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서귀포=조성룡 기자] 1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선수가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수원FC가 영입한 공격수 정우근이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해외로 떠나 브라질에서 5년, 태국에서 6년을 생활했다. 그렇기에 한국 팬들에게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11년이라는 세월 동안 고난과 역경을 조금씩 이겨내며 선수로 성장해왔다. 이제는 그 세월을 녹여내 수원FC의 승격에 보태려고 한다. 한창 제주도에서 훈련 중인 정우근을 <스포츠니어스>가 만나 풀 스토리를 들어봤다.

무작정 브라질로 떠난 소년, 현실을 마주하다

그의 해외 생활은 고등학생일 당시 시작됐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대전 소년 정우근은 한창 고민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 서울로 전학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의 친구가 그에게 솔깃한 얘기를 건넸다. "브라질에서 축구 유학을 해보는 것은 어때?" 마침 한국의 유소년 선수들 사이에서는 한창 브라질 유학 열풍이 불고 있었다. 그는 고민 끝에 부모님께 말했다. "저 브라질 유학 가고 싶습니다."

그의 부모님도 흔쾌히 유학에 동의했다. "브라질에서 성공해서 큰 선수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와라." 하지만 그것이 고생길의 시작일 줄은 정우근도, 그의 부모님도 몰랐을 것이다. "솔직히 그냥 저도 어린 나이에 브라질 축구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가겠다고 한 것이었어요. 막상 가보니까 너무 힘들더라구요." 17세의 나이에 그는 혼자서 브라질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서 축구하기까지 11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정우근에게 브라질의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던 것이었다. "프로 팀과 같이 훈련도 하고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프로 팀이 직접 그를 데려간 것이 아니라 유학업체를 통해 간 것이 원인이었다. "시스템 자체가 우리 안에 갇혀 있었어요."

결국 이틀 만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어린 소년이 혼자 브라질에 온 것도 힘든 상황인데 열악한 현실까지 마주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어린 정우근은 울면서 한국에 전화했다. "저 못하겠어요. 집에 돌아갈래요." 그 때 친형의 한 마디가 정우근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네 입으로 네가 가겠다고 한 브라질이다. 책임감을 가지고 조금만 더 버텨봐라. 한 달 이후에도 생각이 똑같으면 돌아와라."

정우근은 그렇게 브라질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조금씩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테스트를 보러다닌 끝에 상파울루 주 1부리그 팀인 이투아노와 3년 6개월 계약을 맺었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1년에 서너 명 가량 계약하는 브라질 시스템의 수혜자가 그였다. 하지만 정우근은 거기서 쉽게 성장하지 못했다. 당시 상파울루 주 다른 팀에서 뛰던 '한 살 동생' 네이마르가 1군에서 활약하는 동안 정우근은 정체 중이었다.

"처음에 입단했을 때는 유망주라는 딱지 덕분에 기회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힘겨워짐을 느꼈어요. 경쟁자들은 치고 올라가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시간이 갈 수록 이겨내야 할 다른 선수들은 많아지는데 제 경쟁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어요." 결국 그는 1년 만에 이투아노와 결별했다. 다른 유학업체를 찾아가 새 팀을 찾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브라질의 여러 팀을 전전했다.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를 괴롭힌 것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현실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였다. "20세가 넘어가니까 고민이 많아졌어요. 당시 한국에 있는 제 친구들은 다들 대학 진학이나 프로 팀 진출을 노리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대학도 가지 않았고 팀도 찾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주변을 헛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여기서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앞으로의 장래나 진로 문제가 저를 제일 많이 괴롭혔죠."

벼랑 끝에서 선택한 태국행은 '신의 한 수'

브라질에 머무를 수록 정우근의 자신감은 땅으로 떨어져갔다. 그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프로 진출을 위해 브라질에서 동유럽 슬로바키아까지 날아가 테스트에 참가하기도 했다. "슬로바키아에서 테스트를 보는데 정말 한계를 느꼈어요. 다들 저보다 너무 잘하는 겁니다. 제 실력을 알았고 한계를 알게 됐어요." 이후 그는 포르투갈 팀의 테스트 제의도 받았지만 거절했다. "저는 제 자신을 알아요. 포르투갈 가도 안될 거 압니다."

