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는 룰을 어기고 재도전을 선택했다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욕을 먹었다. 담당PD는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세상이 룰을 어긴 <나는 가수다>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생각해보면 법적 구속력 없는 그냥 서바이벌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도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대중은 크게 반발했다. 그만큼 우리는 예능 프로그램이건 뭐건 정해진 룰 안에서 펼쳐지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좋아한다. 룰을 어겼던 <나는 가수다>는 스포츠 경기의 승부조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데 말이다.

최성국과 염동균, 자진신고 아니다
승부조작 파문으로 연일 K리그가 시끄럽다. 최근 프로축구연맹에서 “자진신고하는 선수는 최대한 선처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기소자 46명 중 21명이 자진신고를 통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입건됐다. 어제 열린 ‘승부조작 후속대책 및 제도 개선안’ 발표 자리에서 연맹 곽영철 상벌위원장은 “자진신고 선수의 K리그 복귀 허용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법의 처벌을 받고 나오면 영구제명이라는 중징계는 내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시 축구계에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연맹은 처음 약속을 지켜야 한다. 연맹 스스로 “자진신고한 선수에 대해서는 최대한 선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번 칼럼에서도 밝혔듯 순수한 의미로 자진신고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나는 깨끗하다”고 발뺌하다가 ‘악질 브로커’ 최성현이 구속되자 좁혀오는 수사망을 느끼고 자진신고한 10여 명은 자진신고라고 볼 수 없다. 그들은 아마 최성현이 구속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죄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단언컨대 진정한 자진신고자는 아무도 없다.

최성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진신고를 통해 검찰 수사를 받고 불구속 됐지만 자진신고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나는 떳떳하다. 승부조작 제의도 받은 적이 없다”던 그는 검찰이 자신의 뒤를 쫓고 있자 부랴부랴 연맹에 자진신고 했다. 최성국이 연맹의 선처를 받기 위해서는 K리그 워크숍 기자회견 자리에서 “죄송하다. 한 순간의 실수로 그랬다”고 이실직고 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그게 자진신고이고 선처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브로커 역할까지 했으면서 오히려 억울한 척 했다.

염동균은 최강희 감독과의 면담에서도 수 차례 억울하다고 했고 자신에 대한 소문이 돌자 “소문 유포자를 찾아내 법적 공방을 벌일 것”이라고 엄포를 놓다가 결국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진신고했다. 그 역시 연맹의 선처를 받으려면 저런 소문이 돌 당시 언론을 통해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죄를 고백했어야 한다. 왕선재 감독 앞에서 아들 이름까지 걸고 결백을 맹세했던 몇몇 선수들은 검찰에 가 단 10분 만에 모든 걸 불었다. 검찰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는데 그때 고백하는 게 무슨 자진신고인가. 도주하던 범인이 형사가 잡으려는 순간 투항한다고 그게 자수는 아니다.

‘듣보잡’만 걸려 들었다면?
곽영철 상벌위원장은 자진신고자 선처에 대해 “대상자가 워낙 많아서”라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도 말이 안 된다. 결국에 이는 최성국이나 염동균 등 국가대표급 선수 몇몇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일 뿐이다. 막말로 대전 소속의 소위 말하는 ‘듣보잡’들만 대거 적발됐다면 과연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을까. 지금 연맹의 ‘여론 떠보기’는 결국 몇몇 유명선수들을 위한 것일 뿐이다.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엄한 박지성 이야기 꺼내서 미안하지만 승부조작이라면 박지성이고 뭐고 단칼에 내칠 수 있어야 한다.

선수 개인의 사정이야 안타깝다. 나 역시 승부조작 연루 명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선수들의 이름도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나는 그들을 인간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만났을 때다. 승부조작과 관련해서는 그 누구도 더 이상 그들에게 축구선수로의 자격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조직 폭력배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동정 여론도 안 된다. 실제로 몇몇 선수는 처음 승부조작 제의가 들어왔을 때 이를 거절했고 이후 더 이상 제의를 받지도 않았다. 결국 조직 폭력배의 협박도 다 그들이 처음 승부조작에 발을 들여놓은 결과다. 동정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그들은 평생 축구공을 만지면 안 된다. 연맹에 있는 모든 기록에서도 삭제되어야 한다. 최성국은 조모컵 MVP와 부상으로 받은 자동차도 뱉어내야 한다. 조기 축구도 못하게 해야 한다. 몇몇 팬들이 경기장에서 소란을 피워 ‘축구장 입장 금지’라는 징계를 받고 있는데 이들보다 죄질이 훨씬 더 불량한 승부조작 선수들도 당연히 영구 제명을 넘어서 ‘축구장 영구 출입금지’라는 징계를 받아야 한다. 이천수는 구단과의 마찰로 다시는 K리그 무대에 돌아올 수 없다. 죄질로 따지자면 승부조작이 훨씬 더 무거운데 이들을 선처한다면 이천수는 뭐가 되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얼마 전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MBC 스포츠+ 이주헌 해설위원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애들이 운동을 하러 와 ‘선생님, K리그 승부조작, 승부조작 했대요’하더라. 승부조작 단어 뜻도 모르는 애들이 이런 말을 하는 데 지도자로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어. 그 어리고 순수한 애들의 입에서 승부조작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승부조작 선수들을 선처한다면 그들은 은퇴 후 지도자 생활도 이어갈 수 있다. 과연 그들이 아름다운 꿈을 꿔야 하는 어린 선수들을 지도할 자격이 있을까. 아예 이런 시스템 자체를 영구 제명으로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승부조작, 축구계 살인이나 마찬가지
승부조작은 살인보다는 중한 범죄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축구판만 놓고 본다면 승부조작 이상으로 무거운 범죄는 없다. 이건 정정당당한 승부의 세계를 아예 부정하는 아주 악질 행위다. 사회에서 살인을 한 행위나 다를 바 없다. 범죄에 대한 처벌은 검찰에서 내리겠지만 축구계에서는 승부조작을 사회의 살인죄처럼 중대하게 취급해야 한다. 악질 살인범에게 사형을 선고하듯 승부조작으로 스포츠의 본질 자체를 부정한 이들에게는 더 이상 축구선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축구계의 사형인 영구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이들이 음주운전이나 마약을 했다면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았겠지만 축구계 내부의 징계는 그보다 약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음주운전이나 마약도 큰 범죄다. 하지만 적어도 축구계에서의 죄질을 놓고 본다면 승부조작이 훨씬 더 불량한 범죄다. 음주운전이나 마약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돌아온 선수라면 몇 년의 자숙 기간을 거치고 K리그에 돌아올 때 격려의 박수를 쳐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승부조작은 아니다.

