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수원FC 이관우 코치, “바닥 한 번 쳐보니 모든 게 행복”

이관우 수원FC
수원FC 이관우 수석코치를 제주도 전지훈련장에서 직접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서귀포=김현회 기자] 이관우는 축구계에서 애잔함과 두근거림을 동시에 주는 이름이다. 화려한 기술과 빛나는 외모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기대 만큼 우리 곁에 오래 있지 못했다. 지긋지긋한 부상을 달고 살았고 결국 2009년을 끝으로 K리그에서 떠났다. 이후 그는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 싱가포르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조용히 은퇴했다. 성대한 은퇴식조차 치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축구계로 돌아왔다. K리그2(K리그 챌린지) 수원FC 수석코치에 부임한 것이다. 그를 전지훈련지인 제주도에서 직접 만났다. 세월이 흘렀고 나이를 먹었지만 이관우 코치의 외모는 여전히 별보다 밝았다.

반갑다. 여전히 잘 생겼다.
과찬의 말이다. 잘 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시작부터 망언이다.
나는 잘 생긴 게 아니라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스타일이다. 나를 처음 보는 이들은 카탈스러워 보인다고 하는데 사실 친해지면 ‘쟤 되게 얼빵하구나’라고 한다. 나는 ‘볼매’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다.

안정환, 백지훈과 함께 한 팀에 뛸 때는 무슨 화보를 보는 것 같았다.
2007년이었는데 그때 축구가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외모로 따지면 단연 (안)정환이 형이 최고다. 비교할 것도 없다. (백)지훈이가 외모로는 2등이다. 하지만 외모는 지훈이가 나보다 더 잘 생겼어도 인기와 축구 실력은 내가 그래도 지훈이보다 좋았던 것 같다.

얼굴이 선수 시절 못지 않게 밝아 보인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대단히 즐겁게 지내고 있다. 선수단에 합류해 훈련한지 석 달 정도 됐는데 내가 가진 열정을 다 쏟고 있다. 이런 말하기 창피한데 얼마 전에는 선수들과 함께 뛰며 훈련하다가 종아리 근육이 파열됐다. 선수 시절에도 ‘유리몸’이었는데 지도자가 돼서도 ‘유리몸’이다.

그 정도면 ‘유리몸’의 전설로 기록될 것 같다.
선수 시절이었으면 이 정도 부상으로 4주 아웃이다. 그런데 한 열흘 만에 다시 참고 뛰는 중이다. 오늘도 선수들과 같이 뛰면서 훈련을 했다. 선수 시절에는 이렇게 회복이 빠르지 않았는데 오히려 코치가 되니까 그래도 부상 회복이 꽤 빠르다.

감동적인 부상 투혼이다.
오히려 오늘 훈련 때도 선수들이 나를 걱정해 주더라. “코치님 또 다치는 거 아니냐”고 한다. 선수들한테 그래도 코치도 부상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도 있다. 선수가 한 시즌을 치르면서 계속 100%의 몸 상태로 뛰는 건 불가능하다. 조금 아파도 참고 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팀에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조금만 다쳐도 몸상태가 100%가 될 때까지 회복에만 집중하는 선수들도 있고 이제는 시대가 그렇게 변했지만 때로는 아픈 걸 참고도 뛰어야 하는 게 프로 아닌가. 지금 내가 그렇다.

이관우
이관우 코치는 대전시티즌과 수원삼성을 거치며 현역 시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수원삼성

싱가포르 홈 유나이티드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한 뒤 2015년부터 수원삼성 U-12 팀에서 지도자를 했다. 이 기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2015년에는 코치로 있다가 2016년에 감독이 됐다. 학원 팀과 클럽 팀이 모두 참가하는 금석배 우승도 경험했다. 소위 말하는 ‘메이저 대회’다. 창단 이후 최초 우승이었다. 내가 잘 했다기 보다는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따라와 줬다. 경기에서 지더라도 다음 경기가 기대되는 축구를 하길 바랐는데 성적까지 냈다. 한 경기씩 치르면서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성적이었다. 첫 시즌에는 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거쳤고 그 다음 해에는 이 아이들이 잡아 놓은 걸 그 밑 학년들이 그대로 보고 배워 팀이 순탄하게 돌아갔다. 따로 특별한 주문을 할 것도 없었다. 경기장에 가면 얘네들이 좋아하는 트와이스 노래도 틀어주고 당근도 많이 줬다.

