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닝복을 즐겨 입던 광주 박진섭 감독도 정장 차림으로 경기장에 등장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순천=김현회 기자] 한때 한국 축구 오른쪽 측면을 지배했던 선수가 있다. 왼쪽에 이영표가 있다면 오른쪽에는 이 선수가 있었다. 우리는 이걸 줄여 ‘좌영표 우진섭’이라고 했다. 박진섭은 영리한 플레이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박진섭은 이제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이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광주FC 사령탑에 올라 다시 한 번 승격의 영광을 노리는 박진섭 감독을 전지훈련지인 전남 순천에서 직접 만났다. 20년 전 ‘둘리’는 어디가고 한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반갑다.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나.

현재 여기 전남 순천에서 1차 동계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이틀 쉰 뒤 일본에 가서 전지훈련을 더 이어가고 그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목포로 이동해 마무리 훈련을 할 계획이다. 원래 오전과 오후, 저녁 세 차례에 걸쳐 훈련을 했는데 이제는 연습경기 위주로 훈련하면서 하루에 오전과 오후로 나눠 운동하고 있다.

울산현대미포조선에서의 플레잉코치 경험을 포함해 성인 무대에서 코치로 일하다 이제 정식 프로 감독이 됐다. 실감하나.

원래는 훈련할 때 뒤에서 구경만 했는데 선수단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게 가장 많이 변한 것 같다. 포항에 있을 때는 김기동 수석코치가 있어서 난 그 뒤에 서 궂은 일 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는 감독이 돼 앞에 나서서 말해야 하는 역할이 아직은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밝고 유쾌한 유경렬 수석코치가 있지 않은가.

그건 그렇다. 유경렬 수석코치가 말이 참 많다.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라 선수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유경렬 수석코치는 그런 걸 잘한다. 워낙 밝고 리더십이 좋다. 선수 시절부터 표정이 액션이 크기로 유명하지 않았나. 새로 온 브라질 피지컬 코치가 유경렬 수석코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표정과 액션이 커서 몸 동작을 보고 다 알아듣더라.

유경렬 코치도 프로 지도자 경험이 없다. 둘이 선수 시절 같은 울산 소속이었는데 ‘인맥 축구’가 작용한 건 아닌가.

남들이 봤을 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수비 라인에서 뛰면서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축구에 대한 철학도 비슷했다. 나와 선수단 사이를 빠르게 하나로 만들어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데려왔다. 유경렬 수석코치도 내셔널리그 천안시청에서 오랜 시간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여러 가지 좋은 면들을 많이 봐 와서 수석코치로 기용하면 도움을 얻을 게 많다고 생각했다.

유경렬이 수석코치가 현역시절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당신이 광주FC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광주는 이제 막 강등된 팀이다.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은 팀이어서 금방 선수들과 녹아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전 지도자였던 남기일 감독과 김학범 감독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성격이었는데 나는 그런 과는 아니다. 아마 지도 스타일의 차이에 대해서는 선수들이 느끼고 있을 거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팀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팀을 선택하게 됐다.

현재 어떤 훈련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나.

이제 막 휴가를 얻었던 선수들을 소집한 거라 당연히 체력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해야 될 전술과 조직적인 플레이 등 기초를 짜고 있는 상태다.

훈련장에서 가장 앞장서 훈련에 임한다고 들었다. 그 나이에 힘들지는 않나.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운동장에 있는 게 가장 즐겁다. 될 수 있으면 선수들과 같이 땀 흘리려고 하는데 유경렬 수석코치도 나하고 똑같은 생각이다. 둘 중 한 명만 그래야 하는데 서로 뛰고 싶어해 그게 문제가 된다. 그래도 포항에 있을 때는 전체적인 지시를 하는 감독님이 따로 있어 상관없었지만 여기에서는 같이 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 먹어서 많이는 뛰지도 못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축인 송승민과 김민혁이 팀을 떠나 포항으로 갔다. 선수 이탈이 아쉬울 것 같다.

감독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쉽다. 좋은 선수들을 더 데리고 있고 싶은 건 어떤 감독이나 다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광주에 오게 되면서 선수 이탈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강등 당한 팀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후회되는 부분도 있다.

어떤 부분이 후회되나.

작년에 포항에 코치로 있을 때 최순호 감독님과 선수 수급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광주에서 뛰는 송승민과 김민혁을 데려오고 싶었다. 그래서 최순호 감독님께 이 두 선수를 적극 추천했다. ‘영입하면 잘 쓸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광주 감독이 될 줄 알았겠나. 내가 그때 말만 좀 조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모르는 거다. 당신이 광주 감독에 부임할 줄 아무도 몰랐고 그 선수들이 당신이 원래 있던 팀으로 가게 될 줄도 아무도 몰랐다.

