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기획②] 스포츠는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성소수자 궐기대회에 동참한 정의당 ⓒ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여기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누구보다 에반게리온을 좋아하지만 친구들에게 ‘오타쿠’라며 놀림을 받을까 봐 주변 사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평소에는 숨어지내던 친구들을 만났다. 즐겁게 그들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던 중 ‘최애캐 사상검증’ 사건이 벌어졌다. 팀 ‘아스카’와 팀 ‘레이’의 갑론을박이 정점으로 향하던 중 ‘미사토’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현안을 제시했다. “키보드로 싸우느니 커뮤니티 단합대회도 할 겸 종목을 정하고 체육대회를 열어 승리하는 팀의 ‘최애캐’를 존중하자.” 회원들은 이에 동의하고 대규모 기획을 시작했다. 지역구에 체육관 대관 신청을 하고 허가도 받았다. 그러나 며칠 후 지역구에서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허가 후 민원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일본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체육관을 대관해 줄 수 없습니다.”

오타쿠냐 아니냐를 떠나 인간으로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역구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스포츠 활동을 제한했다. 평소 “에반게리온 세 명의 여주인공은 답이 없다. 그래서 반장 ‘히카리’를 밀겠다”라고 밝힌 나에게 “넌 이단이다. 우리와 뛸 자격이 없다”라고 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나라면 “히카리 좋아하는 게 대수냐. 차라리 ‘깍두기’로라도 뛰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이 모든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다. ‘오타쿠’라는 단어를 ‘성소수자’로 바꾸면 실제로 일어난 ‘레알 팩트’가 된다. <스포츠니어스>는 ‘퀴어여성네트워크’가 기획한 체육대회가 지자체의 대관 불허로 무기한 연기된 사건의 경위를 보도했다. 위에서 예로 든 작품 내 캐릭터 취향은 후천적이기라도 하다. 성소수자들의 성 정체성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흑인이라서, 외국인 노동자라서 체육관을 대관해주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는 결국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 퀴어여성네트워크 페이스북

실내에서조차 공도 마음대로 못 차는 사람들

체육은 운동선수만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이 됐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도 통합됐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이 그리는 큰 그림은 생활 속에서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을 모두 품어 디비전을 형성하는 것이다. 엘리트 위주의 체육은 일반인들에게 확장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며 올바른 방향이다.

스포츠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공정함’의 대명사인 스포츠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FIFA 정관 제1장 4조에는 차별 금지 조항이 있다. 조항 내용에는 여러 형태의 차별이 명시되어 있는데 무려 차별 금지 조항의 제목이 ‘차별 금지, 성평등 및 인종주의 반대’다. 올림픽 헌정 6조에도 차별 금지 조항이 있다. 여러 종류의 차별을 명시하고 있는 이 조항에 2015년 8월에 ‘성적지향’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퀴어여성들을 취재하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팀 스포츠라는 체육활동을 누리고 싶어 했다. 그들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운동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마음껏 자신을 드러내며 스포츠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모이기로 했다. 시끌벅적한 야외 행사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이 운동을 즐길 수 있을 만한 실내 공간이 필요했다. 배드민턴과 농구를 즐기고 싶었다. 축구는 필요한 공간이 너무 넓어 풋살로 대체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이들이 실내에서만 모여도 두려운 모양이다. 혐오 세력들은 “대낮에 옷 다 벗고 트럭 위에서 시위하는 게 무슨 체육대회를 이리하냐”고 한다. 체육대회 성격에 대해서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그들 표현으로) “레즈 운동회니까 반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자녀를 위한 교육관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차별과 혐오를 키운다는 것은 알겠다. 혹여 축구선수를 키우는 부모라면 나중에 그 아이가 커서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월드컵 무대에서 콜롬비아의 에드윈 카르도나 처럼 인종차별적 행위를 하진 않을까 걱정된다. 그들이 생각하는 스포츠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자녀만을 위한 스포츠일지도 모르겠다. 성소수자들은 실내에서조차 공도 마음대로 못 찬다.

