의 상주 상무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상주라는 곳이 어디 있는 지도, 가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상주는 많은 K리그 팬들에게 상무로 인해 홍보 효과를 얻었다. 아픔을 겪고 있는 상무가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면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곧 상주시의 이미지 개선일 것이다. 상주시는 지금처럼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풍악을 울리고 서로 관중석에서 음식을 돌리면서 이 축제를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

과연 우리가 상주시민들의 작은 행복과 애향심까지 빼앗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상주시민이 상주시청 자유게시판에 남긴 글을 소개하려 한다. “원정경기 응원은 늘 그렇듯이 시민운동장에 모여서 버스 한 대가 출발한다. 나이 드신 분부터 어린 학생까지 자발적으로 모여서 회비를 내고 출발한다. 버스 안에서 간단하게 응원 연습하고 승리를 꿈꾸며 그렇게 응원일정은 시작된다. 다른 원정 경기 때도 그렇지만 어제 경기만큼 아쉽고 눈물겨운 경기가 있을까 싶다. 웅장한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서울 관중 2만8천명 대 상주 150명 정도의 싸움,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경기다.”

“토스트를 직접 만들어 오셔서 음료수와 나눠주면서 정말로 열심히 응원을 했다. 대등한 경기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꼭 이겨보자는 일념으로 정말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종료시간 1분도 남지 않은 시간에 역전골을 주면서 우리는 졌다. 경기를 마친 우리 선수들이 상주 응원단에 와서 인사를 하는데 우리 응원단 눈가에 모두들 눈물을 고여 있었다. 한마디로 피눈물 나는 전투였다. 태어나서 우리가 사는 상주를 위해 과연 눈물을 흘리며 응원을 한 적이 있었던가. 상주 향우회원님들과 우리 어린 학생들, 진정 상주 사랑을 위해 온힘을 다했다. 상주상무프로축구단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