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정성룡, “팬이 준 종이 트로피 지금도 고이 보관 중”

정성룡
정성룡은 지난 시즌 팀이 J리그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와사키프론탈레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던 정성룡이 어느덧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참패 이후 비난의 대상이 됐던 그는 2015년 시즌이 끝난 뒤 K리그 수원삼성을 떠나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다. 그 사이 유망한 골키퍼들이 K리그에서 활약하면서 정성룡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지난 시즌 그가 J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휴가를 받아 고국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정성룡을 일본 출국 하루 전인 지난 5일 만났다. 정성룡은 잘 지내고 있었을까.

반갑다. 한국에 돌아와 어느 매체와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몇 군데서 연락이 오긴 했는데 딱히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정중히 사양했다.

이렇게 <스포츠니어스>의 단독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요즘 어떻게 지냈나.
휴가를 받고 가족과 한국에 돌아와 만나지 못했던 분들을 만났다. 수원 클럽하우스에 가서 감독님께 인사를 드리고 (염)기훈이 형과 (정)대세를 만나 밥도 먹었다. 대세가 요새는 대세더라. 어제(4일)는 모교인 경기도 광주중학교에 가 축구부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골키퍼 장갑 몇 개도 챙겨주고 치킨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따로 고기 사 먹으라고 회식비도 조금 전달했다. 그리고 오른쪽 허벅지를 다쳐 한국에서 휴가 기간 동안 재활에 꾸준히 임했다.

어떤 부상인가.
시즌 막판에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파열됐다. 10월에 다쳤는데 그때 재활 기간만 6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딱 일주일 쉬고 리그컵 결승전을 뛰었다. 이후 정규리그에서도 한두 경기 결장한 뒤 나머지 경기는 다 참고 출장했다. 5~6경기를 그렇게 아픈 채로 소화했다.

지금은 괜찮아졌나.
아직 완벽하게 회복된 건 아니다. 그런데 휴가 기간 동안 꾸준히 재활 치료를 받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내일(6일) 일본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팀 훈련을 하다 10일에 전지훈련을 떠난다. 2월 10일에 정규리그 우승팀인 우리와 일왕배 우승팀인 세레소가 제록스컵에서 맞붙는다. 그때까지는 맞춰서 회복할 예정이다.

출국 준비는 다 했나.
나는 딱히 준비할 게 많지 않다. 그런데 일본으로 돌아가면 아이들 학교 진학 준비를 해야해 조금 바쁠 것 같다. 아이들이 9살, 8살, 7살이다. 작년까지는 국제학교에 보냈지만 올해부터는 일본인이 다니는 일반 학교에 보낼 예정이다. 국제학교에 다닐 때는 통학에 한 시간이나 걸렸다. 가까운 역에 내려주면 스쿨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이제는 가까운 학교에 다니게 돼 조금 나을 것 같다. 아이들이 영어 학원도 다니고 축구도 일주일에 두 번씩 하는데 꽤 잘하더라.

그러면 아이들이 그 나이에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를 다 하는 건가.
아직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다. 그냥 배우는 단계다.

정성룡
정성룡을 일본 출국 하루 전에 직접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J리그에서 지난 시즌 우승을 경험했다. 축하한다.
우승의 여운이 꽤 오래갔다. 포항에서 2007년 K리그 우승을 거뒀고 성남에서 2010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뒀을 때를 제외하면 준우승에 머무를 때가 많았다. 그런데 J리그에서 2년 만에 우승을 차지해 너무 기뻤다. 가와사키의 창단 후 첫 우승이었고 극적인 우승이어서 여운이 더 오래 갔던 것 같다.

J리그 역사에 남을 극적인 우승이었다.
4~5경기를 남겼을 때 1위인 가시마와 우리의 승점차가 7점 정도였다. 그런데 가시마는 계속 비기거나 지고 우리는 계속 이기며 추격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는 무조건 이기고 가시마 경기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시마도 이기면 자력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오미야와의 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두는 사이 가시마는 주빌로와 0-0으로 비겼다. 가시마와 승점이 같았지만 골득실에서 우리가 앞서 우승을 거뒀다. 모든 게 불리한 상황에서 거둔 우승이었다.