당근이라면 어떤 건가.
지방에서 열리는 대회가 많은데 제한된 간식비로 애들이 먹고 싶은 걸 다 충당할 수는 없다. 그럴 때면 사비도 털어야 한다. 치사하지만 “내일 경기 이기면 먹고 싶은 걸 먹게 해주겠다”고 조건도 내건다. 아이들이 원하는 게 대단한 게 아니다. 지도자들이 잘 못 먹게 하니까 라면을 먹고 싶어도 참는 경우가 많다. “감독님, 라면이 제일 먹고 싶어요”라고 하면 경기 전날에도 먹고 싶은 걸 먹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치킨도 자주 사줬다. 어떻게 보면 ‘야비’할 수도 있지만 결국 성과를 거두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먹는 걸로 그러는 건 좀 치사하기는 하다.
결국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생이 되고 프로에 진출하면 이렇게 경쟁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얻는 게 익숙해진다. 초등학생들한테 대단한 보상을 해줄 수는 없지만 이렇게 가벼운 당근을 주면서 편하게 다가가려고 했다. 화랑대기 때는 워낙 더웠는데 아이들이 팥빙수를 먹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이 커피숍에 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 선수들 23명을 데리고 커피숍에 가 팥빙수를 먹었다. 이렇게 교감하니까 먼저 선수들이 다가와 “감독님은 선수 때 어떤 선수였어요?” “영상에서 이런 플레이를 봤는데 이건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요?” 이런 것도 먼저 물어보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부모와 자식 같은 사이가 됐다.

당신을 모르는 세대가 있다는 건 믿을 수 없다. 정말 아이들은 ‘시리우스’ 이관우를 모른단 말인가.
물론이다. 나를 잘 모르더라. 정말 톱 클래스 선수가 아니었다면 모르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내가 지도하는 아이들 부모님이 내 연령대가 많더라.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내 선수 시절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부모님한테 물어보고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나에 대해 조사하더라.

아이들이 당신의 현역 시절을 물어보면 어떤 대답을 해줬나.
어린 선수들이 요새 팀 훈련 외에도 개인 레슨을 많이 한다. 아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개인 레슨을 받는 것까지 내가 가라,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 레슨을 많이 받는 아이들 중에서는 밑에만 보고 뛰는 애들도 많다. 기술은 느는데 시야는 좁아지는 경우다. 아이들에게 늘 상황 인식을 중요하게 설명하는 편이다. “메시가 한 경기를 치르면서 상황 인식을 몇 번 하는 줄 알아? 한 경기를 하면 800번에서 1000번을 해. 그런데 선생님이 아는 유명한 선수는 한 경기에 상황 인식을 1,200번 해. 그게 누군지 알아?” 이렇게 물으면 아이들 눈이 반짝인다. “그게 누군데요?” 이렇게 물어보면 “너희 앞에 있잖아”라고 대답해 준다.

정말 당신은 한 경기에서 1,200번이나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했나.
당연히 살짝 거짓말이다. 아이들에게 상황 인식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뻥을 좀 보탰다. 계속 생각하며 축구하는 건 습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관우 수원삼성
지난해 이관우 감독이 이끄는 수원삼성 U-12 팀은 금석배 우승을 차지했다. 창단 후 첫 금석배 우승이었다. ⓒ수원삼성

수원삼성에서 데뷔골을 넣고 서포터스에게 경례하는 퍼포먼스는 지금 다시 떠올려도 너무 멋졌다.
준비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세리머니를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군대도 안 갔다 왔는데.

