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윤보상은 대다수의 K리그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다. ⓒ광주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축구선수가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팀에는 최고의 선수일지라도 상대 팀 입장에서는 미운 선수도 꽤 많다. 하지만 모든 팀 팬들로부터 사랑받는 선수가 있다. 바로 광주FC 골키퍼 윤보상이다. 경기 전후 상대팀 팬들에게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그는 안티팬 없는 선수로 유명하다. 비록 올 시즌 광주가 K리그 클래식에서 강등을 당했지만 윤보상은 상대의 맹공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실력으로도 큰 박수를 받았다. 실력과 인성 모두 흠잡을 데 없는 훌륭한 선수다. 안티가 대단히 많은 나로서는 그의 이미지가 부러웠다. 그래서 그를 직접 만나 ‘윤보상 안티 만들기 대작전’에 돌입할 계획을 세웠다.

윤보상과 통화를 한 뒤 만날 약속을 잡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기자님 계신 곳으로 갈게요. 어디 사세요?” 인터뷰이가 있는 곳으로 가거나 중간에서 만나는 게 보통인데 윤보상은 직접 달려오겠단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줄 알고 우리 동네인 “경기도 일산으로 오시라”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윤보상은 부모님 댁인 경기도 평택에서 비가 내리는 주말 저녁 무려 세 시간을 운전해 경기도 일산으로 달려왔다. 예의상 인터뷰 장소에 10분 먼저 도착해 윤보상에게 전화를 걸자 그가 웃으며 말한다. “네. 저 30분 전에 미리 도착해 있었습니다. 천천히 오시면 됩니다.” 내가 졌다. 과연 이렇게 예의 바르고 인성이 훌륭한 윤보상에게 안티팬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인가. 일단 한 수 접고 대화를 시작했다. 안티팬을 만들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나도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왔는데 당신은 정말 대단하다.

차가 막힐까봐 일찍 출발했다. 여유 있게 도착해 혼자 커피나 한잔 하면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차가 너무 막혀 약속 시간 30분 전에나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오늘 당신의 안티팬을 만들기 위해 왔다. 박지성과 차범근 중 더 위대한 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이게 첫 질문인가. 어렵다.

대답해 달라.

아….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당신의 생각을 말해 달라. 박지성인가. 차범근인가.

박지성 선배님으로 하겠다. 중학교 때부터 박지성 선배님에 관한 책은 다 읽었다. 그분처럼 인성도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었고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차범근 감독은 인성이 별로였다는 건가.

무슨 이야기가 또 그렇게 흘러가나. 너무 위대한 선수이셨지만 나는 실제로 그 분이 뛰는 건 보지 못했다. 아…. 이거 둘 중 한 명을 선택한 건 너무 위험한 것 같다.

당신은 박지성과 차범근 중 박지성을 택했다. 이걸로 정리하면 된다.

오늘 살살 다뤄달라.

광주 윤보상과 만나 K리그는 물론 여러 현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알겠다. 한 시즌이 끝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바로 휴가를 얻었다. 부모님이 경기도 평택에 사셔서 거기에서 지내다가 서울에 방을 하나 구했다. 한 달짜리 단기 임대다. 비시즌이지만 요가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면서 계속 몸을 만들 생각이다. 방 잡아놓고 계속 운동하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다. 팀이 강등됐는데 지금은 쉴 때가 아닌 것 같다.

결국 광주가 올 시즌 강등을 다했다. 어떤 심정인가.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질 않는다. 아마도 다시 시즌이 시작돼 우리가 K리그 챌린지에서 경기하고 있으면 실감이 좀 나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광주가 3년 동안 K리그 클래식에 있었고 나도 입단한 뒤 K리그 클래식만 2년을 경험했다. 요새는 밤마다 강등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한 번 K리그 챌린지로 내려가면 언제 올라올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아직은 잘 실감나지 않지만 지금은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다.