정우근은 그대로 추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 PTT 라용 제공

그러던 와중 그는 한 에이전트의 제의를 받았다. 예전부터 정우근을 챙겨주던 에이전트였다. "내가 브라질 선수들과 함께 태국 팀 테스트에 참가하는데 너도 갈래?" 사실 정우근은 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에이전트는 그에게 참가를 설득했다. "이제 태국 프로리그가 점차 활성화될 거야. 같이 가자." 정우근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기서도 안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로 갔죠.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여기서 정우근은 드디어 기회를 얻었다. 태국 1부리그는 아니지만 2부리그 랏프라챠에 입단한 것이다. 하지만 초기는 암울했다. 팀에서 정우근은 '용병'이었다. 하지만 그는 검증된 선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어렸다.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벤치를 달구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이렇게 그는 태국에서도 실패할 것처럼 보였다. "당시에는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믿음을 주기 어렵다는 분위기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러나 반전이 등장했다. 전반기 리그가 끝나고 소속 팀의 감독이 교체된 것이다. 새 감독은 정우근에게 믿음을 줬다. 그를 적극적으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정우근에게 완벽한 한 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다음 시즌인 2013 시즌부터 2017 시즌까지 그는 매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태국 2부리그의 확실한 공격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특히 2015 시즌은 정우근의 축구 인생에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 했다. 나콘파톰 유나이티드에서 그는 무려 20골을 넣으며 팀의 득점을 책임졌다. 리그 득점 순위 5위 안에 드는 기록이었다. 현지 언론이 선정한 시즌 베스트 11에 들기도 했다. 정우근은 이제 실패한 유망주가 아니라 태국에서 탐내는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매년 제 스스로 발전했던 것 같아요.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 경쟁을 하면서 버틴 것이 제 자신에게는 밑거름이 된 셈이죠."

"고슬기가 부리람의 왕? 그럴 리가요"

정우근은 태국 생활을 회상하며 씩 웃었다. "사실 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어린 나이에 브라질로 날아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시아에 이런 나라가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태국이 정말 덥고 습하거든요. 게다가 1년 내내 덥다고 해요. 세상은 넓다더니 진짜 이런 나라가 있더라구요. '내가 진짜 축구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6년을 보냈네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적응을 하니 태국만큼 편한 곳은 없었다는 것이 정우근의 생각이었다. "살면서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태국 사람들이 K-팝을 사랑하고 한국 사람들을 좋아해줬어요. 브라질에서는 인종차별도 당했는데 여기서는 사람들의 적개심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제가 만났던 태국 사람들은 모두 착했어요. 팀 동료들도 외국인이라고 어울리지 못할까봐 훈련 시간에 장난도 많이 치고 훈련 끝나면 맛있는 것 먹자고 함께 가기도 했어요. 심지어는 바다 여행도 같이 갔어요."

브라질에 비해 한국 선수들이 많다는 것도 한 몫 했다. "BBCU에 있을 때 팀 동료였던 마상훈도 있고 (고)슬기, 정훈, (김)승용이 형이 당시 태국에 있었어요." 특히 근거리에 살았던 정훈과 김승용은 자주 정우근과 마상훈을 불러 맛있는 것을 사주며 동생들을 격려했다. "잘 먹어야 잘 뛰어. 잘 뛰어서 다른 선수들에게 밀리면 안돼." 동생들이 가족과 떨어져 지내 외로울까봐 특히 더 신경쓰기도 했다.

당시 태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 선수는 고슬기(인천유나이티드)였다. 부리람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그는 태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선수였다. "고슬기가 부리람의 왕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냐"고 묻자 정우근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리람의 왕이라뇨, 태국의 왕이죠." 정우근 역시 고슬기가 롤 모델이었다. "슬기 형이 정말 잘 챙겨줬어요. 저도 슬기 형 같은 선수가 되고 싶었죠."

