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중국의 승부조작, 우리도 조심해야 하는 이유

2023-06-02     김현회 기자
K리그 부정 방지 교육 중 한 장면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K리그에 봄이 왔다. 이제는 K리그 경기장에 가면 교통 체증과 주차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 이전까지 K리그 취재를 갈 때면 비교적 한적하게 경기장에 진입했고 경기장 내에서도 한가한 분위기 속에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경기마다 수만 명이 찾아 열기를 내뿜는다. 이 K리그 열기가 오래오래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교통 체증이나 주차 문제가 좀 있으면 어떤가. 텅 빈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외침만 울렸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행복한 투정 중이다. 

이런 가운데 나는 최근 중국의 승부조작 소식에 신경이 쓰인다. 한 동안 중국에서 잠잠했던 승부조작이 최근 들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작년 11월 남자 국가대표팀의 리톄 전 감독에 대한 기율·감찰위의 조사를 시작으로 축구 비리 척결에 나서고 있다. 중국에선 부패 등의 혐의를 조사할 때 '기율·법률 위반'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기율·감찰위 조사를 거치면 검찰 등에 넘겨져 수사를 거친 뒤 기소된다. 리 전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중국 대표팀의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나는 과거 리 전 감독과 한국에서 술 한잔하며 축구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가 승부조작 혐의로 입건된 건 놀라운 일이다. 리 전 감독 이외에 중국축구협회의 류이 전 사무총장과 천융량 전 상임 사무차장이 기율·법률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중국 축구에 능통한 관계자는 “리톄 전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을 때 승부조작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말도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물론 ‘구형’과 ‘집행’은 다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아직 중국의 어떠한 매체로부터 보도된 바 없으니 참고만 하자. 

폐쇄적인 중국 축구는 이후 수사 결과를 명명백백히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대표팀 감독도 승부조작으로 입건된 건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이다. 여기에 리톄 감독 사건과는 별개로 산둥 루넝(현 산둥 타이산)도 지난 3월부터 선수들이 줄줄이 승부조작과 관련돼 공안에 잡혀갔다. 산둥에서 뛰고 있는 중국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우싱한을 비롯해 중국 국가대표 다린, 진징다오 등 산둥 소속 선수들이 대거 체포됐고 상하이 선화 소속인 주젠룽, 쑨스린, 친솅 등 다른 팀 선수들도 모조리 잡혀갔다. 이와는 별개로 선전FC 역시 사장부터 줄줄이 승부조작 및 뇌물 혐의로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중국 소식에 밝은 관계자들은 “중국 매체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공안이 잡아들인 거물이 한둘이 아니다”라면서 “중국 축구에 승부조작이 만연해 있다는 걸 중국 무대를 경험한 이들은 다 알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축구 승부조작 관련 에이전트들 중 상당수는 해외로 도주했다. 축구 뿐 아니다. 지난 4월 중국 프로농구 경기 도중에도 승부조작 사실이 발각됐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상하이와 장쑤의 2022∼2023시즌 성적은 삭제됐고 플레이오프에서 제외됐으며 500만 위안(약 9억 원)의 벌금과 양 팀 코칭스태프 5년 자격정지 중징계가 내려졌다. 

지난 2015년 FC서울과 수원삼성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부정 방지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왕년의 NAB스타인 야오밍 중국농구협회장은 사과의 메시지를 전한 뒤 결국 협회장직을 내려왔다. 물론 야오밍 회장의 사퇴를 승부조작에 대한 책임으로 유추만 할 뿐 야오밍 회장과 중국농구협회가 직접적으로 승부조작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언급한 적은 없다. 모든 게 다 투명하지 않다. 중국은 축구나 농구 뿐 아니라 프로게이머들의 승부조작도 심심치 않게 터지고 있다. 중국 프로무대에서는 승부조작이나 금품 수수 혐의로 공안에게 잡혀 들어가면서도 우리와는 다르게 이런 일이 투명하게 언론을 통해 공개되지 않을 뿐이다. 

걱정되는 건 중국 프로스포츠가 승부조작으로 물들 경우 우리도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2011년 K리그에서 대대적으로 승부조작이 적발될 당시를 떠올려보자. 당시 중국 축구계는 이미 승부조작으로 홍역을 치른 뒤였다. 승부조작은 불법 온라인 배팅 사이트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사이트를 운영 중인 중국 폭력 조직 등이 브로커를 앞세워 선수들을 매수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선수들이 브로커로 활동했고 브로커는 폭력 조직(불법 온라인 사이트 업체)과 선수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이들은 중국 시장에서 한창 승부조작으로 해먹다가(?) 공안의 단속으로 시장이 위축되자 한국을 타겟으로 했다. 