혹시 수원삼성 유소년 팀을 지휘하면서 슈퍼매치를 치른 적도 있나. 어린 선수들이지만 슈퍼매치는 슈퍼매치다.
지난해 금석배 준결승에서 FC서울 유소년 팀을 한 번 만났는데 그 경기에서 우리가 이겼다. 수원삼성과 FC서울 유소년 팀은 성인 팀과 유니폼도 같다. 지도자들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벌써 라이벌 의식이 있다. 아이들이 수원삼성 홈 경기장에도 자주 와 경기를 보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이 꽤 있더라. 그라운드에는 11명만 뛰고 이 선수들 중 U-15 팀으로 진학할 선수가 몇 명이나 있을 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슈퍼매치 때만큼은 수원삼성 엠블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임하더라.

당신도 지도자로서 슈퍼매치에 라이벌 의식이 있었나.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기고 지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늘 말했다. 중학교 진학도 중요하지만 승패보다는 늘 다음이 더 기대되는 경기를 하면 된다고 했다. 그 시절에 “이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돼”라고 강요하는 건 아이들의 성장에 독약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슈퍼매치에서 이기니까 좋긴 했다.

여전히 당신은 수원삼성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당신이 올해 수원삼성이 아닌 수원FC 수석코치로 부임했다는 건 의외다. 계기가 있나.
지도자로서 여러 딜레마가 있었다. 대한축구협회 김남표 강사님처럼 전임 지도자가 될까 생각도 했었다. 지도자를 교육하는 강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좋은 경기 많이 보러 다니고 공부해서 이걸 또 지도자들에게 전해주는 일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1급 지도자 자격증 코스를 밝고 있을 때 김남표 강사님이 “너는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냐”고 물으셨다. “선생님같은 강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한껏 욕을 해주시더라. 아직 젊으니 현장에서 더 지도자로 뛰라는 의미셨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수원FC 김대의 감독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대의 감독과 함께라면 추구하는 방향도 같아서 고민할 것이 없었다.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응했다.

어떤 면에서 수원FC가 끌렸나.
수원삼성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지도자로도 있어 봤다. 수원이라는 도시의 축구 열기를 누구보다 잘 안다. 나와 김대의 감독뿐 아니라 우리 팀에 같이 온 김성근 코치도 수원삼성에서 선수 생활을 했었다. 이 팀이 다시 K리그1(K리그 클래식)으로 올라가면 수원에 더 축구붐이 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면 수원이라는 축구 시장은 더 커질 것이다. 잠재력이 있는 도시이고 이 팀도 잠재력이 있다. 지도자라면 도전해 보고 싶은 팀이다.

(이때 지나가는 서동현이 이관우 코치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아닌 선수가 인터뷰를 해야지. 코치가 인터뷰를 하고 있어.”)
우리 애들이 저렇다. 나를 편하게 대한다. 고참 선수들 중에는 나와 선수 생활을 같이 한 이들도 많다. “형”이라고 하다가 다시 호칭을 정리해 “코치님”이라고 한다. 김대의 감독을 어려워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가교 역할을 잘 하고 싶다. 나는 감독이 그려놓은 멋진 그림에 색깔을 더하는 정도다.

당신과 김대의 감독은 선수 생활도 함께 했고 나이 차이도 네 살에 불과하다. 선수 시절 유독 친한 동료이기도 했다. ‘감독님’이라는 호칭보다는 ‘대의형’이 더 익숙할 것 같다.
절대 형이라고 하지 않고 사석에서도 계속 ‘감독님’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친한 사이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팀에 있는 한 형이라고 부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계속 ‘감독님’으로 모실 생각이다. 물론 나중에 서로 다른 팀으로 찢어지면 그때는 욕을 할 수도 있다.

이관우
2008년 수원삼성에서 K리그 우승 후 팬들을 만나 사인을 해주는 모습. ⓒ수원 블루포토

수원FC 수석코치를 맡아서 선수들을 지도해보니 어떤가.
사실 손이 더 많이 가는 건 유소년 선수들이다. 기본기를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인 팀 지도자는 이걸 한 번 더 되짚어 줘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한국 축구 선수들의 전성기는 22세나 23세 때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돈을 벌다보니 기본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처음 배웠던 걸 잊고 소위 말해 ‘머리가 큰’ 축구를 한다. 기본적인 건 무시된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자꾸 기본을 강조하는 편이다.