올해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7월 전남하고 경기를 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치아에 금이 가고 종아리 신경도 다쳐서 일주일 동안 걷지도 못했다. 금이 간 치아는 치료를 했고 종아리는 타박을 당해 신경이 눌려 있는 상태여서 감각이 없었다. 한 달 정도 쉬면서 한 8경기를 나가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도 침체된 상태였고 팀도 분위기가 처진 상황이었다. 그때 마음고생을 좀 했다. 그래도 원래 두 달 이상 회복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한 달 만에 돌아온 건 정말 회복이 빨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나에게는 동기부여가 된 시간이었다.

팀 상황이 좋지 않아 빨리 복귀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컸다. 부상을 당하고 처음에는 마음이 급해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을 했다. 그런데 팔굽혀펴기도 하고 근력 운동을 하니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 차도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푹 쉬디가 빨리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쉬었다. 회복하고 딱 일주일만 재활 훈련을 한 뒤 바로 경기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FA컵 8강 수원삼성과의 경기를 복귀전으로 정해놓고 일주일 동안 재활 훈련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오전과 오후, 밤으로 나눠 훈련했고 한 시간씩 개인 운동을 했다.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 한 번 운동을 끝내면 3kg씩 빠질 정도였다. 그렇게 회복하고 재활 훈련 일주일 만에 경기에 복귀했다.

올 시즌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동료들끼리 작은 불신이 생겼다. 큰 건 아니고 경기장 안에서의 작은 다툼들이다. 팀이 잘 풀리지 않다보면 늘 생기는 작은 충돌이었다. 서로 답답하고 잘 풀리지 않으니 그랬던 것 같다. 지난 시즌에도 이런 분위기가 있었지만 원래 성적이 좋으면 다 넘어가는 법이다. 그런데 올 시즌에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니 이런 게 더 도드라졌던 것 같다. 감독님과 주장인 (이)종민이 형이 잘 이끌어줘 이런 분위기는 회복했지만 이후에도 결과는 똑같더라. 서로 회식도 많이 하면서 끈끈하게 뭉쳐보려고 했는데 그런 게 잘 안 됐다.

사드 배치에 대한 본인의 의견은.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인데…. 우리나라를 지키려면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재인 대통령께서 알아서 잘 해주실 거라 생각한다. 나는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다. 잘못 답변했다가 내가 지금 사드로 맞게 생겼다.

오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검찰 망나니 칼춤 끝나간다. 국민들 한숨 나오는 연말”이라는 발언을 했다. 여기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피력해 달라.

당신 미쳤다.

팀이 호남이라 영남지역 기반 정당 대표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는 건가.

아니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정치인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안 좋은 단어는 안 썼으면 좋겠다는 거다. ‘망나니’나 ‘칼춤’이런 단어보다는 그래도 똑같은 의미라도 조금 더 단어를 순화해 써주시면 좋겠다.

광주 윤보상과 만나 K리그는 물론 여러 현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알겠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기반을 두고 있는 대구의 조현우가 대표팀에 뽑혀 활약했다. 당신도 이 모습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졌을 것 같다.

물론이다. 강등이 확정되던 날 경기가 대구와의 맞대결이었다. 경기 전부터 윤보상과 조현우의 격돌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분들도 있다. 나에게 (조)현우 형은 좋은 형이자 멘토다. 그날은 ‘한 번쯤 이 산을 넘어보자’고 각오를 다지고 경기에 임했는데 세징야가 사기 캐릭터더라. 너무 잘한다. 현우 형의 대표팀 경기를 봤는데 ‘역시나 조현우’라는 말이 나왔다. 그 형을 보고 나도 목표를 또 잡았다. 현우 형을 한 번 잡아보고 싶고 나도 대표팀에 한 번 가보고 싶다. 그래도 현우 형의 대표팀 활약을 조명하는 기사 댓글에 내 언급이 되기도 해 감사한 마음이다.

당신과 조현우가 더 멋진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겠다. 골키퍼들끼리의 모임이 있는데 나도 올해 초에 거기 가입했다. 회장은 (조)수혁이 형이고 분위기 메이커는 (김)민식이 형이다. 그리고 현우 형과 (김)용대 형, (김)호준이 형 등이 모여 있다.

가입 조건은 뭔가.

인성 아닐까. 다들 착하다. 이번에 정성룡 선배님도 들어오셨다. ‘단톡방’이 있는데 축구 이야기는 별로 안 하고 수다를 많이 떤다.

