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곤 감독, 이제는 우승으로 말해야 할 때


나는 고등학교 때 반에서 꼴찌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중학교 때에는 제법 공부를 잘했었다. 그렇지만 “증거를 대 보라”면서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 중학교 시절 전교 3등을 하고 받았던 상장은 세월이 지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억울하다. 당시 우리 반 친구들이 댓글로 인증을 해줬으면 좋겠다. 역시나 우리 사회에서는 수상 경력이나 성적표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신뢰를 받는다. 울산 김호곤 감독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김호곤 감독은 K리그 16개 구단 사령탑 중 최연장자다. 이만한 베테랑 감독을 찾아 볼 수 없다. 2004 아테네 올림픽 감독으로 나서 8강에 진출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냈다. 최근에는 “승부조작 선수들을 선처해선 안 된다”며 축구 행정가 출신답게 올곧은 발언을 하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직접 만나본 김호곤 감독은 소신 있고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지도자였다. 축구에 대한 지식도 나 같은 애송이하고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다. 내가 인터뷰를 하면서 명백한 실수를 하자 내 후두부를 가격하며 나를 보듬어줬던 기억도 난다.

일단 김호곤 감독이 이뤄낸 올림픽 8강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먼저 짚고 넘어가려 한다. 당시 김호곤 감독은 이천수, 조재진, 최성국, 김동진, 김정우, 김두현 등 ‘황금세대’를 이끌고 8강에 올랐다. 이 때문에 “선수의 능력으로 얻은 성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장으로 평가받는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도 최용수와 윤정환, 최성용, 조현두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을 이끌고도 8강 진출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면 김호곤 감독의 8강은 폄하는커녕, 찬사를 보내 마땅한 성적이다. 하지만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그가 K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호곤 감독은 2000년부터 세 시즌 동안 부산아이콘스(현 아이파크) 감독을 지냈다. 이후 올림픽 대표팀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재직하다 2009년부터는 울산 지휘봉을 잡고 다시 현역 지도자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 다섯 시즌 동안 단 한 번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점을 들어 김호곤 감독의 자질에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김호곤 감독이 이들에게 반론을 제시하려면 일단 우승컵을 들고 따지러 가야 한다. 어떤 논리보다도 중요한 건 우승컵이다. 우승컵은 이 논란을 종식시키는 ‘하이패스’다.

울산에서의 김호곤 감독은 그간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울산은 설기현과 송종국, 오범석,이호, 강민수, 곽태휘 등 전현직 국가대표를 대거 영입하는 등 이적 시장에서 항상 이목을 끌었다. 여기에 오장은과 이진호, 김신욱, 김영광 등 탄탄한 기존 멤버까지 더해져 늘 우승권 팀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김호곤 감독이 울산 지휘봉을 잡고 지난 2년 동안 울산은 우승권 근처에서 맨 위로 치고 올라가지 못했고 송종국과 오범석, 오장은 등은 결국 팀을 떠났다. 이러한 선수 구성으로 우승하지 못한다는 건 감독으로서 당연히 자질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김호곤 감독은 오늘(13일) 무척 중요한 일전을 치른다. 2011 러시앤캐시컵 결승에 올랐기 때문이다. 울산은 오늘 공교롭게도 과거 김호곤 감독이 지휘했던 부산아이파크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우승에 도전한다. 김호곤 감독 생애 사상 첫 프로 리그 우승컵을 위한 도전이다. 그만큼 무척 중요한 경기다. 김호곤 감독으로서는 이 경기에서 승리하고 생애 첫 리그 우승 트로피를 품어야 체면이 선다. 지금까지 김호곤 감독을 기다려준 울산 팬들에게 이제는 우승 트로피를 하나 선물할 때도 됐다.

울산으로서도 이 경기는 무척 중요하다. 울산은 지난 2007년 하우젠컵 우승 이후 4년 동안 무관에 그쳤다. 과거 최고 명문 구단으로 평가받던 울산으로서는 최근의 저조한(?) 성적이 성에 차지 않는다. 제 아무리 낮게 평가되는 리그컵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우승을 확정지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현재 정규리그에서 12위에 머물고 있는 울산의 부진이 깊어질 수 있다. 이건 우승 상금 1억 원이 문제가 아니라 ‘축구 명가’ 울산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울산은 다른 팀들이 리그컵에 2진급 선수들을 기용하는 동안에도 줄곧 최상의 전력을 구축해 경기에 나섰다.

김호곤 감독은 지난 경남과의 4강전에서 완벽한 용병술을 선보였다. 체력전을 예상한 그는 김신욱을 아껴 놓았다가 후반에 기용했고 김신욱은 후반 45분 동안 네 골을 뽑아내는 괴력을 선보이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김신욱의 슈팅 네 개는 모두 골로 연결됐다. 경기가 끝난 뒤 김신욱은 김호곤 감독의 의중이 적중했다면서 “후반 교체 투입으로 경남 수비진보다 체력적 우위를 점한 것이 다득점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울산의 경기력은 단연 리그컵에서 돋보인다. 울산이 이번에도 우승을 놓친다면 김호곤 감독은 할 말이 없다.

김호곤 감독은 팬들에게 그리 인기가 많은 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김호곤 감독을 겪었던 선수들은 그의 인품과 지도력에 대부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선수단을 잘 이끄는 능력만큼 이제는 팬들도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성적을 내야 할 때가 왔다. 결국 감독은 성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김호곤 감독의 지도력이 인정받는 길은 결국 오늘 우승컵에 달려 있다. 내가 중학교 때 전교 3등을 했다고 우겨도 증거가 없어 아무도 믿지 않질 않는가. 오늘 오후 7시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이 경기를 놓치지 말자. 오후 7시까지 뭐하면서 기다리느냐고? 그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보는 건 어떨까. 비 오면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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