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 전지훈련장에서 FC안양 정재희를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서귀포=김현회 기자] FC안양 정재희는 2년차 징크스를 몰랐다. 프로 데뷔 2년차인 지난 시즌 35경기에 출장해 8득점 5도움의 놀라운 공격력을 선보였다. 공격 포인트 뿐 아니라 저돌적인 돌파와 공격력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런 그가 이제 안양에서 세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데뷔 시즌에 비해 일취월장한 기량으로 지난 시즌 멋진 경기를 펼쳤던 그는 세 번째 시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안양의 전지훈련지인 제주도 서귀포에서 정재희를 직접 만나 그에게 5가지 키워드를 던졌다. 답변은 술술 이어졌다.

◇베스트11

"지난 해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안양 선수로는 유일하게 베스트11 후보에 올랐다. 수상 가능성은 높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주 아주 약간 기대는 하고 시상식장에 갔다. 나름대로 수상 소감도 생각을 해봤다. 만약 상을 받게 되면 ‘많이 부족한 선수에게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짧게 소감을 말하고 싶었다. 그날 운동도 빠지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정장을 차려 입고 시상식장에 도착해서부터 주눅이 들었다. 시상식장 앞에 팬들이 늘어서 있는데 정장을 입고 입장하는 날 보며 ‘쟤는 뭐냐’라는 눈빛을 보내주셨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처음 간 시상식이었고 아는 사람도 없어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데 스타 선수들이 줄줄이 들어오더라. 이재성과 김민우가 등장하니 그 선수들에게 팬들이 우르르 몰렸다. 양동현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쭈구리’처럼 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기자 간담회를 한다고 해 식장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쟁쟁한 K리그 클래식 선수들만 앉아 있어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밖에 나와 있었다. 나같이 식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K리그 챌린지 올스타 후보 선수들이 많았다. ‘왜 안 들어가세요?’라고 물어보니 ‘저기는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고 하더라.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의 격차가 이렇게 크다는 걸 느꼈다."

"안양의 유일한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투표에서는 아깝다는 표현을 전혀 쓸 수 없을 정도로 표를 적게 받았다. 표 차이를 모르고 집에 갔는데 아버지께서 ‘네 인지도는 이게 다야. 더 열심히 하라’면서 득표수를 친절히 알려주셨다. 배기종 선수가 60표를 받았고 바그닝요는 43표를 얻었다. 그런데 나는 달랑 11표였다. 차라리 득표수가 공개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너무 적나라하게 공개되더라. ‘내 위치가 여기구나’라고 깨닫게 됐다. 나는 배기종 선수와 바그닝요에 비하면 완전히 땅바닥에 있었다." #재검표 #요구 #개표조작

정재희는 지난 시즌 네 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스포츠니어스

◇연속골

"지난 시즌에는 그래도 나름대로 개인적인 성과는 냈다. 8골 5도움을 했으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 초반 10경기에서 6골 2도움을 기록한 뒤 이후 20경기에서 득점을 하지 못했다는 건 문제였다. 침체가 너무 길었던 시즌이었다. 초반에만 좀 잘하고 후반에 갈수록 골 결정력이 많이 떨어졌다. 개막 후 첫 세 경기는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팀이 3연패를 한 뒤 네 번째 경기에서부터 선발로 들어갔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경기에 임하니 잘못 맞은 것도 골로 연결될 정도로 기세가 좋았다. 우리팀 (김)민균이 형이 내 스타일에 너무 잘 맞춰줘 골을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4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골을 넣고 경기를 끝내고 다른 팀 경기 소식을 보면 부산 이정협 선수도 골을 넣더라. 확인할 때마다 그랬다. 지난해 4월 29일 나는 5경기 연속골에 도전하고 이정협 선수는 8경기 연속골에 도전할 때 우리 둘이 경기에서 만났다. 나를 더 잘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이정협 선수는 내가 신경을 쓸 위치에 있는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단 나만 잘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완벽한 나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왔다. 결국 그날 둘 다 연속골 행진을 멈췄다."

"이후 두 경기에서 또 연속골을 넣었다. 부산전 그 골만 넣었더라면 7경기 연속골이 이어지는 건데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연속골 기록이라는 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따라야 한다. 다시 언제 또 이런 연속골 기회가 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 더 일을 내보고 싶긴 하다. 아마 나 혼자 연속골 행진 중이었으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텐데 인지도가 있는 이정협 선수와 경쟁하다보니 그래도 이슈가 됐다. 아무리 내가 연속골을 넣었어도 이정협 선수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별로 큰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슈틸리케 #여기싼선수있어요

◇김민균

"나에게는 축구의 신 같은 존재다. 재작년에도 민균이 형이 많은 활약을 했는데 지난 시즌에는 훨씬 더 물이 오른 플레이를 했다. 우리 팀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선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민균이 형의 열혈 팬이다. 아주 좋아하는 형이다. 내가 뛰면 성공하건 못하건 무조건 찔러준다. 되게 신기한 축구를 하는 형이다. 저 상황에서 어떻게 공간을 찾을까 싶을 때도 컨트롤해서 패스를 넣어주고 공이 오면 아웃사이드로 탁 잡아서 수비수 한 명을 제친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다."