답답한 마음에 당신이 뛰고 싶을 때는 없나.
지금 우리 팀에도 좋은 선수가 많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걸 가지고 있는 선수들도 꽤 있다. 그런데 가끔 아쉬울 때는 있다. 요즘에는 선수들이 너무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중시한다. 공을 소유하고 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지션마다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가끔은 도전적인 모습이 부족해 아쉽다. 물론 지금 나는 나이도 먹고 ‘유리몸’이라 우리 선수들이 뛰는 게 훨씬 더 낫다.

수원FC에는 유독 노장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동의하나.
사실이다. 노장 축에 속하는 선수가 6명 정도 된다. 다른 팀에 비하면 비율이 높은 편이긴 하다. 이 선수들이 젊은 선수들처럼 ‘후레시’한 맛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프로에서 2~300경기씩 뛰었다는 건 몇 수 앞을 내다볼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선수들에게 한 시즌 36경기를 풀로 다 뛰길 바라는 건 아니다. 이 선수들에게 효율적인 축구를 기대한다. 베테랑 선수들이 경기를 이끌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한 시즌 36경기를 치르려면 한두 가지 상황만 대비해서는 안 된다. 이 선수가 빠질 땐 어떻게 할지 여러 수를 김대의 감독님과 함께 구상 중이다.

성인 팀은 처음으로 지도한다. 그런데 김대의 감독 역시 성인 팀 경험이 없다. 이 점에 대해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말에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한 선배가 그러더라. “누가 태어날 때부터 ‘나 지도자야’ 이러고 태어나? 다들 처음은 있는 거야.” 다들 걸음마 단계라는 게 있다. 하지만 나도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여러 프로팀을 거쳐 봤고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극복하는 것도 다 해봤다. 나뿐 아니라 김대의 감독님과 김성근 코치 등도 다 경험해 본 일이다. 이런 게 충분히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위에서 봤을 때는 당연히 성인 무대에 첫 도전이라 불안하게 볼 수도 있지만 여기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다.

방송인 유병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같은 사람은 어디에서 경력을 쌓으라는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맞다. 나는 2010년에 수원삼성에서 나오면서 이후 바닥을 쳤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가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 욕심도 난다. 원래 오후 운동만 하는 일정이었는데 내가 감독님께 건의해서 오전에도 한 시간이라도 짬을 내 운동을 더 하자고 했다. 그래서 오전과 오후로 나눠 운동을 하고 있다. 바닥을 한 번 치니 이 기회가 얼마나 귀하고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인지 알게 됐다.

당신이 언제 바닥을 쳤다는 건가. 당신은 언제나 화려하고 이름 있는 선수였다.
2009년 마지막에 무릎을 크게 다치고 2010년에는 수원삼성에서 나와야 했다. 당시 국내 병원에서는 다들 운동을 아예 못하게 했다. 계속 이렇게 운동을 하면 휠체어를 탈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래서 수술을 잘 한다는 독일까지 수소문해 날아갔다. 그런데도 통증이 안 사라지더라. 프로 입문 후에 발목 5번, 무릎 5번 이렇게 큰 수술을 10번이나 했다. 그래서 지금도 ‘유리몸’이다. 뭐만 하면 아프다. 2010년에 수원삼성을 떠나게 되면서 나에게는 기나긴 터널이 시작됐다.

그때 이후의 근황을 이야기 해달라.
당장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뭔가를 해야 하긴 했다. 재활을 하면서 자주 가던 낙지 전문점이 있었는데 그곳 사장님이 낙지 전문점을 한 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그래서 가게를 열었는데 밤 10시까지 장사하고 마감하고 집에 가면 12시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시장 보고 낙지 손질도 내가 다했다. 그렇게 2년 6개월 동안 운동은 아예 접고 가게 일에만 매달려 생활하고 있었다.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했다. 장사할 때 선후배들도 자주 오고 팬들도 내 얼굴도 볼겸 찾아오는데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요리를 하는 내 뒤통수 뿐이었다. 축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를 아예 접었었다. 다시 축구를 하면 휠체어를 탈 수도 있다는데 겁이 나서 축구를 어떻게 하겠나. 그러다 싱가포르에 있는 이임생 감독의 전화를 받았다.

