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삼성 제공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낯선 이슈가 축구계를 뒤덮었다. 그동안 없었던 일이기에 신기한 풍경이다.

K리그 클래식 수원삼성이 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자이크로와의 용품 후원 협약을 체결했다. 2002년 이래 16시즌을 아디다스와 함께 한 수원은 아디다스의 사업 전략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다. 아디다스가 이번 시즌 중반 수원에 사실상 결별을 통보하면서 새로운 후원사를 찾아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장의 분위기가 최악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수원은 리그 우승 4회, AFC 챔피언스리그(전신 포함) 우승 2회, FA컵 우승 4회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의 큰 변화와 부침을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 중 하나임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명문 타이틀은 K리그 내에서만 유효하다. 오로지 시장의 논리로 돌아가는 용품 시장에서는 K리그는 찬밥 신세에 가깝다.

수원은 올해 중순부터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섰다.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브랜드도 접촉 명단에 있었다. 하지만 반응은 냉혹했다. 아예 거절당하거나 수원이 아디다스로부터 받아온 후원 규모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FC서울과 전북현대와 더불어 팬 많기로 소문난 수원이 이 정도 대우인데 하물며 다른 구단은 더 심각했다.

수원과 함께 아디다스로부터 후원을 받아온 울산현대와 부산아이파크는 기존에도 아디다스로부터 디자인, 수량 등 여러 측면에서 큰 배려를 받지 못했다. 이름값은 높았지만, 실속이 그에 못 미쳤던 셈이다. 한 구단은 후원사가 요구하는 최소 수량을 맞추지 못해 인근 국가의 지사를 거쳐 팬들에게 판매할 용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조기축구와 같은 생활체육 분야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프로팀에서 사용한 것이다.

소수의 인기 구단을 제외하면 K리그의 용품 후원 규모는 실로 놀라울 수준이다. 많아서 놀라는 게 아니라 ‘이 정도밖에 안 돼’라는 말이 함께 나온다. 현금 지원을 받는 건 전 구단 중 10%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용품(현물) 지원도 성인팀에게 한정되는 등의 조건이 걸려있기도 하다. 또, 분명 용품 후원 계약인데 반대로 구단이 용품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총체적 난국이다. 이제 K리그를 쳐다보는 글로벌 브랜드는 전혀 없다. 중소 브랜드로 취급받는 후원사도 손을 떼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리는 상황이다.

눈에 보이는 후원 규모도 걱정거리지만 더 큰 문제는 용품 사업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 부족이다. 자이크로 최창영 대표는 “구단과 후원사 간의 협약이 체결된 뒤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실무자끼리는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구단은 눈에 보이는 이익을 요구하고 후원사는 시장의 현실을 거론하며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팬들은 유럽 명문 구단의 메가 스토어(용품 가게)처럼 다양한 상품을 내놓기를 원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지금 파는 물건이라도 제대로 만들라고 주문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K리그 구단은 많지 않다. 생색내기용으로 소량의 용품을 판매하거나 가격, 디자인 측면에서 팬들의 요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프로축구의 현실을 탓한다. 악순환을 스스로 반복하는 셈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시선부터 바꿔야 한다. 팬이 적으니까 안 된다는 하소연에 앞서 소수의 팬이라도 그 인원이 모두 사고 싶어 하는 수준의 용품을 시장에 선보인다면 분위기는 분명 바뀐다. 그것이 당장 전체적인 수익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보고 나아가야 한다. 말로만 지역밀착을 외칠 것이 아니라 내부 단속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후원사 직원은 “K리그 전체적으로 상품(MD) 사업에 대한 인식이 떨어진다”면서 “구단의 요구대로 제품을 만들고 난 뒤, 퀄리티(질)에 대한 비난을 우리가 홀로 감당하는 게 제일 힘들다. 우리도 생각이 있지만 구단 요청에 맞출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후원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항변이다. 물론 후원사의 역량이 부족한 것도 질책의 한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구단들의 태도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K리그의 모든 부분에 경고를 넘어 위기 딱지가 붙었다. 특히 수익과 관련된 부분은 생명유지장치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상태다. 수원과 자이크로의 협약 이슈는 웬만한 선수 이적보다도 큰 파장을 불러왔다. 아직은 희망이 남아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K리그에는 지금보다도 더 많은 축구 외적인 이슈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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