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진단③] 인권위가 본 체육계 “군대보다 열악하다”

ⓒ SBS 방송화면 캡쳐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에 법무부는 즉시 공식 성명을 내놓았으나 체육계 테니스 종목 김은희 씨의 성폭력 피해 고발에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의 입장은 여전히 들리지 않고 있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 피해를 폭로하면서 지난달 30일 문무일 검찰총장은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라면서 “진상 조사 결과에 따라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법무부 측도 지난 2일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을 임명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권 위원장은 “위계·서열적·성차별적 조직문화를 변화시킬 계기라 판단한다”라며 “조직에서 발생한 성폭력 등 피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뿌리 뽑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 10월 최초 보도된 테니스 김은희 씨 성폭행 피해 폭로에 대한테니스협회, 대한체육회는 물론 문체부의 입장 또한 여전히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SBS 측을 통해 또 한 번 사건이 조명을 받았으나 현재까지 체육계 상위 기관은 묵묵부답이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노력

체육계에 만연해있는 성폭력 근절에는 상위 기관의 역할과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운동부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성폭력 피해 실태를 연구했던 주종미 호서대 교수는 성폭력 근절을 위한 기관의 역할로 ▲소속기관의 관리 책임 강화 ▲기관 성폭력 담당위원회 내 외부 전문가 포함 ▲전문인력풀을 이용한 감시체계 강화 ▲예방 홍보 강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대한체육회와 문체부가 성폭력 근절을 위해 아예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7년 우리은행 농구팀 박명수 감독의 성폭력 사건 이후로 체육계 인권에 많은 신경을 썼다. 문체부는 2008년 스포츠 성폭력 근절대책으로 ▲성폭력 지도자 영구제명 조치 ▲선수 접촉·면담 가이드라인 수립 ▲체육계 통합 성폭력 신고센터 설치(문화체육관광부-대한체육회) ▲’여성 지도자 할당제’ 도입 ▲상시 합숙훈련 개선 ▲체육지도자 자격 강화 ▲체육지도자 아카데미 운영 등을 발표했다.

대한체육회는 2010년부터 2년 주기로 꾸준히 ‘스포츠 폭력·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자료를 발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체육회 측은 “스포츠 현장에서 폭력과 성폭력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어 현장 중심으로 홍보할 필요성을 인지했다”라며 “종목별 선수권대회 등 주요 대회가 열리는 장소를 직접 방문해 찾아가는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체부의 정책적 움직임과 대한체육회의 노력으로 실제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조사된 성폭력 피해는 대체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 26.4%에 달했던 성폭력 피해 경험은 2016년 조사 결과 3.6%까지 감소하는 등 수치적 결과는 분명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위 기관이 소극적인 이유

그러나 현장에서 체험한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인권침해예방활동연구소 김희진 대표는 대한체육회 인권센터에서 근무할 당시 느꼈던 점에 대해 “인권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실질적으로 인력이 부족해 계약직 상담사들이 교육과 상담을 병행하는 점은 분명 문제”라며 “전문가 활용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 결국 의지력의 부족”이라고 밝혔다.

대한체육회 여성체육위원회 위원이었던 허현미 교수는 체육회의 더 자세한 사정을 설명했다. 허 교수는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체육회의 입장은 사적인 영역이라는 것”이라면서 “사건을 다 책임질 필요는 없고 사적 영역으로 판단해 법원 판결이 나기까지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라며 체육회의 태도를 지적했다.

대한체육회의 이와 같은 태도에는 배경이 있다. 허 교수는 “종종 자체 징계 이후 나온 재판부 입장이 달라 징계가 뒤집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먼저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라며 “이중 징계 논란 등 체육 단체가 체육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었다”라며 체육회의 속사정을 전달했다.