그때 최순호 감독님이 내 의견을 물어보셔서 나는 ‘꼭 필요한 선수’라고 했다. 아마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 선수들이 성격이 안 좋답니다’라며 다른 팀 선수를 추천했을 것이다. 물론 송승민과 김민혁은 성격도 좋고 성실한 선수들이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위로의 말을 보낸다.

그래도 우리 팀엔 임민혁과 김정환 등 좋은 선수들이 또 들어왔다.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신인 중에서는 두현석이 많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선수 물갈이가 심한데 어린 선수 중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다.

유경렬이 수석코치가 현역시절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지난 시즌 목포시청 유니폼을 입고 FA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골키퍼 박완선을 영입한 것도 눈에 띈다.

박완선이 먼저 선발된 뒤 내가 감독으로 왔다. 골키퍼는 골키퍼 코치의 의견을 전적으로 참고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때 기존의 윤보상과 신입 박완선은 비슷한 스타일이다. 키가 큰 편은 아닌데 순발력과 빠른 기술이 좋은 선수들이다. 여기에 윤평국도 능력 있는 선수다. 골키퍼는 셋 중 누가 경기에 나갈지 모른다. 셋 다 이 경쟁이 쉽지는 않을 거다.

강등된 후 선수들이 줄줄이 빠져 나가는 팀이 많다. 송승민과 김민혁, 임선영이 이적했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선수들을 꽤 잘 지켜낸 편인 것 같다. 혹시 팬들의 화낼 만한 다른 선수 이탈이 더 있나.

없다. 지금 선수단에 합류한 선수들은 올 시즌을 함께 할 선수들이라고 봐도 된다. 그래도 골키퍼와 수비진에서 선수들을 지켜낸 건 다행이다. 중원에 여봉훈도 남게 됐고 그 뒤쪽 수비진들 역시 대부분 잔류를 선택했다. 지금 있는 선수 그대로 갈 것이다.

여기에 부대찌개에 라면사리 추가 같은 외국인 선수 영입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외국인 선수는 지금도 찾아보는 중이다. 본즈는 올해도 함께 가기로 했고 새 외국인 선수 시우를 영입했다. 그런데 지난 시즌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가 가장 실패했다는 점을 외국인 선수 영입으로 더 보완해야 한다. 지난 시즌 이 자리에서 골을 더 넣어줄 선수가 있었더라면 강등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자리를 채울 외국인 선수를 하루에 열 명씩은 보고 있는데 쉽지는 않다.

어떤 점을 가장 주목해 보는가.

팀하고 잘 어울릴 수 있는 선수였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골 결정력을 본다. 그리고 이왕이면 키 큰 선수를 선호한다.

키 큰 선수를 따지는 이유가 있나. 메시가 들으면 섭할 소리다.

의도한 건 아닌데 우리팀 선수들이 다 작은 편이다. 안영규나 홍준호, 김혜성 등 190cm에 가까운 선수들도 몇 있지만 평균 키를 확 깎아먹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그나마 지난 시즌에는 송승민이 있어 전방에도 어느 정도 신장 조합이 맞았는데 송승민이 팀을 떠나게 됐다. 내 키가 180cm인데 포항에 있을 때는 중하위권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나도 장신이다. 전방에서 피지컬을 바탕으로 저돌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선수가 있으면 좋겠다.

172cm인 나도 여기에는 내 눈높이에 맞는 선수들이 꽤 보인다. 임민혁이라던가 임민혁이라던가 아니면 임민혁이라던가.

경기를 풀어줄 작은 선수들의 능력은 출중하다. 당신이 말한 임민혁을 비롯해 두현석 등 좋은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최전방을 책임질 신장 있는 선수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지금쯤이면 눈에 확 들어오는 선수가 있어 유심히 살펴야 될 텐데 아직도 눈에 들어오는 선수가 없다. 키가 큰 거 같으면 기술이 너무 떨어지거나 느리다. 확실하게 마음이 드는 선수는 아직 없다.

정조국 같은 선수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하지만 정조국은 너무 비싼 선수라 엄두가 안 난다.

유경렬이 수석코치가 현역시절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선수단에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너무 어린 선수들 위주로 팀이 꾸려졌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 선수 보강을 할 때 경험 있는 선수들을 데려오고 싶었다. 성남에서 데려온 경험 많은 김태윤 등이 어린 선수들을 조율해 주는 역할을 잘 해줄 것이라 믿는다.

이제 프로 무대에 40대 감독이 많아졌다. 특히나 K리그 챌린지에는 당신을 비롯해 박동혁, 고종수, 김대의 등 프로 감독 경험이 없는 이들이 대거 등장했다.

