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WK리그가 없어진다고?’ 지금처럼 연명해도 문제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운영을 사실상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5선이 유력한 여자축구연맹 오규상 회장은 지난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본래 우리의 정체성은 순수 아마추어 단체였다.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사실상 프로인 WK리그를 맡아왔지만, 사정상 더 버티기 어렵다”면서 “초·중·고교와 대학교까지 유소녀 선수들을 키워내는 데 역량을 집중하려 한다. 감정적 결정이 아니다. 예전부터 WK리그와 연맹의 분리를 고려해왔다”고 밝혔다.
2009년 출범한 WK리그가 사실상 존폐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여자축구 최상위 리그의 안정성이 위협받게 되면서 걱정도 커지고 있다. 당장 내년 시즌부터 WK리그 선수들이 뛸 무대가 사라질 수도 있다. 여자축구연맹에 인력과 재정을 투입해 WK리그를 연명하게 할 수도 있다. 열심히 뛰어온 선수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것도 걱정이고 최상위 리그가 없어지면 앞으로 축구를 하려는 유소녀 선수들의 수도 급격히 줄 게 뻔해 더 걱정이다. WK리그가 멈춰서는 안 된다. 하지만 여자축구연맹에 더 이상 기대해서는 안 된다. WK리그는 대한축구협회가 맡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WK리그 대회 운영은 심각한 수준이다. 말이 실업축구지 초등학교 동네 축구대회만도 못하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남녀축구 하부리그까지도 취재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WK리그는 취재 난이도에서 ‘최상위 레벨’이다. 일단 경기 일정을 알 수가 없다. 시즌 도중 당장 다음 라운드 일정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가 없다. 여자축구연맹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뒤죽박죽된 경기 일정 소개가 있지만 정작 다음 라운드 일정은 안 나온다. 구단이나 서포터스가 운영하는 SNS에 들어가야 일정 검색이 가능한 팀도 있고 아예 이마저도 찾을 수 없는 팀들도 많다.
WK리그 경기를 한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대회를 열어도 모자랄 판국에 WK리그는 거의 몰래(?) 경기를 하는 수준이다. ‘웃픈 일’도 많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WK리그 취재 일정 검색을 위한 하나의 내부 규정을 만들었다. ‘경기 일정 문의는 해당 선수들에게 하자’는 것이다. 선수들은 그래도 자기가 뛰는 경기 일정은 알고 있다. 경기 일정을 선수에게 물어야 하는 창피하고도 황당한 게 WK리그 현실이다. 최근 WK리그 플레이오프 경기 후 양 팀 선수에게 인스타그램 DM이 왔다. “오늘 경기 왜 안 오셨어요?”라는 아쉬움 섞인 메시지였다. 거기에 이렇게 답했다. “언제 하는지 알려줘야 가죠.”
경기장에 가면 황당한 일의 연속이다. K리그건 아마추어 대회건 ACL이건 월드컵이건 취재진에게 선발 명단을 정리해 주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래야 어떤 선수가 뛰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WK리그는 취재진도 거의 없고 아예 선수 명단 배포 자체의 개념이 없다. 경기 감독관이나 심판 평가관, 아니면 장내 아나운서에게 지나가며 선발 명단을 부탁하면 “저도 한 장밖에 없는데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러면 급하게 스마트폰을 켜서 선발 명단을 사진으로 찍어 90분 동안 이걸 보면서 취재를 해야한다. 경기 일정도 선수한테 물어봐서 찾아왔는데 선수 명단도 없다.
한 번은 WK리그 경기장에 갔다가 구단 관계자로 보이는 이에게 가 “혹시 선발 명단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관계자는 “선수 명단에 개인정보가 다 들어가 있는데 내가 이걸 왜 줘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애초에 WK리그는 경기나 선수를 알려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현저히 부족하다. 일부 선수들이 경기력을 질책하는 팬들에게 “야유 말고 응원만 해달라”고 한 일화도 유명하다. 한 팀은 메가폰 응원이 시끄럽다고 이를 막기도 했다. 당연히 WK리그에 자주 가 다양한 선수들을 취재하고 소개하고 싶지만 WK리그에 가면 괜히 자기들 조용히 축구하는데 취재한답시고 번거롭게 유난 떠는 것 같아 잘 안 가게 된다. 아마 <스포츠니어스>만 그런 게 아닐 거다. 많은 매체가 기대를 안고 WK리그 경기장에 갔다가 결국 두손 두발 들고 나왔다.
