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룡은 지난 시즌 팀이 J리그 챔피언에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와사키프론탈레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국가대표 경기가 끝난 뒤 패배의 책임을 1차적으로 뒤집어 쓰는 이들이 있다. 중국에서 뛰는 수비수들이다. 그들이 불안한 모습을 보일 때도 분명히 있지만 중국파 수비수가 패배의 원흉이라고 콕 집어 말하는 건 동의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해외에서 뛰는 공격수들은 실수를 해도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뛰는 수비수들은 잘하다가 한 번의 실수만 범해도 ‘중국화 논란’에 온갖 욕을 다 먹는다. 나 역시 중국에서 뛰는 선수들의 도전 의식 부족을 안타까워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매 경기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퐈이아’가 된 정성룡, 그의 수모

패배의 책임을 중국파 수비수들에게 씌우기 전에는 정성룡이 그런 존재였다. 그에게는 막을 골만 막고 먹힐 골은 손도 대지 않고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여기에 2014 브라질월드컵 졸전 이후 SNS를 통해 남긴 ‘퐈이아’라는 한 마디는 그런 정성룡을 더 많이 욕먹는 선수로 만들어 버렸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과 같은 모습에 SNS 문제까지 일으켰으니 지탄을 받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K리그에서도 이따금씩 큰 실수를 하기도 했다. 정성룡은 가뜩이나 이전부터 조롱을 당하고 있던 상황에서 지난 2013년 포항전 어이없는 실수로 ‘덩크슛’ 논란까지 일으키며 경기 안팎에서 비웃음을 사기 시작했다.

정성룡은 이때부터 ‘정퐈이아’가 됐다. 골킥을 찰 때면 상대팀 팬들이 한껏 기를 모아 ‘퐈이아’를 외쳤다. 조금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 같았다. 대중은 정성룡이 공을 찰 때마다 ‘퐈이아’라고 외친 뒤 낄낄댔다. 하지만 이 ‘퐈이아’는 정성룡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는 주장도 신빙성 있게 다가오고 있다. 아내가 SNS를 관리하고 있었고 브라질월드컵 후 귀국 길에 아내가 대신 올렸다는 것이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다 ‘퐈이아’라고 썼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정성룡의 SNS 계정은 정성룡 본인이 주로 쓰던 이메일 주소 등과는 달랐고 아내의 이니셜을 딴 계정이었다.

하지만 정성룡은 이 일에 대해 끝까지 입을 닫았다. 아내가 올린 글이라고 변명하지 않았고 그대로 비난을 안고 갔다. 그리고는 조롱이 있을 때마다 “더 자극받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 그가 쓴 글이 아니라는 정황이 꽤 설득력이 있지만 정성룡은 단 한 번도 누구를 탓하거나 변명하려 하지 않았다. 길에서 한 팬이 ‘퐈이아’를 외치자 정성룡이 웃으며 “경기장에서 해주세요”라고 넘어갔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말도 했다. “흔들리면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 할 거 같아서 평소처럼 행동했다.” 그는 절대 누군가에게 조롱을 당할 만큼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 대표팀이 부진하면 골키퍼와 수비수들이 모든 비난을 뒤집어 쓰는 상황에서 정성룡은 필요 이상의 조롱을 받아왔다. 몇 번 대화를 나눠본 정성룡은 인격적으로도 훌륭했다.

J리그 최고 위치에 오르다

실력은 어떨까. 그는 심리적으로 흔들리던 시기 K리그에서도 몇 번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실수는 결정적이어서 더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가뜩이나 그를 못미더워하는 이들이 많은데 ‘덩크슛’까지 했으니 그에게는 조롱거리가 넘쳐난다. ‘퐈이아’와 ‘덩크슛’만으로도 그는 골키퍼의 자질이 의심되는, 국가대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선수로 낙인 찍혀 있었다. 수비 실수로 먹은 골도 다 정성룡의 실수가 돼 있었다. 일본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한 올해는 국내에 그의 활약이 거의 전해지지 않다가 지난 8월 한 차례 정성룡이 검색 순위에 올랐다. 이번에도 정성룡이 미끄러지며 헛발질을 해 골을 내주는 장면이었다.

