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아인을 향해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경조증이 의심된다"고 공개했다. ⓒtvN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정신과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무섭다. 제 정신이 아닌 이들이 다니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정신과를 정신건강의학과라고 바꾸기도 했다. 문교부나 교육부나, 농수산부나 농림축산식품부나 거기서 거기지만 이름을 바꾼 것처럼 정신과도 정신건강의학과가 됐다. 하지만 말만 바꾼다고 해서 인식이 바뀌는 건 아니다.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꽤 많다. ‘마음의 병입니다. 감기 같은 병이니 숨기지 마세요’라고 해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개선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의 병’ 진단 내려지기까지

고백하건대 나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 극심한 불면증과 악성 댓글 때문에 괴로워 고민하다가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과거 칼럼을 위해 ‘팔팔정’을 처방받으러 비뇨기과를 갔을 때보다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는 게 훨씬 더 어려웠다. 병원 문을 열면 마치 눈빛도 흐리멍텅하고 혼자 벽에 머리를 박는 환자들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는 그런 곳이 아니다. 모차르트의 선율이 흐르고 쾌적하다. 다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들이 환자로 앉아 있고 선생님은 잘 생겼다. 내가 생각하던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니었다. 빈말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 있는 이들이라면 편하게 가 상담만 받아도 될 만한 곳이다.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대화 몇 마디 해보고 막 병명을 판단하거나 처방전을 주진 않는다. X-RAY처럼 문제 생긴 부위가 확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정신건강의학과에 갔을 때는 무슨 수학능력시험 보듯 백 문항 이상의 질문지에 답해야 했다. 비슷한 질문을 또 하고 또 한다. 앞에서는 ‘죽고 싶다’고 해놓고 뒤에 가서는 ‘사는 게 행복하다’고 답하면 이런 변별력 없는 건 다 뺀단다. 담당 의사를 만나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그 다음에 이 질문지를 받아 집에 가 작성을 마친 다음 두 번 정도 담당 의사를 더 만났던 것 같다. 그래서 나온 병명이 불안 장애였다. 담당 의사는 악성 댓글로 스트레스를 받아 이게 불안 장애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냥 담당 의사가 나와 몇 마디 나눠보고 진단하는 게 아니었다. 담당 의사는 처방전을 주면서 “일단은 가장 약한 약을 줄 테니 이걸 먹어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비뇨기과에서 ‘팔팔정’은 고개 숙이고 “요새 힘드네요”라고 하면 바로 주던데 정신건강의학과는 생각 외로 훨씬 더 꼼꼼했다. 한 동안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으니 많이 괜찮아졌다. 친한 약사에게 약 이름을 말하니 “그거 먹고 성욕 감퇴는 못 느꼈느냐”고 했다. 이 약이 신체에 안정감을 주기 위해 욕구를 전체적으로 가라 앉혀 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약을 먹을 때 나는 성욕이 정말 감퇴해 다른 남자들과 비슷했었다.

이 SNS는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SNS만 보고 병명과 위험한 달까지 판단한다?

내 이야기를 길게 한 건 요즘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배우 유아인을 둘러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아인을 경조증이라고 섣불리 진단해 만천하에 알린 김현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유아인이 누리꾼들과 설전을 벌이자 이 전문의는 자신의 SNS를 통해 “ㅇ아ㅇ님 글을 보니 제 직업적 느낌이 좀 발동하는데 줄곧 팔로우해 온 분들 입장에서 보기에 최근 트윗 횟수나 분량이 현저히 늘었나요? 뭔가 촉이 좀 와서 진지하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급성 경조증 유발 가능. 보니까 사고 비약 및 과대 사고와 같은 보상 기전이 보입니다. 이론상 내년 2월이 가장 위험합니다”라고 경고했다.

유아인을 걱정하는 마음이야 그럴 수 있지만 전문의가 자신의 SNS를 통해 만천하에 유아인을 ‘경조증 환자’, 자극적으로 말하면 정신병자 취급하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직접 대화 한 번 나눠보고 진단한 게 아니라 SNS 글만 보고 병명을 내리는 건 아무리 제4차산업혁명이 일어났더라도, 유능한 전문의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증상과 기분 등에 대해 백여 개가 넘는 질문을 받고 몇 번 더 담당 의사를 만난 끝에 “불안 장애로 의심되니 이 약을 먹고 다시 이야기해보자”는 말을 들었던 나로서는 이렇게 SNS 글만 보고도 처방을 내려주는 전문의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내가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렇다.

더군다나 설령 유아인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아야 될 정도라도 이렇게 전문의가 SNS로 ‘환자 인증’을 하는 것도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의사가 환장의 정보를 타인에게 발설하면 안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유아인을 SNS상 정신병자로 낙인 찍어 버리면 사람들은 이게 사실이건 아니건 그렇게 믿어버린다.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한 전문의의 개인적인 의견 하나 때문에 유아인은 졸지에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돼 버렸다. 과연 이게 의료인으로서 옳은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환자의 상태 한 번 보지 않고 SNS만 들여다 본 뒤 내린 진단치고는 너무 잔인하다. 이건 법률적으로도 명예훼손감이다.

