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선수들의 안전한 이동을 책임지는 이준열 반장. ⓒ아산무궁화

아산무궁화와 성남FC가 K리그 클래식 승격 문턱에서 만났다. 아산과 성남은 오늘(15일) 저녁 7시 아산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K리그 챌린지 준플레이오프 단판 승부를 치른다. 외나무 다리에서 살아남은 팀은 오는 18일 부산아이파크와 또 한 번 격돌해 K리그 클래식으로 가기 위한 승부를 펼쳐야 한다. 오늘 운명의 한판을 앞두고 그 열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스포츠니어스>는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진지한 분석 따위는 집어 치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팀만 생존하는 치열한 승부를 앞두고 두 팀은 같은 꿈을 꾸고 있다. -편집자주

K리그 1년차 VS 18년차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선수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지만 팬들은 잘 모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구단 버스 기사다. 구단 버스를 운전하며 누구보다도 선수들을 옆에서 살피는 이들은 이 운명의 한판 승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어제(14일) 오후 2시 반쯤 이 두 팀의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들과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두 기사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지금은 짧게 밖에 통화가 안 됩니다. 선수들이 마지막 훈련 준비를 위해 버스에 타고 있거든요.” 같은 시간에 두 기사는 서로 다른 버스의 운전대를 잡은 채 마지막 훈련장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을 안전하게 훈련장으로 모신 후 한숨 돌리며 여유 있는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아산 이준열 차량 반장은 올 시즌 입단한 신인(?)이다. 만 41세로 올해 경찰축구단이 안산에서 아산으로 옮긴 뒤 채용됐다. 물론 이전부터 운수업에 종사해 와 운전에는 도가 텄지만 그래도 몸이 재산인 선수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건 늘 힘든 일이다. “아무래도 운동하는 선수들은 심리적으로도 힘드니 영향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죠. 이동하는 도중에는 최대한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간적인 부분도 늘 신경을 씁니다. 선수들이 운동 준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시간을 여유 있고도 철저하게 맞춰야 해요.” 이준열 반장은 프로 초년생이지만 오랜 시간 운수업에 종사한 장인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경력으로만 따지면 성남 유금영 주임은 K리그 최고다. 2000년 성남일화 시절부터 선수단 버스 운전을 담당했던 그는 무려 18년째 K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1년~2003년 K리그 3연패는 물론 2010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먹으신 분이다. 故차경복 감독을 비롯해 샤샤와 김도훈, 윤정환 등 어마어마한 선수들도 다 현역 시절 유금영 주임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신태용 감독이 선수 생활을 할 때도 성남 버스를 몰았으니 살아있는 역사와 다름 없다. 자부심도 대단하다. “경기를 하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지만 우리는 늘 좋은 일이 많은 팀이었어요. 우리야 뭐 늘 정상을 위해 달려가는 팀이었죠. 알아서 잘하니 저는 선수들 안전에만 신경 쓰고 응원이나 해주면 되죠.”

베테랑 기사님 VS 공 줍는 기사님

성남 유금영 주임은 18년 경력자답게 과거 친하게 지냈던 선수들이 이제는 지도자가 돼 다시 만나고 있다. 울산현대 김도훈 감독, 수원FC 김대의 감독 등의 선수 생활을 모두 경험했다. 이제 경기장에서 그들을 만나면 세월을 체감하면서도 반갑다. “친하게 지냈던 선수들은 이제 다 은퇴했죠. 그때가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세월 앞에 장사 없어요. 허허.” 이제 그는 선수들을 아들처럼 바라본다. “이제는 누구 한 명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선수는 없어요. 예전부터 축구를 잘하건 못하건 다 똑같이 대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팀에 오래 머문 선수나 새로 온 선수나, 특급 선수나 2군 선수나 다 똑같아요. 다 성남에 오면 한솥밥 먹는 식구잖아요. 다 친하다면 다 친한 거고 거리가 있다면 다 거리가 있는 거죠.” 베테랑의 노하우가 느껴졌다.

반면 프로 1년차(?) 아산 이준열 반장은 패기가 느껴졌다. 그는 선수들이 훈련을 하면 ‘볼보이’를 자처한다. 처음에는 송선호 감독과 코치들이 “반장님이 하지 않으셔도 된다”면서 적극 만류했지만 이준열 반장 스스로 나섰다. 축구나 너무 좋아 시작한 일도 아니고 기회가 닿아 직업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선수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다 보니 이제는 훈련장에서 선수들을 도울 정도다. “처음에는 코치님들이 ‘이렇게 하시는 기사님은 없다’면서 말렸지만 제가 그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운전만 할 때는 선수들이 훈련에 들어가면 낯설어 했는데 ‘볼보이’도 자처하고 훈련도 도우면서 선수들과 얼굴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게 됐어요.” 가끔 선수들이 몸 풀기 러닝을 할 때면 그 옆을 같이 뛰기도 한다.