기본적인 시스템이 아예 없다. 보통 K리그는 경기 전에 양 팀 감독과 만나는 시간이 의무적으로 정해져 있고 경기 후에는 양 팀 감독 및 수훈선수 인터뷰 시간이 보장돼 있다. 그리고 디테일한 취재를 위해서 선수들이 경기장을 빠져 나가 버스에 탑승하는 동선에서도 인터뷰가 가능하다. 우리의 열악한 WK리그에서 이 정도를 바라는 건 당연히 무리다. 일단 경기 전에 만나서 대화가 가능한 감독은 ‘흡연 감독’ 뿐이다. 선수들이 몸을 풀 때 트랙 한 쪽 구석에서 감독이 담배를 물면 그때 재빨리 다가가 이것저것 물을 수 있다. 아니면 아예 경기 전 감독과의 대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화천KSPO 강재순 감독님 감사합니다. 담배 좀 줄이세요)
K리그 경기라면 경기 후 양 팀 감독과 선수 인터뷰가 원하는 대로 가능하지만 WK리그는 눈치 게임과 운이 모두 들어 맞아야 인터뷰가 가능하다. 일단 양 팀 감독 중 한 명은 포기해야 한다. 경기 후 바로 싹 다 라커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감독도 바로 들어간다. 이럴 때 이긴 팀 감독과 잠깐 만나 소감도 묻고 승리 요인도 묻는다. 그리고 이날 잘한 선수 한 명과 인터뷰를 하려고 보면 이미 선수들은 다 사라지고 없다. 이미 진 팀 감독과 선수는 싹 다 들어가고 없다. 그래도 이겨서 기분 좋은 감독에게 “여기까지 왔는데 선수 인터뷰 한 명만 부탁드릴게요. XXX 선수 인터뷰 좀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면 감독이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야, XXX 좀 나와보라고 해.”
그래야 선수 인터뷰가 가능하다. K리그처럼 구단 내부의 뒷이야기나 에피소드 같은 건 어디 물어볼 데도 없다. 선수 XXX 인터뷰가 좀 길어지면 다른 선수들이 덜덜 떨며 기다리고 있다. WK리그 경기장 대부분은 샤워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다같이 목욕탕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선수 한 명을 붙들고 이야기하고 있으면 뒤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다같이 이동해야 하는데 시간을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멀리까지 WK리그 경기 취재를 가 상보 하나, 감독 인터뷰 하나, 선수 인터뷰 하나 쓰면 많이 한 거다. 돌아오는 길에 회의감이 몰려온다. ‘일정은 선수에게 물어보고 선수 명단은 개인 정보라고 못 받았고 담배 피우시는 감독님만 만날 수 있고 경기 후에는 선수 한 명 5분 만나러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WK리그는 정말 열악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여자축구연맹은 이미 여러 차례 여자축구 붐이 왔어도 WK리그를 개선할 의지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직도 ‘골때녀’가 일으킨 여자축구 흥행을 자신들의 역할 덕분이었다고 믿고 있다. 비판하고 계속 문제 제기를 해 개선의 여지가 보인다면 마땅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수년 간 취재해온 여자축구연맹은 그냥 개선을 바라지 않고 다같이 무관심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존재가 된 것 같다. 여자축구연맹 직원이 네 명 뿐이라는 것도 핑계가 될 수 없다. 단 하나의 예를 들어 포털사이트에 제대로 된 경기 일정 정리해서 띄워놓는 게 무슨 10명의 직원이 해야할 일도 아니다. 기본적인 대회 운영 시스템이 안 돼 있다.
WK리그는 계속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자축구연맹이 지금처럼 의지도 없이 연명하는 수준으로 운영할 거면 그냥 대한축구협회가 WK리그 운영을 맡는 게 맞다. 대한축구협회가 운영하는 K3리그와 K4리그는 열악하긴 해도 기본은 한다. 대한축구협회 매뉴얼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축구연맹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어야 하고 대한축구협회가 그 권한을 가지고 가야한다. 대한축구협회 네 명의 직원이 운영해도 지금의 WK리그보다는 훨씬 더 합리적으로 리그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축구연맹은 유소녀 엘리트 대회 개최와 육성에서도 손을 떼는 게 맞다. 이것도 다 대한축구협회로 넘겨야 한다. 그나마 유소녀 대회 개최가 돈이 되니 여자축구연맹은 이것만 하려고 하는데 기본 이하의 여자축구연맹은 그럴 자격이 없다.
여자축구연맹은 순수 아마추어 동호회 및 2종 클럽 대회 개최 정도만 하는 게 현실적이다. 전국을 돌면서 전문 선수가 아닌 그냥 공 차는 게 좋은 여자 아이들의 추억쌓기 대회 개최 권한 정도면 충분하다. 이번에도 임기를 채울 시 20년간 여자축구 수장을 맡게 되는 여자축구연맹 오규상 회장은 이미 지난 16년 동안 한계를 명확히 보여줬다. 자생력을 키워준다는 명목으로 여자축구연맹에 예산을 투입해 WK리그를 연명(?)하게 하지 말자. 기본조차 안 돼 있는 조직은 과감히 권한을 빼앗아야 한다. WK리그와 유소녀 육성을 더 이상 여자축구연맹에 기대하지 말자. 대한축구협회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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