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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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승부조작으로 한국 축구를 벼랑 끝까지 내몰았던 선수들이 다시 축구계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대한축구협회는 28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징계중인 축구인 100명에 대해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 사면 대상자는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고 있는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단체 임원 등이다. 대상자 중에는 지난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당시 선수 48명도 포함돼 있다. 협회가 사면 조치를 단행한 것은 지난 2009년 이후 14년 만이다. 지난 2011년 승부조작으로 한국 축구를 뒤흔들었던 그 인물들이 대부분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KFA 측은 "지난해 달성한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과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의 화합과 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며 "오랜 기간 자숙하며 충분히 반성했다고 판단되는 축구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성폭력·성추행에 연루된 사람은 제외했고 승부조작의 경우에도 비위의 정도가 큰 사람은 사면 대상에서 빠졌다. 이번 사면이 승부조작에 대한 협회의 기본 입장이 달라진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모든 경기에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과 감독을 철저히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분노할 만한 일이다. 승부조작범들이 다시 얼굴을 들고 그라운드를 활보할 생각을 하니 과연 이게 맞는 건가 싶다. 이미 석 달 전에 마무리 된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에 대한 자축과 승부조작범 사면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나. 승부조작범의 징계를 풀어주는 게 축구계 화합과 새 출발과 무슨 관련이 있나. 축구계에서 쓴소리를 하다가 ‘축구계 여당’에 찍혀 핍박받던 ‘야당 인사’를 사면한 것도 아닌데 이게 축구계 화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묻고 싶다. 더군다나 여론을 의식한 듯 우루과이과의 경기 한 시간 전 사면 소식을 보도자료로 뿌린 행동 자체가 협회가 얼마나 이번 일을 당당하지 못하게 처리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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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잊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 같아 다시 한 번 전해야겠다. 2011년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금전적인 피해나 상처만 입은 게 아니라 심지어 여러 사람이 죽었다. 남은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뛰었고 축구계는 비통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 와중에 승부조작범 최성국 씨는 “당당하다. 나는 승부조작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걸렸고 이후 한국에서 더 이상 뛸 수 없게 되자 유럽 진출을 시도하다가 무산된 적도 있다. 승부조작으로 퇴출된 한 선수를 몇 년 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집안 배경이 좋아 호위호식하며 잘 살고 있더라. 이 인물도 이번에 징계에서 해제됐다. 한국 축구는 고사 직전까지 갔는데 이렇게 만든 이들이 12년 만에 징계에서 풀려났다. 

승부조작범들은 영구 징계를 당하고도 반성은커녕 축구로 돈을 잘 벌었다. 최성국 씨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축구교실을 열기도 했다. 협회 규정상 최성국 씨는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축구로 먹고 살았다. 마찬가지로 승부조작을 일으켰던 권집 씨는 어떤가. 심지어 권집 씨는 이름까지 바꾸고 인생 세탁을 한 뒤 축구교실을 차렸다. 권집 씨는 권민준으로 개명한 뒤 경기도 고양시에 축구교실을 열었다. 이 칼럼을 통해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권민준 축구교실이 승부조작범 권집 씨가 만든 축구교실이란 걸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한다. 골키퍼 김지혁 씨도 여기저기 골키퍼 레슨을 하고 돌아 다녔다. 

