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서포터 수호신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이번 겨울 이적 시장을 바라보는 FC서울 팬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팬들이 가장 사랑했던, 그리고 K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위대한 공격수가 가장 싫어하는 적의 편에 선다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데얀의 수원 삼성 이적, 아드리아노의 전북 현대 이적으로 서울 팬들의 고통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서울 팬들의 행복했던 기억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개념은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이 사회적 편차를 이해하기 위해 처음 도입했다. 개인은 비교가 되는 다른 집단의 상황과 자기 자신의 조건을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박탈과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서울이 사랑했던 스타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며 서울 팬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고 다른 팀의 팬들은 이런 서울의 상황을 보고 상대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즐거워하는 상황인 것 같다.

서울 팬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그들이 사랑하는 선수들이 모두 팀을 떠났다는 데 있다. 서울 팬들이 느끼는 영광의 순간은 언제일까. 세뇰 귀네슈가 보여줬던 속도감 있는 축구는 그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해줬지만 결과적으로 트로피는 안겨주지 못했다. 서울 팬들은 최용수 감독이 보여줬던 리더십과 K리그 우승 트로피, 그리고 FA컵 우승 트로피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12년 K리그 우승에 이은 2013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의 영광, 2015년 FA컵 우승을 일궈냈던 최용수 시대의 서울은 앞으로도 서울 팬들의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영광의 순간이다.

팀을 최정상으로 이끌었던 최용수 감독에게도 비판점은 있었다. 시즌 초반 부진을 면치 못하며 '슬로 스타터'라는 오명을 썼다. 2016년 최용수 감독은 그의 오명을 벗기 위하여 상무 입대를 앞둔 신진호를 영입했고 아드리아노의 득점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신진호가 서울 유니폼을 입고 뛴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서울 팬들의 마음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신진호가 상주로 떠난 뒤에도 서울의 공격진은 화려했다. 아드리아노와 데얀, 박주영의 이니셜을 딴 '아데박 트리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데얀은 서울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함께했다 ⓒ FC서울 제공

행복했던 기억이 과거가 된 순간, 상대적 박탈감이 드러났다

그러나 2018시즌을 준비하는 서울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2017년 저조한 성적으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놓친 것이 컸다.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공격수는 가장 싫어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것도 둘씩이나. 데얀은 수원 삼성에서 1년 계약을 맺었고 아드리아노는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의 품에 안기며 녹색 유니폼을 입었다. 팬들이 콧대를 높이고 자랑했던 '아데박 트리오'는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그들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박주영뿐이다.

박주영의 재계약 소식은 데얀의 수원 이적 소식 이후 여러 가지 의미로 분노했던 서울 팬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아드리아노의 전북 이적 소식에 서울 팬들은 또 한 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우리 팀이었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데박 트리오'가 실제로 호흡을 맞춘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그들 모두 득점에 특화된 공격수였다. 그들의 영향력이 새삼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서울은 박주영과 오스마르를 지켜냈다. 신진호도 군 복무를 마치고 팀에 합류했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지난 시즌 얼굴을 보지 못했던 송진형도 출전을 기다리고 있다. 박동진과 정현철 등 알짜배기 자원도 영입했다. '레알 출신' 김우홍과 U-20 대표 조영욱은 앞으로 서울이 키워낼 차기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러나 서울 팬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 합류한 선수들보다도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던 걸출한 공격수들이 팀을 떠났다는 것에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행복했던 기억이 과거가 된 순간, 그리고 현재 그 행복이 이어지지 않음에 불만족을 나타내는 사례들을 이미 지난가을에 경험했다. 우리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부진에 분노했다. 선수들을 욕하고 감독을 욕하다가 축구협회의 개혁까지 외쳤다. 서울 팬들이 '이진법 축구'를 구사한다며 '아웃'을 외쳤던 최용수 감독을 그토록 그리워하는 모습은 마치 히딩크 감독 복귀설에 흥분했던 국가대표 축구 팬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서울 팬들도 곽태휘와 황선홍 감독에 실망했다. 구단의 '리빌딩'은 충분한 설득력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서울의 전지훈련 소식도 좋지 않다. 5경기 중 4경기에서 득점이 없었다. 팬들이 서울 구단의 임원진 교체를 요구했다거나 구단 임원진에 개혁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데얀은 서울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함께했다 ⓒ FC서울 제공