"지난 2016년에는 내가 신인이었던 것도 있고 민균이 형이 주로 왼쪽 측면에서 플레이를 하며 완벽한 조합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난 시즌에는 민균이 형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면서 나와 호흡을 잘 맞췄다. 내가 넣은 골은 거의 다 민균이 형이 패스를 찔러 넣어줬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지난 해 5월 민균이 형이 아산에 입대했다. 민균이 형 입대 이후 나는 공개 포인트가 계속 제자리였다. 6골 2도움에서 계속 멈춰있었다. 그 형이 군대에 왜 이렇게 빨리 갔는지 모르겠다. 한두 달만 늦게 갔어도 내 공격 포인트가 더 늘어났을 수도 있다."

"민균이 형의 입대는 팀에도 상당한 손해였다. 민균이 형이 있을 땐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할 수 있었는데 형이 나가고 나서는 킥 위주의 플레이로 변했다. 전술도 투톱 형태로 바뀌었다. 한 팀의 전술이 바뀔 만큼 민균이 형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공격형 미드필더 대체자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제대하면 민균이 형이 안양으로 복귀할지, 내가 그때까지 안양에 남아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민균이 형처럼 잘맞는 또 다른 파트너가 등장할 수도 있다. 지금도 군대간 민균이 형하고 연락하고 면회도 가느냐고? 연락도 안 한다. 이제 상대팀인데 알아서 잘 하시겠지 뭐." #수신자부담 #차단

◇고정운

"선수 시절 때 고정운 감독님의 플레이를 봤나. 지도자로서도 그런 느낌이다. 가만히만 계셔도 뭔가 들소 같은 느낌이 든다. 50대이신데 지금도 몸이 너무 좋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약간은 무섭다. 목소리도 엄청 지르면서 열정적으로 지도하신다. 얼마 전에는 목소리가 쉬기도 했다. 감독님도 윙어 출신이라 내가 배울 점이 많다. 작년에는 주로 내가 오른쪽에서 플레이를 했는데 올 시즌에는 감독님이 왼쪽에서 많이 활동하라고 지도해 주고 계신다. 안으로 들어와서 플레이를 해야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내가 공간으로 많이 뛰는 편인데 그렇게 공간으로만 뛰면 90분을 다 못 뛰니 조절해서 뛰는 법도 알려주신다."

"그런데 요새는 ‘그마만큼’ ‘늦어요’ ‘거든요’는 잘 안 쓰신다. 아무래도 우리한테는 존칭을 쓰기보다는 편하게 반말을 하시니 중계 때 쓰시던 용어가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중계에서 쓰시던 그 주옥 같은 멘트를 훈련장에서는 들을 일이 거의 없다. 대신에 한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하시는 걸 새 유행어로 미시는 것 같다. ‘압박, 압박, 압박’이라고 하신다. 주먹으로 반대쪽 손바닥을 치면서 ‘밸런스, 밸런스, 밸런스’ 이렇게 강조하시는데 그러면 감독님 주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늘 우리에게 공격수도 수비를 해야한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오늘(8일) 프로축구연맹에서 내려와 선수들에게 교육을 했다. 부정행위 방지에 관한 교육과 함께 심판 판정 가이드 라인에 대해서도 영상 자료를 보여줬다. 이런 건 파울이고 이런 건 파울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는 교육이었다. 그런데 영상으로 나오는 교육용 자료가 감독님이 중계한 화면이었다. 진지하게 영상을 보고 있는데 “~고든요”라는 말이 나오더라. 옆에 있던 동료와 눈이 맞았는데 웃음이 터져 꾹 참았다. 감독님께서 해설위원을 하실 때 우리팀 경기도 많이 중계해 자주 들었었다. 감독님이 해설하는 K리그 클래식 중계도 자주 봤다. 음, 그래도 축구 해설은 아무래도 이영표 해설위원이 가장 나은 것 같다." #감독실 #호출각

정재희는 지난 시즌 네 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스포츠니어스

◇이적설과 목표

"지난 여름 K리그 클래식 빅클럽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내가 들은 걸로는 서로 이적료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그 무렵 민균이 형이 입대하고 나는 주춤했다. 반대로 나를 원하던 팀은 갑자기 페이스가 확 올라가서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협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들었는데 진척이 없어 초조했던 것도 사실이다. 서류가 안 넘어오고 있다고 했다. 그 팀은 공격수가 맹활약하기 시작했고 나는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내가 조금 더 잘했으면 이적이 더 현실적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이후에는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생각했다.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입장이다. 감독님이 새롭게 바뀌었고 이제 모두 똑같은 위치에서 다시 경쟁해야 한다. 일단 올 시즌 경기에 많이 나서는 게 첫 번째 목표다. 그래서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리고 싶다. 지난 시즌 8골을 넣었는데 올해는 10골을 꼭 넘겨보고 싶다. 두 자리수 득점과 한 자리수 득점은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태국에서 치른 1차 전지훈련에서는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잘 이겨냈다. 이제는 제주도에서 전술적인 부분을 가다듬고 그 다음에 일찌감치 전남 순천에 가 광주와의 개막전을 준비할 예정이다. 팀도 이제는 4강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끝까지 올라가보고 싶다." #올시즌 #준비 #성공적

정재희는 이제는 어느덧 안양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전으로 도약했다.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K리그 빅클럽도 탐내는 선수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이제 K리그 챌린지에서 세 번째 시즌에 도전한다. 과연 올 시즌 정재희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정운 축구’는 정재희의 활약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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