그래도 광주의 역사를 새로 쓴 남기일 감독과의 작별이 아쉬웠을 것 같다. 광주를 K리그 클래식으로 이끌고 3년 동안 이 무대에 서게 했던 주역 아닌가.

감독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선수들도 많이 힘들었다. 나는 지난 시즌 갓 입단한 신인인데도 과감하게 경기에 내보내 주셨다. 지난 8월 대구와의 경기가 끝난 뒤 2박 3일 휴가를 받아 집에 왔는데 우리 팀 주장 종민이 형한테 전화가 왔다. “감독님이 사퇴하셨다”는 것이었다. 1년 반을 함께 했는데 아쉬움이 너무나도 컸다. 광주가 후원이 많은 팀이 아닌데도 지금껏 이끌어 온 것만으로도 업적이 대단하지 않은가. 다시 팀에 복귀해 감독님이 마지막 미팅을 하셨다. 그런데 이 미팅을 3분 만에 끝내시더라. 쿨하게 “잘 지내”라고 하시고 악수하고 떠나셨다.

시즌 도중 감독이 사임해 팀 분위기가 대단히 어수선했을 것 같다.

물론 그런 게 있었다. 그리고 선수단에는 “다음 감독으로는 누가 온다더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대부분 젊으신 감독님들이 우리들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김학범 감독님은 상상도 못했다. 경력도 화려하시고 광주와는 크게 연관이 있는 것 같지 않아 우리하고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학범 감독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선수들이 두려워했다. 워낙 무서운 이미지가 있지 않나.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선수가 있었더라면 성적이 더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묻는 건데 메시와 호날두 중 한 선수만 우리팀에 데려와야 한다면 누굴 선택할 건가. 전세계 바르셀로나 팬들과 레알마드리드 팬들이 보고 있다.

어우씨. 어렵다.

선택 받지 못한 한 명은 상대팀 공격수로 보내야 한다.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 호날두를 우리 편으로 데려오겠다.

그렇다면 메시 정도는 상대팀에 있어도 막을 수 있다는 건가.

메시를 막을 수 있다기 보다는 나는 그냥 호날두가 더 좋다. 내 머리 스타일도 호날두를 따라하다가 이렇게 됐다.

알겠다. 전세계 메시 팬들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김학범 감독 부임 이후 그래도 상승세를 타며 잔류의 희망을 품기도 했다. 남기일 감독도 대단히 훌륭했지만 김학범 감독이 조금 더 일찍 부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도 그 부분이 아쉽다. 남기일 감독님이 광주의 역사를 새롭게 쓰셨고 대단한 지도자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김학범 감독님이 너무 막판에 팀에 합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학범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는데 “조금만 더 팀에 일찍 왔더라면 보강할 건 보강하고 더 힘을 써봤을 텐데 아쉽다”고 하시더라. 김학범 감독님이 오신 뒤 새벽 운동을 일주일에 다섯 번씩 했다. 방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붙여놓고 전쟁터에 나가는 마음으로 경기를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바뀌어서 그런지 경기가 잘 풀렸다.

김학범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선수들을 다 데리고 지리산 등반을 하더라.

죽을 뻔했다. 그냥 한 시간 남짓한 코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 시간이 걸렸다. 산에 간 이유가 있었다. 산은 정상을 보고 올라가면 절대 못 올라간다. 하지만 땅을 보고 천천히 오르면 어느덧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감독님께서 이걸 선수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말로 하면 3분이면 될 걸 세 시간 동안 몸으로 느끼게 해준 건 비효율적이지 않나.

등산으로 시작해 이후부터 지옥 훈련이 시작됐다. 새벽에도 러닝을 하고 다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이렇게 시즌 중에 오셔서 팀을 다잡은 이유는 운동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신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훈련 외 시간에는 많이 풀어주셨다. 경기에서 져도 절대 화도 내지 않으셨다. 원래 굉장히 무서운 분이라고 들었는데 욕을 하시면서 잔소리도 많이 하셨지만 분위기를 잘 이끌어주셨다. 욕을 하면서 팀 분위기를 밝게 해주시는 스타일이다.

