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지난 새벽은 행복했다. 남아공 더반에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평창”이라고 외치던 순간 아마 모두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계산을 해보고는 경악했다. 2018년이면 내 나이가 37살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축제에서 한국의 선전에 20대 청년들이 술을 마시며 열광할 때 나는 아내 눈치 보며 아이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노총각으로 늙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는 아마 파릇파릇했던 시절 개최됐던 2002 한일월드컵을 그리워할 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건 경사다. 이미 두 차례나 올림픽 유치에 실패하고 좌절했던 평창은 극적으로 세 번째 도전 만에 꿈을 이뤘다. 세 번째 도전에 대해 반발 의견도 거셌지만 평창은 결국 해냈다. 이제는 이 불굴의 도전을 한국 축구도 배웠으면 한다. 평창이 삼수 끝에 꿈을 이룬 순간 나는 두 번이나 실패하고 포기했던 K리그 승강제가 떠올랐다. 올림픽 유치와 승강제가 같을 순 없지만 이 둘은 묘하게 닮아있다. K리그 승강제 해답도 평창에 있다.

내부적 공감대 얻어야 한다

평창 주민의 90% 이상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지지했다. 이는 평창과 경쟁한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의 주민 지지도 50%와 비교했을 때 엄청난 수치였다. 평창은 올림픽 유치전에서 이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웠다. 전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일을 추진하는데도 탄력을 받았다. IOC 실사단이 평창을 방문했을 때 엄청난 폭설이 내렸지만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나서 눈을 치우며 힘을 모았고 IOC 실사단은 이 모습에 감동하기도 했다. 지역 주민의 열정적인 지지 없이 세계인의 축제를 개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K리그 승강제는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연맹과 협회 차원의 입장에서다. 승강제에 있어 정작 중요한 주인공은 내셔널리그 구단들이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승강제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여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는 승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장 중요한 건 평창이 보여줬듯 주인공들이 의욕적으로 이 일을 지지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내셔널리그 구단들은 승강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K리그에 올라가면 돈만 더 든다”고 한다.

연맹과 협회에서 “나를 따르라”며 독려하는 걸로는 무리가 있다. 평창은 주민 설명회를 통해 반대 의견을 듣고 그들을 설득했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설명하면서 지지도를 끌어 올렸다. 그러면서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이루기 위한 목소리가 하나로 모였다. K리그 승강제 역시 마찬가지다. 승강제의 대상이 되어야 할 내셔널리그 구단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아직 연맹과 협회, 내셔널리그 구단이 한 자리에 공식적으로 모여 승강제를 고민한 적은 없다. 승강제 토론은 언론이나 전문가를 모시는 것만큼 내셔널리그를 끌어 들여야 한다.

몇 번 더 실패해도 괜찮다

평창은 두 번이나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했다. 내부적으로도 세 번째 도전에 대해 반대 여론이 높았다. 세 차례 도전에 무려 1,000억 원이나 쏟아 부으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2020 하계올림픽 유치를 준비했던 부산은 기회의 형평성에 의문을 던지며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저러다 더 망신을 당할 것”이라는 조롱도 있었다. 두 번이나 1차 투표에서 앞서다가 2차 결선에서 역전패했던 평창은 세 번째 도전에서도 실패하면 이미지나 재정 등에서 큰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평창은 세 번째 도전에 뛰어 들었다.

K리그 승강제도 이미 두 번이나 실패했다. 2006년 고양국민은행, 2007년 울산현대미포조선이 내셔널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차례로 승격을 거부하며 승강제는 수포로 돌아갔다. 승격 자체로도 감격하는 축구 선진국과는 다르게 승격 자격을 얻고도 이를 거부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많은 이들은 코웃음을 쳤다. 오히려 고양국민은행과 울산현대미포조선은 우승을 하고도 승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점 삭감 등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세 번째 승강제 도전을 앞두고 연맹과 협회에서는 ‘승강제 유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평창처럼 실패를 두려워하고 여기에서 포기하면 안 된다. 승강제가 아시아 축구연맹(AFC)의 권고사항이지만 꼭 AFC 눈치보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세 번째 도전은 이뤄져야 한다. 승부조작 파문으로 잠시 승강제 논의가 중단됐지만 이는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 설령 실패하더라 할지라도 우리는 평창의 저력과 끈기를 배워야 한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100% 비가 온다.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의 오랜 염원인 승강제는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다.

힘 모을 단체가 필요하다

평창은 두 번의 실패 후 체질 개선에 나섰다. 평창 올림픽 유치위원회가 강원도 법인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법인에 소속됐다. 그러면서 동계올림픽 유치가 범정부 사업으로 발돋움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유치위원장, 김진선 전 강원지사가 특임대사를 맡았고 특별 사면된 이건희 IOC위원까지 합류하면서 추진력을 얻었다. 결국 힘을 모아 집중해 쓰면서 IOC위원들의 표를 잡았다. 아마 평창 올림픽 유치위원회가 강원도 법인으로 계속 남아 있었다면 힘을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협회와 연맹이 머리를 맞대 승강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확히 이 일에만 집중하는 부서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외부 업체에 용역을 맡겨 승강제 밑그림을 그렸을 뿐 협회 산하의 승강제 추진위원회가 따로 구성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 문제만 고민하는 부서가 따로 생겨 힘을 집중해야 한다. 승부조작을 비롯해 한국 축구에 산적한 문제가 많은데 이 문제를 두루두루 다 다뤄서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정몽준 협회 명예 회장이 승강제 추진위원장으로 일한다면 그 파급력과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결국은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사례에서 보듯 얼마나 추진력 있게 일을 진행하느냐가 관건이다. 공감대도 중요하고 끈기도 중요하지만 힘 있는 이들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이건희 IOC 위원이 특별 사면돼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가 올림픽 유치에 큰 기여를 한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협회 산하의 힘 있는 승강제 준비위원회가 필요하다.

동계올림픽 유치와 승강제는 기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동계올림픽 유치는 외부에 우리의 의지와 준비 사항을 보여주고 표를 얻는 일이고 승강제는 내부적인 준비를 통해 해결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공통점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불가능 할 것만 같았던 평창은 결국 어제 새벽 기적을 일궈냈다. 한국 축구 역시 모두의 힘을 하나로 모은다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승강제를 충분히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