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평창 올림픽 출전 박탈, 정말 악재일까?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 IOC MEDIA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러시아의 평창 올림픽 출전을 금지했다. 러시아는 국가 주도의 도핑 조작 스캔들로 구설수에 올랐다. 2014년 독일 공영방송 ARD는 60분짜리 스포츠 다큐멘터리 <도핑의 비밀: 어떻게 러시아는 금메달을 만들었나?>를 방영했다. 해당 방송은 스포츠 저널리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에 의해 착수된 조사 보고서에는 내부고발자인 율리아 스테파노바의 이름이 100번도 넘게 등장했다.

러시아 도핑 스캔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하요 제펠트는 독일 스포츠 탐사 전문 언론가이자 방송 프로듀서다. 그는 율리아의 생생한 인터뷰와 탐사 보도로 러시아의 만행을 고발했고 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가 평창에 오지 못하게 한 장본인이나 다름없다.

내부고발을 단행한 율리아와 그의 남편 비탈리 스테파노프는 러시아의 역적으로 몰렸다. 제펠트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제펠트는 지난 5월 서울과 평창에서 열린 세계체육기자연맹(AIPS) 총회에 참석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보도에 앙심을 품은 일부 세력에 의해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등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현장에서 “스포츠 기자는 절대로 스포츠 조직의 동반자나 팬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이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며 언론의 감시 비판 기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 IOC MEDIA

도핑으로 박탈당한 러시아를 걱정하는 언론

어제(6일) IOC는 스위스 로잔에서 집행위원회를 열어 러시아 선수단의 2018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금지했다. IOC는 약물 검사를 문제없이 통과한 러시아 선수들은 개인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들은 러시아 국기가 박힌 유니폼 대신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의 일원으로 ‘OAR’과 올림픽 오륜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는다.

러시아는 이번 IOC의 결정으로 인해 도핑 문제로 올림픽 출전 징계를 받은 최초의 나라가 됐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 인종 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펼쳤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가 단위의 출전 자격을 박탈당한 바 있다.

해당 소식을 전달했던 국내 언론의 헤드라인은 그야말로 ‘난센스’였다. 해당 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한 공영방송, 통신사, 스포츠 매체들은 이번 러시아의 출전 자격 박탈이 평창 올림픽에 ‘악재’가 될 것이며 러시아 스포츠 선수들이 보이콧을 할 가능성도 있다며 ‘흥행’을 걱정했다. ‘반쪽짜리 올림픽’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NHL의 올림픽 불참에 이어 피겨 스타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빅토르 안의 출전을 걱정했다. 한 매체는 “우사인 볼트가 빠진 육상이나 다름없다”라며 평창 올림픽을 걱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평창 올림픽에 대한 문제점은 수도 없이 밝혀졌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었다. 이미 지어버린 거대 경기장의 사후 활용도 문제가 됐다. 올림픽 개최 과정에서 거주지를 떠나야 했던 지역 주민들을 걱정하는 목소리, 올림픽 인프라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과 안전사고, 각종 환경 문제 등을 경고하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최악의 올림픽을 막을 최후의 보루였던 분산 개최는 박근혜 정부에 의해 저지당했다. 이와중에 동계 스포츠의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NHL은 IOC와의 대립으로 평창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거기에 동계 스포츠 강국 러시아도 빠졌으니 평창 올림픽은 수많은 걱정거리 위에 또 하나의 걱정거리를 안게 된 셈이다.

국내 언론이 러시아의 평창 올림픽 불참을 걱정스럽게 본 이유는 이해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막을 수 없는 이 ‘천덕꾸러기’ 올림픽을 어떻게 해서든 최선의 형태로 이끌기 위해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체육 정책의 하나로 삼았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도 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육지책을 다 쓰고 있다. 올림픽 개막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흥행을 기대해야 그나마 ‘선방’할 수 있다. 이젠 정말 올림픽이 예상외로 잘 되기만을 바라야 한다. 현재 평창 올림픽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정서는 딱 이 정도다.

외교적으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러시아는 IOC의 결정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올림픽 위원회(ROC) 알렉산더 쥬코프 위원장은 국가 차원 출전 불허 결정에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겠다”라는 뜻을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을 보이콧하지 않겠다”라고 밝히며 “선수들의 출전 참가를 막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지만 동시에 도핑 혐의와 소치 올림픽 당시 성적 조작 혐의를 부인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러시아는 중국과 더불어 북한에 관한 여러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다. 외교적 측면을 고려한다면 WADA나 미국올림픽위원회처럼 “환영한다”라는 표현은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 IOC MEDIA

부족한 스포츠 감수성 그대로 드러낸 언론 보도

평창 올림픽을 대하는 우리나라의 정서나 외교적인 배경을 고려했을 때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수장인 이희범 위원장의 발언도 이해는 된다. 이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IOC가 결정을 내린 사안인 만큼 조직위도 따를 수밖에 없다”라고 전하며 “올림픽 흥행을 위해서는 러시아 선수단이 러시아 깃발을 들고 참석하는 게 최선이지만 조직위가 IOC의 결정을 반대할 힘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 운영을 총괄하는 위원장으로서의 위치가 있고 역할이 있다. 흥행을 걱정하는 것은 그의 일이다.

한편 제펠트가 말했던 스포츠 언론의 역할을 고려하면 언론은 이 위원장의 말에 비판적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아무리 올림픽 대회의 권위가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올림픽은 올림픽이다. 올림픽에 깃든 스포츠 정신은 스포츠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담고 있다. 모두가 차별 없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기록에 도전하며 공정하게 경쟁하는 스포츠의 본질 말이다. 러시아는 선수들에게 약물을 주입하면서 ‘공정성’이라는 스포츠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IOC는 위대한 결정을 했다. IOC는 그동안 흥행이나 대회 권위 측면에서 그 위상이 예전 같지 않지만 이번 결정은 올림픽이라는 대회의 위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나 다름없다. 푸틴 대통령은 “정치적 동기에서 내려진 결정으로 보인다”라고 밝혔지만 정치적 사안을 제쳐두고서라도 러시아의 출전 참가를 막을 명분은 분명히 있었다. 흥행보다 스포츠의 공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했다는 측면에서 그동안 IOC의 괴리감으로 남아있던 아마추어리즘의 회복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었다.

요동치는 메달권이나 흥행을 먼저 걱정하는 보도 형태는 국내 언론의 부족한 스포츠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IOC는 그동안 관련 사건을 정밀 추적하며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러시아 선수 중 도핑 조작에 연루된 25명의 기록과 성적을 삭제하고 메달 11개를 박탈했다. 맹점은 러시아가 내부고발과 여러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IOC는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러시아의 평창 올림픽 출전 박탈은 평창에는 악재가 아니다. 오히려 도핑 국가라는 불명예를 그대로 떠안은 러시아에 악재라면 악재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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