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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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전북현대와 수원삼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K리그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두 팀이 올 시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팬들은 단체 행동을 시작했다. 수원삼성 팬들은 대전하나시티즌과의 4라운드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 버스를 막아세운 뒤 이병근 감독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병근 감독은 사과의 뜻을 전했고 팬들은 이병근 감독에게 책임지고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K리그 개막 이후 네 경기 만에 나온 ‘버스막기’였다. 수원삼성은 올 시즌 1무 3패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전북현대 팬들도 단체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전북현대는 올 시즌 졸전을 거듭했고 지난 대구FC와의 원정경기에서도 0-2로 완패했다. 올 시즌 1승 1무 2패다. 전북현대 팬들은 전주월드컵경기장 앞에서 집회를 준비하며 정식으로 집회 신고를 마쳤다. 집회 신고를 끝낸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 구단과 감독에 대한 항의를 할지 고심 중이다. 팬들은 김상식 감독과 허병길 대표이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K리그가 흥행하면서 봄이 왔다고 하지만 이 봄이 수원과 전주에는 오지 않은 것 같다. 아직 이 두 곳은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다. 

버스를 막고 감독을 불러 세우고 욕설을 하며 퇴진까지 요구하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너무나도 잔인하다. 매 경기 표정이 더 어두워지는 감독을 보는 것도 괴롭다. 경기 전과 경기 후 감독의 표정 변화만 봐도 ‘정말 축구감독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원삼성 팬들이 버스를 막고 항의를 할 때 일부 팬들이 사과하는 감독을 향해 모욕적인 언행을 한 건 분명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안전을 유지하고 절차를 준수하며 팬들의 강력한 뜻을 전하는 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매너를 지킨다는 조건 하에서다. 폭력이나 욕설, 조롱, 조리돌림은 안 된다. 

이렇게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이제 고작 네 경기를 했을 뿐인데 벌서부터 감독 퇴진을 요구하는 건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다. 38라운드 경기를 치러야 하는 K리그에서 단 네 경기만을 보고 버스를 가로 막고 집회 신고를 하고 감독 퇴진을 외치는 게 ‘냄비 근성’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대역전 드라마를 쓸 수도 있고 반등을 이뤄 승승장구할 수도 있는 게 스포츠다. ‘네 경기 만에’라는 말에는 인내심이 부족한 일부 팬들의 극단적인 집단 행동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K리그를 잘 보지 않는 이들이라면 ‘네 경기 만에’라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네 경기 만에’가 아니다. 이병근 감독이나 김상식 감독은 갓 부임해 이 팀에서 네 경기만을 치른 감독이 아니다. 만약 신임 감독이 네 경기 만에 사퇴 압력을 받는다면 그건 섣부를 행동일 수 있다. 1무 3패, 1승 1무 2패라는 두 팀의 성적을 놓고 보면 ‘아니 아직 리그는 한참 남았는데 뭐 이리 성급하게 행동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원삼성과 전북현대는 지난 시즌부터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때 이 두 팀을 이끈 감독이 올 시즌에도 감독이다. 개막하고 네 경기 만에 성급하게 팬들이 단체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지난 시즌 수원삼성은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가는 치욕을 맛봤다. 가까스로 생존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수원삼성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그리고 올 시즌에도 지금까지는 딱히 희망적인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감독은 매번 ‘간절함’과 ‘정신력’을 이야기한다. 팬들이 네 경기 만에 인내심이 바닥난 게 아니라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불만의 폭발이다. 물론 투자에 인색한 수원삼성이 감독 사퇴만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리얼블루’라는 정책을 방패 삼아 레전드로 감독 돌려막기를 계속한다면 지금과 달라질 상황을 기대할 수는 없다. 

경기 후 팬들 앞에서 반등을 약속한 수원삼성 이병근 감독. ⓒ스포츠니어스
경기 후 팬들 앞에서 반등을 약속한 수원삼성 이병근 감독. ⓒ스포츠니어스

수원삼성의 ‘리얼블루’와 레전드 돌려막기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한 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찌됐건 수원삼성은 개막하고 단 네 경기의 졸전이 버스 막기와 감독 퇴진 요구로 이어진 게 아니다. 강등 위기까지 겪었던 지난 시즌과 비교해 전혀 달라진 게 없는 경기력, 그리고 특별할 게 없는 전술, 그것도 안 되면 선수들을 닦달해서라도 어떻게든 멱살 잡고 팀을 끌고 가는 카리스마(?)도 안 보인다. 물론 그런 카리스마형 감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성적이 중요한 프로 세계에서는 결과가 곧 능력이기도 하다. 수원삼성과 이병근 감독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른다. 어떤 선택이건 존중하지만 팬들의 불만은 당연하다. ‘네 경기 만에’라는 말로 팬들이 성급했다고 평가하지는 말자. 

전북현대는 어떤가. 지난 시즌 FA컵 우승, ACL 4강, K리그 준우승만 놓고 보면 팬들이 불만을 갖는 게 사치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북현대는 K리그를 선도하는 팀이다. K리그 최초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팀이 우승 한 번 놓친 건 팬들에게는 당연히 큰 충격이다. 전교 2등도 잘한 결과지만 전교 10등을 하던 학생이 성적이 올라 전교 2등을 한 것과 매번 전교 1등을 하던 학생이 전교 2등을 한 건 다르다. 1등을 하던 학생이 2등으로 떨어지면 화가 나고 분하고 약이 올라야 한다. 그런데 전교 2등도 한두 문제를 틀려서 내려간 게 아니라 아주 만족스럽지 않은 점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전북현대라는 학생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고액 과외를 받는 친구다. 

지난 시즌에는 3연패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압도적 1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팀의 경기력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17년 동안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팀에, 준우승만 10번을 한 팀에 지난 시즌 사실상 세 경기를 남겨 놓고 우승을 내줬다. 팬들의 불만은 이때부터 쌓였고 올 시즌 개막전에서는 또 다시 울산에 패했다. 수원삼성전은 수원삼성이 잘한 건줄 알았는데 이후 상황을 비교해보니 전북현대가 못한 경기였다. 대구FC한테도 졌다. 이걸 단순히 개막 후 네 경기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성격 급한 팬들의 불만 토로라고 봐야할까.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불신이 올 시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버스 막기와 감독 퇴진 요구 시위 등에 대해서는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감독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거나 조롱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은 너무 자주 일어나면 안 된다. 구단 역사에 한두 번 있어야 할 치욕이다.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 게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수원삼성과 전북현대의 상황을 살펴본다면 지금 상황에서 이런 집단 행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중국 슈퍼리그 등에서는 3연패만 당해도 감독의 자동 경질 조항을 계약서에 넣기도 한다. 사석에서 만나면 너무 좋은 인격과 유머, 철학을 가진 감독이지만 나는 이 감독들에게 미안하게도 팬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개막하고 단 네 경기 만에 팬들이 성급하게 나섰다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 경기 만에 이른 시기에 팬들이 나선 게 아니다. 이건 지난 시즌부터의 경기력에 대한 불만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한다. 감독이 물러나고 말고에 대해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책임지고 감독이 팀을 떠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온전히 구단과 감독의 선택이다. 감독을 믿고 가 반등을 할 수도 있고 돌이키지 못할 후회스러운 시즌이 될 수도 있다. 이겨내건 받아들이건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팬들의 이 분노를 성급한 냄비들의 섣부른 행동이라고 여기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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