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데얀은 여전히 어색하다. ⓒ수원삼성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한 예능 프로그램에 FC서울 데얀의 어린 소녀팬이 등장한 적이 있다. 이 어린 팬은 FC서울은 물론 데얀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에 보는 이들은 절로 ‘아빠 미소’를 지었다. 이 어린 팬은 이후 경기장에서도 다른 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나도 가끔씩 이 어린 친구의 근황을 올리는 어머니의 SNS에 들러 보기도 한다. 나 역시 어린 나이에 축구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이 귀엽고 어린 친구의 팬이다. 언젠가 경기장에서 한 번 마주치면 함께 꼭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어린 친구는 ‘데얀 팬의 대명사’가 됐다.

그런 데얀이 서울을 떠나 수원으로 이적했다. 다른 팀도 아니고 수원이다. 오랜 시간 축구를 봐 왔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대단히 충격적인 이적이다. 공식 보도가 나온 뒤 수원 유니폼을 입은 데얀 사진을 몇 번씩이나 봐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합성을 해도 퀄리티가 떨어지는 수준의 합성인 것처럼 어색하다.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데얀이 수원으로 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이런 소리를 했다가는 쌍욕을 먹었을 것이다. 시즌이 시작하고도 푸른 유니폼을 입은 데얀이 염기훈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은 한 동안 어색할 것 같다.

그런데 데얀의 이적 이후 관심이 엉뚱한 곳으로 쏠렸다. 바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 어린 팬의 심정을 다들 궁금해 했다. 그리고 몇몇 매체는 이 어린 팬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기사를 썼다. 하지만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사실이라면 별에 별 기사도 다 쓰는 <스포츠니어스>에서도 잠시 고민한 뒤 이 기사는 쓰지 않기로 했다. 어린 팬을 어른들이 너무 괴롭힌다는 생각에서다. 나 역시 이 팬의 심정이 궁금한 건 사실이다. 데얀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데얀이 라이벌팀으로 떠났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 아무리 궁금하지만 이건 어른으로서 참아야 할 호기심이다.

어린 나이에 이별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신해철은 어린 시절 키우던 병아리의 죽음을 잊지 못하고 어른이 돼 노래까지 썼다. 죽음까진 아니어도 모든 이별은 어렵다. 어른들도 이별이 어려운데 어린 친구들은 오죽할까. 먼발치에서 데얀을 바라보기만 했던 어른들에게도 이번 이적은 충격적인데 예능 프로그램 출연 이후 에스코트 키즈도 하면서 데얀과 추억을 쌓았던 어린 친구의 상처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어른들에게는 이적도 비즈니스지만 이 어린 친구는 어른들의 비즈니스를 이해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이 어린 팬을 주목하고 있다. 누군가는 SNS로 달려가 “이제 데얀을 따라 수원 팬을 하라”고 한다. 언론에서는 실명을 거론하며 어린 팬의 심정을 보도한다. 마치 성인 연예인 대하듯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하더라도 이 팬은 우리가 심경 고백을 들어야 할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니다. 축구팬 중 한 명일 뿐이다. 적어도 성인이 된 팬이라면 모를까 13살의 어린 팬이 슬퍼하는 모습을 기사로 담지도 말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스포츠에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미성년자의 슬픔까지도 팔지는 않았으면 한다.

데얀은 서울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함께했다 ⓒ FC서울 제공

이 어린 팬의 이름을 축구팬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지만 오늘 칼럼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젠가 또 이 어린 팬에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으면 직접 만나 묻기도 하고 사진도 공개하고 할 것이다. 이름도 크게 쓸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 어린 팬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픈 일을 굳이 들춰내 상처를 한 번 더 안기고 싶지는 않다. 이럴 때는 그냥 모른 척 놔두자. 축구에 영원한 내 편도, 네 편도 없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어린 팬이 데얀을 따라 수원으로 옮기건, 아니면 또 다른 서울 선수 팬이 되건 조용히 지켜봐주자.

결국엔 둘 중 하나다. 어린 나이에 잠깐의 관심으로 축구를 좋아하다가 점점 축구가 시들해지거나 아니면 선수 개인이 아닌 팀의 열혈 팬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내 주변에 많은 이들도 처음엔 한 선수 때문에 축구를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선수가 아닌 이 팀의 팬이 되더라. 이 어린 팬도 데얀 때문에 축구에 관심을 가졌지만 결국엔 서울의 열정적인 팬이 돼 오래오래 경기장을 찾을 수도 있다. 그때 생각해 보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한낱 배신자에 불과한 데얀에 열광했던 때를 웃으며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스스로 성장할 때까지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건 지켜봐주고 힘을 주는 것뿐이다.

이 과정에서 어린 팬의 심경을 궁금해 하고 거취를 궁금해 하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어른들의 호기심이 너무 잔인한 건 아닌가. 올 시즌 슈퍼매치가 열리고 푸른 유니폼을 입은 데얀이 그라운드에 나서면 많은 이들은 또 이 어린 팬에게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많은 어른이 호기심으로 어린 팬 한 명을 바라보는 건 그 자체로도 폭력이다. 슈퍼매치에 데얀과 이상호가 나오면 여기저기에 걸개가 내걸리고 욕설이 난무하고 야유가 터져 나올 게 분명하다. 이런 스토리는 축구에서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싸움에서 13살짜리 어린 애는 빼자.

이미 이 어린 팬은 제법 유명인사라 경기장에 가면 알아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 올 시즌 경기장에 가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데얀이 떠나서 어떻게 해?”라는 말을 인사처럼 들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을 주기 보다는 만나면 반갑다고 같이 응원 열심히 하자는 의미로 하이파이브나 한 번씩 해주자. 그게 진정 데얀의 이적으로 누구보다도 가슴 아플 이 어린 팬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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