싫어했던 친구의 소식을 오랜 만에 전해 들었는데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하니 고소해 하는 기분이랄까. 이전까지 정성룡이 J리그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따위는 대중에 중요하지 않았다. ‘퐈이아’를 외치고 ‘덩크슛’을 꽂던 그가 일본에서도 몸개그를 하고 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스포츠와 상관없이 검색어 기사만 쓰는 매체들에서는 정성룡의 이 플레이를 소개하며  “이랏샤이마세” “프리패스 수준” “예능감 폭발이네” 등의 조롱 섞인 반응까지 내걸었다. 이건 누가봐도 악의적이다. 정성룡은 이렇게 여론이 좋지 못해지면서 지난 2016년 9월 중국과의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후 1년 넘게 A매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정성룡을 전성기도 지났고 인격적으로 조롱 받아야 할 선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나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소식은 몸 개그를 할 때나 한 번씩 전해진다. 대중은 이런 몸 개그가 나올 때마다 그가 수준 미달의 선수라는 ‘확신’을 갖는다. 하지만 정성룡은 우리가 관심을 덜 기울인 사이 좋은 골키퍼들이 대거 몰린 J리그에서도 정상급 실력을 뽐내고 있다. 그는 올 시즌 J리그 가와사키에서 33경기에 나서 29실점만을 내주며 J리그 선방률 1위를 차지했다. 선방률이 무려 79%에 이른다. 페널티 지역 밖 슈팅 선방률은 92%다. K리그에서 거액에 J리그로 옮긴 골키퍼들 중 가장 빛났고 모든 골키퍼를 다 통틀어서도 정성룡만한 선수가 없었다.

정성룡은 팀을 창단 20년 만의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가와사키프론탈레

정성룡을 외면하는 건 한국 축구에 손해다

정성룡의 활약은 팀의 역사적인 우승으로 이어졌다. 가와사키가 프로 전향 후 20년 만에 첫 리그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수비 불안으로 줄곧 J리그 중위권을 맴돌던 가와사키는 정성룡의 안정적인 선방에 힘입어 챔피언으로 거듭났다. 마지막 라운드 전까지 가시마에 뒤져 있었지만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한 터라 감동은 더 깊었다.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K리그에서 뛰었던 정성룡은 J리그로 옮긴 뒤 실력을 입증했다. 한두 번 보여준 그의 결정적인 실수로 정성룡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런 실수로 스페셜 영상을 만든다면 조롱에서 자유로울 골키퍼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는 실력이나 인성 모두 지탄 받을 수준이 아니라 박수를 받아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정성룡이 상처 없이 계속 일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행복했으면 한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선수를 대표팀 자원에서 제외한다는 건 한국 축구에 손해다. 이제 32세인 정성룡은 골키퍼로 오랜 시간 더 활약할 수 있다. 쌓은 경험을 후배들에게 물려줘도 좋고 경쟁에서만 이긴다면 다시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도 출전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아직도 ‘퐈이아’나 ‘덩크슛’으로 그를 폄하한다면 그건 그냥 인간적으로 그를 싫어하기 때문에 쏟아내는 비난일 뿐이다. J리그에서 뛰는 김승규와 김진현에게도 대표팀 기회가 돌아간다면 그들과 같은 조건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낸 정성룡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생겨야 한다. 우리보다 시장이 훨씬 큰 J리그에서 정상에 오른 골키퍼가 있는데도 우리가 그를 외면하는 건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다. 김승규를 비롯해 조현우 등 최근 치고 올라오는 골키퍼들도 많지만 그들과 공정히 경쟁해도 정성룡은 여전히 모자랄 게 없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르헨티나전 당시 슈팅 한 번으로 최근까지 엄청난 비난을 받던 염기훈은 이제 이 비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언젠간 이렇게 성실하고 실력 있는 선수가 인정받을 것이라 믿는다. 정성룡도 그럴 것이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지금껏 받아온 조롱을 이겨내고 다시 한국 축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J리그 최고 선방률을 자랑하는 이 한국 골키퍼를 외면한다는 건 한국 축구에 엄청난 손해이기 때문이다. 정성룡을 이대로 놔두지는 말자. 정성룡을 그저 한때 대표팀 골문을 지켰던 옛 선수라고 여기기에는 여전히 그의 실력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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