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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세종=홍인택 기자] 강수일은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일, 그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실제로 행동하고 있었다.

지난 16일 정부세종청사 스포츠센터 축구장을 찾았다. <스포츠니어스>로 강수일의 초청 연락이 왔다.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과 소외계층,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모아 '제4회 드림컵'을 개최한다는 소식이었다.

축구장에 도착하자 강수일은 관계자들을 따뜻하게 반기고 있었다. 그는 대회를 주최한 만큼 바쁘게 뛰어다녔다. 어린아이들과 어울리며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사단법인 다문화교류네트워크와 전·현직 인천 유나이티드 멤버들로 구성된 아미띠에의 이름으로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축구를 알려주고 함께 뛰었다.

강수일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두천에서 태어난 그는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어머니의 헌신으로 축구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어머니께 효도하기 위해 대학 생활을 접고 인천에 입단하면서 인천 선수들과 연을 맺었다.

강수일은 "일본에서 훈련하면서 지내고 있었어요. 처음으로 해외에서 생활했는데 골도 넣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라면서 "팀이 강등되면서 좀 더 좋은 조건과 좋은 제안이 온 팀에서 활약하려고 준비 중이예요"라며 근황을 전했다. 강수일은 일본 자스파구사쓰 군마에서 뛰다가 내년부터 태국에 있는 랏차부리 FC로 팀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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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 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사실 강수일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발모제로 인한 도핑, 음주 운전과 운전자 바꿔치기까지 무거운 죄를 지었다. 인터넷에서는 그를 범죄자로 지목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다문화 가정, 소외계층을 위한 자선 축구 대회를 열어도 그를 향한 시선이 따가울 수밖에 없다. 강수일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강수일은 "분명히 제가 잘못한 일이 맞습니다"라며 인정했다.

그는 "어떻게 생각해도 제 잘못이에요.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 일을 겪고 난 후 정말 매 순간, 매 순간 조심하려 하고 불안해하고 겁을 먹고 있어요. 예전에는 무서울 거 하나 없이 살았는데 지금은 하나하나 무섭고 두려워요"라면서 "저는 정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힘들게 올라갔는데 전 기대를 실망으로 돌려줬어요. 변명할 수 없어요. 전부 다 제 잘못이고 너무 무서웠어요"라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잘못과는 별개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선 대회를 열었다. 그의 선행이 그의 과거 행적으로 가려지지는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이미지 변신을 위해 자선 대회를 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사건 사고 이전부터 다문화 가정을 도왔던 그에게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사건 이후로 이 대회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생각했어요"라고 밝히면서 "저는 잘못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가 추구하는 부분이 있었고 해야 할 일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아미띠에 선수들이 같이하는 일이예요. 많은 사람들이 격려해줬어요. 이 활동은 저 혼자 했다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아미띠에 이름으로 모인 선수들은 이 대회를 위해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한자리에 모였다. 전북 현대로 이적한 정혁도 신혼여행을 마치자마자 세종시로 달려왔다. 정혁은 "작년에는 제가 클럽 월드컵에 나가서 참여를 못 했어요. 좋은 취지로 모였는데 같이 해야죠"라고 전했다. 다른 선수들은 "(강)수일이가 사고를 쳐서…"라고 어렵게 말문을 열면서 "그래도 예전에 인천에서 같이 뛴 동료들이잖아요. 1년에 한 번 모이는 건데 되도록 참여해서 봉사하고 베풀려고 해요"라며 입을 모았다.

여자축구 선수들도 어린이들을 위해 특별히 모였다. 이천대교에서 뛰었던 정영아는 "(강)수일 오빠가 불러서 왔어요"라며 참가 배경을 설명했다. 정영아와 윤영글(경주한수원)은 행사에 참여하며 아이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을 뿐 아니라 재정적 후원도 잊지 않았다. 강수일은 "지인의 연결로 여자선수들도 2회 대회부터 참여했어요. 여자선수들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잘 노출되지 않거나 같이 어울릴 기회가 없다 보니 함께하게 됐어요"라며 "운동장에 남자들만 있는 분위기였는데 여자선수들도 참여하니까 아이들이 더 친근감을 느끼고 다가와요. 같이 섞이니까 저희도 즐겁죠. 보람이나 행복감을 느껴서 여자선수들도 매년 초청하고 있어요"라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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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일이 말하는 한국 사회와 차별