그래도 나이 많은 분이 선수들과 지리산에 오를 정도로 체력이 된다는 것도 놀랍다.

선수들은 어려운 코스로 산에 올랐고 감독님은 조금 더 쉬운 코스로 가셨다.

남기일 감독은 어떤 지도자였나. 김학범 감독의 제자라 스타일이 비슷했을 것 같다.

아니다.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김학범 감독님이 욕을 하며 분위기를 이끌어 주시는 지도자였다면 남기일 감독님은 묵직하신 분이셨다. 평소에 말도 별로 없으시고 조용한 카리스마로 이끌어 가시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은 올 시즌이 끝난 뒤 광주 감독직 사퇴를 선언했다. 3개월 만에 광주와 김학범 감독의 관계는 끝이 났다.

시즌 막판부터 선수들은 다 알고 있었다. 감독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너희하고는 올해가 마지막이니까 열심히 해”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지나가는 말이라고는 해도 선수들은 다 알았다.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광주 윤보상과 만나 K리그는 물론 여러 현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김학범 감독은 강원FC 감독을 맡기도 했었다. 그런데 얼마 뒤 강원도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이 동계올림픽을 위해 많은 이들이 홍보에 힘을 써주고 있고 김연아와 유재석은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연아와 유재석 중 당신이 더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그 두 분을 어떻게 평가하나. 오늘 나 욕 먹이려고 작정했나.

그냥 개인적인 생각을 묻는 거다. 뭐 어떤가.

어휴 참. 이거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하나. 유재석 씨로 하겠다. ‘무모한 도전’ 시절부터 1편부터 빼놓지 않고 그 프로그램을 다 봤다. 학생 때는 다 몰아서 밤새고 본 적도 있다. ‘무한도전’의 팬으로서 유재석 씨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김연아는 ‘피겨퀸’이 아니라는 건가.

왜 또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러가나. 나도 김연아 선수와 같은 군포에서 학창시절 3년을 살았는데 사실 조금 안 좋은 기억이 있긴 하다. ‘김연아 아이스링크’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님이 군포에 집을 샀다가 그 아이스링크 건립이 무산돼 집값이 더 떨어졌다. 그래서 손해보고 팔았다. 아…. 내가 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알겠다. 어쨌건 당신은 유재석은 좋아하고 김연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은 강등이 확정된 뒤 눈물을 보여 보는 이들을 더 슬프게 했다.

대구전이 끝나고 많이 울었다. 그런데 그날 곧바로 집에 와 SNS에 ‘죄송하다’는 글을 남기고 휴대전화를 꺼버렸다. 하루 정도는 그냥 그렇게 전화를 꺼놓고 있고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휴대전화를 켰더니 SNS를 통해 팬들의 응원 메시지가 쇄도했다. 우리 광주팬 뿐 아니라 다른 팀 팬들도 ‘기다리겠다’ ‘빨리 K리그 클래식으로 돌아오시라’는 메시지를 보내줬다. 그때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에 또 눈물을 흘렸다. 주체가 되지 않더라. 응원하는 팀 선수도 아닌데 이렇게 강등 당했다고 걱정해 주시고 메시지까지 보내주셔서 고맙고 또 고맙다.

원래부터 이렇게 인성이 좋았나.

인성이랄 게 뭐 있나. 늘 사소한 것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뿐이다.

이 정도면 거의 ‘축구계의 션’이다. 축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인성 만큼 실력도 훌륭했나.

아니다. 나는 다른 선수들보다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다니던 교회가 수원 삼일중학교하고 연습경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골키퍼를 봤던 내가 11골이나 먹었는데도 삼일중 감독님께서 “정식으로 축구를 배워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셨다. 원래 육상부에서 투포환을 했었는데 운동이 싫어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1년 뒤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나이에 뭔가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껴지더라. 갑자기 축구가 하고 싶어 삼일중 감독님을 찾아가 “축구부에 들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11골이나 먹은 골키퍼를 뭘 보고 스카우트한 건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요새도 늘 은사님들과 통화를 자주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를 지도했던 분들은 “너 운동하는 거 보고 프로에 갈 줄 알았다”고 하신다. 프로 선수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단다.