우승을 경험하니 뭐가 좋던가.
우승한 뒤 카 퍼레이드를 했다. 그런데 팬들이 그렇게 많이 몰릴 줄은 몰랐다. 카 퍼레이드를 하고 코너를 도는데 ‘이제는 행사가 끝났구나’ 싶었지만 거기에서부터 또 시작이었다. 시민들이 4~5만 정도 모였다. 대단하더라. 원래 가와사키가 처음 시작할 때는 그 정도로 팬이 많은 팀이 아니었는데 시민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우승 당시 남모를 부상 투혼을 펼쳤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부상 이후 킥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가까운 수비수들에게 짧게 패스했다. 상대가 압박을 해와 가까운 곳으로 공을 줄 수 없을 때는 왼발로 킥을 했다. 5~6경기를 그렇게 소화했다.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는데 당신은 리그 마지막 5경기에서 딱 두 골만을 내줬다. 당시 가와사키의 5경기 성적이 4승 1무다.
정신력으로 버텼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에도 8강전에서 왼쪽 어깨 인대를 다쳤었는데 정신 무장을 하고 3,4위전에 나갔다. ‘몸이 아파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는 걸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어 시즌 막판까지 집중할 수 있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당신은 올 시즌 J리그에서 선방률이 무려 79%에 이른다. 페널티 지역 밖 슈팅 선방률은 92%다. 대단하다.
뭐 그런 집계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잘 모르겠다. 좋은 결과가 나온 건 내 앞에 있는 선수들이 다 같이 열심히 했다는 뜻 아닐까.

자기 자랑 좀 해달라. 이럴 땐 그래도 은근슬쩍 자기 자랑을 좀 해야 우리도 ‘일본에서 정성룡이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고 알 수 있다.
부끄럽다. 나는 별로 그런 성격이 못 된다.

J리그 챔피언 팀 주전 골키퍼가 생색 좀 내면 어떤가.
그냥 열심히 한 결과다.

정성룡
정성룡은 팀을 창단 20년 만의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가와사키프론탈레

처음 경험한 해외 생활인데 힘든 건 없었나.
아무래도 처음에는 언어 문제 때문에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일본어를 조금 공부해 가긴 했지만 처음에는 어려웠다. 2016년 시즌을 앞두고 전지훈련을 갔는데 운동장 안에서의 언어를 익히는데 주력했다. 골키퍼가 경기 도중 수비수들에게 하는 말들이 있지 않은가. 수비수와 소통하는데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하다 보니 금방 적응되더라. 골키퍼가 운동장에서 쓰는 말들은 정해져 있이 않은가. 지금은 경기 도중 수비수들과 의사 소통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

일본어는 많이 늘었나.
완벽하지는 않은데 처음 갔을 때보다는 늘었다. 지금은 서로 앉아서 짧은 대화는 충분히 통하는 정도다. 그래도 일본어가 들리는 건 잘 들리는데 말하는 건 조금 어렵다.

엔화가 많이 떨어졌다. 위로의 말을 전한다. 연봉에도 영향이 있지 않은가.
올랐다 내렸다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엔화 등락에 연연하지 않는다.

비트코인 등락에 인생을 건 이들도 많은데 엔화 등락 정도야 뭐 크게 민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시 연봉을 엔화로 받나.
연봉을 원화로 받는지 엔화로 받는지도 이야기해야 하나. 달러로 받는 선수도 있고 선수마다 다르다. 다른 선수들 계약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알겠다. 뭘로 받건 나보다는 많이 버는데 더 이야기해서 뭣하겠나. 일본에 있는 다른 한국 선수들과는 자주 교류하면서 지내나.
멀리 있는 친구들은 교류를 잘 못하고 그나마 간토 지역에 있는 한 7~8명은 그래도 작년에 만나서 한 번 밥을 먹었다. 이번에 요코하마FC에 배승진이 왔다. 그쪽 동네는 우리 지역에서 40분이면 간다. 조만간 만나서 밥 한 번 같이 먹기로 했다.