어떤 전화였나.
2년 6개월 동안 축구를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그때는 이임생 ‘감독님’도 아니고 임생이 형이었다. 그런데 임생이 형이 나보고 “싱가포르로 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형, 나 자격증이 아직 3급밖에 안 되는데 코치를 어떻게 해?”라고 하니 “선수로 오라”고 했다. 낙지 장사하는 2년 6개월 동안 나는 단 100m도 뛰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임생이 형의 제안을 딱 받는 순간 그냥 그 제안 자체로 너무 좋았다.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뒤 아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아픈데 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더라. 그런데 그냥 너무 해보고 싶었다. 축구를 그만둔 지 2년 6개월 만에 아내한테 허락을 받고 싱가포르로 갈 준비를 했다.

오랜 시간 축구를 놓았던 사람이 어떻게 다시 하루아침에 선수로 돌아갈 수 있나. 더군다나 당신의 무릎은 온전하지도 않았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그날 이임생 ‘쌤’이 운동복을 툭 던져주더니 바로 뛰자고 했는데 400m 트랙 한 바퀴도 도저히 못 뛰겠더라. 요리만 하고 매일 술도 마셔서 몸도 망가져 있었다. 그런데 이임생 감독이 “딱 일주일만 죽어라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새벽에 뛰고 오전에 웨이트트레이닝하고 오후에 또 뛰고 야간에도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그렇게 딱 일주일을 집중하니 일주일 되는 날 밤 이임생 감독한테 전화가 왔다. “너 내일 게임 뛰어야 돼.”

낙지집 사장에서 바로 그렇게 다시 축구선수가 된 건가.
아니다. 계약하러 간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나는 그냥 테스트를 받으러 간 거였다. 다음 날 연습 경기하는 걸 보고 회장단에서 계약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거다. 내가 속았다. 그런데 그게 너무 고마웠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다시 내가 축구선수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것 자체로도 고마웠다. 그래서 “쌤, 나는 내일 테스트 떨어져도 상관없어요”라고 했다. 그 일주일이 너무 행복했고 다시는 축구를 못하게 돼도 미련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연습경기에서 2년 6개월 만에 처음 공을 잡는데 너무 기분이 좋은 거다. 누가 맛있는 과자를 줄까 말까할 때의 그런 기분이랄까. 한국에서 활약할 때만큼의 플레이도 아니었고 중앙에서 공을 잡으면 연결해 주고 그런 것만 했다. 그런데 팀 회장단이 경기가 끝나고 바로 내려와 계약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2년 6개월 만에 다시 선수로 복귀하게 됐다. 그게 2013년의 일이다.

당신의 표정과 말에서부터 행복이 느껴진다.
그 다음부터는 하루하루 내가 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다시는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선수로 돌아간 것 아닌가. 너무 행복했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내가 그동안 어떻게 이걸 잊고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2년 동안 싱가포르에 있었는데 아내는 딱 그곳에 한 번 왔다.

무릎은 괜찮았나.
원래 교회를 안 다녔는데 싱가포르에서는 계약하고 나서부터는 자기 전에 매일 기도를 했다. ‘내일 딱 한 경기만 더 뛰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내일 훈련만 한 번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중간에 무릎이 엄청 부어서 겁을 잔뜩 먹기도 했었고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수술을 하면 그대로 끝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마지막이니 참고 뛰겠다”고 하면서 버텼다. 2년 동안 다 풀타임을 소화했고 공격 포인트도 많이 했다. 한국에서는 30골-30도움을 달성했는데 싱가포르 기록까지 합치면 60골-60도움은 될 거다. 2년하고 미련 없이 딱 마치고 돌아왔다.