이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승부조작범들이 징계 이후에도 축구계를 기웃거렸다. “그래도 축구로 먹고 살게는 해줘야 할 것 아니냐”며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이를 암묵적으로 도왔다. 지금도 승부조작 시절만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이건 12년이 아니라 120년이 지나도 잊으면 안 된다. 마음 같아서는 승부조작범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서 ‘참회하라’는 비석이라도 만들고 싶다. 승부조작 사태 이후 가담자들은 하나 같이 “내가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친구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는 뻔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들은 승부조작이 일어난 이후 반성보다는 어떻게든 축구로 먹고 살지 궁리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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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인들이 이러면 안 된다. 아무리 한 때는 같은 식구였어도 축구 자체를 모독한 이들을 한 식구라고 감싸서는 안 된다. 승부조작범 징계 경감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13년 7월 11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정기 이사회를 열어, 영구제명 징계 선수들 중 일부의 징계를 경감하기로 결정, 실질적으로 18명의 영구 제명 해제가 결정되었다. 상위 기관인 대한축구협회가 이를 수용하고 자격박탈 조치를 풀어야만 한다. 하지만 협회는 당시 여론이 좋지 않자 2013년 8월 19일 프로축구연맹이 요청한 징계 감면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시 나는 대합축구협회 앞에서 이사회에 들어가는 이사들을 향해 ‘승부조작 징계감경 절대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또 다시 축구인들이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시도했고 이번에는 성공(?)했다. 오히려 이번에는 대한축구협회가 공정위원회를 통과한 이 안건을 곧바로 협회 이사회에 안건으로 올렸다. 우루과이전 경기가 열리는 28일 오후 5시 반 회의를 시간해 여러 안건을 통과시키는데 딱 한 시간이 걸렸다. 이 자리에서 승부조작범 사면 안건을 처음 본 이사가 대다수였다. 이사회는 찬반 투표가 아니라 안건을 낸 뒤 이의가 없으면 통과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프로축구연맹 측 관계자가 반대 의견을 피력했지만 동의를 얻지 못했고 결국 이 안건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그리고 원래는 29일 오전에 보도자료를 내기로 했다가 워낙 민감한 사안이 엠바고가 깨질 경우를 우려해 우루과이전 한 시간 전에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2013년 징계 경감 시도 당시와는 달랐다.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연맹이 아닌 협회 차원에서 이 일을 준비했고 협회가 찍어 눌렀다. 투표도 아닌 전체 동의 방식으로 이사회를 통과시켰다. 축구인들이 대부분인 이 이사회에서 ‘승부조작범 징계 유지’라는 아주 상식적인 의견은 묵살됐다. 이제 최성국 씨나 권민준 씨처럼 그래도 전면에 나서지 못하면서 축구로 돈을 벌던 이들은 당당히 지도자 자격증도 딸 수 있고 K리그 감독이나 코치도 될 수 있다. 누구는 그 힘든 자리에 오르는 동안 숱한 유혹을 뿌리치고 협박에 가까운 일을 당해도 이겨냈는데 승부조작범들이 이런 정의로운 이들과 한 그라운드에 서는 모습을 봐야한다. 과연 그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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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0회 연속 진출과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의 화합과 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며 “오랜 기간 자숙하며 충분히 반성했다고 판단되는 축구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도 있다”는 협회의 말은 기가 찬다. 영구제명이 된 이들은 끝까지 자수하지 않다가 죄가 확정된 이들이다. 여기에는 브로커 역할을 하며 범죄자와 선수들 사이를 알선 해주고 선수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 협박까지 일삼던 이들도 있다. 김진성 씨, 성경모 씨, 이도권 씨, 전광진 씨, 전재운 씨, 최성현 씨, 한국 씨 등은 승부조작은 물론 브로커 역할까지 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자수도 하지 않고 브로커 역할까지 했던 이들이 후배들이 월드컵 16강에 갔다고 사면을 받는단다.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과 이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을 너무나도 간절히 응원했었지만 그 혜택으로 승부조작범들이 사면을 받는다는 걸 알았다면 월드컵도 응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손흥민이 안와골절 부상 중에도 마스크를 쓰고 투혼을 발휘하고 황희찬과 김민재는 부상을 안고도 끝까지 뛰었다. 이런 후배들의 멋진 성과에 왜 한국 축구의 오점 덩어리들이 혜택을 봐야하나. 영광의 역사는 그 자체로만 기억되면 될 뿐이다. 이 영광의 역사로 치욕의 역사까지 덮을 순 없다. 더군다나 협회는 이번 사면 명단 100명의 실명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사회 후 통화한 이사진들도 하나 같이 “내 이름은 기사에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최근 중국 프로축구에서도 스멀스멀 승부조작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 한 한국인 감독은 선수단의 승부조작을 절대 용인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경질됐다. 이후 새로 코칭 스태프가 꾸려지고 얼마 가지 않아 공안이 긴급 출동해 구단 관계자들을 대거 승부조작 가담 혐의로 체포했다. 축구 거품이 빠진 중국에서 다시 승부조작이 이뤄지고 있다. 중국의 승부조작 세력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으로 침투하는 건 순식간이다. 승부조작범 사면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을 때 한 번쯤 잠깐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승부조작 뿌리를 뽑았나. 중국의 그 세력이 한국으로 침투할까 겁이 나는데 이 상황에서 승부조작범들을 사면한다는 건 너무나도 위험한 발상이다. 

“평생 축구만 한 애들인데 한 번의 실수는 이제 봐주자”는 식의 우리편 감싸기를 하는 축구인들이 많다. 나는 승부조작 이후 반성하며 아예 축구계를 떠난 A씨와 종종 연락이 닿는다. 속죄하는 마음에 축구와는 담을 쌓았고 대리운전부터 시작해 공사장 일 등을 하다가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지금도 승부조작에 대해 반성하며 축구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그는 대표팀 경기도, 해외축구 경기도 보지 않는다. 그는 이번 사면 명단에 들었지만 이미 축구계와 연을 끊어 지도자로서의 복귀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제 밤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다른 애들처럼 몰래 축구 교실도 하면서 ‘존버’했을 텐데요.” 암암리에 숨어 선수들을 지도하며 먹고 살아온 비겁한 이들이 결국 승리했다. 

이번 사면에서 성 폭력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사면 제외됐다. 성 폭력은 당연히 일어나선 안 될 범죄다. 하지만 적어도 축구계 안에서라면 승부조작보다 더 큰 범죄는 없다. 물론 모든 범죄가 다 일어나선 안 되지만 차라리 음주운전을 한 축구선수를 사면해 준다면 ‘그래 그건 한 번의 실수야’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승부조작범도 복귀하는 마당에 봉사활동 조작 논란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영구 제명 당한 장현수도 사면이 안 될 건 또 뭔가. 승부조작보다 봉사활동 조작 논란이 더 죄질이 좋지 않은 범죄인가. 자진신고도 하지 않은 채 끝까지 버티다가 승부조작한 사실이 발각된 질 나쁜 범죄자들이 이제 축구계에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승부조작 브로커들도 돌아온다. 그들이 현장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정정당당한 스포츠에 대해 지도할 생각을 하니 역하다. 

그리고 번갯불에 콩 볶듯 이사회 안건으로 이를 올려 통과 시켜버린 대한축구협회는 더 나쁘다. 다음에 또 다시 승부조작이 벌어진다면 그때도 10여년 뒤 영구제명 당한 선수들을 또 다시 사면할 것인가. 한 번 이런 사례를 만들어 놓으면 또 누군가는 이 사례를 악용한다. 2013년도 승부조작 징계 경감 당시에는 의사 결정 전에 이를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라도 있었지 이번 이사회는 여론이 모두 대표팀 경기에 가 있는 사이 논의할 시간도 없이 통과됐다. 승부조작범 사면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지만 이건 ‘자축’이 아니라 ‘자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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