강수일이 다문화 가정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그도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인천 2군 시절 모 팀과의 경기에서 어떤 선수로부터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대표팀 훈련까지 합류하며 다문화 가정과 혼혈 가정에 희망을 주기도 했다. 그들에게 받은 기대와 사랑을 나누고 한국 사회에도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올해 처음으로 해외에서 축구를 했다. 그는 "일본에도 텃세는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은 축구로 극복할 수 있었어요"라며 해외에서 느낀 점을 밝혔다. 그러면서 "뉴스를 보니까 요즘 서울에서는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한국 학생들이 많이 다른 곳으로 전학 간다고 하더라고요. 다문화 가정 아이들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하던데 그런 부분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른들이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은 그대로 보고 자란다고 생각해요. 저 어릴 때보다 지금이 지능적으로, 혹은 격하고 과하게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전했다.

그의 지적은 사실이다. 최근 서울시와 시교육청이 구로, 금천, 영등포구를 교육국제화특구로 지정하는 방안을 협의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다문화 학생이 많아지면 한국인 학생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교육 슬럼화'가 지적됐다. 일각에서는 국제학교 설립 제한이 풀리면서 일부만을 위한 '특권 교육'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백인과 중국 학생들 위주의 국제학교와는 다르게 다문화 학생 비율이 높은 학교는 직업 교육 위주로 이어져 한국 학생들이 빠져나간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은 매우 지능적이고도 정치적인 사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BBC 코리아에서는 '콩고 왕자'로 불리는 난민 출신 라비와 조나단, 타임지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한현민의 인터뷰를 전했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검은 피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전달하며 그들이 겪은 차별 경험을 공유했다. 그들은 유쾌하게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내용은 절대 유쾌하지 않았다. 어쩌면 같은 어려움을 공유했던, 그들만이 표현할 수 있었던 유쾌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강수일을 비롯한 다문화 가정 관계자들은 축구로 차별에 맞서고 있다. 공 하나로 피부색, 성별, 학군은 잊혀졌다. 아이들은 공 하나만 있어도, 혹은 공이 없어도 운동장에서 뒹굴며 즐겁게 어울렸다. 어른들도 어느새 아이들과 한마음이 됐다. 대회에 참여한 심판은 판정은 뒤로하고 직접 공을 차며 어울렸다. 그 심판은 "무진장 즐겁습니다.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라며 껄껄 웃었다. 강수일도 "아이들과 같이 뛰면 마음이 순수해지는 것 같아요. 오늘도 한 아이는 되게 까불던데 '아, 나도 어릴 때 저랬을 텐데'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라며 감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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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

대회 이름이 왜 '드림컵'인지 생각해봤다. 강수일은 어려운 아이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꿈을 현실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네 번째로 열린 드림컵에는 축구를 하기 위해 다양한 환경의 어린아이들이 모였다. 남수단의 희망으로 꼽히는 임마누엘 마크와 마틴 사위도 자리에 함께했다. 임마누엘과 마틴은 낯선 추위에 '롱패딩'을 껴입었으면서도 아이들을 보며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인식 다문화교류네트워크 이사장은 아이들이 축구로 하나가 되길 원했다. 그는 글로벌 시대를 마주하며 다문화 가정이 우리나라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하나'를 강조했다. 그는 강수일을 비롯한 아미띠에와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그들을 '선생님'으로 모시며 격려했다.

강수일은 대회를 마무리하며 한 가지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이 대회를 매년 겨울에만 하는데 여기 모인 다문화 가정, 소외계층 아이들은 항상 축구를 하고 싶어 해요. 형편이 어려워서 축구를 못 하고 있어요"라면서 "저는 더 나아가서 운동으로 교육이나 예절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단체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싶고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전도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강수일은 더 큰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는 "나중에는 각 지역에 아미띠에 축구단을 만들고 싶어요. 아미띠에 축구단을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아미띠에는 인천 출신들이 모인 만큼 코치 자격증을 지닌 인물들도 있다. 그의 꿈은 충분히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강수일은 마지막으로 "내년이면 벌써 5주년이네요. 인천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니만큼 내년에는 인천에서 개최하려고 해요. 인천 유나이티드 구단도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다. 그의 말이 현실로 이어진다면 내년에는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이 실제 축구 경기가 펼쳐지는 축구 전용경기장에 모일 수도 있다. 그 속에서 꿈을 품고 훗날 선수로 도약하는 아이들도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부디 편견과 차별을 벗어나 축구로 주목받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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