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이젠 ‘몸통’을 잡아야 할 차례

바퀴벌레는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 한 쌍의 바퀴벌레 커플이 낳는 새끼만 해도 수만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이 암컷을 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리 바퀴벌레를 잡아도 또 그들과 만나야 한다. 눈 앞에 보이는 바퀴벌레 몇 마리 잡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바퀴벌레 소탕작전을 벌어야 한다. 이 번식력 강한 녀석들은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다.

승부조작,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K리그가 사상 최악의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렸다. 수십 명의 축구선수들이 연루돼 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2차 수사 발표가 끝난 현재 국가대표 출신을 비롯해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선수들이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입건됐다. 충격적인 일이다. 언론에는 연일 승부조작 의혹을 사고 있는 선수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검찰에서는 공개적으로 특정 선수 이름을 거론하고 있다. 김형호와 송정현, 정윤성(이상 전남), 박지용(강원), 염동균(전북), 이상홍(부산), 김지혁, 박상철, 주광윤(이상 상주), 김승현(호남대 코치, 당시 전남) 등 10명이 구속됐고 최성국 등 33명의 선수는 불구속 기소됐다.

팬들을 기만하고 돈 몇 푼에 양심을 팔아넘긴 이들은 모두 소탕해야 한다. 자진신고를 가장한 치사한 행동에 동정심도 줘서는 안 된다. “억울하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브로커 역할까지 했던 선수는 인간 취급도 하지 않으련다. 다시는 축구계에 발을 담그지 못하도록 이런 양심불량 선수들을 모두 찾아내야 한다. 승부조작에 대해 대충 넘어갔다가는 우리도 승부조작으로 몰락한 동남아시아 꼴을 면하기 어렵다. 1년에 수억 원을 벌면서 단 돈 몇 백 만 원에 양심을 팔 정도였다면 팬들은 애초부터 사랑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라운드에 섰다는 이유로 팬들의 박수를 받았지 그 밖에서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 아쉬움이 남는다. 정작 중요한 ‘몸통’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수십 명의 선수들만 줄줄이 적발될 뿐 아직도 이들을 조종한 배후 세력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검거된 일반인 브로커와 선수 신분으로 브로커 역할을 한 김동현, 최성현도 결국에는 중간 연결책일 뿐이다. 이들은 엄밀히 말해 ‘몸통’이 아니다. 그런데 검찰은 가담 선수 색출에만 신경을 쓰지 그들을 조종하는 조직 폭력배들은 아직 소탕하지 못했다. 승부조작에 관여한 폭력 조직이 네 개 정도 있다는 사실은 밝혀낸 게 성과라면 성과다.

‘몸통’은 어디로 갔나

승부조작에 가담해 구속된 브로커가 소속된 ‘북마산파’는 경남 창원 도심에서 패싸움을 하다 본의 아니게(?) 폭력혐의로 구속됐다. 자기들끼리 폭력 사건을 벌이지 않았다면 이들의 실체를 찾을 수도 없었다. 현재 폭력 조직들은 서로 다른 계파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검찰에 승부조작을 제보하는 등 세력 싸움에 한창이다. 여전히 검찰이 소탕해야 할 승부조작의 배후 세력은 많다. 수십 억 원 금방 버는 승부조작 시장에 뛰어든 조직 폭력배들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검찰 수사망이 좁혀지자 대부분이 달아났다. 선수들을 줄줄이 소환하는 동안 당연히 이들에 대한 수사도 강도 높게 이뤄졌어야 하지만 결국에는 이들 상당수가 도주할 때까지 검찰은 한 게 없다. 물론 가담 선수를 적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배후 세력을 찾아내는 일 아닌가. 도주 가능성으로 따지면 얼굴이 알려지고 치밀하지 못한 선수들보다 조직 폭력배들이 훨씬 더 높다. 검찰은 “전주와 브로커 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지만 이들은 대부분 K리그 출신 선수들로 중간 연결책 역할을 했던 이들이다. 이 8명에는 여성 주점 종업원도 포함됐다. 이들은 ‘몸통’과는 거리가 상당하다.