정우근은 그대로 추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 PTT 라용 제공

"부리람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워낙 슈퍼스타라는 소문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예전에 한 번 슬기 형과 맞대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걸 알고나서 저는 미리 경기 전에 슬기 형을 만났어요. '경기 끝나고 유니폼 주세요'라고 했죠. 같이 사진도 찍었어요. 사실 요즘도 슬기 형 유니폼을 입고 개인 훈련을 할 때도 있어요. 그만큼 고슬기는 태국에서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마음 돌린 김대의 감독의 전화 한 통

태국 2부리그에서 인정 받는 공격수인 정우근이었다. 그는 자주 다른 팀의 러브콜을 받았다. 2017 시즌이 끝나고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이적할 생각이 없었다. "지난 시즌에 저희 팀이 아깝게 승격에 실패했어요. 이게 너무나도 아쉬운 거에요. 그리고 팬들에게 빚을 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년 시즌은 이곳에 잔류해서 팀의 승격을 반드시 이끌겠다고 생각했어요. 떠날 때 떠나더라도 승격을 이뤄내고 떠나겠다고 결심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수원FC의 첫 제의가 왔을 때 그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태국에서 충분한 성공을 거두고 있고 내년 시즌에 대한 분명한 동기부여가 있는 만큼 굳이 한국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은 계기가 발생했다. 한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수원FC 김대의 감독님이었어요. 정말 깜짝 놀랐죠. 제가 뭐라고 김대의라는 슈퍼스타가 제게 전화를 겁니까."

김 감독의 첫 마디는 상냥했다. "안녕하세요. 수원FC 김대의 감독입니다." 약 스무 살이 어린 축구 후배에게 그는 존댓말로 다가갔다. 정우근이 "말 편하게 하시라"고 해도 그는 끝까지 정우근에게 진정성을 보였다. "제가 정우근 선수를 영입한다면 선수는 K리그 첫 경험을 하겠죠. 어떤 사람이든 첫 번째 경험은 많이 힘들고 어려워요. 태국에 잘 자리잡은 것을 알고 있어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많이 힘들겠지만 서로를 믿고 잘 해보고 싶어요. 같이 승격을 위해 힘써봅시다."

전화 한 통에 정우근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걸 마다하는 것일까? 이거는 나 스스로가 두려워서 못가는 거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서 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태국에 남아 있었다면 편하게 축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우근은 아직 더 도전할 수 있었고, 도전해야 했다. 그리고 김대의 감독과 수원FC가 그를 진심으로 원했다. 그래서 정우근은 김대의 감독에게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었다. "수원FC에 가겠습니다."

"제주도가 눈 오는 곳인 줄 처음 알았어요"

정우근은 평소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브라질에서 뛸 당시에는 경기에 나설 때마다 유니폼 속에 작은 태극기를 품고 뛰었다. 상대가 "눈이 작은 동양인"이라고 놀려도 그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뛰었다. 그리고 골을 넣고 나서는 유니폼 안에 넣어둔 태극기를 꺼내 펼쳤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한국에 대한 자부심은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이제서야 한국에서 첫 프로 시즌을 보낼 예정이다.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계속 더운 곳에서 뛰다가 한국에 오니 너무 추웠어요. 제주도가 눈이 많이 오는 동네라는 것을 이번 전지훈련에서 처음 깨달았어요. 솔직히 제주도 정도의 날씨면 버틸 만 해요. 수원에 있을 때는 정말 추워 죽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처음에는 훈련하다가 자꾸 태국어가 튀어 나와서 혼자 고생 좀 했죠."

정우근은 그대로 추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 PTT 라용 제공

그는 수원FC의 전지훈련에서 숨은 조력자 역할도 하고 있다. 약 11년의 해외 생활 덕분에 포르투갈어와 태국어, 영어가 가능한 정우근이다. 수원FC의 태국 전지훈련에서는 가이드 역할을, 평소에는 브라질 선수들의 통역 역할도 쏠쏠하게 해내고 있다. "축구를 할 때 동료들 간의 의사소통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팀 동료들과 녹아들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기도 했고 제가 공부도 따로 했죠. 포르투갈어와 영어는 읽고 쓸 줄 아는데 태국어는 회화 정도 되는 수준입니다."