박동혁 감독은 나하고 어릴 때부터 친했다. 내가 대학교 2년 선배고 울산에서도 같이 있었다. 대학교 시절 옛말로 하면 내 방 ‘따까리’였다. 그때 심부름도 시키고 많이 괴롭혔는데 요새도 자주 연락하고 밥도 먹는다. 그냥 서로 전화 통화하면 한탄부터 한다. 박동혁 감독도 경찰팀이라 힘든 점이 있고 나도 처음 프로팀 감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을 하소연한다.

올 시즌 박동혁 감독과의 설전을 기대해 봐도 좋을까.

물론이다. 박동혁 감독에게 ‘조심하라’고 전해달라.

알겠다.

경기장에서는 지고 싶지 않다. 아마 박동혁 감독도 그럴 거다. 아산과 경기를 하면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아산이 승격 경쟁에서 가장 앞서는 팀이고 부산도 만만치 않을 텐데 선수들에게 제발 박동혁 감독이 있는 팀한테는 지면 안 된다고 강조할 생각이다.

당신이 박동혁 감독보다 지도자로서 나은 점이 있다면 무얼 꼽고 싶나.

나는 현역 은퇴 후 부산 유소년 팀인 개성고 감독도 해봤고 부산에서 수석코치 생활도 했다. 포항에서도 2년 동안 코치로 지냈다. 아무래도 현장감은 내가 더 있지 않을까 싶다.

수원FC 김대의 감독과도 대학 동문이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4학년 선배였다. 당시 김대의 감독님은 최성용 코치와 함께 대표팀에 막 왔다갔다 할 때였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대상이었다. 나중에 K리그 챌린지 감독 관계도를 한 번 기사로 쓰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것이다.

고종수 감독과도 친한 편인가.

안 친한 건 아닌데 따로 통화를 하거나 그런 정도의 사이는 아니다.

그러면 안 친한 거다. 혹시 싸웠나.

그런 건 아니다. 그쪽 무리는 막 활발하게 앞장서는 스타일이다. 선수 생활을 할 때 고종수 감독이 “야 진섭아 놀러가자” 그러면서 손을 잡아끌면 나는 “그냥 방에서 쉴 거야”라고 거절하는 성격이었다. “아. 좀 같이 가자”고 막 그래도 나는 그냥 방에서 쉬는 게 좋았다. 그래서 친해질 수 없었다. 원래 또래마다 다들 활발한 그룹과 조용한 그룹이 있지 않나.

그때 활발한 그룹은 고종수 감독은 비롯해 또 누가 있었나.

고종수, 김남일, 이관우 등이 그 멤버들이다. 물론 그 선수들이 성실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성격이 밝고 활발했다는 뜻이다. 그때 뒤에 조용히 있던 애들은 나하고 (이)영표 같은 애들이었다.

그래서 ‘좌영표 우진섭’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것 같다.

그런가. 지금도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고맙다. 나도 대표팀에서 뛰었지만 월드컵은 나가지 못했다. 월드컵에서 국민들께 즐거움을 준 선수 만큼은 강렬하지 못해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좌영표 우진섭’을 기억해 주신다면 나에게는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내가 막 연락하고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혼자 있는 걸 좋아해 따로 영표와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다. 보면 인사하는 정도다.

유경렬이 수석코치가 현역시절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2000년대 초반 ‘좌영표 우진섭’은 가장 듬직한 조합이었다. 당시 가장 잘 맞는 선수는 누구였나.

(박)지성이가 아무래도 포지션상 내 바로 위에 있어서 잘 맞았고 박동혁과도 잘 맞았다. 지성이하고는 영문 이니셜도 같지 않은가. 영문 이니셜이 같은 ‘J S PARK’이어서 헷갈린다는 의견이 많아 처음에는 지성이가 ‘JI S PARK’를 쓰다가 나중에는 내가 ‘JIN S PARK’를 썼다.

선수 시절 별명이 ‘둘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떤가.

이제는 ‘둘리’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든 것 같다. 새로운 별명이 생겼으면 좋겠다.

어떤 별명을 원하나.

그래도 영리하게 머리를 잘 쓴다는 뜻의 별명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둘리’에서 이제는 ‘고길동’은 어떤가. 사고뭉치 어린 친구들을 이끄는 우리네 어른의 모습이다.

어린 친구들은 ‘고길동’을 잘 모르니 다른 별명을 지어달라.