이관우
이관우 코치는 아직도 이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린다. ⓒ수원삼성

당신은 그래도 대전시티즌과 수원삼성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다. 그런데도 이 두 팀에서 은퇴식을 열지 못했다는 건 대단히 아쉬울 것 같다.
나는 꾸준하게 출중하면서 팀에 도움을 준 선수가 아니라 ‘레전드’ 대우는 과분하다. 그냥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팬들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감사한 일이다. 내가 현역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축구계를 완전히 떠난 건 아니다. 지금도 이렇게 K리그의 일원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은퇴는 정말 나중에 나이가 들어 축구계를 완전히 떠났을 때가 진짜 은퇴다.

그런데 낙지 전문점을 연 건 의외였다. 원래 요리를 좀 했나.
대전에 있을 때 다쳐서 독일로 수술하러 가 혼자 아파트에서 스파게티를 해먹는 정도였다. 식당을 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식당을 준비하면서 요리를 배웠고 낙지 손질도 내가 다 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재미있었는데 1,2년이 지나니까 너무 힘들더라.

맛은 어땠나. 솔직하게 말해달라.
그때는 다들 맛있다고 했다. 김성근 코치가 당시 경기도 오산 쪽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는데 점심과 저녁을 우리 집에서 늘 먹었다. 아마 못해도 낙지 1,000인분은 먹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김성근 코치가 맛있다고 했으니 맛은 보장된 거 아닌가. 참고로 지금은 접었다.

식당을 30년씩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지금은 접었다는 게 중요하다. 김대의 감독과도 요식업을 함께 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그 가게에 거의 안 나간다. 수원삼성 U-12 팀을 지도할 때는 자식 둘을 키우기에는 벌이가 빠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엄청 많은 돈을 받는 건 아니지만 모든 지도자들이 꿈꾸는 프로 무대에서 수석코치를 하게 됐다. 여기에 100%의 열정을 쏟아야 한다. 부업에 신경을 쓸 시간은 별로 없다. 식당을 같이 운영을 하지만 김대의 감독과 동업자로 보는 시선도 불편하다. “둘이 친해서 뭐가 어쨌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어지간해서는 가게에 가지 않는다. 성적이 좋으면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이런 것들도 트집이 될 수 있지 않나. 최대한 김대의 감독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항상 가장 많이 다치는 건 코치가 아니라 감독이다.

이관우
이관우 코치는 지도자로도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까. ⓒ수원삼성

올 시즌 K리그2(K리그 챌린지)에서 대전시티즌과도 만나야 한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선수 때는 대전을 만나면 색다른 감정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지도자로 인정 받아야 하는 시기다. 머리를 쥐어 짜내서라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대전도 아마 우리를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대전월드컵경기장에 가면 옛날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면 욕을 하는 팬도 있고 반갑게 맞아주는 팬도 있는데 어떤 반응이어도 맞아주시면 기분 좋을 것 같다.

대전에 고종수 감독이 가 있다. 연락은 좀 해봤나.
우리가 선수로 한 팀에서 같이 뛴 적은 없다. 내가 대전에서 수원으로 오고 고종수 감독은 그 무렵 수원에서 대전으로 갔다. 서로 엇갈렸다. 그런데 고종수 코치가 수원삼성 코치로 오게 된 뒤에는 수원삼성에서 자주 마주쳤다. 고종수 감독이 대전에 부임하고는 따로 축하 인사는 못했다. 그래도 아마 잘 할 거라고 믿는다.

수원삼성과 대전시티즌이 경기를 하면 어디를 응원할 생각인가. 솔직한 마음이 궁금하다.
지금도 대전에 관심이 많다. 대전이 K리그1(K리그 클래식)에 올라가지 못한 지도 벌써 3년째가 된다. 내 첫 팀이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관심도 간다. 내가 선수로 뛸 때 매니저가 얼마 전까지 대전에서 국장을 했는데 항상 전화도 드렸다. 지금은 우리가 K리그1(K리그 클래식)에 가는 게 먼저지만 대전도 다시 K리그1(K리그 클래식)에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리고 수원삼성 역시 마찬가지다. 태국 전지훈련 도중에도 수원삼성과 베트남 탄호아와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챙겨봤다. 이기니까 좋더라. 두 팀 모두 잘됐으면 한다.