"수원FC가 1차 전지훈련으로 태국을 갔어요. 태국 식당에 갔을 때 제가 팀 동료들 주문도 다 해주고 가이드 역할도 했죠. 그리고 요즘은 브라질 선수들 통역도 해주고 있어요. 주위에서는 제가 축구만 하는 게 아니라고 월급 두 배로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던데요." 김대의 감독에게 이 말을 전하니 그는 한참을 껄껄 웃고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우근이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이 자식이…" 제자의 농담에 유쾌한 반응을 보이는 김 감독이었다. 정우근이 빠르게 팀에 녹아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팀 동료의 도움도 정우근에게 힘이 된다. 주장인 이승현을 비롯해 선배 김철호와 정훈, 동갑내기 친구 백성동이 그를 주로 챙긴다. 특히 어릴 적 친구였던 백성동의 조언은 정우근에게 '꿀팁'과도 같다. "성동이도 해외 생활을 하다가 저보다 한 시즌 먼저 수원FC에 왔잖아요. 작년에 성동이가 느낀 것을 제가 지금 느끼고 있어요. 빨리 적응하도록 선후배들과 자리도 만들어줬어요. 고마운 친구입니다."

아직까지 그는 수원FC에 온 것이 완전히 실감나지는 않는다. 특히 코칭 스태프를 볼 때면 더욱 그렇다. "김대의 감독님은 성남일화와 수원삼성에서 워낙 대단했잖아요. 게다가 저는 대전 출신이거든요. 대전 하면 또 이관우 코치님이잖아요. 제가 어릴 적 우러러 보던 분들이 저를 지도하신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아요. 솔직히 아직까지는 두 분에 대한 팬심이 좀 있어요. 아마 더 친해지면 같이 사진 한 번 찍어달라고 할 것 같아요."

"은퇴하기 전에 우승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에게 올 시즌 K리그2(챌린지)는 새로운 도전이다. 한국 팬들 또한 그가 낯설다. 그는 자신을 "키가 큰 것도 아니고 빠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골 냄새를 잘 맡는 공격수"라고 표현한다. 득점을 책임질 수 있는 공격수라는 뜻이다. "왼발, 오른발, 헤더 등 다양하게 활용해서 골을 넣었던 것 같아요"라고 설명한 그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 그런데 헤더는 한국에서 통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태국에서는 헤더가 먹혔거든요."

정우근 또한 올 한 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다. "제가 한국에 와서 몸소 체험한 것이 있어요. 정말 한국 특유의 강한 압박과 체력 싸움이 엄청나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준이 높아요. 빠른 압박 속에서 전개되는 축구에서 살아남아야 해요. 태국에서의 골 감각을 유지하면서 체력을 더욱 끌어 올리고 탈압박 하는 과정을 더욱 잘 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올 시즌 목표는 두 자릿수 득점입니다. 태국에서 꾸준히 그래왔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그렇게 넣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형들에게 이 얘기를 하니까 살짝 놀라면서 '그것도 엄청 대단한 거다'라고 놀리더라구요. 하지만 목표라는 것은 그래도 되는 거잖아요? 저는 진짜 첫 시즌에 10골 이상 넣고 싶어요. 그렇다면 수원FC의 승격에 보탬이 되겠죠. 저는 수원FC에 와서 승격 하나만 보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정말 갈망하는 것은 따로 있다. 우승이다. K리그2에서 1위를 차지한다면 우승 트로피와 다이렉트 승격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제가 축구를 시작하고 나서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어요. 만일 이렇게 한 번도 우승을 못하고 축구화를 벗는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아요. 은퇴하기 전에는 꼭 우승을 해보고 싶어요. 수원FC에서 승격의 기쁨과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게 된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 우승이라는 느낌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역경을 딛고 머나먼 해외에서 작은 성공을 거뒀던 정우근이 이번에는 고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홀로 고군분투하며 일어났던 그이기에 이번 도전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승격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재밌는 축구,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팬 여러분들께서도 많이 와주셔서 응원 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기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