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기획①] “레즈비언 모여 운동하는 것 막자” 무산된 퀴어 체육대회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는 결국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 퀴어여성네트워크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스포츠는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이 ‘모두’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과 성소수자들에게 체육활동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다.

퀴어여성들은 스포츠 활동의 주체가 되기 위해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을 준비하고 있었다. ‘명랑운동회’나 ‘가족 오락관’같은 성격의 대회가 아니었다.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풋살, 농구, 배드민턴 등 종목별 정식 경기를 최우선 목표에 두고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생활체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장기 목표로 기획하고 있었다. 여성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팀 동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스포츠를 즐기려 했고 스포츠로 유대감을 다지려 했다. 올해 10월 21일 열리기로 했던 이 체육대회는 혐오세력과 지자체에 의해 무기한으로 연기됐다. 퀴어여성들은 자신의 신체 활동 증진마저 저지당했다. 생활체육의 의미 속에는 그저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통한 삶의 질 향상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본 권리를 빼앗겼다.

퀴어여성들이 체육대회를 열어야만 했던 이유

세르비아전이 열렸던 지난 14일 저녁 <혐오가 성소수자에게 미치는 영향, 스포츠를 중심으로>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현장은 그야말로 ‘토론회’가 아닌 ‘토로회’였다. 다양한 발제와 토론이 오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 내용은 한 지자체가 퀴어여성들에게 체육관 대관을 취소한 사건이었다.

토론회에 모인 참여자들은 여러 사례를 언급하며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제한적이라는 의견에 공감했다. 엘리트 체육의 사례에서는 박은선의 성별 논란이 언급됐다. 토론을 진행했던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활동가는 “남자 선수들이 뛰어나면 ‘신’이라는 소리를 듣거나 부정적으로는 도핑 의혹을 받는다. 뛰어난 여자 선수들에게는 ‘남자’라는 의혹을 던지는 게 안타깝다”면서 “스포츠 내 성차별 인식이 심각하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토론에 참여한 발제자는 “태릉 선수촌이나 실업 스포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들에겐 성적 지향을 탐색하는 기회조차 없었다. 합숙 시설과 위계질서 안에서 운동에 매진하는 것 외의 교육들이 차단되어 있었다”면서 “팀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이 동성애자 같다거나 아무래도 남자인 것 같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생활체육 측면에서도 여성들의 자발적 스포츠 참여가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스포츠는 ‘여성적’인 활동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예쁜 근육’을 위한 운동만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여학생 체육활동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가 여성이 원래 체육에 관심이 없다거나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으로 분석되는 현실은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한 여학생은 토론회 배포물 지면을 통해 “아침 시간에 축구교실이 생긴다기에 신청했다. 거절은 당하지 않았지만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처럼 운동장을 누비지 못하고 패스 연습만 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다 끝났다”라며 체육활동 참여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퀴어여성네트워크'(이하 퀴여네) 측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체육활동에서 배제되는 경험은 극복한다 하더라도 젠더표현을 이유로 끊임없이 시달릴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거나 지역의 클럽에 소속하고 싶어도 주저하게 된다”고 덧붙이며 퀴어여성들을 위한 체육대회를 기획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 퀴어여성네트워크 페이스북

