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거꾸로 가는 한국 축구, 1990년대만도 못하다

2024-07-15     김현회 기자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 대한축구협회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시대가 변하고 발전하면 그만큼 변해야 한다. 시대가 흘렀는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현상 유지가 아니라 퇴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 축구는 현상 유지가 아니라 점점 더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월드컵을 개최했고 이제는 월드컵에 나가면 상위 16개 국가 안에도 드는 나라다. 그러면 적어도 한국 축구의 토대나 문화, 인프라도 그만큼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요새 한국 축구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심각할 정도로 퇴보하고 있다. 

1992년 시작된 대표팀 전임 감독제, 지금은 어떤가? 

일단 가장 논란이 되는 국가대표 팀 감독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전임제는 1992년 시작됐다. 대한축구협회는 1992년 6월 이사회를 열고 대표팀 감독 전임제를 확정했다. 그러면서 김호 감독을 초대 전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러면 이전까지는 대표팀 감독을 어떻게 정했을까. 중요 대회가 있을 때마다 ‘이번 대회는 XXX이 대표팀을 맡는다’고 매번 정했다. 1992년 김호 감독 시절부터 온전히 국가대표 팀만을 맡는 지도자가 탄생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축구 행정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갈 때였다. 매 대회 때마다 국가대표 팀 감독을 돌아가면서 맡는 구시대적 행정은 1992년 종료됐다. 1992년 7월 8일 대한축구협회는 기술위원회와 상임이사회를 열고 한국축구대표팀 전임 감독에 김호 감독을 확정해 발표했다. 협회는 이날 김 감독과 2년간의 전임 감독 계약을 맺고 코치 선정 및 선수구성을 위임했다. 초대 전임제 감독이 된 그는 계약금 2천만 원에 연봉 3600만 원(월300만 원)과 매월 활동비 200만 원 등 월 500만 원을 지급받게 됐다.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제로 한국 축구는 한 단계 도약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1992년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모양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난 2월 사퇴한 뒤 5개월 동안 임시 감독 체제로, 그것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치렀다. 새로운 사령탑을 뽑기 위한 과정이었으니 임시 감독 체제를 한시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992년에도 있던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이 없어서 무려 5개월 동안 돌아가며 대표팀 감독을 맡는 촌극이 벌어졌다. 국제대회를 치를 때마다 ‘이번에는 누굴 대표팀 감독으로 앉히지?’라던 1980년대 시절로 회귀했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체제 하에서 이룬 대단한 업적(?)이다. 

1992년 이전보다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당시 초대 대표팀 전임 감독을 선임하면서 대한축구협회는 프로팀 감독을 하다가 그만둔 이들을 대표팀 감독으로 물색했다. 당시 유공에서 그만둔 김정남 감독과 현대를 떠난 김호 감독 등이 후보였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P급 라이선스도 없었고 국내에 지도자도 몇 없을 때였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는 현직 프로구단 감독을 제외하고 후보군을 추려 김호 감독을 선임했다. 2024년 K리그 울산HD를 이끌고 있던 홍명보 감독을 빼가던 때보다도 오히려 1992년 마인드가 더 건강했다. 한국 축구는 국가대표 팀 감독 선임이 30년 전으로 회귀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회장 ⓒ대한축구협회 트위터 캡쳐

2001년 만들어진 대표팀 훈련장, 지금은 떠돌이 신세

비단 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만이 아니다. 국가대표 팀은 2001년 11월 축구인들의 염원을 담아 파주트레이닝센터를 개장했다. 이전까지 대표팀은 미사리 등지를 전전하며 훈련했다. 숙소는 주로 남산 타워호텔을 썼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대한축구협회는 대표팀 전용 훈련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했고 파주트레이닝센터를 개장해 염원을 이뤘다. 국가대표 팀은 A매치가 열리기 전 이 곳에 모여 숙식을 함께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성인 국가대표팀 뿐 아니라 연령별 대표팀과 여자 대표팀도 이곳에서 훈련했다. 대한축구협회는 프랑스 퐁텐느 축구센터와 일본의 J빌리지 등을 돌며 파주트레이닝센터 개장에 참고했다. 

그런데 2024년 현재 국가대표 팀은 A매치를 앞두고 전국을 떠돌며 생활하고 있다. 파주트레이닝센터와의 계약이 만료된 상황에서 현재 건설 중인 천안에 건설 중인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가 완공될 때까지 머물 곳이 없다. 현재 대표팀은 A매치를 준비할 때면 서울 상암동이나 목동 호텔에 모여 고양종합운동장이나 목동운동장에서 훈련을 한 뒤 다시 호텔 생활을 한다. 천안에 건설 중인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는 완공까지는 1년가량 남았다. 완공일을 맞추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2024년 1월에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방을 뺀 뒤 떠돌이 생활 중이다. 심지어 해외 원정 경기가 열리면 대표팀 선수들이 공항에 개별적으로 모여 해외로 나가기도 한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마련된 파주트레이닝센터는 20년이 지난 지금 없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한 곳에 모여 훈련에만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축구인들의 염원을 담아 만들었던 파주트레이닝센터가 사라지면서 한국 축구는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이것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체제 하에서 이뤄낸 업적(?)이다. 더 가슴이 아픈 건 성인 국가대표 선수들은 그래도 서울 시내 호텔에서 숙식이라도 하지 연령별 대표팀 선수들은 지방 온천호텔을 전전하며 훈련 중이라는 점이다. 한발짝 더 나아가도 모자를 판국에 한국 축구는 있던 대표팀 훈련장도 사라졌다. 어떻게 만든 훈련장인데 1990년대 타워호텔 시절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한축구협회

쓴소리하면 재갈 물리는 협회, 예나 지금이나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차범근 감독은 한국 프로축구 승부조작 발언을 해서 5년간 대한민국 국내 지도자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한국 축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질타를 받으며 차범근 감독은 중국으로 떠났다. 차범근 감독은 한국 축구의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후 차범근 감독은 2000년 사면받았다. 당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2002년 월드컵 개최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한국축구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차 전감독을 중징계로 계속 묶어두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차 전감독을 사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2008년 K3리그에서 실제 승부조작 가담자들이 적발됐다. 

한국 축구 영웅은 쓴소리를 하고 배신자로 낙인 찍혀 축구계에서 사실상 퇴출됐다가 돌아왔다. 2024년 박주호는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으로 참여했지만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주호는 "정확한 절차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내가 안에 있었지만 모르겠다. 설명할 수가 없다. 맞는 말이 하나도 없다. 홍명보 감독이 안 한다고 했다가 된 거고 며칠 안에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라고 꼬집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례적으로 박주호 위원의 말을 정정자료까지 내며 반박했고 박주호 위원 언행을 문제 삼으며 비밀 유지 규정 위반 사항이 있는지 확인한 뒤 때에 따라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1998년 차범근 감독의 입을 막고 그를 사실상 축구계에서 퇴출시켰던 때와 비교해 보면 단 한 발짝도 나아간 게 없다. 한국 축구에 쓴소리를 하면 재갈을 물리던 26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시대를 변했고 축구도 발전했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제자리걸음도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쌍팔년도 축구’ 때도 올림픽에는 나갔는데 이제는 한국 축구가 올림픽에도 못 나가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도 이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하는 대한축구협회 수장 정몽규 회장은 침묵하고 있다. 지난 주말 K리그 경기장에 갔더니 여기저기서 축구계 어른부터 유소년 지도자들까지 입을 모아 말했다. “발전은 바라지도 않아. 아니 어떻게 한국 축구가 ‘까꾸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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