2011년 당시 K리그 승부조작 범죄의 자금 중 상당 금액도 중국 쪽 돈이었다. 이후 이들은 국내 폭력 조직과 합세해 한 번 승부조작에 발을 내딛은 선수들을 협박했다. 당시 ‘카더라’로 중국 삼합회도 국내 승부조작에 연루됐다는 소문도 있었다. 선수들이 조직 폭력배로부터 협박을 당할 때 중국어를 들었다는 증언도 있었다. 중국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 이들은 당연히 주변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한국이 그들의 또 다른 무대가 될 가능성은 이미 과거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금 중국 축구는 승부조작과 금품 수수, 비위 행위로 쑥대밭이 됐다. 이 세력은 어떻게든 세력을 옮기기 위해 준비할 것이다. 

기우였으면 하는 마음인데 딱 지금 시점이 우리에는 가장 취약한 시점이다. 엄청난 자금을 앞세운 중국 승부조작 세력을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 그들은 바보처럼 당장 우리의 1부리그, 빅클럽을 향하지는 않는다. 이건 과거에도 그랬다. 중국 사설 도박 업자들은 2008년 내셔널리그 선수들을 포섭해 승부조작을 저질렀고 여기에서 경험을 쌓아 2011년 K리그 하위팀 위주로 다시 한 번 범죄를 저질렀다. 이 시점에서 K3리그와 K4리그는 승부조작의 유혹에 아주 취약하다. 사람들의 보는 눈이 적고 여기에 연봉도 높지 않고 사회복무요원 등으로 근무하며 잠깐 뛰다 가는 선수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한샘은 승부조작 제안을 거절하고 이를 신고해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중국 축구에 능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중국 축구 승부조작 한 경기에 에이전트가 포섭 비용으로 받은 돈이 200만 위안(3억 7천만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 생계비 수준으로 경기에 임하는 하부리그 선수들 중 상당수는 이 유혹에 흔들릴 수도 있다. 나는 K리그2까지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말로는 프로지만 현재 K리그2에는 K3리그 상위팀에 비해 오히려 더 적은 연봉을 받고 뛰는 선수들이 많다. 내가 우려하는 건 선수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흐름상 중국의 이 세력은 한국의 취약한 선수들에게 손을 내밀 분위기다. 단순히 선수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기에는 그들은 너무 체계적이고 거대하다. 

여기에 우리나라 심판들도 취약한 곳에 놓여있다. 정동식 심판이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일상을 공개한 바 있다. 정동식 심판은 K리그1 주심으로 활약 중이다. 한국에서 K리그1 주심은 심판으로는 ‘탑티어’다. 그런데 그는 가족을 위해 심판 생활 외에도 환경공무관과 택배 일 등을 겸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자 자랑스러운 심판이다. 이런 불쾌한 걱정을 하는 글에 정정당당하게 일하는 정동식 심판의 이름을 거론해 미안하다. 하지만 그들이 유혹에 노출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비단 정동식 심판 뿐 아니다. K리그2나 K3리그, K4리그에 속한 심판들은 더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중국 축구 승부조작은 단순히 승패만 조작을 하는 게 아니라 점수차까지도 사전에 짜고 들어간 경우도 많다. 단순히 승패를 짜고 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발전했다. 한 중국 축구 브로커는 “A매치도 점수차를 짜고 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전에 정해진 약속에 따라 ‘더 넣고’ ‘덜 넣고’가 가능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중국 축구에서는 돈만 있으면 매수는 쉽게 이뤄진다. 국가대표 선수가 승부조작을 자행하고 잡혀 들어가는 게 놀랍지 않다. 우리 바로 옆 나라다. 이 안 좋은 바이러스는 이미 한 번 우리한테 퍼져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번에는 철저히 방역을 해 원천 차단해야 한다. 

단순히 선수나 심판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기 보다는 승부조작 근절을 위한 정기적인 조사 및 교육이 필요하다. 시즌 전 의례적인 부정 행위 방지 교육 정도로 그칠 게 아니라 시즌 중에도 강도 높은 점검이 필요하다. 단순히 선수와 심판에게 “승부조작을 하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그 세력이 어떻게 물밑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2011년에도 수억 원을 연봉으로 받는 선수들이 500만 원에 매수됐다. 우리의 논리라면 이해할 수 없는 회유와 협박이 있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의 승부조작 세력은 호시탐탐 한국을 노리고 있고 지금은 그들이 반강제로라도 한국을 찔러볼 타이밍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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