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인천의 빠울로’

인천 빠울로
빠울로는 인천에서 단 한 골밖에 넣지 못했지만 이 골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인천유나이티드 UTD기자단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K리그에서 오랜 시간 뛰면서 꾸준히 사랑 받는 선수가 있다. 하지만 짧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선수도 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릴 때면 늘 한 번은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빠울로다. 그는 오랜 시간 K리그에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늘 비가 올 때면 생각나는 선수다. 지금이 비가 쏟아지는 여름도 아니고 시즌 중도 아니어서 난 데 없어 보이지만 오늘은 이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누구보다 강렬했던 빠울로의 K리그 데뷔
2012년 당시 인천유나이티드는 시즌 중반 허정무 감독이 사퇴하고 김봉길 수석코치가 감독대행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천은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김봉길 감독대행 체제 이후 무려 12경기 연속 무승(7무 5패)의 처참한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인천이 후반기 들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6경기 연속 무패(2승 4무)를 기록하면서 조금씩 강등 탈출 가능성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만난 상대는 강했다. 당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던 FC서울을 홈으로 불러 들였기 때문이다. 비가 부슬부슬 오던 2012년 7월 15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는 그렇게 인천유나이티드와 FC서울이 맞대결을 펼쳤다.

인천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전반 32분 프리킥 상황에서 서울 김진규에게 강력한 중거리 슛을 얻어 맞으며 0-1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천은 전반 종료 직전 서울 골키퍼 김용대가 펀칭한 공이 문전으로 흐르자 이를 한교원이 침착하게 차 넣으며 동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후반 17분 인천은 마침내 역전골까지 뽑아냈다. 한교원이 서울 페널티 박스 부근에서 절묘한 동작으로 상대를 따돌리는 슈팅을 날렸고 이 공은 그대로 서울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비가 오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천은 또 다시 후반 32분 하대성에게 한 골을 내주며 2-2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이때 낯선 외국인 선수 한 명이 그라운드로 등장했다. 불과 닷새 전 공식적으로 영입된 빠울로였다. 빠울로는 여름 이적시장에 영입돼 이전까지 한 달간 휴가를 보냈고 훈련을 재개한지 2주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브라질 출신으로 2004년 브라질 포티구아에서 프로 데뷔에 성공한 그는 이후 프랑스리그로 건너갔다가 주로 UAE리그에서 활약한 선수였다. 이보를 제외하고는 외국인 선수로 재미를 보지 못했던 인천이 데려온 선수라 큰 기대를 가진 이는 없었다. 얼굴도 곱상하게 생겨 투쟁심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UAE 2부리그에서 득점왕에 올랐다고는 해도 그렇게 화려한 경력의 선수는 아니었다. 후반 32분 빠울로가 김봉길 감독대행의 지시로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렸다. “누구야?”

인천 빠울로
빠울로가 골을 넣은 뒤 관중과 부둥켜 안고 환호하는 모습. ⓒ인천유나이티드 UTD기자단

인천 역사상 가장 짜릿한 승리
그런데 이날 첫 선을 보인 빠울로는 대형 사고를 쳤다. 경기가 무승부로 마무리되던 후반 46분 남준재가 왼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자 빠울로는 아디와의 몸 싸움을 이겨낸 뒤 솟구쳐 올라 살짝 방향만 바꾸는 헤딩슛을 연결했고 이 공은 그대로 서울 골망을 출렁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보여준 안정환의 골과 비슷했다. 기적과도 같은 인천의 3-2 승리였다. 거짓말 같은 인천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빠울로는 결승골을 넣은 뒤 곧장 골대 뒤 서포터스에게로 달려가 안겼다. 선수와 팬이 한 데 어우러져 부둥켜 안았다. 부슬부슬 비가 오던 이날의 경기, 특히나 빠울로의 결승골은 인천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으로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봉길매직’의 완성과도 같은 골이었다. 이 경기로 인천은 무패 행진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고 김봉길 감독대행도 대행 꼬리표를 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해 개장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골을 넣고 관중과 호흡한 선수는 빠울로가 처음이었다. 관중석과 그라운드가 가까워 모든 이에게 로망과도 같은 경기장에서 빠울로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골 세리머니로 팬들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했다. 이후 인천은 잔류를 확정짓거나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 지금도 선수와 팬들이 이 가까운 거리를 두고 교감하고 있다. 빠울로가 그 첫 시작이었다. 이 경기는 K리그 명승부 역사에 남을 대단한 경기였고 빠울로는 데뷔전에서 그 누구보다도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빠울로가 인천에서 보여준 모습은 별로 없었다. 이후 네 경기에 더 나섰지만 골을 더 기록하지는 못한 채 팀을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인천 팬들이 빠울로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서울전 그 골 때문이었다. 그가 오랜 시간 인천에 남아 활약했더라면 좋았겠지만 빠울로는 서울전 명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결승골 하나 만으로도 역사에 남을 존재였다. 빠울로는 이후 UAE 알 푸자이라를 거쳐 오만의 알 나흐다, 바레인의 히드SCC 등을 거쳤다. 그렇게 빠울로는 인천 팬들에게 조금씩 추억의 존재로만 남았다. 카카를 닮은 잘생긴 외모도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인천 빠울로
그는 결국 백혈병으로 투병하게 됐아. ⓒ빠울로 인스타그램