서울 구단은 팬들의 움직임에 대비할 수 있을까

상대적 박탈감은 불만족이다.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느끼는 불행을 극복하고 충족시키려 할 것이다. 서울 팬들은 앞으로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서울 구단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워싱턴 대학교의 이용재 교수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사회적 박탈감과 지역사회 정체성, 팀 정체성에 관한 연구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유발되면 자존감이 실추되며 실추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기전이 작용하게 되는데 이를 정체성 관리전략이라고 한다"라면서 "정체성 관리전략은 크게 사회이동, 사회적 경쟁, 사회적 창조로 구분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회비교를 통해 자신의 자존감이 실추되면 개인은 단순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며 "정체성이 낮은 개인은 사회적 이동을 통해 다른 집단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용재 교수에 의하면 서울 팬들의 극단적인 선택은 '팬고이전'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이 사랑한 공격수들은 팀을 떠났다. 칼레드와 아드리아노는 SNS을 통해 "이 팀에는 미래가 없다"라며 팬들에게 'DM'으로 답장했다. 현재 서울 팬들은 팀 정책에 크게 실망한 상황이다. 이들은 팀 정체성과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도 발생할 것이다.

서울 구단 입장에서 이는 절대로 반길 일이 아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K리그 마케팅의 '좋은 예'를 남기고 있다. 그들의 마케팅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 '숫자'가 그들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많은 입장권을 팔았고 항상 최다 관중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들을 끌어모았던 서울이 스타들을 다른 팀에 빼앗기면 팬들도 빠져나갈 것이다. 현재 서울의 모습을 보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도 있었던 팬들을 겨우겨우 박주영의 재계약으로 잡아놓은 듯한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BIRF(Basking in spite of reflected failure)'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BIRF란 팀 성적이 부정적일지라도 팬들의 태도가 팀에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효과다. 사람들은 충성심을 높게 평가하므로 팀 성적이 저조해도 지속적으로 팀을 응원함으로써 자신의 충성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람마다 해석은 다르겠지만 비슷한 예로는 시카고 컵스와 리버풀, 한화 이글스 팬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효과라고 생각한다. 이미 일부 서울 팬들은 이 BIRF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데얀의 이적을 '배신'으로 규정하고 팀에 남은 박주영을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팀을 향한 충성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모습이다.

BIRF 효과는 팬들을 더 뭉치게 만들겠지만 이도 서울 구단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서울은 자존심이 굉장히 높은 구단이다. 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이라고 직접 말하고 있다. 그런 구단이 BIRF 효과로 인한 팬들의 조롱 섞인 충성을 바라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서울 구단의 마케팅 방향을 살펴보면 북측의 서포터들보다 동측의 팬들을 위한 장치들이 실험적으로 계속 도입되고 있다. 치어리더와 함께 등장한 드럼 응원의 형태는 북측 서포터들과의 기 싸움으로 보일 정도다. 충성도 높은 북측 서포터들보다 '상대적으로' 동측에 모인 팬들에게 더 관심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서울 골대 뒤의 서포터들은 패배의 해학을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리버풀의 한 팬은 모하메드 살라와 사디우 마네, 호베르투 피르미누를 칭송하면서도 리버풀이 필리페 쿠티뉴를 바르셀로나로 이적시킨 것에 안타까워하는 해학적인 응원가를 지었다. 이는 리버풀 팬들 사이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한화 이글스 팬들은 "나는 행복합니다" 응원가를 부르곤 했다. 그러나 K리그 우승과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모습을 기억하는 서울 팬들은 조롱 섞인 응원가를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2017년 그들은 저조한 성적을 해학으로 소화해내지 못했다. 그들은 일단 분노했고 우울함을 나타냈으며 아직 이 우울감은 극복하지 못한 상황이다.

데얀은 서울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함께했다 ⓒ FC서울 제공

전반기 성적 챙기지 못하면 오스마르도 장담 못 한다

이용재 교수는 상대적 박탈감이 유발되면 지역사회 정체성과 스포츠팀 정체성이 강화된다는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은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경쟁하며 살던 사람들이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가뜩이나 지역 연고 개념이 흐릿한 서울이라는 땅에서 서울이라는 팀에 팬들이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경쟁을 대신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팀에서 조차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팬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팀과 선수의 계약은 감독보다도 구단의 협상 능력에 달려있다. 서울 구단은 그들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큰 그림을 실현할 적임자로 황선홍 감독을 선택했으며 구단은 그를 신뢰하고 있다. 그래서 황선홍 감독의 어깨가 무겁다.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데얀과 아드리아노로 느껴지는 상실감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티켓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특히 전반기가 중요하다. 전반기부터 삐걱거려 상위권에 안착하지 못한다면 서울이 과연 오스마르를 잡을 수 있을까? 오스마르마저 잃게 된다면 등을 돌리는 팬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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