그때부터 지도자들은 당신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했으니 기본기가 너무 없었다. 결국 유급을 결정하고 중학교를 1년 더 다녔다. 유급을 해 공식 경기에는 나가지도 못하고 연습 경기 정도에만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운명적이게도 우리 학교에 골키퍼 코치님이 오셨다. 지금은 상주상무에 계신 곽상득 선생님이다. 이 분이 “너는 백지다. 좋은 습관만 들이면 다른 애들 금방 따라잡는다”고 하시면서 나를 1년 동안 잡아주셨다. 하루에 새벽, 오전, 오후, 밤 이렇게 운동을 네 탕이나 했다. 그때 나도 놀랄 정도로 실력이 확 늘었다.

하지만 중학교를 1년 유급하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큰 사건을 맞았다고 들었다.

삼일공고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에 들어가면서 ‘동계훈련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때가 2012년이었는데 내 나이가 문제였다. 1년 유급을 해 내가 고등학교 대회에 나갈 자격이 없다는 결정이 협회에서 내려진 것이었다. 내 일로 협회에서 회의도 많이 했고 우리 가족들도 변호사를 알아보며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때 협회 비리 소식이 터져 내 일은 그냥 묻혀버렸다. 내 문제는 다시 거론되지 못하고 그냥 끝났다. 결국 가장 중요한 고등학교 3학년 때 연습경기도 못하고 훈련도 제대로 못했다. 일반 학생들과 수업 듣고 ‘야자’하면서 보내야 했다. ‘야자’ 끝나면 혼자 웨이트트레이닝하면서 지냈다.

가장 열심히 했어야 할 고등학교 3학년을 그렇게 보냈다는 건 엄청난 타격이었을 것 같다.

그때 또 나를 구원하신 분이 바로 곽상득 선생님이다. 당시 선생님은 수원FMC 여자축구단에서 지도자로 계셨는데 “여건이 안 되면 같이 와서 운동하자”고 해주셨다. 그래서 그 팀에서 같이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쭉 나를 맡아왔던 담임선생님도 “내가 책임일 테니 운동하러 가라”고 하시면서 수업도 빼주시고 그랬다. 덕분에 그래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여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으니 물어보겠다.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와…. 이거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런 민감한 걸 이 자리에서 어떻게 이야기하나.

살짝만 이야기 해 달라.

다른 건 모르겠고 나는 항상 여자를 배려해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항상 떠받들어 준다. 이 정도로 대답하면 되나.

이 대답에 대해서는 네티즌 여러분들이 판단해 주실 거다. 그나저나 1년 ‘꿇은’ 형을 학생들이 괴롭히는 건 못 봤다. 학교는 편하게 다녔을 것 같다.

애들이 형이라고 부르면서 편하게 대해줬다. 그런데 또 누구는 “에이 같은 학년인데”라며 “야, 야”거리기도 한다. 몸집도 크고 나이도 한 살 많으니까 누가 막 건드리지는 않더라. 늘 교실 맨 뒤에 앉아 있는 학생이었지만 사고를 치지는 않고 조용했다.

광주 윤보상과 만나 K리그는 물론 여러 현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 진학에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그렇다. 원래 고등학교 2학년 때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가기로 결정이 돼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회에 나가지 못해 내가 거둔 성적이 없어 그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됐다. 그래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대회에 참가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지방대 뿐이었다. 이 성적을 바탕으로 울산대에 가게 됐다.

하지만 1년을 쉰 여파는 컸을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때와 2학년 때는 그냥 망했다고 보면 된다. 경기에는 나섰지만 별로 잘하지 못했다. 거기에다 학교에는 골키퍼 코치가 없어 나 혼자 열심히 해야 했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 유상철 감독님이 부임하신 뒤 학교에 건의해 골키퍼 코치 자리가 생겼고 골키퍼 코치와 함께 그때부터 제대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신 축구 인생을 보면 지도자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다.