이준열 반장은 유독 현재 팀 주장 이창용과 많은 대화를 주고 받는다. 축구 전문가는 아니지만 삼촌 같은 입장에서 가끔 이창용에게 조언을 하기도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올 시즌 아산 버스기사로 지켜본 게 그의 축구 지식 전부다. “(이)창용이한테 ‘기회가 오면 패스하기 보다는 과감히 슛을 때리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전문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깨너머로 보며 느낀 걸 이야기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창용이가 ‘골 넣고 달려갈 테니 반장님은 어디계실 거냐’고 하더라고요.” 이준열 반장은 홈 경기가 열리면 주로 본부석 부근에서 경기를 지켜봤지만 오늘은 선수단 출입구 쪽에서 응원을 할 계획이다. “창용이가 오늘 골을 넣고 저한테 달려오면 꼭 안아줘야죠.”

성남FC는 유금영 주임의 응원에 보답할 수 있을까. ⓒ성남FC

두 기사가 전하는 팀 분위기

18년차 베테랑 유금영 주임은 이준열 반장과는 조금 다르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볼 때도 있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면 경기 도중에도 주로 구단 버스 곁을 떠나지 않는다. 18년 동안 쌓인 노하우다. “경기 시작 전까지도 후보 선수들이 심부름을 와 버스에서 뭘 꺼내갈 때도 많아요. 애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제가 자리를 떠나 있으면 안 되죠. 경기를 직접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거의 차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유금영 주임도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크다. 단지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는 지난 13일 선수단을 데리고 운명의 경기가 열리는 아산으로 내려가 선수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다.

성남 유금영 주임은 이번 경기에 대한 예감이 좋다. “노장 김두현과 박성호부터 어린 선수들까지 누구 한 명 이 경기를 허투루 준비하는 선수가 없어요. 18년 동안 봐 왔으니 알잖아요. 선수들이 스스로 얼마나 관리를 하고 준비하는지 이제 딱 보면 알아요. 오랜 시간 경기를 지켜보니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라야 합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했으니 이제는 하늘을 믿어야죠. K리그 3연패도 해보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경험해 보고 강등까지 당해봤으니 이번에는 승격도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어요. 선수들이 잘 해줄 겁니다. 허허.”

아산 이준열 반장도 선수들의 좋은 분위기를 전했다. “시즌 도중에는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가 부족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선수들끼리 장난도 잘 치고 웃으면서 하고 있어요.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선수들이 훈련 도중 다친 동료를 위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가와 괜찮은지 챙겨주고 있습니다. 서로 동료를 더 응원해 주는 목소리가 전보다 크게 들려요. 성남전을 위해 더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특히나 이준열 반장은 골키퍼 박형순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바라봤다. “아산은 군대 개념이라 신참이 일찍 나와 순번을 돌아가며 훈련 준비를 도맡아 해요. 그런데 (박)형순이는 늘 가장 먼저 버스에 와 훈련 준비를 하고 가장 먼저 훈련장에서 몸을 풀어요. 다들 열심히 하고 있지만 형순이의 모습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성남FC는 유금영 주임의 응원에 보답할 수 있을까. ⓒ성남FC

어느 버스가 ‘해피버스’ 될까?

이 둘은 마음은 같다. 경기는 전적으로 선수들에게 맡기되 누구보다도 절실한 마음으로 응원하겠다는 것이었다. 성남 유금영 주임은 선수들을 믿는다. “누구 한 명 꼽을 것도 없이 다 잘할 겁니다. 제가 평을 할만한 자격은 안 되고 응원만 할 뿐이죠. 감독님이 알아서 잘 하실 겁니다. 성남의 여러 순간을 함께 했지만 이번에도 굉장히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게 느껴져요. 아마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경기에서 이기고 기분 좋게 플레이오프가 열리는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운전하고 싶습니다. 성남으로 바로 올라가면 안 되죠.” 산전수전 다 겪은 유금영 주임은 성남으로 가는 길이 아닌 부산으로 가는 길을 그리고 있었다.

아산 이준열 반장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승패는 전적으로 선수들에게 맡기면서 한 가지 당부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산 선수들은 나이가 어린 편이 아니잖아요. 선수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아산이 축구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 하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경기 도중 다치는 선수들을 보면 가슴이 철렁할 때가 많습니다. 이기면 너무 좋겠지만 일단은 절대 다치는 선수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부상 없이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 기량만 발휘한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른 구단 버스를 운전하지만 이 둘의 마음은 비슷하다. 누구보다도 선수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들은 K리그 클래식에 가고픈 선수들의 열망을 잘 안다. 하지만 그전에 이 두 기사는 부모의 마음으로 이 경기를 지켜본다.

오늘 단 한 경기, 90분의 승부 뒤에 한 팀은 웃고 한 팀은 울 것이다. 그리고 한 팀은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경기장을 빠져 나갈 것이고 다른 한 팀은 쥐 죽은 듯 조용한 버스를 타고 이동할 것이다. 과연 이준열 반장과 유금영 주임의 버스 중 어느 쪽이 ‘해피버스’가 될까. 어느 쪽 버스가 부산으로 향할 수 있을까. 그 결과가 바로 오늘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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