대중의 호기심만 자극하는 논쟁

이 전문의에게는 ‘무한도전’이라는 인증 마크가 붙었다. 이번 SNS 발언 논란과는 별개로 과거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정형돈이 멤버 중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고 꼽았던 게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다. 언론과 대중도 ‘무한도전’에 나온 의사는 진실만을 말하고 그가 유아인을 경조증 환자로 진단했다는 점에 대단한 신뢰와 호기심을 보내고 있다. 마치 ‘무한도전’이 신뢰 인증 프로그램이 된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무한도전’과 김현철 전문의는 따로 떼어 놓고 봐야한다. 그가 신뢰받지 못할 의사라는 게 아니라 ‘무한도전’ 출연 당시에는 출연진들과 대화도 나누고 진단을 할 여유가 있었지만 유아인과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논쟁에 ‘무한도전’이 따라 붙고 ‘유아인=경조증’이 성립해서도 안 된다.

과거 한 한의사가 ‘무한도전’에 나와 재미를 덧붙인 진료를 했던 적이 있다. 환자가 팔을 든 상태에서 몸에 잘 맞는 약재를 갖다 대고 팔을 내리면 팔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민간요법에나 나올 법한 내용이었다. ‘무한도전’ 마니아인 나로서는 레전드편에 꼽을 정도로 재미있게 봤던 회차였다. 그냥 재미로만 본다면 얼마든 웃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친분이 있는 한 한의사가 얼마 뒤 나에게 하소연했다. “무한도전에서 그런 내용을 내보낸 이후로 한의사들을 다 그런 돌팔이로 봐.” 자기는 절대 그런 처방을 내린 적도 없고 내릴 수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에 나오면 다들 그렇게 믿어버린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마찬가지다. 이 논란에서 ‘무한도전’ 인증 마크는 빼고 앞으로도 ‘무한도전’이 신뢰의 증거라고는 믿지 말자. 그냥 예능 프로그램일 뿐이다.

당사자가 의뢰하지도 않은 정신분석을 해 그걸 대중 앞에서 공개하는 행위는 대단히 잘못됐다. 이 전문의는 유아인 소속사와 관계자들에게 걱정돼서 연락을 취했는데 소식이 없어 SNS에 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속사 혹은 가족 분들 중 아무나 한 번 뵈었으면 한다. DM(쪽지) 달라”고 했다. SNS 글만 보고 진단을 내리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그걸 대중에게 공개한 것도 이해불가다. 거기에 설령 유아인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걸 꼭 해당 전문의에게만 맡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환자는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우리나라에 유명 연예인에게 연락을 취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유아인이 그런 반응 하나 하나에 대응할 이유는 없다. 답변이 없다고 그걸 SNS로 공개해 버리면 이건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이 SNS는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건 또 하나의 폭력이다

이에 대해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도 유아인에 대한 정신과적 소견을 SNS상에 게재한 이 전문의의 행동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했다. 봉직의협회는 30일 “해당 전문의의 행동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개인의 의견일 수는 있으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신과 진료의 특성상 개인을 진료실에서 면밀히 관찰하고 충분히 면담하지 아니하고는 정신과적 진단을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 또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절대 본인에게 직접 진료 받지 아니한 개인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정신의학적인 판단을 담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는 정신과전문의의 기본적인 윤리이며 원칙이다. 의사의 본분은 질병의 치료는 물론, 사람의 건강과 안녕을 지키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다. 설사 그 목적이 치료에 있다 해도 그 과정에서의 모든 행동은 신중하고 엄격한 비밀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요새도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간다. 그런데 병원에 가 내 진료를 기다리고 앉아 있으면 데스크에서 환자 보호자와 병원 직원의 이야기가 들린다. “우리 아들이 취업 준비생인데 정신과에 다닌다고 하면 불이익을 받잖아요. 의료 보험 기록에 남지 않게 해주세요.” 병원 직원은 ‘요새 그런 인식이 많이 줄어서 괜찮다’는 말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2~3만 원에 해결할 수 있는 병원비가 수십만 원이 들어요. 그리고 2주에 한 번씩 방문하시면 계속 그만큼이 듭니다.” 하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는 “그래도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몇 번이나 봤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정기적으로 다니는 입장에서 이런 병원에 다니는 것도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의 인식은 그렇게 변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마음의 병을 숨기려 한다. 그게 사회적인 인식이다. 이건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녀야 하는지 아닌지도 아직 판정 내려지지 않은 이에게 누군가 병명을 내린다는 건 정말 잔인한 일이다. 나는 의학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지만 그래도 몇 년씩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녀본 사람으로서 이번 논란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진료도 하지 않은 전문의가 한 연예인을 지목해 정신병자 취급하는 건 칼을 겨눈 것 이상의 폭력이다. 여기에 “내년 2월이 위험하다”는 말을 하는 건 전문의라기보다는 무속인에 가까운 발언이다. 이걸 두고 우리는 이렇게 표현한다. “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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