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FA컵 패치가 대회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 중계 영상 갈무리

[스포츠니어스 | 명재영 기자] FA컵의 위상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향하고 있다.

2017 KEB하나은행 FA컵이 울산현대의 우승으로 지난 3일 막을 내렸다. 울산은 K리그 클래식을 4위로 마쳐 수원삼성에 AFC 챔피언스리그(ACL) 플레이오프 티켓을 내줬지만 부산아이파크를 제치고 FA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ACL 본선에 직행하게 되었다. 첫 FA컵 우승을 기록한 울산에 대해 축하로 가득해야 할 분위기지만 여론은 뜨뜻미지근하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대회를 주관ㆍ주최하는 대한축구협회는 FA컵을 ‘프로, 아마추어를 통틀어 성인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자리’라고 설명한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프로 구단만 참가하는 K리그와 달리 FA컵에는 실업ㆍ대학팀을 비롯해 예수병원, SK하이닉스와 같은 순수 아마추어 구단도 모습을 드러낸다.

2000년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프랑스 4부 리그 FC 칼레가 256강부터 시작하여 결승전까지 올랐던, ‘칼레의 기적’이라는 단어를 남긴 대회도 FA컵이었다. 이렇듯 각국 축구협회는 리그와는 별도로 FA컵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의 DFB-포칼이나 스페인의 코파 델 레이도 이름만 다른 FA컵이다.

우리나라의 FA컵은 지난 1996년 시작됐다. 1921년부터 있었던 전조선축구대회와 해방 이후 전국축구선수권대회를 모태로 하고 있지만, 현재 대회와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FA컵은 2005년까지 아마추어 대회처럼 특정한 시기에 경기를 몰아 진행했다. 지금처럼 한 시즌에 걸쳐 대회가 진행된 것은 불과 11년 전인 2006년부터였다. 이렇듯 FA컵은 짧은 역사와 10년에 가까운 아마추어적 대회 운영으로 팬들에게 없는 대회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2006년 이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프로팀들이 4월 즈음부터 대회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일정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문제는 세세한 부분부터 시작된다. FA컵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유니폼 좌측 소매에 FA컵 패치(로고)를 부착해야 한다. K리그 팀들은 기존의 K리그 패치를 노출하면 안 된다. 대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FA컵 패치를 스티커 재질로 부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꿰매거나 열로 부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유니폼 공급의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한 셈이다. 결승전에 참가하는 선수단만 오버로크 부착이 의무화된다.

현실을 고려한 스티커 패치는 유연성 있는 행정 조치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못 볼 꼴’이 자주 등장한다. 패치의 스티커 접착 부분이 약해져 FA컵 로고가 선수들의 유니폼에서 떨어질 듯 말 듯 엉성해 보이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심할 때는 아예 패치가 떨어지기도 한다.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한국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라는 설명이 겸연쩍다.

팬들에게도 FA컵은 너무 어려운 대회다.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FA컵을 검색하면 유럽의 FA컵 관련 정보가 나오기 일쑤다. 축구 카테고리로 직접 들어가도 FA컵은 관련 메뉴가 없다. 경기 당일에도 기사 몇 개가 전부일 뿐이다. 영상이나 중계 정보를 찾기는 더 어렵다. FA컵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면 ‘흥행에 관심이 없나’라는 생각이 들기 일쑤다.

협회, 구단 모두 FA컵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특히 대회를 주최하는 협회는 비판의 소지가 크다. 이렇다 할 마케팅 활동은 거의 없다. 대한축구협회 공식 사이트에서도 FA컵은 작은 메뉴 하나가 전부다. 관련 기록도 경기별로만 정리되어 있다. FA컵 통산 10호 골과 같은 소식을 접할 수 없는 이유다. TV 중계도 결승전만 중계권 계약 때문에 ‘억지로’ 전파를 탈 뿐 4강전 이하부터는 온라인 중계만 이뤄져도 감지덕지다. 일반적인 TV 보도는 말할 것도 없다. 보도가 나오면 팬들이 신기하게 여길 정도다.

한국 FA컵에서는 그 흔한 A보드 광고판도 찾아보기 힘들다 ⓒ 중계 영상 갈무리

유니폼 스폰서와 더불어 축구 마케팅의 꽃이라 불리는 A보드(그라운드 옆 광고판)도 FA컵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 국가대표팀이 홈에서 A매치를 가지면 그라운드 근처가 텅 비어 있어 국제적으로 화제가 되곤 하는데 우리 FA컵에서는 그 모습이 일상이다. 경기를 지켜보면 연습경기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도 든다. 결승전만 A보드가 세워진다. 그나마도 대회 공식 후원사인 KEB하나은행과 협회의 후원사 로고만 90분 동안 반복해서 노출된다. 상업성이 ‘0’에 가깝다. 관중 수를 근거로 흥행 부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수준이다.

축구계에서 지금의 FA컵은 ‘ACL 진출권이 걸린 대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전에는 홈팀이 경기를 개최하면 최소한의 운영 수익도 건질 수도 없어 협회로부터 소액의 보조금을 받고 무료입장을 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아무도 운영 의지를 보이지 않는 대회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미 대중적 인지도가 바닥을 친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운영될 것인가. 이대로라면 FA컵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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