해외 사례를 설명하는 문화연구자 시우 씨 ⓒ 스포츠니어스

‘모두’를 위한 스포츠,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의 위대한 점 중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같은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성적,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팀이 더 좋은 효과를 누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문화연구자로 일하는 시우 씨는 “성적,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팀은 모두에게 안전한 팀이라는 신뢰와 기대를 준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인재들의 참여가 유발되며 현명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더 많은 팬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며 선수 개인을 보호하는 영역뿐 아니라 팀 전체를 강화시킬 수 있다. 사회적인 이슈도 생산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전했다.

시우 씨는 이어 “스포츠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특정 단체나 선수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다양한 영역의 참여 주체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해외 사례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당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향한 교육과 더불어 보도와 기록 같은 언론 영역도 중요하다.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의 고민들이 있었기에 콜린스의 커밍아웃이나 콜린 캐퍼닉의 무릎 꿇기 퍼포먼스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이슈를 생산한 예로는 2013년 미국의 농구 선수 제이슨 콜린스의 커밍아웃이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다. 콜린스 이전에 커밍아웃 한 선수들은 대부분 은퇴선수들이었다. 그러나 콜린스는 현역 활동 중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가 커밍아웃하자 많은 팬들이 그의 등 번호가 적힌 저지를 구입했고 그의 커밍아웃을 응원했다. 콜린스는 재계약에도 성공했다.

현재 영국에서는 특별한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다. ‘스톤월 UK’라는 단체는 “스포츠를 모두의 게임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비롯한 스포츠에서 호모포비아를 근절하기 위해 ‘무지개 신발 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 운동은 2016년부터 시작됐는데 지금까지 번리의 조이 바튼, 에버튼의 필 자기엘카 등 많은 클럽과 선수들이 동참하고 있다. 구단 차원에서는 경기 시작 전 앤섬이 울려 퍼질 동안 광고 보드를 무지개색으로 배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호모포비아 근절 캠페인의 일환인 ‘Rainbow Laces’ ⓒ Bromley FC

‘윗분’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한국 스포츠 최정점에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를 비롯해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들의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K리그 경기장에서는 불법도박 근절을 위한 캠페인 동영상만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시민이란 본능을 규제로 제한하며 생긴 체제”라고 했다. 기능하지 않는 규제는 IOC와 FIFA의 정관을 옮겨 적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미국 대학 체육 협회(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NCAA)는 <Champions of Respect>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배포한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내용이 자세하게 담겨있다. 더불어 스포츠에서 그들을 혐오하는 호모포비아가 얼마나 부당한지, 얼마나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성소수자들을 위한 상담 센터, 관련 단체의 소개와 연락처도 포함되어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다가올 평창올림픽에서 특별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라이드 하우스’라는 프로젝트로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부터 시작된 국제적인 움직임이다. 그들은 평창에서 성소수자들이 모여 마음껏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센터의 연락을 받은 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은 “제한하지는 않지만 관여하지도 않겠다. 문제만 일으키지 말아달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9월 14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는 국민들이 원하는 체육 정책 개선 방향과 제안을 나누는 장이 열렸다. 해당 행사에는 문체부 차관도 참석했다. 해당 정책 포럼을 정리한 공식 문서에는 여성들의 체육 참여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실렸다. 운동장을 비롯한 체육 시설과 경기장 내에 여성을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수유를 위한 공간과 여자 탈의실의 부재에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문체부의 구체적인 답변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취재 당일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움직이는 이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 난입이라도 하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소 과격하다’라는 생각도 했지만 얼마나 절박했으면 저런 말이 나올까 싶다. 취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촌 기차역 근처에 있는 터널 바닥에 쓰여있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저항은 범죄가 아니며 모든 생명의 본질이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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