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이적시장, 잠시만 뒤로 미루자

마치 대학교 MT에 가서 했던 ‘마피아 게임’ 같다. 마피아로 지목된 사람은 자신이 마피아가 아니라고 박박 우기면서 무고한 시민들까지 궁지로 몰아넣는다. 요새 K리그 무대에서 벌어지는 승부조작을 보고 있으면 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정정당당하게 정의를 지킨 선수와 비열하게 돈 몇 푼에 양심을 팔아넘긴 선수가 한 무대에 섞여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이건 범죄자를 벌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정의를 지킨 선수의 명예를 찾아주는 일이기도 하다.

K리그 여름 이적시장이 열렸다. 지난 1일부터 다가올 28일까지 서로 선수를 사고 팔 수 있다. 하지만 영입한 선수가 마피아일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여름 이적시장이 조용하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원래 이 맘 때가 되면 매일 “어떤 선수가 이적했을까”하며 설레는 기분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야 하지만 요새는 인터넷 접속하기가 두렵다. 또 어떤 선수가 우리를 배신하고 선량한 시민을 가장한 마피아였는지 밝혀지는 게 괴롭다.

K리그 구단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승부조작에 많이 연루된 포지션인 골키퍼와 수비수가 부족한 구단이 많지만 선뜻 선수 영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만에 하나 새로 영입한 선수가 추후에 승부조작에 연루된다면 무척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전 구단에서 승부조작에 가담했어도 현 소속 구단 역시 이미지는 물론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선수는 부족한데 살 수는 없고 참 머리 아프다. 아예 K리그와 연관이 없던 외국인 선수가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서 꽤 인기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프로축구연맹이 여름 이적시장을 잠시 늦춰줬으면 좋겠다. 이 혼돈의 ‘마피아 게임’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선수 수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단은 검찰 조사가 마무리되고 최종 수사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이적시장을 닫는 게 마땅해 보인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살 대 ‘품질보증’ 마크를 신뢰하는 것처럼 구단도 검찰 조사에서 깨끗하다고 인정된 선수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검찰 조사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이 시간 동안 무의미하게 이적시장을 열어놓을 필요는 없다.

검찰 조사는 오는 7일 마무리 되고 최종 수사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활발히 조사가 진행 중이고 수사 막판까지 풀리지 않는 의혹이 많아 수사가 더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연맹은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온 뒤부터 약 한 달간 여름 이적시장을 여는 게 가장 현명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사고 판 선수가 추후 승부조작에 연루됐을 경우 구단 간의 신뢰가 깨지는 건 물론 금전적 손해를 놓고 법적 공방까지 벌어질 수도 있다. 소수의 승부조작 연루 선수가 대다수의 깨끗한 선수들 사이에 숨어있는 와중에 ‘복불복’식으로 선수를 영입하는 건 무척 위험한 일이다.

물론 여름 이적시장이 늦게 열리면 단점도 있다. 한창 시즌 중에 선수가 이적하게 돼 소속팀을 바꾼 뒤 곧바로 친정팀을 상대하는 선수도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리그의 특수한 상황이라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상무 소속 선수들은 10월 말에 제대해 원 소속팀에 복귀 후 곧바로 상무를 상대팀으로 맞은 적도 많다. K리그 상황에 따라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승부조작으로 구단끼리 선수 이적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보다는 이 편이 훨씬 낫다. 나는 사우나에서 천 원 주고 사 먹는 음료수가 식혜일수도 까나리일수도 있다면 아예 안 사 먹을 것이다. 그냥 물 먹고 만다.

해외로 나가려는 선수도 있다. 유럽 축구 이적시장은 통상적으로 7월 1일부터 8월 1일까지 열린다. 이 부분이야 K리그가 독단적으로 변경할 수 없지만 해당 구단에서 유럽으로 나가려는 선수가 있다면 구단 자체적으로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선수가 유럽에서 영입 제안이 왔다면 적어도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축구계 관계자들은 적어도 검찰 수사가 유럽 이적시장이 닫히는 8월 1일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에 하나 승부조작 연루 선수가 이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유럽으로 도망 아닌 도망을 갔다고 치자. 추후 검찰에서 이 사실이 발각된다면 이건 전세계적으로 K리그의 명성은 물론 신뢰에도 먹칠을 하는 꼴이 된다. 결국 필요한 건 검찰 수사에서도 아무 죄가 없었다는 ‘인증’이다. 보내는 구단도 그렇고 나가는 선수도 그렇고 당당하고 깨끗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K리그의 모든 선수가 의심을 받고 있는 와중에 도망치듯 해외로 떠나는 건 해당 선수의 죄 성립 여부를 떠나 찜찜한 일이다. 검찰의 인증이 나오기까지는 길어야 열흘이다.

실제 축구 경기만큼 이적시장도 흥미롭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적시장은 사치일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판국에 누가 누굴 사고 팔 수 있을까. 선수 몸값이 한두 푼도 아니고 수십 억 원씩 하는데 이 상황에서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이 거금을 날릴지도 모르는 도박을 할 구단은 없다. 잠시만 이적시장을 닫자. 이제 아픔의 시간을 조금만 더 겪으면 검찰에서도 충분히 깨끗한 K리그를 위해 노력한 결과를 내놓을 것이다. 그 이후에 흥미로운 이적시장을 열어도 늦지 않아 보인다. ‘마피아 게임’은 MT가서나 하자. K리그에서도 이 잔인한 게임이 이어지는 건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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