전주는 말 그대로 자금을 대는 역할을 했다. 폭력 조직과 손을 잡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주먹을 써 협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배후 세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쉽게 말해 이번 승부조작 사건은 배후 세력인 폭력 조직, 돈을 댄 전주, 선수와 배후 세력을 연결해 준 브로커, 실제 조작 가담 선수로 나뉘어 지는데 아직 배후 세력만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선수들만 탈탈 털었고 언론에는 무척 수사 성과가 좋은 것처럼 보도됐다. 국가대표 출신 선수까지 검거했으니 그렇게 보일 만도 하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선수들만 파렴치한으로 몰아갈 뿐 배후 세력인 조직 폭력배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이제는 ‘몸통’을 잡아야 할 차례

혹시라도 “김현회 저 놈 축구 선수 편 들어주려고 이런 칼럼 쓰는 것 아니야”라고 반문할 이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는 당연히 발본색원해야 하고 다시는 축구계에 발을 담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예전 칼럼부터 주장해 왔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치 않는다. 이런 이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먼 거리까지 따라와 응원하는 팬들 앞에서 일부러 헛발질을 하고 아쉬운 척 연기했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배후 세력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들은 언제든 지금보다 더 막강한 자금력과 협박 수단을 동원해 한국 스포츠판을 더럽힐 수 있는 존재다. 이들은 선수들이 숙소로 쓰는 호텔 옆 방을 잡고 선수들을 불러 협박을 일삼을 정도로 추악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물론 처음 이들과 연계해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의 잘못이 크지만 이걸 미끼로 수 차례 협박해 더 큰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야 말로 검찰에서 모두 찾아내야 한다. 매일 인터넷에 접속하면 새로 연루된 선수가 보도되지만 이제는 “검찰, 승부조작 배후 세력 일망타진”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싶다.

한 동안 승부조작으로 홍역을 앓았던 중국은 이 문제를 뿌리 뽑으려고 발버둥 쳤다. 그런데 쉽게 승부조작이 척결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중국의 거대 폭력 조직에서 배후를 조종해 중국축구협회 부주석까지 매수할 정도로 ‘몸통’의 실체가 엄청났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이 폭력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면서 승부조작도 잦아들었다. ‘깃털’부터 검거해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몸통’을 찾아내면 ‘깃털’들 검거하는 건 일도 아니다. 선수 몇 명 더 적발한다고 해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조직 폭력배들은 의리 있고 낭만적인 존재로 나오지만 이건 다 영화가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현실에서 그들은 악랄하다.

공권력의 힘이 필요하다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앞으로 승부조작이 일어날 경우 해당 구단을 K리그에서 퇴출시키는 방법까지 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축구계 내부에 맡겨야 한다. 축구계 내부의 자정적인 노력을 믿어야 한다. 정부에서 할 일은 축구계가 할 수 없는 법적인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정부는 폭력 조직의 연계나 불법 도박 사이트 등 축구계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공권력을 투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축구계가 폭력 조직이나 불법 도박 사이트까지 단속할 수는 없다. 괜히 치적 세우기를 위해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에 끼어들지 말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열린 FA컵 16강전에는 불법 도박 세력과의 연계 가능성이 큰 중국인이 등장했다. 이 중국인은 경기장 구석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누군가에게 계속 연락을 했다. 이 모습을 본 협회 관계자는 이 중국인을 붙잡아 인근 경찰서로 넘겼다. 하지만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증거가 없다. 중국과의 외교 문제도 있다.” 결국 이 중국인은 불법 도박과 관련해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고 곧바로 풀려났다. 언제까지 선수라는 ‘깃털’만 뽑아놓고 생색낼 건가. 이제는 ‘몸통’을 잡아야 할 차례 아닌가. 바퀴벌레는 아무리 잡아도 부화하는 암컷을 잡지 못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스포츠를 개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바퀴벌레들을 그냥 놔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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