만약 이들을 선처한다면 이건 또 결국 배후 세력인 조직 폭력배에게 유혹의 명분을 주는 꼴이 될 것이다. 배후 세력은 또 다시 선수들을 꼬시며 “몇 번 승부조작에 가담한 누구도 지금 자진신고하고 K리그에서 잘 뛰고 있다. 일단 몇 번 승부조작 해보고 만약에 걸리면 그때 가서 뉘우쳐도 늦지 않다. 그때는 우리도 너를 눈감아 주겠다”고 할 것이다. 이들은 K리그 따위가 없어지는 거 아무런 관심도 없다. 나중에 다른 종목으로 그 무대를 옮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왜 축구계에서 배후 세력에 꼬투리 잡힐 일을 해야 하나.

자진신고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된 이들은 지난 K리그 워크숍에서도 아주 당당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거기에서 승부조작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 사이에 껴 그때까지도 연기를 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은 검찰에서 수사망을 좁혀오며 자신들을 옥죄여 오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없이 했을 것이다. “나는 깨끗하다”면서 말이다. 이런 선수들을 봐준다는 건 승부조작 유혹을 뿌리친 떳떳한 선수들을 바보로 만드는 꼴이다. 이들이 아니어도 축구를 할 선수들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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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상무 이수철 감독(맨 오른쪽)까지 최근 구속되는 등 축구계가 큰 충격에 빠져 있다. 이수철 감독이 경기에 앞서 승부조작 근절과 관련해 선서하는 이 모습에 많은 이들은 분노했다. (사진=프로축구연맹)>

"승부조작 순간, 제명이 됐어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터진 ‘블랙삭스 스캔들’은 유명하다.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돈을 받고 고의로 패배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 중에는 ‘천재 타자’ 조 잭슨도 있었다. 결국 이들은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들을 영구적으로 추방했다. 조 잭슨은 만 서른 살의 나이로 유니폼을 벗었고 이후 세탁소를 운영하며 빈곤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떴다. 명예의 전당 헌액 여론도 들끓었지만 메이저리그는 조 잭슨을 인정하지 않았다. K리그가 메이저리그 조 잭슨의 사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진신고한 선수들에 대해서는 검찰에서도 구형을 내릴 때 충분히 참작할 것이다. 순수한 의도의 자진신고인지 아니면 조여 오는 수사망을 느껴서 할 수 없이 자수한 것인지도 검찰이 판단할 것이다. 딱 그 정도면 된다. 연맹 차원에서 더 이상 선처할 필요는 없다. 검찰의 판단으로 자진신고가 인정되거든 구형시 형량을 감면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 선처면 충분하다. 그 정도면 연맹도 자진신고자에 대한 배려를 충분히 한 셈이다. 적어도 축구계 징계에서 이들을 선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K리그에서 단 한 경기라도 뛰어 보는 게 꿈인 선수들은 지금도 이 꿈의 무대에 입성하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린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달에 80만 원 벌고 저녁에 공을 차면서 평생 오지 않을 K리그 입성 기회를 노리는 챌린저스리그 선수들도 숱하게 봤다. 적어도 지금 당장 승부조작에 연루된 수십 명을 내친다면 K리그 수준이 잠시 떨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면 잠시 경기력이 떨어져도 괜찮다.

나는 돈에 눈 먼 최성국의 환상적인 드리블보다는 축구에 순수한 열정을 보내는 선수의 헛발질이 차라리 더 좋다. 하다못해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도 재도전이 안 되는데 승부조작한 K리그 선수들이 재도전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훗날 K리그 선수들에게 우리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며 승부조작은 꿈에도 생각지 말라고 하고 싶다. 그때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승부조작을 하는 순간, 제명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