맞다. 유상철 감독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성공하고 싶으면 남들하고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을 들은 다음부터는 외박을 받아도 집에 안 가고 숙소에 남아 혼자 운동을 했다. U리그는 금요일에 하는데 지방에는 약팀이 꽤 많다. 그래서 골키퍼로 힘든 경기가 별로 없었다. 금요일 세 시에 경기가 끝나면 외박을 주셨는데 나는 혼자 숙소에 남아 금요일은 물론 주말 동안에도 계속 운동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니 몸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고 건강한 마인드도 잡혔다. 대학교 3학년 때 속된 말로 ‘포텐’이 터졌다. 덴소컵 대표로 대학 선발에 뽑히기도 했고 유니버시아드 대회에도 나갔다.

프로 데뷔전도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4월 전남과의 데뷔전에서 스테보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2-1로 우리가 앞서고 있는데 후반 추가시간에 전남에 페널티킥을 내줬다. 그런데 나는 스테보가 딱 그쪽으로 찰 걸 예상하고 있었다. 종료 시간은 거의 남지 않았고 이걸 못 넣으면 전남은 지고 우리는 먹어도 비기는 상태였다. 스테보가 페널티킥을 찰 때부터 자신감이 없어보였고 분명히 감아 차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딱 몸을 날린 방향으로 공이 오더라. 데뷔전을 말도 안 되게 화려하게 치렀기 때문에 자신감도 붙였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이후 더 차분하게 하려고 했다.

페널티킥을 잘 막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다고 들었다. 그걸 공개할 생각은 없나.

오늘 이 자리에서 그 동안 숨겨왔던 비법을 공개할 수 있다.

그래도 되나. 맛집 레시피 같은 거 아닌가.

새로운 레시피를 찾았다. 과거 레시피는 이제 공개해도 된다. 대학교 때부터 이 방법으로 페널티킥을 많이 막았다. 곽상득 선생님하고 어떻게 해야 페널티킥을 더 잘 막을 수 있을지 분석을 많이 했다. 그래서 얻어낸 키커들의 습관이 있다. 공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비법을 오늘 이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해 달라.

키커가 페널티킥을 찰 때 팔 동작을 본다. 팔을 휘두르다 내리면 꺾어 차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팔을 크게 치면 그 방향 그대로 찬다. 계속 분석한 결과 사람들의 이런 습관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걸 속이려고 팔을 크게 치다가 돌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의 습관 역시 파악했다. 이건 우리 곽상득 선생님 제자들밖에 모른다.

나는 알아도 못 막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요새 새로 개발한 레시피는 언제쯤 공개할 수 있나.

일단 1,2년 더 써먹고 공개하겠다. 지금도 늘 분석하고 있다. 인터넷에도 페널티킥만 모아놓은 영상이 있다. 그걸 보면서 많이 연구한다.

광주 윤보상과 만나 K리그는 물론 여러 현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알겠다. 그때도 나를 통해 공개해 줬으면 좋겠다. 이왕 솔직해진 김에 한 번 더 솔직한 답변을 기대한다. 당신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광주를 떠나 K리그 클래식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당신이 K리그 클래식 팀에는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적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없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반반인 것 같다. 에이전트를 통해 듣기로는 몇몇 K리그 클래식 구단과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선수는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에이전트는 상황이 결정되면 그때 알려준다. 나도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광주가 당신을 잡지 못할 가능성도 꽤 크다고 받아들이면 되나.

하지만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한 건 내가 광주에 남아 K리그 챌린지에서 뛰어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광주라는 팀이 있어서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기영옥 단장님이 나를 너무 좋게 봐 주셨는데 단장님이 “1년 더 같이 하자”고 하면 얼마든지 그럴 생각이 있다. 진심이다. 나는 돈과 명예 때문에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축구 그 자체가 좋아서 한다. 늘 내가 있는 팀이 가장 좋은 팀이라고 생각한다. 12월 중순쯤에는 결정이 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

종교인 과세에 대한 입장도 궁금하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나. 울고 싶다.

세금을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그건 그렇다. 나는 종교인도 과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비’ 소리를 듣기도 한다. 종교인이라도 똑같이 동등하게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 그런데 <스포츠니어스>가 종교 신문이었나.

스포츠 매체이니 축구선수에게 물어본 거다. 당신은 늘 경기 전후 상대팀 팬들에게도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는 선수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모두가 사랑하는 선수다.

