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듣고 싶은 것만 듣지 말자

나는 축구계에서 왼손잡이이고 싶다. 내 철학과 신념이 그러하다면 모두들 옳다고 할 때 그르다고 하고 싶고 모두가 그르다고 할 때가 옳다고 할 생각이다. 기성 언론에 대한 반감도 항상 가지고 있다. 내가 서두에 이런 말을 하고 글을 시작하는 건 오늘은 축구계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인 승부조작에 대해 기성 언론의 입장에 서고 싶기 때문이다. 승부조작과 관련해 돌아가는 팬들의 정황이 다소 삐뚤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내 오늘 칼럼이 ‘기성 언론 편들기’라고 생각한다면 나에게 돌을 던져도 좋다. ‘야빠 기자’라고 해도 좋다.

하나씩 맞아가는 루머들

어제(29일) 최성국의 승부조작 모의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일단 최성국의 주장은 “승부조작 모의에 가담한 건 사실이지만 직접적으로 이 일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돈을 받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서는 아직 검찰에서 수사를 하고 있으니 사실 관계를 따지는 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최성국이 지난 K리그 워크숍에서 “승부조작 제의를 받아본 적도 없다”는 말을 바꿨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명백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그러니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의 주장 역시 주장일 뿐이다.

지난 번 염동균의 자진신고 때도 칼럼을 썼지만 지금 최성국의 자진신고 역시 승부조작 가담 여부를 떠나 정의로운 양심 고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처음부터 승부조작 전말을 모두 알고 있던 그는 기자회견에서 “아무 것도 모른다”며 거짓말을 했고 상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강도 높게 이어지자 자진 출두해 “사실 승부조작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양심 고발한 이를 매장시킨다는 일부 팬들의 반응은 잘못됐다. 양심 고발이라함은 아무도 사건의 중대성을 인지하지 못할 때 자신의 직업적 생명을 걸고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부 팬들은 최성국의 승부조작 모의 보도에 무척 큰 반감을 갖고 있다. 소위 말해 ‘K리그 죽이기’가 아니냐는 반응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성 언론의 보도는 지금까지 하나 둘 적중하고 있다. 윤기원 자살과 승부조작이 관련돼 있다는 보도는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니 빼놓고 이야기 해보자.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윤기원의 아버지가 검찰에 재수사를 요구했다. 처음에 “K리그에 승부조작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일부 팬들은 “야빠 기자 물러가라”고 했다. 하지만 K리그에는 실제로 승부조작이 있었고 검찰이 이를 밝혀냈다.

“국가대표까지 지낸 선수도 승부조작에 가담했다”는 보도가 터졌을 때도 일부 팬들은 “몇몇 2군 선수들의 일을 확대해석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국가대표 출신 김동현이 승부조작 브로커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모 팀은 선수 상당수가 승부조작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다”는 뉴스도 며칠 뒤 ‘전남 커넥션’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성 언론들은 이러한 정보에 정확하다. 그냥 막무가내로 “축구 죽이기 하는 야빠 언론”이라고 매도하기에는 신빙성이 상당하다. 최근에는 “최성국이 상무 시절 승부조작의 핵심이었다”는 제보가 여기저기에서 이어졌다.

귀를 막고 눈을 감지 말자

잘못된 승부조작 보도는 언론으로서는 치명타다. 너무나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정확한 제보와 뒷조사를 바탕으로 기사가 나온다. 언론인으로서의 생명을 걸고 나오는 보도인데 막 소설을 휘갈겨 쓸 ‘깡’을 가진 기자는 없다. 더 놀라운 건 승부조작 의혹을 사고 있는 모 선수에 대한 보도가 쏟아져 나온 뒤 나와 만난 K리그 관계자는 “기사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라고 확인해 주기도 했다. 이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한 경기에 대해 검찰에서 수사중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그들의 정확한 소스를 바탕으로 한다면 아직도 승부조작으로 떨고 있는 A급 선수들이 무척 많다.

걱정인 건 일부 팬들이 승부조작 보도에 상상 이상의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똑같은 소식이라도 ‘최성국의 새빨간 거짓말’처럼 자극적인 식으로 접근하는 보도가 불쾌한 건 사실이다. 이제까지 K리그에 별로 관심 갖지 않았으면서 마치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떠드는 꼴도 별로다. 하지만 적어도 일부 팬들이 쓰레기 취급할 만큼 기성 언론의 보도가 소설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부분은 내가 장담할 수 있다. 기성 언론이 자신들 이름을 걸고 쓰는 승부조작 관련 기사는 확신이 없는 소설은 아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일부 팬들은 이제 마음을 열고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 한 현역 K리그 선수는 내게 “몇몇 빅클럽 빼놓고는 대부분 한두 번 승부조작은 다 해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 둘 충격적인 사실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나 역시 지금도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선수들을 볼 때면 그 모습에 치가 떨린다. K리그에 불편한 소리를 한다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현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현실을 해쳐나가려면 일단 현실을 인지하는 것부터가 필요하다.

언론과 싸우지 말고 승부조작과 싸우자

팬들이 싸워야 할 존재는 불편한 소리를 던지는 기성 언론이 아니다. 팬들은 승부조작이라는 K리그를 시름에 빠뜨린 암 덩어리와 싸워야 한다. “승부조작 제의도 없었다”는 최성국 기자회견에 “거봐라. 야빠 기자 물러가라”고 했던 일부 팬들은 최성국이 “승부조작 제의는 있었지만 돈을 받지는 않았다”고 말을 바꾸자 “거봐라. 돈은 받지 않았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진실을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한 없이 품어주고 있다. 최성국의 자진신고를 용감한 양심선언이라고 오히려 칭찬하기도 한다.

그가 결백한지 아닌지 검찰에서 판단할 동안이라도 언론 보도에 대한 맹목적인 무시는 거둬야 한다. 정황과 소문, 동료들의 진술 등에 따르면 오히려 언론 보도가 맞을 확률이 더 커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축구에만 승부조작이 있는 줄 아느냐. 다른 종목도 다 마찬가지”라는 일부 팬들의 주장도 틀리지는 않았지만 자제할 필요가 있다. 다른 종목 역시 깨끗하지 않다는 게 정설이지만 축구팬이라면 꼭 다른 종목을 이 문제에 포함시켜 물고 늘어질 필요는 없다. 우리는 K리그가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플레이를 펼칠 것인지 논의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남의 문제에까지 신경 쓰지 말자.

가장 무서운 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K리그 승부조작의 뿌리를 뽑을 수가 없다. 부탁컨대 승부조작과 관련해 불편한 보도라고 해서 기성 언론을 찌라시나 쓰레기 취급하지 말자. 이제는 귀를 열고 눈을 뜰 때다. 그리고 현실을 인지하고 이 검은 유혹을 뿌리 뽑을 때다. 적어도 승부조작 소스와 관련해서는 팬들보다 기성 언론이 더 현실을 잘 안다. 승부조작을 부정한 선수 말은 한 없이 믿어주고 대변인이 되어 주면서 불편한 기사 한 줄에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맹목적인 K리그 사랑은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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