그래서 대전시티즌과 수원삼성이 붙으면 두 팀 중 어느 팀을 응원하겠다는 건가.
나는 비기는 게 제일 좋다. 대신 관중이 꽉 들어차 환호하는 경기장에서 멋진 경기를 하고 비겼으면 좋겠다.

알겠다. 나도 누가 이기든 좋으니 경기장이 더 많은 관중으로 꽉 차길 바라는 마음이다. 올 시즌 어떤 팀을 가장 경계하고 있나.
지금 이 시기에 어느 한 팀을 꼽기에는 무리다. 개막 후 분위기를 타는 게 중요하지 이 시기에 좋다고 다가 아니다. 우리는 김대의 감독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일주일 동안 한 경기를 위해 모든 걸 쏟아 붓고 쉬고 집중해야 한다. 아마 이렇게 집중하다보면 내년 이때쯤에는 좋은 성적을 거둬 웃으며 인터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중간에 잘려서 인터뷰를 못할 수도 있다. 한 경기 한 경기에 집중하겠다.

이관우 수원FC
화려한 선수 생활만 떠올렸지만 이관우 코치는 2010년 이후 마음고생이 심했다. ⓒ스포츠니어스

그렇다면 올 시즌 목표는 어떻게 잡았나.
성적에 관한 목표는 다른 K리그2(K리그 챌린지) 팀들도 다 비슷하지 않을까. 첫 번째는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일 거고 두 번째는 승격일 거다. 그런데 나는 목표를 평균 관중 5천 명으로 잡았으면 좋겠다. 지난 시즌 우리 팀 평균 관중이 1,200명 쯤이었던 걸로 안다. 우리는 시민이 구단의 주인이나 마찬가지고 시에서도 예산을 끌어다가 쓴다. 관중이 많아지고 관심이 커지면 더 큰 구단이 될 수 있다. 평균 관중 5천 명이면 어지간한 K리그1(K리그 클래식) 팀 못지 않은 인기구단인데 그걸 해보고 싶다. 희망이 있는 경기를 보여주고 이기다보면 관중이 차고 그런 선순환이 될 것이다. 그래서 김대의 감독에게 “우리 성적도 중요하지만 평균 관중 5천 명을 한 번 해보자”고 장난 삼아 이야기했다가 혼났다. 프로는 성적이라더라.

성적과 흥행 모두 잡길 응원한다. 그렇다면 지도자로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원래 꼼꼼한 성격이 아닌데 언제부턴가 인생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혼자 컴퓨터를 만지면서 이 나이 땐 이 위치에서 지도자를 해야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는 지금 한 3년이 빠르다. 그런데 이렇게 계획보다 3년을 더 벌었으니 이 기간 동안 더 많은 걸 배워야 한다. 부족한 걸 자꾸 채워나가고 싶다. 선수 때 유명하면 주류, 안 유명했으면 비주류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선수 때 유명했어도 지도자로 처음 시작하면 지도자로는 다 비주류다. 수원삼성의 서정원 감독 같은 분들도 경험을 쌓고 성장했다. 나도 경험을 쌓고 성장하고 싶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말한 그 컴퓨터에는 최종적으로 어떤 꿈이 담겨져 있나.
지도자라면 다 똑같지 않을까. 대표팀 감독을 해보고 싶은 건 지도자 누구라면 꾸는 꿈일 것이다. 연령별 대표팀도 좋다. 나는 19세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일찍 저물었다. 어린 선수들을 맡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관우가 옛날에 선수로 좀 유명했지”라는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도자로도 인정을 받고 싶다. 물론 일단 지금은 수원FC에서 인정받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올 시즌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

우리는 이관우의 화려한 모습만을 봐 왔다. 대전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그는 수원삼성의 선수가 되면서 이슈의 중심에 섰었고 번뜩이는 기량으로 팬들을 열광케 했다. 빛나는 외모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어느 순간 사라졌지만 그가 바닥을 치고 축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이들이 없을 것이다. 이관우가 K리그2(K리그 챌린지) 팀에서 다시 지도자로 시작한다고 할 때는 의아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는 지금 행복해 보였다. 이관우는 역시 축구장에 있을 때 별보다 더 밝게 빛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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