체육계 이미지의 문제도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치부를 드러낸다고 여겨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 교수는 “검찰 사건의 경우 사회적 관심이 커지니 법무부 측에서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김은희 선수 피해 사건의 경우 대한체육회나 문체부가 입장 표명을 딱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관심의 크기 자체가 다르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이어 “평창 동계올림픽과 시기가 겹쳐 홍보에 피해를 줄까 봐 걱정하는 측면도 있다”라며 “우선순위와 가치 판단에서 혼란이 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 YTN 방송화면 캡쳐

내부 감사의 한계와 딜레마

한편 상위 기관이 자체적으로 성폭력 관련 조사와 징계를 내리더라도 한계는 존재한다. 검찰 내 성추행 폭로에 검찰 측은 자체 조사단을 꾸리고 조희진 조사단장을 임명하면서 내부 감사의 한계가 지적됐다. 임은정 검사는 조희진 단장의 자격을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제 식구 감싸기’나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조직 내부 감사의 한계라는 측면에서 체육계도 같은 한계점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했다. 전문가들은 “반드시 외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라며 입을 모았다. 주종미 교수는 성폭력 근절을 위해 “기관 내 성폭력 담당 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를 포함해야 한다”라고 전했으며 허현미 교수도 “내부적으로 제약이 따른 일이 많았다. 인맥, 학연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라고 전했다. 김희진 대표 또한 “반드시 외부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라면서 “협력이 필요하다. 여전히 체육계는 인권 의식과 개념이 부족하다. 반면 외부 인권 전문인력들의 경우 스포츠 현장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전문인력풀구성단을 활용하거나 자문을 구하되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용하는 측면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내부 징계는 양날의 검이다. 자체적으로 강한 징계를 줄 경우 단체의 이미지 재고가 되는 한편 인맥과 친분에 의해 강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제 식구 감싸기’나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로 제기되는 이유다. 김 대표는 외부 기관이 필요한 이유로 “내부에서 조사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라고 주장했으며 허 교수는 “징계를 내려야 하는 사람도 결국 선수촌에서 같이 합숙하면서 형님, 동생 하는 선후배 관계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허 교수는 “그나마 젊은 인재들이 조직 안에 포함되면서 과거보다 공과 사가 명확해졌다”라고 분석하면서도 “최종 법적 판결과 관계없이 조직 내에서 징계위원회도 열리긴 하지만, 적극적이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피해 최근에는 ‘보여주기식’ 징계를 내린다는 지적이다. 허 교수는 “재판부 판결에 앞서 집행 유예와 같은 형식으로 징계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라며 “가해자에 이입되는 동정론이 여전히 존재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외부 기관을 포함해 객관적으로 다른 영역과 똑같이 조사하고 징계할 필요도 있다”라며 “법조계라고 더 엄하거나 예체능계라고 무르게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외부 기관이 필요하다. 더는 동정론이 힘을 얻어서는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위가 본 체육계, “군대보다 열악하다”

전문가들은 외부 기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이 크다고 보고 있다. 2007년 박명수 감독 사건 이후 국가인권위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인 게 좋은 사례를 남겼다. 국가인권위 주도로 실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보고가 진행됐고 관련 책자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인권위의 이러한 움직임이 체육계 성폭력 실태에 경각심을 줬다는 분석이다. 국가위원회의 상징성과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었다.

국가인권위 측은 체육계 성폭력 실태 조사를 하며 충격적인 사실을 전달했다. 국가인권위 측은 “군대를 포함해 모든 분야의 인권 문제를 조사했지만 가장 인권적으로 취약한 곳이 체육계였다”라고 밝혔다. 본격적인 실태 조사에 들어가기 전 국가인권위 측의 체육계에 대한 이미지는 ‘화려함’이었다. 프로 스포츠와 국제무대에서 환호하며 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들만이 기억됐다. 실체는 군대보다 인권 환경이 열악한 곳이 체육계였다는 것이다.

다만 지속성과 적극성은 국가인권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김희진 대표는 “대한체육회나 문체부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국가인권위가 개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문체부나 대한체육회가 전문가 활용을 못 하는 측면도 있고 하지 않으려는 측면도 있다. 체육계 내에는 성폭행과 희롱의 차이를 구분하는 인력도 적은 편이다. 유형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제대로 접근하기가 어렵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현미 교수는 “국가인권위의 행동으로 체육계 내에서 정신 차려야겠다라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인권담당자의 업무 지속성과 책임감 등도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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