처음 경험해 보는 해외 생활이 좋을 때도 있나.
다른 나라의 환경이나 스타일을 배울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이 정말 팬들을 위한 마케팅을 잘하고 있다는 게 특히 피부에 와 닿았다. 가와사키가 ‘세븐일레븐’의 후원을 받고 있는데 가와사키 선수들이 ‘세븐일레븐’ 충전식 카드에 모델로 등장한다. 선수별로 한정해서 파는 거다. 그런데 선수들이 그냥 유니폼을 입고 모델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세븐일레븐’ 직원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 후원사와 함께한다. 이런 걸 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

J리그는 그런 마케팅을 참 잘하는 것 같다.
팬들을 위한 게 많다. 선수가 한 달 전부터 춤 연습을 해 치어리더 사이에서 공연을 한다. 치어리더와 똑같은 복장을 하고 화장까지 한 채 등장해 팬들에게 이벤트를 선사하는 것이다. 어느 날은 솔로 가수가 공연을 할 때 선수들이 백댄서로 서기도 한다. 팬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기꺼이 한다.

감바오사카에 있는 오재석과 황의조도 여장을 한 뒤 팬 서비스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오)재석이는 그냥 자기가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187cm의 거구인 당신도 일본에서 여장을 했나.
나는 안 했다. 선수라고 다 하는 건 아니고 구단에서 지정해 준다. 아마 나는 여장이 잘 어울리지 않아 시키지 않은 것 같다. 원래 활발하고 그런 거 잘 하는 애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애들 위주로 한다.

내년에 당신이 여장한 모습을 볼 수 있나.
아…. 나는 정말 힘들 거 같은데 구단이 시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당신은 K리그에 있을 때도 팬 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했다. ‘종이 트로피’ 일화도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한 팬이 매라운드 MVP를 직접 선정해 선수들에게 종이로 만든 트로피를 보내줬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도 이 종이 트로피가 왔다. 마음이 되게 고마웠다. 이렇게 직접 종이로 만든 트로피까지 보내주는 팬이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고마웠다. 다른 건 해드릴 게 없고 감사한 마음에 SNS로 종이 트로피 인증샷과 함께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년 동안 선수들에게 종이 트로피를 보냈는데 답장을 준 선수가 나밖에 없다고 하더라.

종이 트로피를 보내준 팬의 마음도 멋지지만 거기에 감사할 줄 아는 당신의 마음도 멋지다.
다른 트로피와는 다르게 팬이 만들어 준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그냥 너무 고맙더라. 이걸 보내주는 분도 이 인증샷을 올리면 뿌듯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도 이 종이 트로피는 우리집 트로피 진열장에 고이 보관돼 있다. 나에게는 다른 트로피 못지 않은 상이다. 앞으로도 잘 보관할 것이다.

정성룡
정성룡은 팬이 준 종이 트로피를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 이후 SNS에 ‘퐈이아’라는 글을 썼다가 호된 비난을 듣기도 했다. 사실은 그 글을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에서 굳이 다른 사람 이야기를 꺼내는 건 좀 그렇다. 그걸 누가 했다고 지금 말하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내가 한 게 맞다. 내가 그땐 잠시 미쳤었던 것 같다.

알겠다. 어떤 뜻인지 알겠다. 원래 솔직한 인터뷰를 원하지만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퐈이아’ 이후 조롱 섞인 비난도 참 많았다.
한 번은 대표팀 차출 때문이었는지 가족 여행 때문인지 공항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고등학생 정도로 돼 보이는 친구가 나를 보고 큰 소리로 “퐈이아”라고 외치더라. 그 옆에는 그 학생의 아버지도 있었다. 조금 거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이후 그 학생의 아버지가 와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셨다. 그 아이도 따라와서 사진 촬영을 요구했다. 그래서 웃으면서 “고마워. 응원해줘”라고 하고 기분 좋게 사인과 사진 촬영에 응했다. 그 분들도 나중에는 웃으며 돌아가셨다.