어릴 때부터 늘 축구를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우리 같은 선수는 배우고 관중은 관객이다. 우리의 영화를 돈 주고 보러 온 이들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 때는 관중이 없어 인사를 전할 수 없었지만 프로에 가면 꼭 상대팀 팬들에게도 예의를 갖추자고 다짐했다. 비록 상대팀 팬이지만 그 이전에 K리그의 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런 좋은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막상 경기 도중 감정 싸움이 벌어지면 경기가 끝난 뒤 인사하기 싫을 때도 있을 것 같다.

물론이다. 그런 적도 많다. 뒤에서 엄청나게 욕을 하는 분들도 많다. 그때는 정말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기 싫은데 ‘저 사람이 날 싫어하면 더 잘하자. 그리고 예의를 갖추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욕하는 분들에게도 예의를 갖추니 다음 경기에서 만나면 욕보다는 박수를 보내주시더라.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누군가 나를 욕하면 나도 욕이 나온다. 그게 내 문제인 것 같다.

올 시즌 포항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가 0-4로 패했다. 끝나고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데 포항 팬들이 동시에 내 이름을 외쳐주시더라. 그럴 때면 모든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상대팀 팬들이 이름을 연호하는 선수는 당신 뿐일 거다. 정말 호감형 선수다. 지난 3월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명백한 오심으로 패했을 때도 상대팀 팬들에게 인사를 하더라.

오심은 경기의 일부이고 팬들이 잘못한 건 없다. 그래서 정중히 인사를 했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상대팀 팬들에게도 인사를 한다고 내가 주목받는 게 더 이상하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프로는 선수가 갑이 아니라 을이다. 갑은 팬들이다.

광주 윤보상과 만나 K리그는 물론 여러 현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캬, 오늘 윤보상에 취하고 간다. 그래도 이렇게 인성 좋은 선수라는 게 부담이 되기도 할 것 같다. 원래 김구라보다 유재석이 더 생활하는데 고충이 많은 법이다.

뭘 못하겠다. 괜히 찔려서 조용히 집에만 있는 편이다. 괜히 맥주 한 잔 하다가도 누굴 만나면 안 될 것 같아서 어딜 잘 나가지 않는다. 인성 좋은 선수라는 평가가 있어서 SNS를 할 때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신중하게 한다. 그래도 팬들을 만나면 친구처럼 지내고 커피도 한 잔 사주면서 편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는 욕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건 더 편하다. 이제 올 시즌이 마무리됐다. 한 시즌을 돌아본다면 어땠나.

개인적으로는 슈퍼세이브도 있었지만 수비를 할 때 넓은 공간을 커버하는 골키퍼로 발전하고 싶었다. 그런 부분은 그래도 꽤 이룬 것 같다. 하지만 팀이 강등을 당했다.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크다. 정말 최선을 다해 뛰었고 우리 동료들 역시 열심히 준비했지만 목표했던 잔류를 이루지 못했다. 결과를 만들지 못한 점 죄송하다.

먼 훗날 은퇴를 할 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정말 간절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어느 위치에 있건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선수였으면 좋겠다. 선수 생활 내내, 그리고 지도자가 돼서도 항상 모든 이들에게 정중히 인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그래서 다스는 누구 건가.

일단 내 건 아니다. 땀난다.

윤보상은 차범근과 메시보다는 박지성과 호날두를 택했고 유재석에 비해 김연아를 좋아하지 않았다. 페미니즘과 종교인 과세에 대한 자신의 뜻도 분명히 밝혔고 정치인도 비판했다. 다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이쯤 되면 안티가 좀 생겼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윤보상은 안티가 없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겸손했고 예의가 있었고 성실했다. 실력 못지 않게 생각도 건강한 선수였다. 윤보상과 대화를 나눠보니 그를 보며 옛 스승들이 왜 “쟤는 꼭 나중에 프로에 갈 것”이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윤보상처럼 성실하고 생각도 건강한 선수라면 반드시 성공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윤보상은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축구장에서 모든 팀 팬들에게 유일하게 박수를 받는 선수가 될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footballavenue@sports-g.com

*윤보상 선수와 사전에 충분한 협의 후 진행된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