체육관 대관 취소 사건의 전말

퀴여네 측은 양천구민체육센터에서 체육대회를 열려고 기획하고 있었다. 체육대회 기획단은 비용마련을 위해 온라인 모금함을 열었다. 그런데 온라인 모금함이 열리자마자 양천구민체육센터에서 공사 확장을 이유로 대관 취소를 통보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당황했던 기획단은 아무 의심 없이 급하게 다른 장소를 마련했다. 동대문구체육관 대관 신청을 하고 심의를 통과해 대관료를 납부했다. 모임 장소를 수정해 다시 홍보를 시작하니 동대문구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성소수자 행사를 왜 허가해주었느냐는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관할인 동대문구청에서도 이를 문제 삼고 있다. 수습 방안이 없는가. 대관을 취소하고 다른 곳을 알아볼 수 없는가”라는 연락이었다. 기획단이 항의하자 공단 측은 “성소수자 행사가 ‘미풍양속’에 저해될 수 있고 대회 날 체육관 앞에서 반대 집회라도 열리면 ‘안전관리상 위해 우려’가 있다”면서 “이해관계가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항의 민원에 대응할 근거가 없다”며 퀴여네 측에 대관 취소를 종용하던 공단은 바로 다음 날 “대관 당일 동대문구청에서 갑자기 공사를 통보해 대관을 취소한다”라고 전했다. 동대문구청 측은 “민원 대응 차원에서 안내했을 뿐이다. 공사 일정은 실질적으로 공단에서 결정한다”면서 책임을 미뤘다. 이후 퀴여네와 공단 측 면담과정에서 공단 측은 “대관 담당자가 대관 당일 공사가 있는 것을 몰라 대관 허가를 했었다”고 전했다. 퀴여네 측은 “정말 공사가 문제라면 다른 일정을 제시해달라”고 했지만 공단 측의 답변은 “올해 12월까지 대관이 불가능하다”며 사실상 대관을 거절했다. 날씨 좋은 가을에 즐거운 체육대회로 모이려고 했던 퀴어여성들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동대문구가 처음 대관 취소를 ‘종용’했던 이유는 이렇다. 그간 공공시설과 광장 사용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했던 지자체들이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 국제인권 규범을 근거로 차별 시정과 인권교육 권고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항의성 민원이 이어져 대관을 취소시켜야 했던 동대문구 입장에서 양천구의 대관 취소 사유는 좋은 참고자료가 됐다. ‘미풍양속’과 ‘안전상의 우려’를 이유로 대관 취소를 종용했던 공단 측은 양천구에서 공사를 이유로 대관을 취소시키자 아무런 항의가 없었다는 점을 참고해 “동대문구청에서 공사 일정을 통보했다”라며 말을 바꿨다.

체육대회를 주관했던 퀴여네는 일련의 사건 뒤에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압박이 있다고 해석했다. 대관 심의도 통과한 상태에서 대회 홍보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대관 취소가 됐다. 퀴여네는 ‘항의성 민원’의 출처를 회원 22만 명에 육박하는 네이버 카페 <강남엄마vs목동엄마>로 간주하고 있었다. 실제로 카페 내에서는 “양천구 체육센터에서 열리는 거였는데, 알자마자 항의 전화하고 난리 폈더니”, “동대문 맘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셨으면 좋겠네요. 양천구 막았듯이”라는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게시물의 댓글에는 “레즈비언들이 운동하는 게 무슨 대수인가요? 지들이 무슨 운동선수도 아니고”라는 댓글도 달렸다. 카페 회원들은 “저도 이런 포스터나 행사 안 볼 권리 있어요”라고 했다. “다수의 권리 또한 보호받아야 하죠”라며 동조했다. 차별이란 말에는 ‘뜨악’하며 “누가 누굴 차별”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카페 <강남엄마vs목동엄마> 댓글 화면 갈무리

“이야기 살아있다… 다시 준비할 것”

퀴여네 측은 해당 사안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알림과 동시에 동대문구체육관의 동태를 살폈다. 공사 일정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현재 퀴여네는 국가인권위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퀴여네 측은 “대관 취소 이후 동대문구청 앞에서 궐기대회를 열었다. 공무원분들도 퇴근하지 않고 우리 궐기대회를 지켜보시더라. 구청 직원들만의 잘못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해서 더 압박하고 그러기에는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다. 올해는 계절적인 문제, 적절한 실내 공간을 구하기 쉽지 않아 내년 봄으로 미뤘다. 많은 과제들이 밀렸다”고 전하면서 “신청서 하나 넣어놓고 허가받았다고 해서 보장된다는 게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체육관이 시·구와 연결되어있는 협회들에 우선적으로 대관을 해준다. 심지어 비어있는 일정에 대관을 신청해도 조건부 승인이라 취소되는 경우도 있더라. 협력 관계를 설정하면서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한 번의 좌절인데, 우리가 이만큼 이슈된 적이 없었다. 이야기들이 살아있으니까 다시 단단하게 준비하면 내년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퀴여네 측은 ‘동대문구 체육관 대관 취소에 분노하는 여성성소수자 궐기 선언’의 일부 내용을 전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스포츠는 인권이다. 스포츠에 참여할 권리는 평등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스포츠에서의 젠더,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은 핵심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전달됐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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