늘 그런 비난이 기분 좋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물론이다. 한 번은 우리 아들과 함께 이 동네(분당)를 가고 있는데 고등학생 네 명이 “퐈이아”라고 소리치는 거다. 그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다. 괜찮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한테 “새X야”라는 욕설까지 하더니 막 도망가더라. 거리가 좀 있었다. “퐈이아”까지는 괜찮고 나 혼자 있으면 그래도 참겠는데 아들이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안 좋더라. 그래서 아이를 과일가게에 잠시 맡겨놓고 쫓아간 적이 있다.

당신이 얼굴을 붉히며 누군가를 쫓아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무섭다.
내가 이 동네를 살아봐서 어디로 도망갈지 대충 다 안다. 그래서 쫓아가 반대쪽 버스 정류장을 보니 그 친구들이 보이더라. 그래서 지하도로 건너 가 잡았다. 나한테 욕을 한 애는 이미 버스를 타고 도망갔는데 옆에 있는 친구만 잡혔다. 그래서 “그러지 말라. 아무리 그래도 욕은 하는 거 아니다”라고 하면서 잘 타일러 보냈다.

마음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
그때 이후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열심히 하니 또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신다. 고맙다.

골대 뒤 수많은 상대팀 팬들이 골킥을 할 때마다 “퐈이아”를 외치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 같다.
괜찮다. 팬들이 축구장에 와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좋다. 팬들이 많이 와주는 게 우리 같은 선수들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한 선배는 나한테 이기고 있을 때 골킥하는 시늉하다가 원정 팬들이 “퐈이아”라고 할 때 멈추고 뒤돌아 호응 유도 한 번 하란다. 물론 웃으면서 넘겼다.

당신이 그렇게 상대에게 도발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비슷하게는 한 번 해봤다. 골킥을 하려다가 다시 찬 적은 있다.

수원 정성룡
정성룡은 수원 시절 든든한 수문장 역할을 했다. ⓒ수원삼성

혹시 J리그 진출이 그런 적지 않은 비난에 대한 부담 때문은 아니었나.
그런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해외 생활을 한 번 경험하는 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또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해 보고 싶었다. 비록 유럽 무대는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배울 게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비난이 덜해 마음이 편한가. 어떤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아마 벌써 나락으로 떨어졌을 거다. 2014년 월드컵 이후 다시 팀에서 비록 우승을 못했어도 동료들과 준우승을 만들었다.

나도 안티팬이 많은데 당신만큼 멘탈이 강하지는 못하다.
같이 한 번 이겨내는 걸로 하자.

당신은 되게 과묵하다. 원래 인터뷰라는 게 자기 자랑도 은근히 있어야 하는데 자기 어필을 굉장히 피한다. 나는 당신을 더 자세히 알리고 싶다. 왜 이렇게 과묵한가.
그런가. 원래 말수가 적다는 이야기는 좀 듣는 편이다. 말이 많은 선수들도 있다. (구)자철이나 (오)재석이 같은 애들은 말이 많다. 그런데 나는 걔네들이 비하면 조용한 편이다.

그래도 당신의 실력과 인성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혹시 앞으로는 선수로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아직 가와사키와 계약 기간이 남았다. 올 시즌이 끝나봐야 또 어떻게 될지 결정된다. 그리고 어느덧 33세가 됐지만 선수 생활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다. 은퇴 시기를 딱히 정해놓지는 않았다. 관리를 잘해야 한다.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 했다고 해 오래 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늘 노력해야 오래 할 수 있다.

알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수원에서 K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고 떠난 게 늘 마음의 빚이다. 언제 다시 그 빚을 갚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늘 마음 속에는 이 아쉬움이 있다. 지금도 이따금씩 생각날 때가 있다. K리그를 일본에서도 꾸준히 챙겨보고 있다. 늘 수원을 많이 응원했다. 팬들이 앞으로도 수원을 비롯한 K리그에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때론 자기가 가진 것 이상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이들도 많이 봐 왔다. 그것도 훌륭한 능력이다. 하지만 정성룡은 오히려 침묵해 손해를 보는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과묵했고 겸손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정성룡은 때론 과할 정도의 비난을 당하고도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가 J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일조했고 늘 감사한 마음을 안고 사는 훌륭한 선수라는 걸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한다. 정성룡은 박수와 응원을 받을 만한 충분히 자격이 있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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