고민해 보겠다. 2004년 아시안컵 네팔과의 경기에서는 당신이 혼자 5골을 넣기도 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

원래 학창시절에는 스트라이커여서 골 넣는 건 익숙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격수를 하다가 대학교 때부터 조금씩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국제대회에서 그렇게 많은 골을 넣어본 적은 없다. 아마 그 경기에서 도움도 하난가 두갠가 했을 거다. 상대가 약체라 골을 계속 넣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넣어도 우리 선수들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어차피 결과도 이미 나온 경기여서 세리머니 하기에도 창피했다.

하지만 당신은 2011년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으로 이적해 두 시즌을 뛴 뒤 은퇴했다. 대표 경력까지 있는 선수가 굳이 내셔널리그까지 가 은퇴할 이유는 없어보였는데.

고려대 시절 은사인 조민국 감독님이 울산미포에 계실 때였다. 전화가 와 “좀 도와주면 어떻겠느냐”고 먼저 부탁하셨다.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현역으로 한창 뛸 때도 은퇴하면 지도자의 길로 가겠다는 꿈이 확고했다. 플레잉코치를 경험하면서 지도자로 갈 수 있는 좋은 단계라고 생각했다. 은사님께 배우고 선수 활동을 하면서 지도자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처음 지도자 생활을 접하는 것이니 선수 활동을 하면서 그런 귀중한 경험을 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지도자를 경험했다. 그 중에 닮고 싶은 지도자가 있나.

훌륭한 선생님들을 많이 거쳤다. 다들 기억에 남는데 그중 김학범 감독님이 가장 인상에 많이 남는다. 훈련이 힘들기도 했고 무섭게 혼을 내시기도 했지만 화를 푸는 방법도 상남자 스타일이다. 앞에서는 되게 무섭게 하더라도 돌아서면 바로 잊고 웃으면서 대해주신다. 나는 그런 성격이 못 돼서 그런 분들을 보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신은 어떤 스타일인가.

막 화를 내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금방 돌아서면 풀리는 사람도 아니다.

연애하기 굉장히 힘든 스타일이다.

그런가. 어려운 사람인 거 같긴 하다.

김학범 감독은 선수단의 지리산 등반이 필수코스였다. 그가 롤모델이라면 지리산 등반 훈련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성남에서 뛸 때 김학범 감독님 지시로 지리산을 하도 많이 올라가서 내가 다시는 지리산 근처도 안 가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힘들었다. 4년 동안 김학범 감독님과 있으면서 1년에 네 번씩은 지리산에 갔다. 동계훈련을 순천으로 와서 한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지리산에 올랐다. 그렇게만 따져도 16번 등정이다. 이제 지리산에 자동차로 올라가는 길, 걸어서 올라가는 길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가다가 지리산이 보이면 “야. 다른 데로 돌아서 가자”고 한다. 그때 너무 힘들었다. 다시는 지리산 근처도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선수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안 갈 건가.

그렇다. 지리산을 16번 등정해 본 사람으로서 지리산은 너무 힘들다.

유경렬이 수석코치가 현역시절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방송 화면 캡처

올 시즌 광주의 좋은 성적도 좋은 성적이지만 성급한 사람들은 언제 승격할 수 있는지부터 묻는다. 승격이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는가.

언제 딱 승격한다고 못 박을 수는 없지만 당연히 승격을 목표로 삼고 첫 시즌부터 준비할 생각이다. 올해 이루지 못하더라도 내년에 승격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할 예정이다. 일단은 지난 시즌과는 팀이 달라졌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지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팀, 희망이 있는 팀으로 비춰졌으면 좋겠다. 전임 감독님들이 해놓으신 것에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면을 추가해 더 발전시키고 싶다.

그렇다면 성급한 질문보다는 보다 궁극적인 질문을 해보고 싶다. 당신은 앞으로 어떤 축구를 하고 싶나.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공격축구를 하겠다’ ‘시원한 축구를 하겠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한쪽으로 정의를 내리고 싶지는 않다. 균형적인 걸 많이 강조하는 편이다. 균형을 잡고 속도를 빠르게 하면서도 생각하는 축구를 하고 싶다. 현역 시절에 꾀돌이라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지도자로서도 영리한 축구를 추구하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과 광주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지난 시즌과는 달라진 스타일의 축구를 보실 수 있을 것이다. 와서 응원해 주시면 선수들에게 많은 힘이 될 것 같다. 재미있는 축구를 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한 번 강등된 팀이 다시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고 힘겨운 도전인 건 분명하다. 현역 시절 영리한 축구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진섭은 이제 지도자가 돼 그만의 축구를 선보이며 이 힘든 도전에 임한다. 과연 20년 전 ‘둘리’는 아직도 요리보고 조리보고 호이호이 초능력을 쓸 수 있을까.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