그에게 전해진 청천벽력 같은 소식
하지만 빠울로는 2014년 이후 현역에서 물러나게 됐다. 1984년생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나이였지만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이었다. 결국 빠울로는 2015년부터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투병에 들어갔고 골수 이식을 받으며 치료에 집중했다. 조금씩 병을 이겨내는 듯했다. 다시 그라운드로 복귀할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투병 생활만으로도 벅찼던 몸을 이끌고 복귀하기에는 무리였다. 그래도 일상 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한 빠울로는 축구에 대한 애정을 이어갔다. 지난 해에는 고국에서 에이전트로 일도 시작했다.

그는 지난 해 인천 구단과의 인터뷰에서도 “언젠가 인천이 K리그 챔피언이 되길 기원한다. 기회가 된다면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인천의 경기를 보고 싶다. 인천의 모든 구성원과 팬 여러분들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응원하겠다. 항상 행복하길 바란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빠울로는 안타깝게도 지난 해 말 다시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다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가 과거에 몸 담았던 캄피넨세 클루베 구단에서는 SNS를 통해 빠울로를 위한 헌혈 증서 기부도 부탁했다. 캄피넨세 클루베 측은 “하루에 빠울로에게는 18개의 혈액 봉지가 필요하다. 구단은 이 중요한 순간에 우리와 함께했던 이 선수를 위한 일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당신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다고” 구원의 손길을 부탁했다.

빠울로 역시 “우리가 듣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제하신다는 것이다. 나는 또 이 운명과 싸울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낯선 사람들조차도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하나님과 당신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결코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SNS 속 빠울로는 다시 병원에 입원해 마스크를 쓰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빠울로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어제(2일) 고국 병원에서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그는 그렇게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오겠다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33살의 젊은 나이에 조용히 세상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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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가면 그가 문뜩 생각날 것 같다. ⓒ인천유나이티드 UTD기자단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인천의 빠울로’
그는 대단한 선수는 아니었다. 프로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주로 중동 2부리그를 전전했다. K리그에서도 어마어마한 경력을 쌓은 것도 아니다. 5경기에 나서 고작 한 골을 넣은 게 전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영원히 우리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 경기는 K리그 역사에 남을 최고의 명승부였고 주인공은 빠울로였다. 빠울로는 우리 곁을 떠났어도 이 사실은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는 이 단 한 순간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걸 주고 떠났다.

빠울로는 지난 해 인천 구단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만약 비가 오면 다른 선수가 또 다시 폭우를 무릅쓰고 멋진 골을 넣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했던 것처럼 멋진 골 세리머니를 선사할 것이다.” 그는 떠났지만 우리는 빠울로를 기억할 것이다. 빠울로는 빗속을 뚫고 뛰어 올라 거짓말 같은 골을 넣은 뒤 관중과 함께 부둥켜 안고 환호하던 멋진 선수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워낙 그 때의 모습이 강렬했기에 부슬부슬 비가 오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갈 때면 늘 그가 생각날 것 같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footballavenue@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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